21세기에 씨알사상과 그 운동

 

김 경 재

(http://soombat.org)

 

[1] 서론: 21세기 문명의 도전과 응전의 모습들

새로운 천년기 곧 제3천년시대(The Third Millenium) 가 동텄고 21세기의 첫해 서기 2,000년을 맞으면서 '씨알 사상'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형제자매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발제자는 21세기문명 속에서 씨알사상은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지니며 그 운동형태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제를 생각해보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이 어떤 문제로  진통하고있는지 20-21세기의 시대상황을 총제적으로나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씨알사상의 의미와 과제는 구체적인 시공을 떠난 어떤 관념체계가 아니라 '세계현실'이라는 역사적 토양 속에서만 씨와 알로서 그 생명을 틔우며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리얼한 생명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섯가지 점에서만  21세기 문명상황과 그 도전에 대한 응전 모습들을 점검함으로서 서론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 21세기 인류사회의 심각한 상황은  자연생태계 붕괴위기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태학적 윤리의식의 고양 및 우주관의 패러다임전환이다.  자연환경파괴로인한 생태계의 위기증대는 녹색운동을 펴는 시민단체들의 관심거리가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위에 살고있는 모든 생각있는 사람들의 가장 절박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자연과 대우주를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하고, 이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그 책임에 대한 전혀 새로운 발상법이 요청되는 시대에 도달하였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지배와 그 생산 소비양태 속에서 길들여진체 살아가는 문명인 들에게, 사람으로서 본래적인 삶의 스타일은 무엇인지  실천과 몸으로 보여주어야 할 시점에 도달한였다. 씨알 사상과 그 운동은 이 문제와 직간접으로 불가분리의 관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둘째, 21세기 인류문명사회 상황은 20억이상 절대빈곤인구의 증가문제와 유기체적 인류공동체의 도덕성의 위기문제로 압축된다. 제1세계 사람들중에는 자본, 기술, 정보, 자연자원을 독점 지배하면서 과소비와 호화사치생활을 당연시하는 몰가치론적 향락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있는가하면, 제3세계나 1세계 도시빈민계층은 하루 의식주 모든 문제해결을 미화 1달러미만으로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20억이상의 인구가 있다. 서울도시 고급 레스토랑의 커피한잔값이 5,000원인데, 재래시장 장터에 내놓아 팔고있는  30개포장 달걀 한판 값이 3,000원 미만이다. 이 현상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현실이며 인류공동체가 점점 유기체적 관계성이 깊어갈수록 빈부의 심원한 격차문제는 사회적 악성종양으로 인류공동체를 뿌리에서부터 붕괴시킨다. 씨알사상은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21세기 인류사회와 우리사회의 긴급한 상황은 가부장적 문화체계 및 그 가치관의 폐단과 이를 조정 해독시키는 모성적 문화구조와 가치관의 갈등충돌의 문제이다.  오늘날 인류사회를 병들게하고 있는 대량살상의 전쟁, 폭력, 무기경쟁, 성장신화, 공격적 정복주의, 거대주의, 제국주의적 발상법의 부활조짐등은 문명자체가 태생적으로 안고있는 가부장적 부성원리지배의 문명사회 폐단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일고있는 여성학과 관련된 일련의 이론 및 실천운동은 단순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이나 인권회복의 차원문제가 아니라 문명비판적 중요한 의미를 담지한다. 씨알사상과 그 운동은 이 문제와 깊은 관계성을 지닌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씨알'은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동시에 모든 형상의 어머니"(함석헌) 로서  자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21세기 인류문명사회 정치사회적 상황은  국가주의시대의 종언을 예고하고 참여적 시민사회를 기초단위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지구연대공동체로서 "새로운 인류의 몸 형성"(떼이야르 샤르뎅)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선각자 함석헌선생이 일찍이 갈파한데로, 역사의 시계는 국가주의 종언을 알리고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200여년 동안 봉건사회를 청산하고 근대국가사회건설의 시대를 지내온 인류문명은 20세기 1,2차대전을 겪으면서 국가주의의 장단점을 집약적으로 경험했다. '국가주의턴널' 이라고 부르는 역사의 턴널을  20량의 객차수를 달고 달리는 기관열차에 비유할 때, 선진국가에 해당하는 기관열차 앞부분 10량객차는 이미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10량 객차는 어두운 국가주의라는 턴널 속을 통과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상황은 2000년 벽두 총선 시민연대의 출현으로 인하여 지금 막 긴 턴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역사적 시점을 맞고 있다. 씨알사상과 그 운동은 이러한 역사적 카이로스 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다섯째, 21세기 인류문명사적 상황은 과학기술공학의 발달에 힘입은 정보화사회의 지구적 확산과 그에 상응하여 종교, 문화, 예술, 관습, 가치관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한 상호성장과 연대강화를 요청받는다는 현실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공학의 발달은 글자그대로 '지구촌'시대를 현실화시켰으며, 디지털 전자통신 문명과 생명공학기술은 기존의 사고틀과 사회적 가치규범의 일대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특정종교, 특정문화가치를 타지역에 배타적으로 강요하거나 문화정복주의를 획책 할 수 없다. 부드러운 마음, 탄력적 사고, 자기를 상대화시킬줄 아는 통찰력, 다름과 차이를 통해 배우고 성숙해가는 지혜가 더욱 요청되는 시대이다. 동시에 정보화사회가 만들어내는 정보문화의 '가상현실'은 그 휘황찬란함과 편의성이 극대화되면 될수록 '천하만국을 일시에 보여주는 유혹자의 시험'(마태 4장 8 절)으로서 역기능할 수 있다. 구체적인 한사람의 씨알생명이, 구체적으로 흙속에 뿌리내리고 피어있는 한송이 국화꽃이 컴퓨터문화가 창출해내는 '가상현실' 의 현란함의 총체성 보다도 더 귀중하다는 진리를 씨알사상은 증언해야하는 문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 우리는 다섯가지 측면에서 21세기 '문명의 기상도'를 간략히 읽어보았다. 기상도 위에서는 현실적으로 눈,비,서리,태풍을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그러나 지구 지표위에 어떤 기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서론에서 이런 '문명의 기상도'를 일별한 것은 씨알사상이란 무엇인가를 좀더 명백하게 파지하기 위함 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래에서 21세기 문명속에서 "씨알사상"은 무엇인가 그 근본적인 바탕을 다시한번 반추해 보기로 한다.

 [2] 씨알사상의 뿌리를 되새김질 함

씨알사상이란 무엇인가?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매우 당황해 한다. 한 두마디 말로 씨알사상은 이런 저런 것이라고 말 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씨알사상의 본질에 대한 학문적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다. 씨알사상은 살아 숨쉬고 있는 씨알 생명체들의 현실태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씨알을 객관화하여 고정시킨체 정의하기가 어렵다. 사실 함석헌 선생께서 다석선생의 생각뿌리를 창조적으로 이어내시어 씨알사상을 종교철학적으로, 정치사회사적으로,  문화인류학적으로 깊고 높게 일구어내시었고, 그 사상의 진수가 그 분의 전집 20여권 속에 녹아져있지만, 씨알사상은 완결된  것이 아니고 진행중이며 형성중이며 영원히 미완성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씨알사상은 씨알각자의 해석학적인 이해의 지평만큼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씨알사상에 대한 획일적 모범답안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새로운 문명 속에서 씨알들의 자리매김과 그 일감을 성찰하자는 이 자리 이기 때문에, 발제자의 주관적 이해에 제한해서라도 씨알사상의 바탕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볼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무릇 '바탕'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사람이 타고난 성질이나 체질 또는 재질을 말하는 것이므로 씨알의 바탕생각을 발제자는 다음의 일곱가지 범주로 나누어 말해보려 한다.

씨알의 바탕생각 하나: 실재란 고정되어 있거나 불변적인 실체가 아니라 창조적 과정 속에 있으며, 그 창조적 과정은 인격적, 영적 생명으로 영글어가는  창조적  진화과정이다.

   씨알사상은 삼라만물을 역동적인 운동과 생성과정으로서 파악한다. 철학적으로는 존재(being)보다 생성(becoming)중시한다. 씨알이라는 생물학적 메타포(은유)자체가 살아있는 그 무엇을 상징으로한다. 그러므로, 씨알사상은 항상 생각함에 있어서 항상 새롭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고인물은 썩고, 불변하는 물체는 죽어있는 기계일 뿐이다. 우주자체가 끊임없는 생성중에 있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씨알사상은 본다. 신천옹 함석헌의 용기있는  참의 소리를 인용하자면 "하나님도 죽은 완성이라기 보다는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바     퀴가 구르는 것이다"(전집1권, 57쪽)
   씨알사상은 그 바탕에 있어서 생성과 창조적 과정 속에서 삼라만물을 파악하는 것이라 한다면, 자연히 씨알 그 자체와 씨알사상 또한  창조적으로 변하고 창조적으로 생성운동속에 있는 역동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씨알사상과 그 운동에 있어서 정체현상이나 현실 안주나 전통고수란 독약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씨알의 바탕생각 둘: 참으로 리얼한 현실적인 실재는 항상 하나님,  역사, 그리고 인간 그 셋의  동심원적 통전현상이다. 실재는 언제나  하나님, 역사, 인간 삼재가 상호 구별은 되어야하되 분리시킬수 없는 상호침투 상호내주관계성 속에서  하나를 이룬다.
  
   씨알사상은 유난히도 만물의 역사적 실재성을 주목한다. 우주자연도 그저 그냥 그렇게 영원히 있는 실재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본다. 은하계도 역사가 있고 백두산과 천지폭포도 형성된 역사생일이 있고 언젠가는 없어질 날자가 있다. 역사적 과정에 대한 자의식은 자기를 반성적으로 되새김질 생각할  수있는 인간  생명현상에 이르러 가능하지만, 그러나 인간 이전단계의 지구진화나 우주진화단계에서도 역사적 경험의 축적과 그 영글어감의 흔적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다.
신천옹의 씨알사상은 현대카토릭사상가 라이몽파니카(Reimond Panikkar)신부의 '우주신인론적 비젼'(Cosmotheandric Vision)과 유사성이 있지만, 파니카신부보다는 보다 역사성을 중요시한다. 역사란 좁은 의미에서의 '역사학'에서 다루는 실증사학적인 기록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천옹에 있어서 우주자체의 출현과 지구형성과 생명의 출현진화 과정속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서는 포촉할 수 없는 "뜻"이 펼쳐지고 있다고 본다. 역사는 곧 '뜻'의 실현과정이며 '뜻 있음'의 힘이 '뜻 없음'의 맹목적 우연과 반복과 엔트로피현상을 이겨내고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 역사현실, 그리고 그것을 작은 뜻 속에서 배아로 삼고 펼쳐나아가는 씨알로서 인간 그 셋은 동심원적 삼중겹의 실재이다. 공간적 은유로말하자면 그 하나의 생동하는 우주적 현실재를 위에서 파지하면 하나님이고, 과정운동 속에서 파지하면 역사가되고, 아래 맨 밑바닥 현실끝에서 파지하면 민중 씨알이된다. 그러므로, 구체적 역사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면 하나님도 모르고 씨알도 모른다.

씨알의 바탕생각 셋: 생명가치는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 우주진화의 산고진통은 생명 을 낳고, 생명의 산고진통은 인격적 정신을 낳고, 인격적 정신의 산고진통은 생명을 영적으로 고양시킨다.

신천옹의 씨알사상이 영글어가는 과정에서 예수회신부요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샤르뎅의 창조적 진화사상과 그의 명저 <인간현상>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인간자의식의 출현 곧 반성적 사유능력의 출현사건이 곧 사람의 출현사건이며, 자기를 안으로 드려다보고 전체를 뜻으로서 꿰뚫어 보려는 맘의 운동은 오로지 인간 생명단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직업도 없고,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한 시골농부의 가치는 전체 지구진화 45억년의 농사 끝에 영글어 피어난 꽃이요 열매이기 때문에 사람생명가치가 무조건 엄숙한 것이다. 요즘 유전자복제기술의 개발과 컴퓨터의 사이버문화의 범람 속에서 까닥 잘못하면 현대인들이 가치관의 혼돈속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일수록, 씨알 사상은 "한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것"이라는 예수의 선언에 확고히 서야한다.
   씨알사상은 창조적 진화와 뜻의 실현과정을 내면화해가는 역사과정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역사는 단순한 반복회귀순환운동을 하거나,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는 직선운동을 하지 않는다.  역사는 되풀이 하는 듯 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신천옹의 씨알사상은 반복순환을 강조하는 동양사상일반의 자연주의이거나, 역사적 진보발전만을 맹신하는 서양의 역사주의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지양한다. 신천옹의 은유로 말하자면 역사는 나선형 모습을 지닌다. 반복하는듯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한단계를 앞과 위를 향해 전진한다.
  인간의 '순수자아', '참 자기'는 궁극적 실재 '브라만'과 존재론적으로 동질성을 지닌 본래부터 항존하는  '아트만'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신성은 인간성의 존재론적 바탈일 수는 있지만, '순수자아 ', '참 자기'는 명상적 해탈을 통해 항존적으로 거기에 이미 그렇게  있었던 '본래적 불성'을  발견하고 눈뜨는 것 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씨알사상이 말하는 진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순수자아', '참자기'는 자기노력으로 쟁취하는 업적물이 아니고 진리자체 또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이미 주어진 은총이라는 점에서 '이미 거기에 와 있는 빛의 현존'과같은 것이지만, 존재의 자기계시와 같은 사건으로서의  해탈체험이 진정으로 완결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영글게하고 성취시켜야하는 참여적 과정을 통해 더욱 생명답게 되는 것이다. 신천옹의 씨알사상에 있어서 "생명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생명의 제1원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천옹에게 있어서는 존재론적 동일성의 원리보다 참여적 원리가 더 무게를 지님으로서 그는 동양사상을 바탕에 깔면서도 기독교 사상가로서 특이한 색조를 띄게 된다.

씨알의 바탕생각 넷:  고난은 생명의 제2원리로서 피할 수 없는 창조적 계기로서 파악한다. 생명의 성장과 승화, 역사의 진보와 성숙을 위해서 고난은 거쳐가야  하는 산고의 진통이다. 고난을 미화하거나 찬미할 필요는 없지만 고난을 회피하거나 면제해 준다는 진리주장들은  참이 아니다.

씨알사상의 독특한 점은 고난이라는 현실을 생명의 탄생,성장, 자기승화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창조적 계기로서 파악한다는 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말한대로 모든 본능적 삶을 추구하는 생명체들은 '쾌감의 욕망충족 법칙'아래서 움직인다. 쾌감을 증대시키는 쪽을 택하려들고 고통을 피하려 든다. 그러나 창조적인 것이 가능하려면, 숭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이 증대하려면 생명은 '고난'이라는 연단의 풀무불을 통과하여서만 가능하다. 고난은 자유라는 생명체험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존재론적 숙명같은 것이다. 고난을 모르거나 체험해 본적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집단은 생각이 천박하거나 경박하다.  고난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마지못해서 생각없이 불평하고 찡그리면서 받는 고난은 아무런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의 예에서 보듯이 고난의 풀무불, 고난의 용광로가 없었다면 성서의 정신세계는 인류역사 속에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문명의 위기는 인류가 고난을 아주 없는 것처럼 부정하고 피해 가려하거나  마취약같은 고통완화제를 남발하여 인간의 정신을 매우 나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종교는 고난을 면제시켜주는 비방을 알려준다고 선전하며, 과학은 고난을 감소시키는 기술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며, 예술은 고난없는 희극만을 연출하겠다고 선전이다.

씨알의  바탕생각 다섯: 씨알사상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개체이면서 전체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 있는 참여적 관계구조 속에있다고 본다. 특히 씨알이라는 인간생명현상에 있어서는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하고 자각적으로 나타난다. 개체인간은 전체를 대표하며, 개체 생명안에 전체가 숨쉬고 있으며, 전체 생명은 개체를 위해 존재한다. 개체화와 사회화는 동시적 이며 상관관계적이다.

씨알사상은 서구 19세기에 극단적 형태로 발전한 개인주의 사상이나, 고대 및 현대정치 사회 속에서 출현했던 집단주의 및 전체주의적 사회관을 동시에 부정한다. 개인은 개체적 생명체로서 신성불가침한 절대생명이면서 동시에 그 개체는 전체와의 유기적 관계성 속에 있기 때문에 전체의 운명과 불가분리적 관게 속에 있다. 한 사회공동체에 있어서 개인의 범죄행위는 개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면서도 동시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 책임을 일정분량 공유하지 않으면 않된다. 사회구성원 일부 또는 하나가 병들고 고통당하는 때, 그 사회전체는 공동책임이 있다. 그 이유는 도덕적 이유이기 전에 존재론적 구조 때문이다. 한 국가사회의 정치적 부패와 타락에 대하여 일차적으로는 부패한 정치인의 책임을 물어야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부패정치인의 양산과 무법적 활동을 방치하고 편승한 국민의 책임인 것이다. 특히 씨알은 국민층의 맨 밑바닥을 이루는 기층생명체이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오물과 그 죄악의 찌거기를 다른 그 어느누구에게 전가할 대상이 없는것이며, 역사의 책임을 궁극적으로 짊어져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씨알은 역사의 주인이며 고난의 어머니이며 역사적 삶이 배출해내놓는 온갖 오물의 정화조이다.

씨알의 바탕생각 여섯: 씨알은 창없는 단자(monad)가 아니고 열려있는 생명체이다. 씨알은 과거의 모든 삶의 자양분과 유산과 고난까지를 자기형성의 자양분으로 받아 자기를 형성하고 동시에 자기를 다음세대의 씨알생명에게  밥으로 물려주는 성례적적 순환구조의 삶이다. 그러므로 씨알사상은 생각하기를 삶이란 연대, 공동향유, 그리고 함께 전진이라는 삼박자의 운동을 한다.

씨알사상은 씨알의 존엄성과 그 순수성과 끈질긴 생명력을 믿는다. 그러나 씨알은 그 단독자로서는 지극히 연약하고 덧없는 존재일 수 있음을  안다. 들판에 돋아난 잔디나 빗방울처럼 하나 하나로서는 지극히 약하고 힘도없다. 그러나 잔디가 군집을 이루어 대지를 덮을 땐 그를 이길 자가 없으며, 빗방울이 모여 홍수를 이룰 때 그를 막을 자 없다. 씨알사상은 삶이란 본시부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으로서 인간이 되고나서 더불어살아가는 사회적 존재행위를 영위해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있음의 인간성'(Mit-menschlichkeit)이 창조의 본래모습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물질적 재화와 정신적 자산과 정보와 온갖 생필품들을 독점하고 오만을 부리는 것은 사람됨의 상실이요 병든모습이라고 본다. 하늘을 독점소유 할수 없듯이 밥을 독점해서는 않된다. 바람과 햇빛을 독점할 수 없듯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해서는 않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독점할 수 없듯이 진리의 말씀을 어느 개인이나, 특정 종파나, 지식집단이나 사제계급이나 특정문화가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씨알의 바탕생각 일곱: 씨알은 비폭력적 평화주의를 지행하되 무력하지 않고, 일체의 악과 불의에 저항하되 앙심을 품지 않으며, 그 마음의 지성소엔 언제나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되 실천적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활동적이고 적극적 행동주의를 닮는다.

씨알사상은 불의와 부정에 분노할 줄 모르는 관용이나 자비나 사랑을 멸시한다. 진정한 사랑과 자비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다. 씨알사상은 고고한 은둔주의나 삶의 변두리에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는 명상가를 흠모하지 않는다. 씨알의 삶의 현장은 논밭 한 복판이고, 시장 한 복판이며, 국회의사당 한 복판이고, 생산공장 한 복판이라고 믿는다. 불의에 대하여, 참이 아닌 거짓에 대하여, 씨알의 생명을 침해하고 짓밟고 멸시하는 세력에 대하여 저항하고 투쟁할 줄 모르는 씨알은 병든 씨알이요 죽은 씨알이다. 생명 그 자체가  비존재 세력과의 신성한 겨룸이고, 선한 뜻을 이루려는 야곱의 얍복강 씨름 이며,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창조해가려는 자유의 투쟁과정이기 때문이다.

발제자는 이상에서 말한 일곱가지 바탕생각을 씨알사상 속에서 배우고 흡수하였다. 물론 그보다 더 본질적인 씨알사상의 핵심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씨알마다 받는 가르침의 다양성이요 풍요로움이다. 일단 발제자는 앞서말한 일곱가지 씨알사상의 바탕 생각을 염두에 두고 그러면 구체적으로 앞으로 한국의 씨알 운동은 어떤 과제를 지니는가 생각의 일단을 피력해 보려 한다.

[3] 21세기 씨알운동의 과제

첫째, 씨알운동은 날마다 달마다 자기를 새롭게 생각을 깊이하고 자라고 갱신하는 자기교육, 자기훈련에 정성을 쏟아 능히 역사의 주체자로서 실력양성에 힘써야 한다.

    한국의 씨알사상운동은 신천옹의 타계이후 침체기에 들어갔다고 반성해야 한다. 한국의 씨알들은 각기 자기자신의 씨알껍질 속에 칩거해 들어가서 자기세계안에 농성하는 형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알생명은 물론  씨알 하나 하나가 전체를 대표하고 그 안에 전체를 담고있지만,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씨알은 생동하는 역동성을 지니면서 끊임없이 다른 씨알들과 연대 교류를 강화하고 대화, 교류,협동,상호성숙, 선행에 힘써야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한국의 씨알운동은 고립주의, 단독주의, 은둔주의, 개인주의 성향이 짙다. "독야청청하리라"라는 독선주위 위기마져 보인다.  씨알사상의 중요한 원리중 하나가 "스스로함의 원리"라고 알고있으면서 한국의 씨알운동은 스스로 자기를 훈련하고 키우고 깊이하고 넓이하는 대승적 열린생각이 매우 부족하다. 위대한 영혼들은 홀로서도 천만인을 감당할만치 위대하지만 평범한 씨알들은 덧없이 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씨알운동은 지방규모로나, 전국규모로나 적어도 일년에 4회이상 깊은 수련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둘째, 씨알운동은 스스로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작은 지역단위로 모임을 형성하고, 씨알사업의 모든 구상과 그 힘을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그물망 넷트웍캉 구조를 가져야 한다.

십여년이상 꿈꾸고 바라던 '사단법인' 인가도 받았고 이사회도 구성되었으며, 그동안 이사장이하 이사들의 노력으로 어느정도 최소한도의 기금도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알운동은 그 '하드웨어' 는 강화되었는데, 그 '소프트웨어'는 침체되고 거의 죽어간다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씨알회원들이 많다. 그 원인은 구조의 경직성과 법인체의  "위로부터 아래로"의 구조 때문에 온다. 이사장이하 이사님 어느누구도 씨알 생명운동을 독점하거나 지배하려는 생각이 없다. 그러나 법인체로서 조직구조는 그 자체의 운동법칙과 관성을 갖게 되는데, 법적인 이사회가 구성되어있고 '정관'이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씨알회원들은 그 규정에 메이게 된다. 아래 씨알회원들은 '이사회' 위를 피동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사회'는 아래 씨알들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와 활동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실지로는 아무런 운동을 할수 없다. 조직구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씨알사상운동이 활성화되려면 일반사회단체가 가지는 피라밋형 구조조직을 역동적인 그물망체계로 바꾸어야한다. 예들면  지역마다 씨알회원 20-30명단위로 "풀뿌리기초씨알공동체"를 조직구성하고, 그러한 기초공동체가 국내외 합하여 20개소 또는 30개소가 만들어지고,  각각의 "풀뿌리 씨알기초공동체"  대표를 뽑아 중앙위원회로 보내서 20-30명정도크기로 구성된 중앙위원회가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의 모든 기획, 훈련, 사업계획을 협의하여 이사회에 제청하는 유연성과 다중심적인 그물망 구조로 바꾸어져야 한다. 이사회는 기념사업회를 법적으로 지키고 보호하는 '울타리' 역활을 하고 실질적 운동은 자생적이고 참여적인 밑바닥 씨알회원들로부터 솟아나와야 한다. 현재 정관에 언급되고 있는 "운영위원회"를 그런방향으로 재구성하여 활성화하면 어렵지 않게 실천에 옮길수 있을 것이다.

셋째, 씨알사상운동체는 스스로 폐쇠적 단체로 전락하거나 역사현실의 변두리에 은둔하는 자기수양단체로 머무르지 말고, 삶의 한복판과 역사현실 중심 현장에 현존하면서 증언하고 일하는 사회단체로서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지녀야 한다.

씨알사상의 중심은 이론이 아니고 실천적 삶이다. 정신적 지지가 아니라 몸으로서 참여를 통한 생명적 투쟁에 있다. 삶은 아름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치열한 것이다. 신천옹는 생존시 씨알운동을 펼치실 때, 항상 역사의 중심 한복판에 몸으로서 현존하셨다. 노동자농민운동, 목요기도회, 인권운동, 통일운동, 평화운동이 있는곳에 몸으로 현존하여 증언하고 참여하고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예들면 총선시민연대의 놀라운 역사적 운동에 씨알단체의 이름으로 기금을 모아보내고, 그 운동본부를 방문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원하는 운동을 오늘이라도 당장 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제된 씨알사상연구회와 죽은 씨알운동단체가 되고 만다.

넷째, 씨알사상운동의 제일차적 목표를 항상 젊은 새로운 세대에게 씨알사상의 핵심진리를 계승 발전시키게하는 일이다. 그일을 위하여 씨알사상은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연구되고, 책으로 출판되고, 정보화사회에 걸맞도록 멀티미디어 매체를 통해 보급되어야 한다.

2001년은 특히 신천옹탄신 100주년 기념의 해가 된다. 기념관을 건립하거나 기념비를 세우는 물리적 시각적 운동보다도 훨신 더 중요한 일은 정신적 사상운동으로서 씨알사상 운동을 저변화 하는 일이다. 씨알사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전수하여 그들 생명의 일부분이 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하여 사단법인으로서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도 후회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씨알사상에 관하여 연구발표되고 씌여진 모든 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출판하는 일도 시급한 일이다.

다섯째, 21세기 문명의 위기를 전망하면서, 씨알사상의 구체적 집중사업을 몇가지로 정하여 목적사업으로 강조해가야한다. 녹색생명운동, 풀뿌리 민주시민운동, 더불어 살기 경제운동,  반전 비폭력 평화운동, 진실과 절제운동, 종교대화와 협동운동 등이 있을 것이다.
거듭말하거니와, 씨알사상은 심원한 사상운동이요 정신운동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사회적이고 역사참여적이며 공동체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씨알사상과 운동은 항상 "정중동, 동중정" 해야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 씨알사상과 그 운동의 자기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분명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는 이제 새로운 단계에로 진입하고 있으며 그 안에 생명력이 있는가 없는가 역사와 민족으로부터 테스트 받는 결정적 시험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씨알회원 모두 각자의 각성과 분발 그리고 자기를 비우고 협동하는 대승적 태도가 요망되는 시기에 우리는 도달하였다. 씨알은 영원하고 씨알사상은 영글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