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03 (21:28) from 210.181.79.160' of 210.181.79.160' Article Number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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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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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접목

김경재(한신대, 문화신학)


1. 복음과  문화의 관계

  지난 여름 8월, 헝거리에서는 세계 개혁교회 23차 총회가 열렸다. 주제 중에 "복음과 문화"가 있었고, 그 양자 관계를 규명하려는 열띈 토의가 있었다.  아세아, 아프리카, 제3세계에서 각국 대표로 온 회원들은 자기나라의  고유한 의상을 입고, 아침마다 드리는 예배는 순번을 바꿔가면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각 문화권의 고유한 멜로디의 찬송가와 악기와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드린 독특한 문화적 색갈이 담긴 예배분위기는  전체 예배분위기를 한층 생기발랄하게 만들고 큰 감동과 은혜를 모두에게  주었다.  새삼스럽게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이 재음미되고, 각각의 고유문화 속에 육화되는 복음이라야만, 진정으로 해당 인간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생각을 더욱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문화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자기정체성의 혈액과 같다. 사람들은 문화 속에서 탄생하여, 문화가 전승해주는 언어, 삶의 생활방식, 세계관, 도덕가치규범, 축제와 풍습을 몸에 익히면서 인간다움을 느끼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면서 살아 간다. 문화란 개인적인 것 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문화란 초월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상징을 제공하며, 의미있는 가치를 새롭게 창조해 가면서 살아있는 큰 나무처럼 계속자라ㄴ나다.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하여 나무의 꽃들이 꽃받이를 하듯이 문화는 상호교류되면서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가고 생기를 더해간다. "문화는 종교의 나타난 형태이고, 종교는 문화속에 감추인 얼이다"고 말한 학자가 있다. 깊이 생각하면 지당한 말이다. 얼인 종교가 높고 숭고하면 문화 또한 풍요롭고 심원하다. 그러나 종교가 천박하고 저급한 공동체는  문화 또한 보잘 것이 없고 저급하고 후진적이다.
  문화엔 여러영역이 있다. 크게 네가지 범주로서  예술문화,생활문화, 기술문화,그리고 종교문화 가 있다. 그런데,  문화의 다양성과 독특성은 왜 발생하는가? 인간 공동체가 같은 생활조건과 역사적 상황 속에서 오랜 시일동안 함께 살아가는 동안 발생한다. 문화란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연륜이 더해 갈수록, 나이테는 더 많아지고, 여름엔 크게 자라고 겨울은 치밀한 목질을 이루면서 나이테 색갈이 진하게 조금 자란다. 그처럼, 한 공동체가 삶을 영위해 가기 위하여 의식주 재화를 생산하는 방식, 기후 지질풍토, 역사적 시련과 언어구조등의 차이에 의하여 각각  독특한 문화형태가 형성된다.  복음진리는 한국문화 속에  "말씀이 육신을 이루듯이" 문화라고 부르는 한민족의 정신적 살 속에 깊이 깊이 육화(肉化) 하였는가?

2. 예수를 믿는 이후부터 전통문화와 단절 문제
  매우 불행하게도 한국엘 가면 한국 기독교는 왕성한데, 한국 기독교는 한국 전통문화와 '신토불이' 형태로 되어 있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각놀고 있다. 기독교는 한국에 전해 왔는데 아직도 한국민은 한국 기독교가 한민족의 제살처럼 문화속에 성육화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외래종교로 느끼고, 서양종교로 느끼기 때문에, 기독교라고 부르는 서양종교를 가져다가 옮겨 심어놓은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른바 문화토착(文化土着)을 이루지 못하고 문화이식(文化移植)형태로 머물고 있음을 느낀다.
  추석이 오고, 음력설이 돌아와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신명나게 축제를 즐기지 못한다. 가족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가정에는 더욱더 문화적 갈등이 증폭되어  가족끼리의 화목을 깨친다. 특히 여인들은 차례상을 준비하고, 제사음식을 마련하는데 말못하는 괴로움과 죄책감마져 느끼면서 살아간다. 한국의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불교나 유교와 과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무관심을 넘어 점점 기피하게 되어 마침네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한 국민으로 전락해 간다. 교회당 건축양식과 성직자의 예복, 부르는 찬송가와 성찬집기등이 모두 서구식 그대로 모방한 것 뿐이다. 설, 추석,동지등 전통문화의 세시풍속을 함께 참여적으로 즐기지 못하고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생소하게 되어 버렸다.    왜 그런 바람직 스럽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가? 거기엔 두가지 큰 원인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첫째 원인은, 한국에 복음이 전래되었을 때, 우리 역사는 서구 신문화를 받아드리는 개화시기 였다. 기독교는 곧 개화세력의 중심이었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신문화운동에 주역이 된다는 의식이 사회 밑바탕에  있었다.  한국의 역사를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정치의 잘못일 뿐 만 아니라, 전통의 고리타분한 시대착오적 구습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통문화는  구습의 온상, 사회정체성 원인, 비과학적 잔재물, 전근대적 사고의 유뮬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통문화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개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분별력 없는  속단이 그 첫 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둘째 원인은, 초기 한국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기독교를 선교한 선교사들이 전통 한국문화유산 일체를 우상적인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무시하거나 배타적으로 대했다는 점이다. 대략 20대 후반 한국에 온 젊은 선교사들은 한국문화나 동양의 문화를 깊이 이해 할리 없었다. 서구 백인문화가 곧 기독교 복음의 대표자 인양 여겨지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종교문화나 생활문화, 추석이나 설등 세시풍속 일체를 이교문화의 잔재요 우상숭배적 바알문화와 동일시 하고 그것들로부터 분리 할것을 가르친 것이 둘 째 이유이다. 말하자면 몇몇 선구자적인 선교사들의 깊은 혜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은 근본주의적인 보수신학이요, 그러한 신학적 배경에서 보면 한국의 전통문화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부정되어야만 하는 이교문화일 뿐이었다.
  
3. 한국문화 속에 복음을 성육화시키는 문화선교의 과제
  문화란 겉으로 나타난 눈에 보이는 형식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과 가치 지향성이 있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영성이 한국 전통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한국인의 종교성이 한국 문화 속에 깊이 베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전통문화를 모두 그대로 송두리체 받아드리면 된다는 식의 그런 간단히 처리 될  문제가 아니다. 새 집을 짓는데 돼지머리를 젯상에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기독교인이 참여 할 수 없으며, 동짓날 팥죽을 잡귀들  범접못하게 한다고 부엌 벽에 바르거나, 상(喪)을 당했을 때 죽은자의 옷을 휘두르며 혼을 부르는 관습이나, 대문아래 사자밥을 놓는 등의 매우 전통종교적 관습을 답습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문화란 나무의 나이테와 같고 사람 몸의 살과 피와 같은 정신적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통문화의 일체 거부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불교사찰이나 유교의 문화재 서원들을 종교적으로 기피하여 아예 방문하거나 문화답사 자체를 아니하기로 맘 먹는다거나, 교회당의 건축양식이나 예배양식 속에 한국적 예술문화를 반영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것은 매우 잘 못된 것이다. 아마 교인들 중에 가장 예민한 부분은 성묘를 가거나 상당한 친구집에 문상 갔을 때, 향을 피우고 절을 함으로서 조의를 표하는 것을 우상앞에 절하는 것이라고 매도하는 전통교회의 견해 때문에 가장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경건한 기도로서 조의를 표하는 예법이 기독교적이라고 알려져 왔으므로 굳이 전통예법으로 다시 돓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상가댁의 처지와 형편을 따라 절하는 방식으로 조의를 표하는 경우일지라도 그것은 한국 전통적인 문화예법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지 "우상앞에 절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자유로운 관용정신이 요구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복음은 인간을 자유하게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복음 안에서 자유인은 전통 한국 문화를 사용하고 계승할 것과 버리고 비판할 것을, 물고기를 그물에서 가려내는 어부처럼 주체적 정신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바울사도 말씀대로 할례를 받거나 않받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처럼, 이런 저런 전통문화 관습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양자택일의 논리는 매우 율법적인 태도이다.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갈5:6). 그러므로 복음은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형시키면서 밀가루 반죽과 같은 전통문화 속에 누룩처럼 스며들어간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밀가루 반죽을 변화 시킬 수 있겠는가? 여기에 문화선교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이제 복음 전도는 공간적 지역적, 평면적 지역확장 시대를 넘어서 입체적으로 수직적으로 문화를  복음화시키는 문화선교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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