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교회 설교 / 1999년 2월 21일

나선운동과 생명외경

김 경 재
경동교회 협동목사

시편 104편 27~30절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 먹고, 주께서 공급하여 주시면 그들은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립니다. 그러나 주꼐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께서 호흡을 거두어 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 갑니다. 주께서 주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성경의 골격을 이루는 기본적인 신앙축은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와 하란땅 그의 친척 아비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에 대한 신앙적 응답으로서 이뤄집니다. 구약성경은 본질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대표되는 유랑하는 부족들이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의해 민족을 이루고, 세계사 속에 역사의 심지를 박아 가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축제일은 그러므로, 우주자연이 새롭게 갱신된다고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신년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축제일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이요,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부활절입니다.
성서신앙이 패러다임이 그 본질상, 구원사중심의 신앙세계요, 약속과 성취를 중요시 하면서, 하나님의 계약과 성실하심을 신뢰하고 만물의 구원과 새롭게 하심을 기다리는 종교라는 특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세계는 출애굽과 예수부활이라는 두개의 초점을 중심으로 해서 그려지는 타원형의 생명파 물결운동 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사건과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예수의 부활사건이 성경적 신앙의 두 핵이 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거기엔 하나님의 살아 계심,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 신실과 정의로우심, 약하고 억울하게 버림받은 자를 일으키시는 창조주의 은혜로운 의지가 작동합니다. 거기엔 사람이나 자연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영의 활동, 희망의 종말신앙이 약동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교만, 기만, 태만, 부정, 불의에 안주하려는 인간집단을 고발하고 흔들어 불안하게 만드시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살아 있습니다. 성경의 신앙세계가 출애굽사건과 예수 부활사건을 두 핵점으로 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의 온전한 성취를 지향해 가는 영적 운동임을 부인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점을 전제로 하고 성경의 또다른 차원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20세기가 다지나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기독교 성서신학계에 커다란 자기반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반성의 한가지는, 지금까지 성경을 너무나 '구원사' 일변도로서만 읽었고 '창조사'로서는 읽지 않았다는 뼈아픈 반성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주자연의 순환리듬과 창조과정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구원하시는 모습을 바르게 고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해만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심령과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우주자연을 새롭게 하시고 순환시키시고 재생시키심으로서도 그 안에서 살아 역사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20세기를 다보내고, 새로운 1000년대를 눈앞에 두고서 우리들의 실재관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전통적 기독교의 실재관은 역사와 창조를 '직선운동'으로 단순화 시켜버렸습니다. 창조와 종말이라는 두점을 설정하고 잣대를 두점에 대고 일직선을 좍 그어버린 형국입니다. 그렇게 만물을 직선운동 위에 놓고 보면, 모든 것이 전진, 발전, 기획, 미래만 강조되어 클로즈업 됩니다. 과거의 중요성이나 오늘의 중요성은 반감되고, 더욱이 자연우주의 순환구조를 통하여 지면을 새롭게 하시는 생태학적 발상법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거기비하여, 다른 한편의 전통 동양종교들 곧 우주종교들은 세계를 '원운동'으로 단순화시킵니다. 우주도 순환하고, 인생도 순환하고 시간과 역사도 순환하여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고 봅니다. 해아래 진정한 새 것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종교는 미래의 지평, 약속의 지평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습니다. 원운동 하는 팽이의 중심은 언제나 변함없듯이 '영원한 현재'가 중요할 뿐이고 미래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우주의 순환재생을 중요시하는 동양전통종교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미래약속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성현들의 축적된 경험이 중요한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기준이 과거에 있고 모든 좋은 것의 가치가 과거 전통속에만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안정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사회는 침체되고 역동성과 변화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전체시각에서 볼 때, 성서적 패러다임의 참된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직선운동'도 아니고 '원운동'도 아닌 '나선운동'입니다. 나선은 달팽이 껍질의 둥근 선을 말합니다. 달팽이 껍질을 맨 바깥쪽부터 선을 따라 빙빙 돌다보면 맨 아래 꼭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나선운동이란 나사못에서 보는 바처럼, 원운동 형태를 하는 듯 하면서도 똑 같은 원 둘레를 빙빙 반복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을 그리면서 점점 더 깊고 새롭게 어떤 지향성을 가진 운동을 하는 모습입니다. 반복하고 순환하는 듯 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을 그려가고 더 높고 깊어 가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나선운동이란 만물창조적 변화에 필수불가결한 원리인지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무한수로 무리지어있는 은하계성군들이 그냥 우주공간에 퍼져있는것이 아니라, 거대한 소용돌이를 하는 나선운동을 하는 별무리 모양이라고 우주만원경으로 보여줍니다. 지구중력에 묶여 있거나, 달 주위를 돌던 우주선이 괘도를 바꾸어 지구에로 귀환하려해도 괘도 길이가 다른 나선형 순환운동을 하면서라야만 새 길을 밟아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불교는 성주괘공과 윤회를 말하고, 도덕경은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운동'이라 말하고, 유학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말합니다. 그것들은 각각 진리의 어떤 면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 세 종교의 실재관의 공통점은 역시 원형적 순환운동형이요, 원운동을 말할 뿐입니다. 거기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것'의 창조적 출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성경의 세계에서만이 '나선형 순환운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창조설화가 그렇습니다. 창세기7일간의 창조과정이야기는 단순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이더라 '라고 날의 반복변화만이 아니라, 우주자연 물질계가 출현하고, 생명세계가 출현하고, 정신계와 영적 세계가 지어져가는 나사못의 심화과정이 거기에 있습니다. 떼이야르 샤르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질권이 형성되고, 생명권이 형성되고, 정신권이 형성되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머리와 심장으로 하는 영성권이 형성되어 갑니다.
오늘 주님은, 요한 복음서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천지지간에 가장 존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생명'이며 생명중에서도 '사람'생명이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가장 존귀한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게' 속에 감춰져있고 보호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 신학, 문학박사요 유명한 바하음악연주가요 의사였던 20세기 성자 알버트 슈바이쳐는 '생명 외경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 '외경'이란 매우 종교적 용어입니다. 귀중하게 여길 정도가 아니고 두려워하면서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20세기 고전이 된 그의 < 역사적 예수 탐구 > 결론에서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 그 분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분으로, 이름도 없이, 그 옛날 호수가를 거니시듯 우리에게 오신다. 그 분은 그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오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우리시대에 그 분이 성취해야 하는 과제들을 우리에게 맡기신다. 그 분은 명령하신다. 그분은 똑똑한 자든지 무식한 자든지 그 분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그 분과 사귀면서 거쳐야 하는 온갖 수고와 갈등과 고난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신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서 자기를 계시하신다. 그들은 자기자신의 체험 속에서 그 분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 알버트 슈바이쳐박사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그리스도는 그를 아프리카 람바네로 불렀습니다. 오늘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어떻게 살라고 부르시는지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 명령은 생명가치를 파수하라, 황금권력숭배가 아닌 생명외경의 윤리를 보다 널리 선양하라시는 말씀으로 들려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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