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03 (21:42) from 210.181.79.160' of 210.181.79.160' Article Number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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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희생자의 신원(伸寃)을 위한 종교인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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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신원(伸寃)을 위한 종교인의 과제

김경재
(한신대 교수)

1. '제주 4.3 사건' 앞에 서는 우리의 자세    

   이번 우리의 모임 주제는 "제주 4.3의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종교인대회"이다. 제주 4.3사건의 '진실규명'이라는 과제와 민족 구성원간의 '화해'라는 과제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와 같이 불가분리적이다.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고, 진실규명의 궁극적 목적은 보복이나 보상에 있지 않고 '화해'를 통한 인간다운 공동체의 회복에 있다.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은체 성급하게 강행되는 당위적 '화해'는 문제를 더 꼬이게하고 상처를 더 깊게한다. 또한 '민족 공동체의 화해'라고 하는 대승적 근본자세를 망각한 '진실규명'은 서로에게 일차적 책임을 전가하는 집단이기주의의 경쟁장이 되어 버린다.  
   지난 50년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내팽게쳐지고, 그 일에 관한 담론자체가 억압되었던 '제주 4.3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 남다른 큰 수고를 하셨던 분들께 우리는 존경과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특히 제민일보 관계자들, 제주도의회 관계자들, 역사학계 연구자들,  참여연대 여러분들, 그리고 최근 국민회의 4.3사건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여러분들의 활동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한국 민족이 풀고서 20세기를  넘어가야 할 이 중요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여러차례의 공청회에서 보여준 '제주 4.3 유족회' 관계인사들과 '전몰군경유족회' 관계인사들의 솔직하고도 한 맺힌 발언들, 공청회에서 보여준 직접당사자 후손들의 태도는 김동적이었다. 비록 모든 인간개인과 집단이 인간이기 때문에 제약받을 수 밖에 없는 한계, 곧 '역사적 사건해석에 있어서 해석학적 제약성과 입장차이'를 나타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삶의자리'에서 진솔한  견해들이 제주 4.3의 진실규명과 화해에 일정부분 공헌을 한다고 우리는 믿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과 역사적 사실앞에 겸허하지도 않고, 정치경제적 이념논쟁이나 체제이론에 관한  관념적 흑백논리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인간자신'이 중요하고 인간생명가치를 그 모든 다른 가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근본원칙에 저항하는 극우나 극좌에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많이 있다. 그들이  우리사회의 창조적 전진을  가로막고 있으며, 민족의 화해와 대동단결을 저해하고 있으며, 제주 4.3사건의 바른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않된다.  본 발제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제주 4.3사건의 진실규명'을 밝히려고 노력하신 전문학자들과 연구기관이 그동안의 '진실규명'의 작업에 쏟으신 연구 결실에 토대하여, 민족의 화해와 민족의 상생을 위해서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해야할 일, 특히 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잠시 말하려고 한다.
  '진실규명'의 작업이 다 이뤄졌다거나,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충분하다는 뜻은 결코아니다. 앞으로도 더욱 사계의 전문학자들, 국내외 연구가들과 기관들, 국제 기구들,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회와 국민정부차원에서  보다 적극적 '진실규명'작업과 해결방안 모색이 가속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점을 전제하고, 편견없이  열린마음을 가지고 제주 4.3사건에 대한 연구결과를 대하게 되고 민족의 화해와 창조적 전진을 희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다섯가지 명제를 나의 발제의 기초로 삼으려고 한다.
  
첫째, '제주 4.3사건'에서 자행된 20,000여명에 달하는  비전투원 양민 집단학살사건은, 해방정          국의 미군정 통치나  남북한 이념적 갈등상황임을 고려한다고해도, 천인공노할  비인            간적 만행이며,인간양심과 국제법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범죄행위였음은          명확한  일이다.
둘째, '제주 4.3사건'의 민중항쟁의 근본원인과 그 본질을 '공산계열의 사주나 개입에 의한 폭          도들의  봉기'로 규정하면서 양민학살의 결과를 폭도진압과정에서의 작전상 불가피한 일          이었다고 정당시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흑백논리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역사이성의          자기기만이다. 동시에, '제주 4.3 사건'의 전개과정 속에 좌파세력의 개입을 전혀 부정          한다든지, 군경의 주적으로서 토벌대상이 되었던 '무장대' 핵심 구성원(500-1,000명)이          공산주의 이념의 신봉자였음을  부정하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셋째, 맑은 역사이성과 한국인의 양심은 '4.3사건' 과정속에 엄존하는 지배엘리트들의  좌우 이         념투쟁과  분쟁을 직시하면서도, '제주 4.3'사건의 본질은 결코 이념투쟁이 근본발생원인         이 아니었으며, 도리혀 인간답게 살고, 사회 속에 정의의 공도를 세우며,  조국분단을 막         아보려했던 순수한 애국심을 지닌 민중, 좌우이념을 넘어선 민중들의 주장이었고 자기방         어적 행동이었다는 것을 직시한다.
넷째, 어린이, 부녀자,임신부, 노인, 청소년,농부, 어민, 목축업자등 억울하게 짐승처럼 끌려가         집단살해된 양민 20,000명 이상의 희생자들은  좌우 냉전이념체제하의 정치이념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 땅의 순박한 씨알들이요, 실질적인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억울         함은 신원(伸寃)되어야 하고, 명예가 회복되고,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 역사정의라         는 것을 우리는 인식한다. 역사의 진실 앞에 정직하게 서기 위하여,  한국민의 양심, 미         국민의 양심, 전인류의 양심의 이름으로 '제주 4.3' 사건을 바르게 해결하고 21세기로 넘         어가야 한다.
 다섯째, 인간의 역사적 삶은 유기체적인 것이요, 개인과 전체는 언제나 맞물려 있는 생명의 원         리 때문에, 종교적 시각에서 보면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는 한국민 모두이                  며, 그 책임자도 한국인 모두이며, 그 진실을 50년동안 묻어둔 비겁함과 태만의 책임도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다. 이제 '제주 4.3 사건' 해결에 제3자의 입장이란 없         다. 우리 모든 한국인은 하늘을 우럴어 한줌 부끄럼 없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구         시대 유뮬인  냉전시대의 질고를 더 이상 우리후손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하여 제주 4.3         사건은 진실이 규명되어야하고, 그 토대 위에서 진솔한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
  

2. '제주 4.3'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종교인들의  과제

 (1) 과거 50년 냉전체제가 가져다 준 정치이념적 '無明의 白苔'를 벗겨 내는 일

 새정치 국민회의 4.3사건 진상규명 특별위원회가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진정한 민족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1988년 5월과 9월 각각 제주도와 서울에서 참으로 의미깊은 두차례 공청화를 개최한바 있다. 발제를 맡은신 서중석 님(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양조훈 님(제민일보 편집국장),김순태님( 방송대 교수)의 깊이 연구하신  주제발표가 있은후, 각계를 대표하는 여러분들의 진솔한 토론이 의미있었다. 비록 지금 한국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묘하게 얽혀져있어서 '제주 4.3 사건'의 명예로운 해결을 위한 지속적 활동과 국회차원의 실천적 입법절차에까지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두번의 공청회는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고 발제자는 평가하고 싶다. 토론 과정에서 '4.3 연구소장' 강창일 선생은 우리 모두가 음미해야만 할 다음과 같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시에(4.3사건 당시) 사람을 죽이는 구조가 있었다. 그리고 죽는사람이 있었다. 가해자 피해자 우리는 모두 역사의 희생자 입니다"(공청회자료,51쪽)
 제주 4.3사건 당시에 사람을 죽이고 죽는 구조가 있어서, 우리 모두는 동시에 가해자이고 희생자가 되었다는 통찰은 우리 눈에 낀 비늘, 정치이념으로 쇠뇌되고 오염된 '무명의 백태'를 벗겨내야만 '제주 4.3사건'의 진상도 바르게 보이고 그 화해의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제주 4.3 사건'당시에 그곳 제주도에서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은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의 구조적 힘의 논리와 비정한 흑백논리에 강제로 끌려들어가 도저히 피신할래야 피신 할수 없는 운명적 상황 속에 예속되지 않을 수 없는 희생자들이요, 그런 상황에서 피차 가해자들이라는 말이다. 특히 정치사회사적으로 당시 1947-48년은 국제정치적으로 동서냉전체제가 형성되면서, 그 대립전선이 한반도 땅에서 첨예화되던 시기요, 국내정치적으로도  남북의 정치야망가들에 의하여 남북분단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는 객관적 역사상황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4.3의사건'의 진상규명이나 화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민족은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깊이   우리의 발상법 , 세게관, 가치관, 인간의 생명 값어치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정치이념적으로 오염되어있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그 덫에서 우리의 인간성이 해방되도록 운동을 펼쳐야 한다. 인간을 위해서 정치도 있고, 정치경제 이념도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4.3  사건'은 그 가치전도가 너무나 철저하게 일어났던 시기, 곧 정치이념이 인간을 철저히 지배하던 시기였다.  인간성이 상실되어버린 시기에 저질러진 일이었고, 더구나 구체적으로 그 사건에  참여하여 희생을 당하고, 희생을 끼친 과정이 개인의 자유의지의 선택과 결단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기 보다 '마성적 구조적 논리와 조직'의 힘에 끌려가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념적 노예가 되어왔던 각자의 '인식론적 맹목성에 대한 참회'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일은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근본적 이야기이며, 문제 해결의 근원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 정치이념 조직과 구조가 우리를 옭아멘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형제살인자'였다.

 앞서말한대로, '4.3 사건'의 배경, 발생요인, 전개과정 속에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냉전체제와 분단현실 상황이라는 몰인격적, 마성적 조직구조의 힘이 작동하고 있어서 우리 모두가 희생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었지만, 그러한 사회구조적 조건을 빌미로해서 우리가 동족살해, 형제살인을 했다는 도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정당시 되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살인, 방화, 강간, 대살, 토살, 등등 참으로 잔인한 행동을 자행했던 주인공들은 기계가 아니고 사람들이었다. 모두 미쳐버린 상태, 제 정신이 아닌 보복심에 눈이 뒤덮혀져버린 상태여지만, 역시 우리는 '부모 형제자매 자식'살해를 저질른 죄많은  사람들의 후손들임을 직시하고 '도덕적 참회'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 그래서 피차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아주는 '화해'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전쟁의 비극과 비참성은  정규군의 군사전쟁을 통하여 희생자가 발생하는데 있는 것보다도, 전쟁의 와중 속에서 비군사적 민간인, 특히 연약한 아이들, 부녀자들, 노인들, 민간인들 희생이 더 크다는데 있다. 육이오 전쟁 민족 상흔이 이렇게 끈질기게 오래가는 것도, 그리고 기실 제주 4.3 사건의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던 것도 '정규균 토벌대'와 소위 '무장군, 인민해방군, 인민유격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피차 죄없는 양민을 살해했다는 '형제인간살육'을 저질렀다는데 있다. 인민유격대라고하는 무장군은 군경가족, 공무원가족, 우익인사들, 협조거부자들이라고 해서 통계숫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1,300-4,200명을 무참하게 죽였다. 폭력은 증폭된 폭력을 가중시켜 군경토벌대에 의해서, 1948년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면서 10배 이상 무고한 민간인 15,000 - 20,000명을 좌익에 동조하거나 연루된 자들이라고하여  살육하였다.  
 우리는 모두 형제 살인자였으며, 그 후손들이다. 제주사건에 직접관련없다고 말 하는 한국민이 있을런지 모르나, 역사적 삶이란 언제나 공동체적이고 전체적인 책임을 묻는것이며, 모두 우리는 '형제살인' 이라는 간접적 범죄자들인 것이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과 화해를 위한 종교인의 과제중에는 종교인이 먼저 더 깊은 참회를 하고, 한국인의  인간성 깊이 속에 있는 양심을 흔들어 깨워서 정치이념에 미치고 조종당하고 분노와 혈기에 사로잡혀서 '형제살인'을 저질른 민족의 후예임을 고백하고 '도적적 참회'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진정한 '화해'는 피차의 죄책고백과 용서를 비는 맘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3)희생자들의 영혼은 '신원'(伸寃)되어야 하고,민족 공동체는 '화해'되어야 한다.

 '신원'(伸寃)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씻음"이다. 동학창시자 수운 최재우선생이 '시천주'를 근본으로하여 민생을 구하고 반상차별을 없애고 인간평등과 제폭구민하려는 신앙운동을 벌린것을 사교라하여 참수형에 처하고 동학운동을 이단시 억업했을 때, 동학도들은 '교조신원'운동을 벌렸다.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이나 증산교의 '해원상생사상'(解寃相生思想)  이나, 모두 인간의 삶이란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이기 때문에, 원한을 품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생명체들의 '부당한 죄와 한'을 풀어주는 것은, 과거 죽은자들의  원한을 씻겨주고 죄를 벗겨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하여 생명계 속에 쌓인 분노, 살의, 보복심, 분열증, 생명기운의 막힘등 모든 부정적 힘들을 풀어버리는 일과 직결되어있다. 신원이나 해원은  현재 살고 있는 생명들을 위하여 더욱 더 필요한 일인 것이다.  
  종교적 생명관은 각 종파의 전통에 따라, 다소 차이도 있고 각각의 특성을 지니지만, 공통적인 것은 "생명은 개체적이면서도 전체적인 하나라는 것과,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 조상과 후손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라는 본래적 생명의 연대성과 통전성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생명은 좁게보면 개인이고 집단이지만, 크게보고 근원에서 보면 하나이고 한 몸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삼라만물이 유기체적으로 서로 얽혀있고 관계성 속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관련 속에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우리의 죄과와 업보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대비심'(大悲心) 이 요청되는  시기에 와있는 것이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화해는 그러한 맘에서 만이 가능하고 풀려질 수 있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화해를 이루기 위한 역사학계, 법조계, 사회단체, 인권단체, 국제기구, 국회와 행정부, 제주도민과 도의회의 적극적 노력과 활동을 지원하고 동참하면서 종교인들은 종교가 감당해야할 자기 몫의 책임감당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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