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03 (21:21) from 210.181.79.160' of 210.181.79.160' Article Number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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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가 본 종말론 배경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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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가 본 종말론 배경의 실체

김경재(한신대, 종교신학)

  세계 각지의 심상치 않는 기상 이변과, 전쟁및 생태계 파괴가 지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21세기를 앞두고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지구촌의 복지 문명시대가 열린 것인가, 아니면 지구문명은 서서히 혹은 급작히 멸망할 것이가?  요즘 개신교 극소수파인 별난 시한부 종말론자들 만이 아니라, 전통적 신앙 유산을 지켜가면서 대체로 안정된 종교집단으로 우리사회에 모범을 보여왔던 카토릭 일부 교회 안에서도 종말론의 열풍이 불고 있다.  종말론의 배경은 무엇이며, 그 본질적 멧시지는 무엇이며, 진정한 성서적 종말론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를 철저히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종말론은 기독교와 상관없는 페르샤종교의 선악 이원론이  기독교 신앙안에 흡수되어 들어와서 셈족계 종교 안에서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온 것으로서, 유신론적 종교관을 전제로 한  정의로운 신의 심판 이라는  사상흐름이 한 쪽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감록이나 최수운의 후천개벽론 에서 처럼 우주자체의 주기적 윤회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것이  아시아적 시운론(時運論)으로 나타나면서, 왕권이나 사회체제가 식물의 성장쇠태의 주기(週期)처럼 그 시운이 다되면 낡은 시대는 자연히 망하고 새시대가 열린다는 범신론적 종말사상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적 모태라 할수 있는 구약성경의 세계  곧 고대 이스라엘 신앙세계에 서, 우주파국을 동반하는 세계종말이라는 그런  부정적 종말론은 없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서  성서의 신은 그 중심에 스스로 이르기를 인간의 소행과 그 마음씀이 어릴적부터 악하지만, 인간악과 그 죄 때문에  모든 생명을 멸절시키는 그런 심판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그리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고 말씀한다(창세기8:22). 성경의 본래 주류는 어디까지나 생명긍정, 존재긍정, 역사긍정의 신앙이 본류이다. 종말론이란 본시 아름답고  정으로워야 하고 인간다워야 하는  창조 세계안에 인간의 힘으로서는 어찌하지 못할 만큼 악의 세력이 판을 치게 되자, 정의로운 신의 이름과 그 능력을 힘입어 악의 세력을 징벌하고  정의롭고 건강한 사회공동체, 생명공동체를 다시 회복시켜야 하겠다는 열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점은 종말론의 본래 의지는 세계멸망이나, 역사파국이 아니라 세계와 역사 속에 잠식해 들어온 악의 세력과 불의한 힘들을 징벌하고 생명세계를 건강하게 회복하자는데 있다. 역사도피가 아니라 역사갱신이요, 세상도피가 아니라 세상바로 세우기 이며, 삶의 의미에 대한  절망이나 포기가 아니라 꺼버릴 수 없는 희망과 기대가 종말론의 본래 핵심본질이다.  성서적 종말론 운동이, 서구역사 속에서 볼 때는, 언제나 사회변혁적 혁명의지와 개혁의지와 정의에 대한 열정을 동반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나, 일부 카토릭 교회안에 일어나고 있는 종말 휴거론자들은  성서적 신앙의 본류에서 일탈한 매우 부정적인 기능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생명과 역사에  대한 성실한  책임성을 결여한 반사회적 종교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도피적이고 세계부정적인 종말론이, 오늘 우리시대의 도덕적 위기의 심각성과 역사적 모순의 절박성을 경고하는 경고나팔로서의 순기능이 있다고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종말론자들은 대체로 비성경적이며 반복음적이다는 것이 분명한 결론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진단 할 수 있다. 한국판 휴거론자들이나,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오늘날 우리사회와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이며, 지극히 비관적 염세적 세계관의 표현에 불과 하다. 귿르은 인생의 고난과 역사의 난제를 쉽게 종교로서 해결받으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는 고난을 도피하거나 면제받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고난을 이기고 고난을 통하여 생명을 승화하고 완성하라고 가르치며 그럴 수 있도록 힘을 준다. 비록 내일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은 사과 나무를 심는 그 마음이 더욱 깊은 믿는자의 마음이며 취할 행동규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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