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6 (00:03) from 211.207.151.225' of 211.207.151.225'	Article Number : 303
김경재	Access : 11245 , Lines : 9

[2008.2.10] 야곱의 귀향과 브니엘체험(창 32:22-32)

야곱의 귀향과 브니엘체험(창 32:22-32)

1. 설 연휴를 보내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도시화되고 세속화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남해의 먼 섬 고향마을까지 부모를 찾고, 새로 태어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조손(祖孫)관계의 생명온기와 유대를 돈독히 하고서 돌아왔다. 도시에로 나간 자식을 목빠지게 기다렸으나 끝내 올해도 당당한 자식의 귀향모습을 인파 중에서 찾지 못해 쓸쓸해하는 가난한 노부모와 가뵙지 못해 불효의 맘으로 눈물짓는 이웃도 많았음을 기억하여야 하겠다. 고향을 찾는 마음은 동양유교문화 효의 질서의 나타남 그 이상임을 깨닫는다. 사람에게는 본시 본향을 찾고자하는 ‘존재론적 귀소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2. 창세기 32장 야곱의 귀향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혈육의 정을 충족시키려는 생물학적 갈망을 넘어선 ‘존재의 부름소리’ 같은 미세한 울림이 있음을 감지한다. 야곱이 20년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가나안 땅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늙어 타계하신 부모님의 묘소를 찾고자함만이 아니다. 한 분뿐인 혈족 형님을 만나고자 하는 핏줄의 그리움만도 아니다. 많은 가축떼와 노복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귀향하여 자신의 금의환향을 과시하고자 함만도 아니다. 별들만 총총했던 외롭고 두려웠던 브엘세바 광야에서 꿈 속에서나마 나타나 말씀하시던 벧엘의 그 하나님을 맘 속에 잊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3. 야곱의 귀향길에서 겪는‘얍복나루터 씨름이야기’는 인간의 종교적 살의 본질을 압축하는 심원한 뮈토스적(Mythos) 설화들이 오색찬연한 영성적 광채들처럼 서로를 조명하며 집약되어 있다. 거기에는 종교의 출발점인 홀로있음의 밤의 고독이 있고, 변환(變換)의 통과제의를 상징하는 강물이 흐르고, 사람같기도하고 신령같기도한 중간존재자와의 씨름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묻고 대답을 얻지 못하는 존재의 계시와 은폐라는 이중성의 역설이 절묘하게 짧은 이야기 속에 응축되어 있다. 야곱은 밤새도록 상대방의 허리춤을 놓지 않으려고 끈질긴 고투를 한끝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4. 아침 해가 돋았을 때, 어제밤에 붙잡고 씨름하던 거인의 신비한 존재는 사라지고, 그는 허벅지 뼈 근육심줄이 늘어지고 위골되어 절뚝거렸으나, 유독 아침해가 눈부시게 밝음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록 밤일지언정, 어둠 속에서나마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대면했다는 느낌, 그래도 죽음을 면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식물의 나이테가 찬겨울 한 해를 보내면서 한금씩 늘어가듯, 사람은 인생의 여정길에서 귀향 길에 한 번씩 오를 때마다, 브니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저 하늘 끝에 계신분이 아니고, 생의 길목 밤같은 강가에서, 사람인지 신령님인지 명료하지 하지 않는 모습으로 씨름를 걸어오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수록, 사람들은 야곱처럼 요령과 반칙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점점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