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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사립대학에서 찾는 종교자유와 인권, 관용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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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계 사립대학에서 찾는 종교자유와 인권, 관용의 의미
               - 종교다원론의 의미와 대학의 교양과목 설치 목적을 중심으로-

                                                   김경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1. 들어가는 말

  발제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발제자는 우선 강남대 이찬수교수 부당해직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며, 왜 그 문제를 바로 되돌려 세우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며, 강남대 대학당국이 범한 과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먼져 정리하고자 한다.  사안에 따른 법률적 대응, 사학법의 개선문제, 당사자 인권 회복과 교수권 복직문제등과 관련된문제는 전문학자인 제2발제자가 다룰 것으로 기대한다.  제1발제에서는 사안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발제형식으로 언급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근본이 바로 정립되면 문제해결 방법이 생긴다”(本立而道生)는 논어의 옛글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사안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란 진리를 추구한다는 대학의 본질과  특정 종교적 도그마를 기초로 하거나 전제하여 특정 종교진리를 주장하고 포교하려고 설립된 포교단체(선교단체)와 어떻게 다른가 분명하게 논의해야 하는 과제이다. 또한, 현대문명사회에서 종교다원주의의 정당성이 무엇이며, 특히 지성의 도장인 대학사회에서 교양필수과목으로 설치한 교양과목(이찬수교수의 경우 ‘기독교와 현대사회’)의 교육․종교철학적 의미와 그 실행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제이다. 그러한 점들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서 강남대학교가 아무리 종교계 사립대학 일지라도, 대학교육기관이라고 인정받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려면, 이번 잘못된 이찬수교수 부당해직 사건은 하루속히,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려하고 한다.  

2. 강남대 이찬수교수 부당해직 사건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강남대의 이찬수교수 부당해직 사태가 빠른 시간 안에 바르게 해결되지 못하고, 이렇게 장기화 되면서 강남대학대 당국, 한국사회 지식사회, 종교계와 교직원노조, 그리고 인권실천시민연대등 많은 관련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이유는 관련된 사안을 해결하는 절차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몇몇 소수 권력집단이 사안의 본질파악을 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구차스런 자기변명과 변호 및 책임회피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태도는 진실을 외면하는 불성실이며,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용기없는 비겁함이며, 문명사회에 역행하는 야만행위이며, 총성소리 들리지 않는 살인적 폭력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제자가 말하는 ‘소수 권력집단’이란 강남대 이사회와 이사장, 강남대 총장이하 교직원 인사위원회, 문제발단의 장본인인 강남대 교목실장, 강남대 교양과목 설치위원회 및 신학대학 교수진을 말한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대학 교육행정을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 인적자원부내 관련분야 행정책임자들을 말한다.

  2.1. 강남대 당국은 대학(university)의 목적과 기독교 전도(Christian evangelism)를 혼동하고 있다.

  이번 ‘이교수부당해직 사태’는 한국의 현대사회가 지난 100년간 크게 변했는데, 당사자들은 아직도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1885-1920),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한국에 전파할 때 그 효과적 ‘방편’으로 활용하였던 기독교 사립학교 설립목적 곧  ‘개화인과 기독교인 만들기’라는 이중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대착오적 의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가지고 있는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한국의 개화기에 기독교 사립학교가 이룬 지대한 업적을 과소평가 해서는 아니된다. 고등교육기관만 하더라도  숭실전문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연희전문학교등이 대표적 사례이고, 중등교욱기관만 하더라도 숭실, 이화, 오산, 명동, 양정, 용정중학교등 수십곳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인재를 양성하여 오늘 한국사회의 중요한 기틀을 세웠다. 그러한 기독교 사립학교에서는 현대교육․기독교신앙․민족운동이 불가분리적으로 통전되어 있었다.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는 기독교과목의 설정이나 정규예배 실행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드려졌고, 적어도 그러한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입학을 지망한 학생들이나 학부형들 또한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학생선발권과 학교지망권이 각각 학교당국과 학생들 및 학부형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개화기 시대가 지나고, 사회구성원의 가치관 및 세계관의 다양화,  인권의식 및 양심의 자유의식, 교육권의 주체의식이 널리 확장되어 가는데 반하여, 현대 한국의 중등교육 정책은 중등교육과정 평준화라는  명분아래 국가가 교육행정을 지배하면서 더욱 갈등은 누적되고 점증되어갔다. 기독교 사립학교의 건교이념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창조적 패러다임 전환’을 모험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개화기 시대’ 기독교계 사립학교 운영관행을 지속하려고 했다. 그 결과 터져나온 한 사례가 ‘대광고의 강의석군 사건’이다.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기독교진리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채플을 운영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아주 파격적인 발상법을 통하여, 기독교가 인류문명과 인생에서 갖는 의미를 교육과정에 소개하는 것이 득이 되면 되었지 나쁠 것  하나도 없다. 다만, 그 교육방법과 전달방법은 어디까지나 교육적이어야 하고, 다양화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유로운 교과과목과 채플참여 선택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계 사립대학교에서 ‘기독교진리’의 전달은 더욱더 ‘창조적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받게 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기독교계 사립대학의 이사회나 교육행정집행자들, 교목실 담당자들은, 현대 한국사회는 개화시대가 아니고 가치의 다원사회 이며,  대학이란 전도(포교)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아니고 고도의 학문진리와 삶의 지식을 교육전수하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대 대학의 학문이론은 진리탐구에서의 개방성, 다양성, 창조적 모험, 학문연구와 진리탐구의 자유, 학제간 교류, 연구업적의 공개성과 사회적 공익성강조등을 열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이란 ‘무한히 열려진 진리 탐구의 도장’이어야하는 것이지 중세기적 도그마가 지배하거나, 공산국가에서처럼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치정당이 학문을 교도하거나 제약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생명은 진리탐구와 연구 및 실험 ‘자유와 개방성’에 있는 것이다. 종교적 진리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예외가 될 수 없다.      모든 종교엔 종교가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진리명제를 ‘도그마’(Dogma)나 ‘교리들’(Doctrines)로 고정시키고  이것을 교조적으로 전수시키거나 수용하도록 강요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이러한 세력이 대학에 존재하면 그 순간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생명을 그치고, 특정종교집단의 ‘포교연수원’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운영하는 ‘포교연수원’ 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이중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면서 ‘대학’이라는 간핀아래 자신의 목적을 은폐하면서 목적달성을 하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러한 소리를하면, 기독교 사립대학교 이사회나 운영자들은 펄쩍 뛸 것이다. 숭고한 교육목적과 고귀한 기독교진리를 전달하여 민족과 인류사회에 공헌하기 위하여 정재(淨財)를 바쳐 공헌하려하는데, 무엇이문제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번 강남대학교에서 발생한 ‘이교수 부당해직  사태’에 대한 대학당국의 명분은 “창학이념을 확립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강남대학교의 건학이념이란 무엇이기에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문명사회 백주대낮에 자행될 수 있단 말인가? 강남대학교가 세상에 표방하는 ‘창학이념’, 교훈, 교육목적, 그리고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가) 창학이념
      기독교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진리,자유, 평등,
      평화, 복지를 추구하며 경천애인을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나) 교훈
       경천애인
  (다) 교육목적
      강남대학교는 창학이념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인격을 연마하여 민족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라) 교육목표
      교양인 양성 ,  전문인 양성 ,  봉사인 양성

  위의 창학이념, 교훈, 교육목적, 그리고 교육목표는 너무나 훌륭하다. 우선 기독교계 사립대학에서는 많이 발견할 수 없는 ‘홍익인간 이념’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이 첨가되었다. ‘홍익인간 이념’을 넣었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적 의미로서의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자명한 이념을 미사여구로서 첨가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단어의 삽입은 ‘홍익인간’ 이념을 공유하는 전통적 한국 사상과의 열려진 대화와 협력을 의미한다.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들로서  진리․자유․평등․평화․복지를 제시하여, 한국 어느 대학보다도 실천적 진리추구의 교육목적을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교훈을 경천애인을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으로 표명되었다. 구체적 교육목표로서 제시한 3가지는 교양인 양성, 전문인 양성, 봉사인 양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기독교 전도를 통한 기독교인 양성이라는 표현은 없다. 강남대학교의 세계 개방적 교육철학, 전통문화 포용적 기독교정신,  실천봉사적 평화복지 이념등이 돋보인다.
  그래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묻는다. 도대체 이찬수교수가 강남대학교의 ‘창학이념’에 위반되기 때문에 그를 교수재임용과정에서 탈락시켰다고 하는데, 어떤점에서 위반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도리혀, 가장 성실하게 학문적 양심을 가지고, 강남대학교의 창학정신을 구현하려고 노력한 학자교수라고 판단된다. 신성한 대학교육기관의 창학이념이나 교육목표를 몇사람의 힘있는 사람들이 자의적 해석을 가하여 수시로 변경시킨다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그런일이 강남대학교에서 만은 일어났다하더라도, 대학정관이나 만인이 보는 인터넷 정보 대학소개란에 반드시 변경된 것을 고지하여 만인이 알게했어야 할 것이다.  신문이 보도하는바에 의하면, 강남대학교 교목실 관계자가 말하기를 “재임용탈락이 아니라 재계약을 안한 것"이라고  궁색스런 변명을 붙인다고 하는데, 그런 변명은 대학의 지성을 우롱하는 처사인 것이며, 가장 인간의 인격을 존중해야 할 기독교 교육기관이 양심을 속이면서 폭력을 맘대로 자행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불행한 사태를 하루속히 원상회복하지 않는다면, 1948년 대학창립(전신 중앙신학원)  이후, 창학이념에 가장 부적절한 처사일뿐 아니라 창학이념을 본질적으로 위배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창학이념의 배반자는  열린 진리탐구정신과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충실하게 학생들에게 ‘기독교와 현대사회’ 과목을 가르쳐온 이찬수교수가 아니라, 그를 대학 강단에서 쫒아낸 오늘의 강남대학 당국자들임을 명백하게 지적해두고자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과거 한국 신학교육사에서 강남대학교의 전신이었던 ‘중앙신학교’의 창학정신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열려진 신학교육기관으로 정평이 났었다. 설립자 이호빈 박사는 일찍부터 평신도신학과 열려진 기독교신앙을 주장하면서 첨으로 사회사업학과를 설치하여 신학과 접목시켰고,  초교파적 연합정신을 가지고  진보적 성향을 지닌 타대학 학자들 예들면 안병무, 박봉랑, 전경연박사들을 초청하여 강의하게하고 학사행정의 중책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종합대학으로 전환한후, 더욱 기독교 진리를 개방성과 포용성과 관용성을 가지고 학문적 이론들을 통하여 증언하여야 할 강남대학교가, 오늘날  본래 자기 대학의 정체성을 위반하고, 대학의 본질을 유린하며, 기독교의 진리를 한갖 독단적 폐쇄적 종교이념집단으로 회화화 하는 무서운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교수부당해직’ 사건의 발단 과정에서 강남대학교의 교목실 당국이 관여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종교재판’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몰지각한 몇몇 학생들의 불만을 근거로 수십년 연구과정을 거쳐 형성된 귀중한 학자의 인권을 매장하고,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를 유린하고, 기독교를 시대착오적인 보수적 폐쇄집단쯤으로 세상사람들이 인상갖게하는 무서운 죄악을 범하는 일이 이번사건이다. 그것은 장로교의 분열을 가져온 ‘김재준의 성경비판연구방법 도입주장에 대한 교권적 파문사건’(1953)과 감리교의 ‘변선환 종교다원론 주장에 대한 교권적 파문사건’(1992)과 괘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런 만용은 강남대학이 앞으로 대학사회와 한국 기독교사에서 영원히 지울수 없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강남대학교 대학당국자들은 지금 그들이 하고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명히 자각해야 할 것이다.

3. 종교다원론의 본질과 대학에서 기독교 교양과목 설치와 그 교육목적에 대하여

  이찬수교수의 부당한 재임용거부 형식을 빌린 교수직 박탈사건은, 이상에서 살핀바처럼 강남대학교의 창학정신이나 대학교로서 보편적 진리추구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좀더 실질적 이유는 그가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교양필수과목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보인 ‘종교다원론적 입장’과 어느 불교사찰에서 보인 ‘불상에 대한 합장의례’가 눈에 걸린 가시처럼 되었다고 보아야 사실에 접근하는 실질적 이유가 될 것이다. 발제자는 이찬수교수가 혹시 강남대학교 교목실관계자나 학교 다른 교수들과의 개인적 인간관계에 대하여는 아는바가 없고, 여기에서는 그러한 사적감정이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발제자는 ‘종교다원론’의  학문적 본질규명과 종교의례가 갖는 의미를 고찰하기로 하겠다.

  3.1. 종교다원론의 의미와 대학의 교양과목 운영태도에 대하여

 종교다원론은 분명히 포스모던사회의 인류문명이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대답 관계에서 계몽주의 시대정신 이후,   보다 성숙한 현대인들이 획일적인 경직된 진리관을 극복하고 갖게된 새로운 실재관 혹은 실재관을 종교역역에서 꽃피워낸 종교철학적․신학적 담론이다.  자연과학영역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발표된 20세기 초까지, 정신과학영역에서는 소위 ‘의심의 해석학’의 대가들이라고 말하는  니이체, 마르크스, 프로이드등의 석학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서구사상계는 모던니즘 정신의 승리를 나타내는 듯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객관적 대상을 인식론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가장 정합성을 지닌 하나의 진리체계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진리 또는 실재란 ‘보편 타당한 하나의 정답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실재)란 체험자와 경험조사자의 해석학적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해석학적 관점은 진리(실재)에 대하여 지식과 체험을 가지게되는 인간개인과 공동체의 문화적 언어구조․사유방식․역사적 경험․지질기후 풍토․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는 ‘인식론적 렌즈’와 같다고 비유된다.
  예를들면 자연과학 영역에서 ‘자연 그 자체’라는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겠지만, 칸트의 인식론적 표현으로 말한다면 ‘물 자체로서 자연’(본질적 자연)을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학적으로 체험되고 설명되고 이해된 자연(현상적 자연)을 우리는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가를 설명하는 ‘자연과학적 패러다임’은 그 정밀도․ 논리 정합성․기술적 실용성등에서 각각 차이가 있지만, 여러 가지 자연과학적 패러다임이  존재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  뉴톤적 고전물리학, 양자론적 자연관, 동양의 음행오행론적 자연관, 혼돈카오스 이론등이 그 예들이다. 컴퓨터제작이나 우주비행선 제작엔 양자물리학 이론이 최적이지만,  동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엔 뉴톤역학이론이 더 제격이다. 급성 맹장수술환자에겐 서양 의학적 외과수술이 제격이지만,   체질을 변화시키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는 동양의학적 접근이 제격일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진리탐구에 있어서도,  ‘궁극적 진리 자체’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방식이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무엇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냐?’“에 대한 실존적 관심도 문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표적 세계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를 예로 들더라도,  해탈한 불자와 구원받은 기독자의 삶의 열매는 매우 서로 통하는 공명의 장(場)을 지닌다.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서, 이기적 자아를 극복한 모습, 자유롭고 해방된 삶의 여유,  평화 지향적이고 봉사적인 삶의 자세,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 초탈한 모습, 생명을 사랑하고 대동적 세계를 구현시키려는 열망등에서 닮아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방편’과 수행과정들, 경전과 교리들, 예전과 상징등은 각각 다르다. 왜 서로 다른가?  불교와 기독교교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발전해온 ‘삶의 자리’가 다르고, ‘역사적 상황’이 다르고, ‘언어문화적 문법’이 다르고, ‘종교의례와 상징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다원론은  이 ‘다름과 차이’를 서로 피차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것이다. 내가 속한 종교와 다른  종교전통을 접할 땐, 지난 세기까지는 특히 셈족계 종교들은 배타적․정복적․우월의식에서  획일화시키려고 강압하였다. 그러나, 종교다원론은 이제 인류문명단계가,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보는 것이다. 도리혀 이웃종교들에게  경청하며, 내게  부족한 면을 배워서 나의 종교와 진리 구원체험이 더 풍성해지도록 성숙하자는 태도이다. 성숙한 종교다원론의 확신은 종교란 죽은 광물성 보석으로 장식한  궁궐같은 것이라기 보다, 생명의 씨앗이자라는 살아있는 거목과 같다고 본다.  살아있는 종교는 고정되어 있는 죽은 나무가 아니기에, 새롭게 나이테를 그리면서 늘 자란다.
  종교다원론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반대를 하는 기독교계 특히 보수적 기독교계의 반발근거는 어디서오는 것인가? 첫째, 계시적 종교라는 특성으로부터 비약하여 성경내용이 모두 계시적 기록문서라고 보는 ‘종교경전 우상화’에서부터 온다. 일명 ‘성경문자무오영감설’이라고부르는 것이다. 둘째, 신약성경의 처음 증언자들이 고백하는 강렬한 실존적․인격적․신앙고백적 표현들을 보편적인 ‘명제적 진리’(propositional truth)로서 주장하는 해석학적 오류 때문이다. 전자의 오류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하게되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횡횡한다. 후자의 오류 때문에 “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이름 이외에는 천상천하에 구원얻을 다른 이름이 없다“고 하는 실존적․인격적 고백언어를 보편적․신조적․명제적 언어로서 받아드림으로 말미암아  타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극단적 보수교인들이 생긴다.

  대학교 교양교과 과정 속에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교과과목을 강남대학교 학생들의 교양필수과목으로 개설한 근본취지를 생각한다면,  이찬수교수의 종교다원론적 접근방법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당한 태도이다. 그는 개인적으론 기독교 신자요, 신학․철학․종교학을 전공한 ‘신학박사’학위 취득자이며, 교회공동체를 담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가 위대할수록, 현대사회가 제시하는 다양한 이념들, 가치관들, 종교적 신념들과 창조적 대화와 비교연구를 통하여 수강생들로하여금 각자의 인생관을 풍성하게 하여, 강남대학의 교육목표가 지향하는 ‘교양인 양성․전문인 양성․봉사인 양성’의 목표에 공헌하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진리의 힘은 진리를 강제로 수용하도록 강요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진리자체가 지닌 ‘진리의 자증력(自證力)’을 통하여 진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강남대학교 당국이 이찬수 교수를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교양필수과목을 전담하도록 위임하여 교수로 채용하고서, 속셈으로는  강의실에서 기독교만을 강의하거나 기독교의 우월성만을  선전하는 전도사 역할을 기대하였다면, 그것은 부정직하고 방법론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일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대학의 강의실은 특정종교를 전도하기 좋도록 기회를 마련해놓은 ‘전도장소’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 진리는 그렇게 유약하거나 시시한  진리라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그렇게 유약한 종교라고 우리는 믿고싶지 않다. 도리혀 기독교 진리를 파수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현대사회의 각종 이념이나 세계관에 패배 할수도 있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십자군적 열정’이라는 공격성을 노출시키는 일단의 광신적 기독교인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참지성을 결여한 직업적 일부 신학자들과  반지성적이며 교리적으로 경직돤 사고만을 지닌  일단의 직업목사들 때문에, 대학의 지성인들과 생각있는 사회의 성숙한 사람들은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외면하는 형국이라고 보여진다.  
   현대 사회의 진실과 진리에 대한 태도가 이러할 진데, 만약 강남대학교 당국이 그를 ‘창학이념에 위배되고’, ‘ 강의 전담직 교수채용목적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면, 적어도 그가 학자로서 쓴 우수한 저작물들과 역서들을  철저히 검토해야 할 것이고, 사계의 전문가들에게 객관적으로 그 평가를 받아보는 공정성을 거쳐야 할 것이고,  최소한 본인의 변증기회를 충분히 주었어야 할 것이다.  공중에 날아가는 새들도 떨어뜨린다는 중세기 교황권이 지배하던 16세기 에서도, 마틴 루터를 파문하려 할 때,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들과 귀족들을 모아놓고 웜스회의에서  루터로하여금 자신을변증 변호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하물며, 21세기 문명 한 복판에서, 어쭙잖는 대학 교직원 임용문서 조항에  이유를 대면서, 앞서말한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을 휘둘러 학문실력과 대학인으로서 지성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에 아무 하자가 없는 한 젊은 학자를, 저항할 힘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정신적 살해 행위‘를 자행하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3.2. 이웃 종교의 종교의례에  참석하는 기독자의 처신에 대한 비방에 대하여

 이찬수교수 부당해직 사태를 일으킨 강남대학교 당국자들의 또다른 실질적 원인은 종교다원론을 강의하였다는 점만이 아니라, ‘불상 앞에 절을 하였다’는 행위를 용납못할 행위를 져질렀다고 가치판단을 한 것 같다.  물론 특정종교의 종교의례와 상징체계에만 익숙해져있는 사람들로서는,   패러다임이 다른 종교적 상징의례에 찬여하는 행동을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종교에 있어서 종교의례와 상징은 결정적 영향을 해당 신도들에게 주는 것이며,  ‘종교적 상징행위 이해’를 위한 사고의 패러다임 전환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어우기 이찬수교수가 그러한 행동을 보인것은  2003년 EBS 프로그램 ‘똘레랑스’(관용성)에 출연하여 종교다원론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용의 정신’을 강의한 연후에,  종교간 대화의 진작과 시범적인 자세를 가지고 행한   행위였음을 이해하지 못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었을 것이고,   그러한 반대자들의 지지에 자신감을  얻은  강남대학교 당국자들은 무리수를 두고 만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이웃종교의 종교의례에 참석한 다른 종교인들이,  의무적으로 이웃종교의 종교의례에 꼭 참여하여 이웃종교인들과 같은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찬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양심이나 감정에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더 넓은 이해와 동참의 정신으로  함께 참여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문제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참여할 사람의 신앙적 자세와 판단에 맡길 일이다.  나의 경험을 예로 말한다면, 지난 1월에 세계 종교성지 순례를 함께 떠난 한국 여성수도자 모임 ‘삼소회’ 회원들 몇 명이, 발제자가 목회봉사하는 작은 교회에 돌연히 참석하여 기독교 교인들과 똑같이 예배 의식에 참예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발제자가 이해하기로는, 이찬수교수가 이해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불교가 예불하는 부처들과 명목적으로나 상징형태적으로 다를 뿐, 또다른 이교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른 분이다. ‘진리 그 자체’의 드러나신 계시체를 이론화하거나  가시적 상징형태로 표현한 결과물이 다른 것 뿐이다. 쉽게 말하면, 모두 “달을 가르키는 다양한 손가락들‘이라고 이해 한 것이다. 물론 이찬수교수와 같은 성숙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기독교인에겐 걸림돌이 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초대교회 바울사도 또한 이교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먹어도되는가 아니되는가 논쟁이 일어났을 때, 자기는 먹거나 아니먹거나 양심에 아무런 갈등도 없지만, 믿음이 약한  신앙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을 감안하여 자기는 먹지않는다고 말한적 있었다. 만약 이찬수 교수에게 강남대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개인교수의 신앙자유만을 고집하지 말고, 혼란을 일으키는 젊은 학생들이나 기존신자들을 생각하여, “당신의 행동에 절제와 신중함을 앞으론 보여주시요!” 수준정도의 부탁을 하면 적당한 조처일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대학당국이 그 이상의 간섭과 신앙양심판단 까지를 하면서, 부당하게도 재임용거부 빌미를 삼는다면 문제가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장을 한번 바궈서 생각해보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듣게 된다. 차제에 이 문제를 만약 심각하게 들고 나오는 강남대학교 당국자들은, 한국 사립학교 중등교육기관에서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에서 노출되었듯이, 전혀 가정배경이 기독교와 무관한 어린학생들을 교목실이 주관하는 ‘매주정기예배’에 강제 참석시키고, 기독교 종교의례를 따르도록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찬수 교수가, 불전에서 합장으로 불상이 상징하는 진리자체에 대한 예를 행하는 것은 문제가 되고,  기독교계 종교학교에서 비기독교학생들에게 채플 예배출석을 의무화 하면서 ‘기도, 찬송, 시도신조고백’들을 하도록 하는일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시한다면,  지독한 기독교 중심적 이기주의나 문화제국주의적인 기독교 우월의식 때문에 기독교인의 양심이 마비된 결과일 뿐이다.

4. 나가는 말

  개인이나, 집단이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이번 너무 장기화되고있는 ‘이찬수교수부당해직사건’의 정상화 조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동안 기독교 사학교육기관으로서 우리사회에 큰 공헌을해온 강남대학교의  대학교육기관으로서의 학문적 권위, 지성적 양심, 사회적 신뢰도에 더없는 해가 돌아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재학중인 강남대학교 재학생들과 교직원 여러분들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과 명예롭지 못한  불상사에 대한 심적 고통을 가중 시킬 뿐이다.
  진정한 용기는 개인이나 집단이나를 막론하고, 과오를  발견하고  인정하면, 곧바로 시정하여 바르게 잡는 일이다.  강남대학당국의 진정한 용기를 기대하고 용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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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자유정책연구원 주관 긴급시민공개토론회 발제문

(2006년 5월 17일,만해 NGO 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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