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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자연과 인간본성에서 악의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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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자연과 인간본성에서 악의 문제에 대하여


김경재 (한신대)


[1] 경전에서 본 악의 문제: 자유의지의 남용으로서 악의 발생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스라엘 신앙의 '철저 유일신 신앙'( radical- Monotheistic Faith)에 입각한 창조주 신앙을 물려받고, 이스라엘 신앙의 생명나무에서 자라난 새로운 가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악에 대한 문제도 신구약 경전에서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타락설화'는 비록 교리적 원죄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설화가 아니지만, 에덴으로 상징되는  절대무구한 자연과 인간본성 속에 어떻게 악이 출현하고 현실화되는 것을 설명해주는 가장 고전적 이해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창세기 3장 타락설화를 "본질적 상태에서 실존적 상태에로 轉移해가는 존재론적 이야기"라고 파악하고 있다.    
  타락설화에 의하면 태초의 에덴은 창조주, 인간, 자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간에 아무런 갈등이나 소외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 조화, 충만한 생명상태이다. 그런데 동산의 중앙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놓여있고, 다른 모든 과실은 먹을수 있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지말라는 금지명령이 동산의 원주인인 창조주로부터 주어진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동산중앙의 '선악을 알게하는나무를 바라 보았을 때, 그는 유혹을 받았고, 마침네 금지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된다.  눈이 밝아지자 그들의 벌거벗음을 보게 되고, 계명을 어기었다는 죄책감을 갖게되고,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뒤에 숨게 되며, 하나님의 추궁을 받자 그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벌을 주게되고, 뱀도 벌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동산의 대지는 엉겅퀴를 내고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자체 까지도 비극적 황폐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창세기 3장 '타락설화'에 대한 신화론적, 신학적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나는 폴 틸리히의 해석을 따르려고 한다. '타락설화'는 분명히 선한 창조세계 안에 어떻게 해서 비극적 죽음,파괴,부조화, 혼돈의 비극이 출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신앙적 통찰을 보여주려고 한다.
  첫째, 이스라엘 신앙전통에 선 그리스도교 견해에 의하면 우주 속에 악의 기원은,  우주 자체안에 선악의 이원론적 원리가 투쟁가운데 있기 때문이거나, 인간책임을 넘어선 초자연적 운명의 힘이라든지  초인간적  신들이  저지르는 초자연적 투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자유의지의 남용과 교만과 탐욕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신화론적으로 유혹자로서 뱀을 등장시키지만,  행도으이결단과 책인은 인간에게 돌려진다. 유혹자 뱀은 '각성된 인간의 유한한 자유의지의 불안'을 상징화 한다.
  둘째, 에덴동산 안에 악과 비극의 발생가능성과 그 비극적 사건의 단초가 인간책임으로 돌려지지만, 그런 악한 행동의 이유가 인간의 무지, 무능력,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본능충동, 육체성, 또는 그의 유한성 때문이라고 보지 않고 매우 역설적이지만 "유한한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관점이다. 타락의 가능성, 악한 행업의 가능성이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라는 것, 인간의 자기초월적 존재능력이 잘못 행사됨으로서 발생한다는 것을 '타락설화'는 말한다. 악행과 버모지의 가능성이 인간의 결단과 선택의 가능성, 책임성, 자유의지의 남용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역사의 진보를 낙관하지 않는다. 세상 끝날까지 가라지와 알곡은 함께 자란다.
  셋째, '타락설화'가 말하려는 세번쩨 중심요지는 왜 인강은 금지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가의 문제이다. 이브와 뱀사이의  유혹대화를 주의깊게 보면 '인간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 처럼 되려는 휴브리스' 때문이다. 휴브리스(Hubris)는 단순한 도덕적, 심리학적 자기자랑이거나 보다 강해지려는 "힘에로의 의지"(Will to Power)와는 다르다. 초인이 되려는 니체적인 디오니소스적 의지철학은 기존의 부르조아적 도덕철학이나 시민종교에 순치된 인간상에 대한  저항표식 이기도 하다. 그러나 타락설화에 나타나는  '휴브리스'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유혹감"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신의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존재의 중심에 놓고,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절대자 행세를 하려는 종교적 오만이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악의 가장 깊은 곳에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무한충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며, 그 충동을 모든 악의 근본동기라고 파악한다. 마침네 휴브리스는 무제약적 '탐욕'과 '불신앙'에 떨어지고 만다.
   넷째, '타락설화'가 말하려는 것은 현재 인간실존의 소외현상을 적러러하게 묘사하려는 것인데, 타락의 결과를 비극적 소외로 표현한다. 마침네 아담과 이브는 자기생명이 근원자 창조주로 부터 소외되어 자기몸을 숨기게 되고, 아담가 이브사이 곧 동료인간관계의 관계성은 소로의 책임전가로서 파괴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고, 자기 생명이 직접출처지인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땅은 엉컹퀴와 잡초를 내고 황폐화 된다. 죄는 분리상태요, 순수본질의 무흠상태로부터 실존적  상태에로의 소외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인간의 범죄와 회개가 단순히 인간사회공동체 안의 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늘, 땅, 땅위의 생물, 그리고 땅 위의 백성에게  어떤 간접적 인과성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호세아서 2장에 나오는 호세아의 예언이다.
    
      " 그 날에 내가 응답 할 것이다. 나 主의 말이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에 응답하고,
        이 먹을거리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다" (호세아 2:21-22)
    

[2] 신약성경에서 바울의 인간이해 및 자연관에서 악의 문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을 물려받았으나, 그의 삶의 지평은 이미 헬레니즘 문화권에 의 해 침윤받고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로는 동방신비주의 사상영향인  종말사상으로부터도 영향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의 사상은 후기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로 부터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바르게 지켜내기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바울이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잇는 당대의 인간실존모습은 너무나 사악하고 악에 물든 비관적 인간의 모습이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인간본성의 타락설이나 원죄설을 설파하지  않았으며, 도리혀 바닥사람들이라고 볼수 있는 민중의 인간성 깊은곳에 잠재적으로 있는  가능성을 굳게 믿고, 그들에게 자신을 긍정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격려하였다고 볼 수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가르쳤으며, 하나님을 두려움없이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면서 인간영호의 무한한 값어치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설교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인간관은  예수 그리스도에 비하여 볼 때, 매우 비관적이다. 로마서 1-2장에 나타난 바울이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리기를  싫어할 뿐아니라, 자기를 절대화하고 불의, 악행, 탐욕, 악행, 시기, 살의, 분쟁,적의등으로 가득찬 인간으로 묘사하였다(로마서 1:18-32). 인간의 이러한 본성상 타락한 악의 실재성은  자연전체에 까지 영향을  미치어 자연전체는 신음하며 인간성을 회복한 본래적 인간성을 지닌 사람들의 출현,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을 기다리며, 성령도 타락한 인간을 중심에 둔 자연전체의 구원과 속량으 ㄹ위하여 해산의 고통과 산고의 신음을 계속한다고 보았다(로마서 8:18-25)
  바울 신학에서 그의 인간관은 인간본성과 현실자연의 비관주의적 입장에 멈추지 않는다. 그는 비록 그의 구원관을 유대적 율법사상에 기초한 구원패러다임을 가지서 전개하였지만, 그의 신학의 본질은  성령의 신학이었다. 그 요지는 인간이란 하나님의 은총과 복음진리의 빛 안에서, 사랑의 영 안에서 거듭날 수있으며 인간성을 회복 할 수있다고 확신했고 그 현실성을 증언하였다. 본래적 인간성을 회복한 사람은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중생한 사람인데, 그 구체적 모습은 사랑, 기쁨,인내,친절, 선함,신실,온유,절제의 덕목을 열매로 맺아가는 사람이라고 피력하였다.(갈라디아서 5:22-23) 그리고 인간은 더 나아가서, 현실적 시공간의 삶의 존재방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닮은 인간성 회복을 성취할 수있을 뿐만아니라, 인간성의 미래도 열려져 있다고 봄으로서 인간성의 창조적 형태변화까지를 내다본 신앙인이요, 종교적 사상가였다.


[3] 선의 결핍으로서의 악

  그리스도교 사상가중에서 어거스틴 만큼 악의 기원과 그 본질문제로 고민하고 깊이 사색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와 영지주의 를  헤메다가 新플라톤주의를 거쳐 그리스도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선하다"(Omnis natura bona est)라는 명제를 그의 근본 출발점으로 받아 드렸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시요, 모든 善의 근원이시므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선한 것이며, 창조자의 지혜와 보존의 은총의 힘입어 無로 되돌아 가 버리는 위협으로 부터 보존되며 종말이 완성을 향하여 역사적 진전을 거듭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세계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 할 것인가? 존재하는것은 모두 선한 것이라는 명제를 받아드린 어거스틴으로서 악의 존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악의 현실성과 그 비극적 독소를 설명하기 위하여, 어거스틴은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두가지 차원에서 악의 문제를 이해한다.
  어거스틴은 마니교나 영지주의 처럼 악을 현실적 실체를 지닌 그 무엇이라고 보지 않았다. 악은 근원적 영원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악은 다만 존재의 결여상태이며, 善이 결여상태일 뿐이다. '善의 缺乏'(privatio boni)으로서 악을 본다는 말은 악에게 존재론적 기원과 자존성과 그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의 창조세계와 본래의도는 항상 존재와 선으로 충만한 좋은 것이다. 그런데 존재와 선이 그 본래적인 충만한 온전성을 잃고 손실(amissio),결핌(privatio),부패(corruptio) 된 상태로 전위 되었을 때 악이 출현한다. 악이란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따라서 악이란 스스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좋은 것이 그 본래적 상태에 이르지 못하거나 변질되었을 때, 그림자가 생기듯이 존재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악의 결핍, 부패,손실이 일어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인간의 선한 의지의 결핍으로 내면적인 인간경험에서 파악된다. 어거스틴은 의지의 본성은 자유이며 인간은 그의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지고선을 추구하기 보다 존재 위계질서에서 보다 하위적인 것을 더 많이 사랑하는 탐욕(cupititas)에서 보았다. 따라서 도덕악은 인간의지의 왜곡이요,자연악은 그 결과라고 본다.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용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악도 역설적으로 선용하심으로 "악을 선으로 이기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해서 역사하시면서 구원의 종말론적인 완성에로 역사를 이끌어가신다고 보았다.
  현대신학자들(칼 바르트, 불트만, 라인홀드 니이버, 칼 라너)의 견해도 본질적으로 어거스틴의 근본사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성에 있어넛나 사회와 우주자연에서 악의 현실성은, 초자연적인 악한 실재 곧 사탄적 존재나 우주이운명의힘이거나 생물학적 제한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유의 남용에서 오는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고 보는점이다.  다만 인간성의상실과 그 타락상의 심각성이 그 회복을 위해서 인간도덕적 수양론이나 자기 성찰을 가지고서는 부족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봄으로서, 하나님의은총과 성령의 감화를 요청한다고 봄으로서 인본주의적 휴메니즘 윤리설과는 뚜렷한 차이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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