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9 (20:19) from 221.143.159.55' of 221.143.159.55' Article Number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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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범서의 『R.니버의 생애와 사상』(기독교사상, 2007년 4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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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범서박사의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

1. 한 석학의 열정이 엮어낸 놀라운 역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표지를 닫으면서 느끼는 서평자의 맘에 남는 소감은  한마디로 ‘놀랍다’라는 것이다. 80세에 이른 노학자가 이렇게 900 여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그것도 세계 어느 신학계에서도 내놓지 못한 라인홀드 니버에 대한 알찬 연구서를 한국의 학자로서 내놓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고 서평자도 덩달아 긍지를 느낀다. 이 역저는 지난 30년동안 한국 개신교가 출판한 저서들 중에서 최고수준의 저술이라고 본다.
  이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라인홀드 니버(1892-1971)라는  걸출한 사상가에 대한 가장 신뢰할만한 평전이요, 그의 생애가 전개되어가면서 그가 쏟아낸 독창적인 기독교 사회윤리학자로서의 저술에 대한 입체적인 투명한 조명이자 비평적 연구서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바 처럼 우리사회에서 라인홀드 니버에 대하여 꽤 많이 소개되었지만 매우 단편적이고 그의 사회윤리사상의 표피적 일면만 소개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국 지성인들은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읽었으나, 그 책이 니버사상의 빙산의 일각임을 저자의 훌륭한 역저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라인홀드 니버는  자기보다 몇 년 앞서 태어난  교의학자 카알 바르트와 변증신학자 폴 틸리히와 더불어  20세기 개신교의 대표적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바르트는 정통교회의 교의를 중심으로하여 신정통주의자로서 ‘말씀의 신학’을 수립했고, 틸리히는 기독교진리와 현대사조를 상관방법(相關方法)을 구사하여 변증했다. 그들에 비하여 니버는 성서의 예언자사상과 어거스틴 사상에 기초하여  헤브라이즘의 핵심적 인간관과 역사관을 다시 되찾아 내어  현대사회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창조적 사회윤리학자이다.
  바르트가 ‘계시실증주자’라고 비판받을 위험수위를 걷고, 틸리히는 ‘존재론자’라는 비판을 받을 경계수위에 위치한다면, 니버는 조직신학적 교의학이나 존재론적 변증신학엔 관심이 없고, 사회적 삶의 현실문제를 진지하게 복음의 빛으로 해쳐나가려는 미국 프라그마티즘 토양에서 꽃핀 실천윤리적 신학이다.

2. 니버의 기독교현실주의적 사회윤리의 신학적 주춧돌

  니버의 윤리사상을 흔히 기독교현실주의(Christian Realism)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깊이에서 이해하려면 니버의 신학적 인간학과 역사이해가 지닌 깊이와 역설을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니버사상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을 통하여, 니버가 교의학자이거나 철학적 신학자는 아닐지라도, 성서신앙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회윤리학자이며, 예언자들과 어거스틴이 보여준 인간 본성 및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오늘에 다시 되살려낸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통신앙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기독교 현실주의적 사회윤리사상의 주춧돌은 헬라철학이나 동양종교나 현대 과학적 학문이 말하는 견해와 구별되는 독특하고도 위대한 성서적 인간이해와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첫째, 니버의 기독교현실주의라는 말의 단어적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현실주의’란 기독교가 고백하는 신앙과 십자가에서 절정에 도달한 계시적 진리를 ‘현실세계’에 적용시켜, 타계주의 신앙및 비관주의적 현실도피적 신앙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현실 낙관주의적 인본주의 신앙에 빠지지 않고 크리스쳔으로서 책임적 삶을 살아가려는 윤리적 신앙을 말한다.
  둘째, 니버의 기독교현실주의적 사회윤리는 매우 역설적이고 아이러니칼한 인간본성의 양면성을 동시적으로 확철(確徹)하는 성서적 인간이해에 기초한다.
   기독교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의 죄와 악의 근원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은유로서 상징되는 ‘자아의 자기초월적 자유’에 근거한다는 통찰을 갖는다. 이 통찰은 니버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의 관건이 된다. 기독교 인간이해는 인간의 죄의 가능성이 육체성 곧 성욕이나 식욕같은 생물학적 본능이 저지르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다고 보지 않는다. 감각적 욕망자체가 아니라, 그 욕망이 탈선된 ‘인간 자아의 자기초월의 자유’와 잘못결합될 땐 죄의 동인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니버는 플라톤으로 부터 현대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와 헤겔에 이르기 까지 통용되는 정신/육체의 이원론을 거부한다. 그들의 과오는 정신과 몸을 구별하였다는 이원론에 있다기보다는 정신 또는 이성을 어거스틴이 말하는 인간의 ‘자아성’과 성급하게 동일시했다는 점에 있다고 니버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시말하면, 기독교 인간이해는 이성마져도 자아의 자기중심적 이기성과 자기초월적 자유능력 남용에 하인으로서 복무하는 비참한 존재라고 본다. 인간의 이성 또는 정신은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나  인류문명사 고찰을 통해서 볼 때, 죄에 물들어있다는 것이다. 루터의 정치사상이나 칼빈의 전적 타락설은 그 점을 깊이 통찰했으나, 그들은 인간의 비참만을 보았을 뿐, 또다른 측면 곧 자아의 자기초월적 자유능력이 지닌 창조성을 너무 평가절하 했다고 니버는 평가한다.
  니버에 의하면, 모든 행위의 밑바닥엔 인간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철학적 종교적 근본관점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전제되어 놓여있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상사 속에서볼지라도, 인간이해와 윤리사상에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라는 양극단이 발생하게된다. 전자는 ‘자기초월적 자유능력’이 빠져들어가는 인간 자아의 ‘파괴적 마성’만을 강조하는 것이고, 낙관주의는 그것의 ‘창조적 신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결과이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 윤리이론에 의하면  그 양면성을  동시에 충분히 고려하는 책임적 윤리결단과 정책선택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아래와 같은 니버의 역설적 명언이 나왔던 것이다. 니버는 이렇게 갈파한다:

      “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불의를 위한 인간의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게 한다.” (본서 408 쪽)
        (Man's capacity for justice makes democracy possible but man's inclination to injustice makes democracy neccessary. )

셋째,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적 윤리학은 개인윤리에서가 아니라 그의 사회윤리사상에서 특별한 빛을 발한다.
   이것은 인간의 자아실현은 개인적 단독자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 발달하고 영위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개인으로 존재할 때 ‘자아의 자기초월적 자유’가 자기중심적 이기심에로 휩쓸리는 경향성이나 강도가 집단적 존재상태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그 힘은 강화되고  그 책임적 각성은 도리혀 약화된다는 현실적 경험에 기초한다.
  개인으로 윤리적 양심은  어느정도 욕망이나 이기심의 절제와 자기희생적 사랑마져도 가능하다. 그러나, 회사․종족․정당․ 국가 ․지역문명단위가 될 때, 인간의 윤리적 변별력과 도덕적 절제력과 자기희생적 사랑의 능력은 급전직하로 감소되거나 살아지고 힘의 대결국면으로만 나타난다.  니버는 이러한 현실, 곧 집단적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행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 윤리의 근본가르침을 곧바로 실행할 수 없다는 난관을 정직하게 직시한다. 그리스도인이 실존적 내면윤리로 퇴각하거나, 도덕적 위선자로 전락하거나, 시한부 종말론자로 퇴행하지 않고 책임적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려면 ‘집단적 힘의 균형과 상호견제’를 통해서,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사랑을 근사적으로(approximately)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니버의 사회윤리학은 구속력있는 힘과 도덕적 권위를 행사하여 공동체 질서를 지탱하고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정치신학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데, 그의 지론은 히브리예언자 신앙과 어거스틴의 역사신학적 통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헤브라이즘의 중심축은 예언자 사상이다. 이들에 의하면 역사의 참된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 역사 속에 형성된 어떤 가치체계나 이념이나 권력현실태도 절대화 할 수 없다는 것, 선택된 이스라엘 국가나 이스라엘 종교체계도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언자 사상은 우상타파정신이다.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은 권력과 교만과 타자에 대한 지배욕을 본질로 하는 ‘세상나라’와 사랑과 겸손과 섬김을 본질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사이의 혼재된 씨름판이 이 현실세계라고 보았다. 로마제국 멸망의 근본원인이 집단적 인간체로서 로마제국의 허세와 교만과 방종에 있음을 어거스틴은 갈파했다.
  역사에 대한 근대 중산계층의 자유주이적 진보발전주의와 마르크의 역사적 유물변증법에 기초한 혁명적 유토피아주의는 겉으로 보면 서로 반대 견해 같지만, 깊이보면  역사 낙관주의적 유토피아니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자아의 ‘파괴성과 죄성과 마성’을 보지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한편, 신앙인의 역사책임과 역사참여를 영적종교의 타락으로 보거나 변질로 해석하는  종교적 타계주의와 종교적 감상주의 및 성속 이분법적 분리주의는 역사해석에서 비관주의 변종들이다. 이들은 모두다 헤브라이즘 핵심인  예언자사상의 변질이거나 퇴행적 모습이다. 니버는 신앙심 못지않게 이성의 책임적인 분별력과 현실에 대한 면밀한 변별성(discrimination)을 통하여, 공동체가 윤리적 결단에 있어서 ‘보다 작은 악을’  택하고, 상대적인 선택중에서도 최선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보다 신앙적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화제로 삼고 있는 이 역저는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제1장에서 9장까지는 라인홀드 니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니버가 써낸 18권의 저작물의  핵심내용을 저자의 깊이있는 해설을 곁드려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10장에서 저자는 「끝맺는말: 니버의 신학과 미래의 전망」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저자로서 니버의 신학을 총괄적으로 평가한다.  10장에 실린 저자 고범서박사의 논문  “ 니버의 윤리적신학: 기독교적 현실주의에 의한 사회정의실현의 신학”이라는 논문은 이 책 전체의 압권이며 니버신학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설논문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는 독자는 저자의 그 논문만 읽어도  니버사상을 상당한 깊이의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첫째, 이 역저는 우선 복잡해진 산업사회 혹은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의 다양한 힘의 갈등구조 속에서, 정치인과  노동운동가와 사회복지정책 수립에 종사하는 모든 현실세계의 각계 지도자들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둘째,  이 역저는 한국의 신학도, 철학도, 법학도,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고전적 책이다. 학문계가 지나친 표피주의와 일과성 실용주의에로 치닫는 현실에서, 인간의 본성이 지닌 역설적 양면성과 역사의 아이러니가 감추고 있는 창조성과 마성을 동시에 파악하는 통찰력이 절대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셋째, 이 역저는 한국 기독교 교회의 설교자들에게 깊은 영감과 말씀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갖고있기 때문에, 설교자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반계몽주의적 문자주의나 천박한 자유주의 설교를 극복하는데 크게 공헌 할 것이다.
  끝으로 라인홀드 니버가 평생 간직하고 사랑했던 기도문 ‘고요한 기도’( Serenity Prayer)를 소개한다( 877쪽).  이 기도가 니버의 신앙과 사상을 잘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고요함을 우리에게 주소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그 두가지를 구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God, give us the serenity to accept what cannot be changed:
 Give us the courage to change what should be changed:
 Give us the wisdom to distinguish one from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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