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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철학으로서 함석헌의 씨알사상(<기독교사상> 2009,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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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철학으로서 함석헌의 씨알사상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신학)

1. 주제탐구의 목적

  함석헌 사상을 드러내는 총괄적 어휘가 ‘씨알사상’ 이라고 흔히 말한다. 필자도 그 점에 동의하지만, 그의 ‘씨알사상’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강조점을 어디에 두는냐에 따라 함석헌의 사상은 새로운 의미로서 다가온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고난’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접근 할 때, 그의 사상은 1930년대 일본식민치하의 한민족이 자신의 역사적 실상을 정직하게 직시면서도 그것을 종교적 고난사관으로서 초극하고 승화시키려는 종교철학자로서 부각된다. 씨알사상을 ‘민중’(씨알)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접근 할 때, 역사의 실질적 담지자요 궁극적 책임자로서 ‘민중(씨알)’의 정치사회적 저항권과 역사변혁적 주체자로서 강조하는 민중사관의 주창자로서 부각된다. 씨알사상을 ‘참’(진실)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접근 할 때, 인간의 온갖 페르소나(탈,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자기의 진면목을 찾아 영글게하고 개인과 공동체가 인간다워지려고 하는 인문주의적인 사회교육자 및 시민사회운동 선구자로서 부각된다.  
 이상의 예에서 보는데로 함석헌의 씨알사상에는 다양한 면모가 있고, 그 탐구에서 다양한 접근 시각이 있지만, 그동안 다소 소홀하게 방치된 면을 ‘생명’이라는 주제어로서 살핌으로서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중심사상으로 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그가 21세때 오산학교에서 스승 유영모를 만나 첨으로 ‘생각하는 인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 청년 함석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3가지  주제어가 ‘인생이라는 생각’ ․ ‘생명이란 생각’ ․ ‘참이란 것’ 이었던 것이다. 『함석헌 전집』(1983), 제4권, 213쪽.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를 비로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씨알사상은 위의 세가지 근본적 질문을 품고 사색하고 고뇌했던 그의 혼에서 탄생한 결실물일 뿐이다. 씨알사상은 그의 생명사상의 토양속에서 움트고 자란 꽃이요 나무이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생명사상 좀더 구체적으로 20세기 동아시아 문명과 정치사회적 상황속에서 꽃핀 ‘생의철학’(Lebensphilosopie)으로서 규정함으로서, 20세기 초엽 유럽에서 출현하고 충분하게 그 사상적 의미와 결실물을 거두지 못한 서구사상사에서의 ‘생의철학’과 상호관계성 및 차이를 살피고, 21세기 지구생태계 위기 앞에서 새로운 미래지향적 씨알사상으로 조명해가자는 것이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물론 20세기 격동하던 동아시아와 한국의 시대상황 속에서 생성 발전되어온 시대의 제약을 받고있지만, 그 진가는  도리혀 미래지향적이며 지구촌의 새로운 실재관 형성에 창조적 촉매역활을 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을 간직한 사상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일차적으로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왜 '생명사상‘으로 봐야 하는가, 왜 한국적 ‘생의철학’(Lebensphilosopie)으로서 볼 수 있는가를 규명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글 말미에서 씨알사상을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한 몇편의 논문들을  소개하고, 생의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이 21세기 생태위기적 문명전환기에 갖는 의미를 반추하고자 한다.  

2. 왜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생의 철학’으로 보는가?

 함석헌은 그의 자서전적인 회고록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1」에서 언급하기를, 그의 사상의 첫 바탕을 이루던 오산학교 시절(21-23세), 다석 유영모를 통해서 인생․생명․참 문제에 눈을 뜨게되었고, 서구사상가들과 만나게된 내력을 소개하였다. 위의 책, 213-214쪽.
톨스토이와 노자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20대 초반에 일본어 번역본 책을 통해서 로망 롤랑(1866-1944), 앙리 베르그송(1859-1941), 헨릭 입센(1828-1906),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타고르(1861-1941)를 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1920년대 중반기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H.G. 웰스(1866-1946)의 『세계문화사대계』를 학생신분의 경제적 사정에 과분한 책값임에도 구입해서 읽었고,  그 영향은 지대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 ․세계국가주의 ․진화론적 과학사상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고 술회한다. 함석헌외, 『나의 사상을 젊은 이들에게』, 16쪽(대우출판사, 1985); 『함석헌 전집』(1983),214쪽.
20대초반 독서를 통해 접한 사상가중에서 괴퇴와 니이체의 이름도 언급한다. 위와 같은 책. 190쪽.

 함석헌의 글쓰기엔 특별한 각주를 붙이지 않으므로, 그의 사상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언급한 사상가들의 면모를 보더라도 대체로 위대한 당대의 시인, 문인, 교육자, 사상가, 신비가, 역사가, 철학자들인데 공통적인 성향으로 본다면 ‘생명’이다. 생명을 굳어진  사회제도나 세계관에 속박시키는 것을 저항하는 경향성 곧 생명가치를 파수하고 생명의 신비를 경외감을 가지고 발현시켜 가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함석헌이 직접 언급한 영향받은 사람들의 명단에 근거해서 만이 아니라, 그의 주저중의 대표적 작품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뜻으로 본 세계역사』를 읽어볼 때, 그의 사관(史觀)을 형성되는 탯집으로서 ‘생명의 철학’(philosophy of life) 혹은 ‘생의 철학’(Lebensphilosophie)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충분하게 증명할 수 있다. 그의 생명철학의 뼈대는 웰스, 베르그송, 그리고 좀더 훗날 만나게 된 예수회 신부 떼이야르 샤르뎅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구 사상사에서 관념론과  기계론의 대립적 경향성을 동시에 비판 극복하려는 지향성을 첨부터 가지고서  실재의 전체현실을 ‘생명’ 혹은 ‘삶 자체’로서 파악하려  했던 ‘생의 철학 사조’의 공통적 특징을 철학자 보헨스키는  다음 5가지로 요약했다. I.M. 보헨스키(韓荃淑역), 『현대철학』, 111-112쪽(정음사, 1978)

 (i) 생의 철학자들은 운동, 생성, 생명등을 강조하는 절대적인 현실주의자이다. 관념적 존재나 감각적 물질등이 설령 있다 하더리도 다만 운동의 찌거기일 뿐이다.
 (ii) 생의 철학자들은 세계현실을 유기적인 현실로서 파악하며, 그들에게 생물학은 생의 철학 형성에 있어서  기초와 표준이 된다.
 (iii) 생의 철학자들은  체험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비합리주의자들이다.  직관․의지․참여적 실천 ․살아있는 역사적 삶을 강조한다. 삶이란 예기치 못하는 새로운 것의  창발적 과정이지, 인과율적으로 결정된 정합적 법칙세계가 아니다.
 (iv) 생의 철학자들은 주관주의자들이 아니라, 주관을 초월하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시인한다.
 (v) 생의 철학자들은 인격주의에 대한 뚜렷한 편향을 가지며, 유물론적 일원론이나 관념론적 일원론을 거부한다.

  필자는 보헨스키가 정리한 생의철학의 일반적 특징에 동의하면서, 함석헌의 씨알사상에도 그러한 다섯가지 요소가 필요충분하게 있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다시한번 5가지 특징을 기조어(基調語)로서 정리하면 생성론적 세계관․생물학적 유기체 실재관․비합리주의적 주의주의(主意主義)․ 초월 주체적((super-subjective) 객관적 실재론 ․ 인격주의적 가치관등이다.

  (1) 씨알사상의 생성론적 실재관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동아시아의 농경문화를 기반으로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역사나 삶을 사색하여 글로 표현하는 은유 ․상징․유비를 말 할 때도 언제나  뿌리․가지 ․열매․꽃씨등 나무를 중요시한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둔 생명의 난(나온) 것이다. 속에 묻혔던 것이 나온 것인데, 지구위에서 생명의 첫단계가 나무임을 지시하면서 나무유비(analogy of Tree)는 생명의 본바탈을 드러낸다고 본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1988), 25쪽.
살아있는 나무나 씨앗은 자라고 열매맺고 변화하여 간다.
 함석헌은 그의 사관을 이야기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역사란 무엇이냐? 지나 간 것(과거)이라 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나간 것이 아니다. 현재 안에 아직 살아있다. 완전히 끝맺어진 것이 아니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책. 34쪽.
 함석헌에게서 실재란 역사적 실재인데, 그것은 자라고 있는 것, 되어가고 있는 것, 생성중인 것이다. 함석헌의 생성론적 실재관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가 역사를 생성론적인 관점에서 보면서 하나님이해에 있어서도 오늘날 과정철학적 신관마져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 영원의 미완성곡이다. 하나님도 죽은 완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쏟아져 나오 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바퀴가 구르는 것이다....... 그것은(역사)  어디까지나 산것(生)이기 때문에, 그 운동은  그저 되풀이 되풀이 끝없이 하는 운동이 아니요, 자람이다. 생명은 진화한다. 적게보면 되풀이하는 듯하면서 크게보면 자란다. 위와 같은 책. 57쪽.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서구의 생명철학이 그러하듯이 실재를 생성적인 것, 되어가는 존재라고 강조하면서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스스로함’을 원리로 삼아 역동적 삶을 이뤄가는 것으로 본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종교시 「미완성」 이라는 제목의 시 속에서 그는 실재의 미완성적인 영원한 과정자체를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완성 할 줄 모르는 영감의 거장(巨匠) / 역사는 영원히 끝 날줄 모르는 절대의 의지/...영원히 영광을 더해가며 벌어져 나가는 생명의 불바다 만세! /... 『함석헌 전집』, 제6권. 124-125쪽.


(2) 함석헌 씨알사상에서 생물학적 유기체 실재관

  앞에서 살핀 내용에서 이미 암시되었지만, ‘생의 철학자’로서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앙리 베르그송의 생명사상을 매우 많이 닮았다. 아마도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읽고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을 것이다. 함석헌은 한민족사를 말할 때도 , 세계사를 말 할 때도, 흔히 역사적 기록물과 고고학적 유물을 가지고 논하는 인간 문명사 5,000년-8,000년 에 제한된 역사의식이 아니다.
 함석헌의 역사는 지구사요, 지구생명사요, 더 나아가 우주사를 전제하는 것이다. 『함석헌 전집』, 제9권, 12쪽.
괜히 역사범위를 확장하려는 과장어법 때문이 아니라, 실지로 개체생명이란 지극히 작고 한정된 시공간적 삶을 살지만, 전체 지구생명사와 우주생명사와의 유기적 관계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이 젊은 시절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H.G. 웰스의 『세계문화사대계』는 세계문화사를 논하는 책이지만, 세계문화사를 논하기 전에 세계의 공간과 시간, 생명의 발생과 진화과정을 서술하고, 최초 인류의 지구등장을 말하는 것이다.
 함석헌의 『뜻으로본 세계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출현이전을 하나의 독립된 장(章)으로 지면을 할애하여, 당시 최신 자연과학 특히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의 지식을 정리하여 인간출현의 모체로서 설명하고 있다. 위와 같은 책, 특히  <인류의 출현까지> 부분. 49-78쪽 .

 함석헌의 역사이해는 ‘생의철학자’로서  지구사위에서 생명의 진화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생물학적 발상법을 전제로하기 때문에, 그의 씨알개념과 이해는  천문학적 발상법을 하는 다석 유영모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경재, 「함석헌과 다석의 씨알사상 차연」, 『씨알의 소리』, 통권 199호, 2008.2월호에 실린 논문 참조.
우리는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베르그송의 생명철학과 몹시 닮았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령 베르그송의 생명의 특징으로서 ‘지속’과  ‘비약’을 강조하는 다음같은 말을 예로 들어보자.

  실재로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출생 이후부터 살아온 역사를 응축한 것이고, 심지어 출생이전의 역사를  응축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출생 이전의 성향(disposition)들도 더불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의식적 존재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이고, 성숙한다는 것은 자신을 무한히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앙리 베르그송, 황수영옮김, 『창조적 진화』, 26, 30쪽.(아카넷, 2005)

  베르그송은 생명적인 것과 비생명적인것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후자는 연장실재로서 물질적 인과법칙에 지배되기 때문에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르는 기계론적 실재이지만,  전자는 유기체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베르그송, 위와 같은책,  37-42쪽.
물론 유기체인 인간의 몸도 연장적 실재인 면이 있어서 연장의 다른 부분과 연대하고 교체되고 신체기관의 장기 이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기체인 생명체에서 개체와 전체관계는 외면적 관계가 아니라 내면적이고 상호침투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개체를 유기체적인 전체와 완전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 삶에서 더욱 그러하다. 생명의 진화는 환원불가능성과 비가역성을 특징으로 하면서 물질에서 생명이, 생명에서 의식이, 의식에서 정신적 영성이  출현한다는 생각은 베르그송,  떼이야르 샤르뎅, 함석헌이 모두 동일한 견해를 갖는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를 길고 긴 진화과정으로 보고, 앞으로도 생명의 비약에 의한 진화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함석헌 전집』, 제9권, 22쪽. 함석헌의 진화론적 인간정신 출현에 관한 생각은 같은 책. 69-73쪽 <영성의 여명> 부분을 참조.


(3) 함석헌 씨알사상에서 비합리적 주의주의(主意主義)
 
  생의철학의 또다른 특징으로 비합리적 주의주의를 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않다. 특히 함석헌의 씨알사상에는 그가 ‘과학정신’ 에 정직하고 투철하려고 하는  사상가인만큼 ‘비합리주의’(non-rationalism)라는 어휘는 오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질을 생각하는 힘에서 찾고, 사람의 도리를 깊이 사색하는 능력에 두는 함석헌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쉽게 감정주의나 감상주의에 흐르는 경향성을 몹시 경계하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영역에서 종교체험을 말 할 때라도, 이성을 비켜가거나 이성을 무시하는 초이성이 아니다. 철저하게 이성적이면서도 이성을 넘어서는 ‘환하게 꿰뚫려 비취는' 깨달음이나 은혜체험이라야 한다.
 생의철학이 강조하려는 것은 생명의 실상이나 실재를 법칙정립적인 논리에 근거하여 정연하게 합리적 성명을 다 할 수 있다는 연역적 사고방식, 추상적 관념이론을 전제한 선험적 법칙을 생명현실에 적용시키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매 순간순간이 창조적인 것의 발생사건이며, 비약적 변화이고, 예기치 못한  것의 창발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실상을 체험하려면  도리혀 직관적 파악과 참여적 체험과 역사적 인격체로서 인간의 인격성이 지닌 유일회적 삶의 질을 이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철학사에서 주의주의(voluntarism)이란 주지주의(intellectualism)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지성보다 의지(라틴어 voluntas)를 강조하는 심리학, 철학, 신학적 경향성을 말한다. 어거스틴의 의지의 회개, 주세후기 스콜라철학적인 둔스 스코투스, 칸트의 도덕적 정언명법, 니이체의 ‘힘에로의 의지 철학’등은 서구사상사에서  주의주의를 대표하는 사례들이다.
 생명철학에서 그리고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주지주의적 이라기 보다는 주의주의적이라고 보는 것은,  함석헌은 역사의 해석에서 ‘뜻’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개정판 서문에서, 함석헌은 뜻이야말로 자기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만인이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고, 종교적으로는 궁극적 실재로서 ‘하나님’을 포괄적으로 비종교적 언어로 표시하면 “뜻”이라고 본다.

   뜻 이야말로 만인의 종교다. 뜻이라면 뜻이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고, 생명이라 해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저 하나라 해도 좋다. 그 자리에서 우리 역사를 보자는 말이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넷째 판에 부치는 말 중에서, 19쪽.

뜻과 생명과 하나님과 역사를 거의 서로 통하는 어휘로 본다는 것은  함석헌의 사상이 ‘생의철학’의 특징인 비합리주의적 주의주의(主意主意) 계열에 선  생명철학자의 면모를 잘 나타내는 것이다.

(4) 생의 철학자 특징으로서 자기초월적 주체(superject-subject)의 객관적 실재론  
 
  보헨스키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생의 철학’이 지닌 공통적  견해 혹은 경향성으로서 주관을 초월하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시인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에 대하여서는 역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보헨스키가 이 네 번째 특징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의철학 일반적 공통점으로서 비합리주의적 특성을 언급하는 경우, 잘못하면  개별사상가들의 주관주의를 인정하거나 강조하는것처럼 오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그래서 보헨스키가 말하려는 의도를 살려보기 위하여 과정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철학용어인 ‘자기초월적 주체’(superject-subject) 문창옥, 『화이트헤드과정철학의 이해』, 45-46쪽(통나무, 1999)
개념을 형용사로 변형하여 ‘객관적 실재론’이라는 말앞에 놓았다.  
 ‘자기초월적 주체’ 개념은  하잇트헤드 유기체 철학에서 ‘현실적 존재’로서 개별적 주체자는 자기실현의 주체인 동시에 실현된 자기초월체로서 뒤따라오는 새로운 생성과정의 질료로서 자기를 내어준다는 사상과 통해있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이 즐겨하는 식물의 유비적 은유를 통해 말한다면, 나무의 씨와 숲의 관계와 통한다. 나무의 씨는 자기를 하나의 나무로 실현하려는 목적지향적 주체이다. 동시에 나무는 나무임과 동시에 숲을 이루는 구성체이다. 개체생명과 역사적 실재로서 전체생명의 관계가 그와 같은 것이다. 함석헌의 은유를 들어본다:

  사실은  두면이 있다. 인생과 역사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살림의 두 원칙인 개인적 생활체험과  세계적 역사 이해가 나온다.... 하나를 나무의 씨라면 다른 하나는 숲이다. 씨를 매기자는  것이 숲이요, 숲을 이루자는 것이 씨다. 위와 같은 책, 27-28쪽.

 생의 철학은 생명의 현실을 덧없는 마야이거나, 진여계(眞如界)에 대비되는 하찮은 비이데아적  생멸계(生滅界)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현실’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생명계․세계역사적 현실․뜻을 이뤄가는 삶의 분투를  경외감과 진지함을 가지고 대해야 할  ‘객관적 실재’라고 본다. 이 생명현실을 떠나서는 모든 것은 추상적이거나 잠재적 가능태 이거나 공허한 것이다.

(5) 생의철학 특징으로서 인격주의 가치관

 보헨스키가 지적한  생의 철학자들이 공통적 경향성으로서 인격주의적인 것의 강조는 굳이 설명을 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생명있는 것들이 다 인격적인 것은 아니다.‘인격’(人格)이라는 한자어 그 자체가 지시하는 바처럼,  생명의 진화과정 속에서 ‘인격적 차원’으로 영글어진 호모사피엔스의 생명적 특질을 일컫는다.
 다른 생물체들, 특히 희비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동물애호가들의 주장은 동물들이 인격적 차원에 도달한 인간격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인격적 생명체인 사람이 느끼는 생명의 근원적 본질요소(예들면, 사랑, 연민, 친절, 성실, 배려)들은 언어나 인간적 인격체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신념이다. 동양철학 불교나 유교, 그리고 천도교에서 ‘만물동체론적 실재관’이  오늘날 생태학적 영성에서 다시 주목을 받는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생의철학의 특징으로서 인격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근세 계몽주의적 서구사상발달과정에서 드러난 독선적 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리혀, 인격성이 지닌 고유한 가치․ 책임성 ․도덕의식 ․역사적 존재로서 생명의 연대성을 강조하자는데 있다. 물량적 계량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문명사회의 비인격주의의 행태에 저항하는 것이다. 영미의 실용주의 생활철학은 사실 알고보면 ‘생의철학’의 구체적 반영인데, 실용주의가 본래적 의미에서 타락하여 변질되면 가장 반생명적 철학이나 가치관으로 전락된다.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가 ‘실용주의’라고 천명하면서도, 실지로 정부의 정책수행 과정이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인격적이거나 반인격적인 것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교육정책, 국토개발정책, 경제정책에서 그러하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가지고 있는 인격주의적 요소는 그의 역사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의 근본 뜻은 (자연 생태계 안에서) 독재적인 권리주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근본에 도덕적인 질서를 느끼므로 거기 대한 책임감 ․의무감에서  나온 말이다”.  위와 같은 책. 50쪽.
이라고 함석헌은 말한다.  인격주의를 강조하는 함석헌이 ‘생의 철학자’로서 특징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핵심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생명철학으로서의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서구의 생명철학과 그 독특한 맛에서 다른점은, 그가 ‘생명’에 대하여 ‘생명’을 또한번 대상화하면서 이론규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생명의 맨 바탁층인 민중(씨알)의  고난을 하나님의 슬픔으로까지 느끼는 예민한 감수성이다. 고난당하는 민중을 내놓고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곳도 없고,  민중을  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곳이 없다는 동체대비적(同體大悲的) 생명체험을 갖는다는 점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332쪽.


  지금까지 우리는 현대 서구철학사에서 나타난 ‘생의 철학’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열거하는 보헨스키의 견해를 참고삼아서 그러한 요소들이 함석헌의 씨알사상속에서 찾아 확인해보았다. 생의철학의 본질규정을 반드시 서구철학자가 내려야 하는 특권은 없다. 도리혀 동아시아 문명속에서 더 깊고 풍성한 생의 철학을 규정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주제는 동서철학사에서 드러난 ‘생의철학’ 차이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생의철학’ 혹은 ‘생명철학’ 이라는 주제어로서 접근 할 수 있으며, 또 그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긍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동안 함석헌사상의 연구논문들이 직간접적으로 ‘생명사상’을 언급해왔지만, 의도적으로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생명’이라는 주제와 연결시켜 연구한 논문들이 있다.  (i)  이규성, 「심정과 자유의 철학」, 『씨알․생명․평화』,17-90쪽(한길사, 2007)
 (ii)  이기상, 「생명의 진리」, 위와 같은 책, 91-126쪽.
 (iii)  박재순, 「씨알의 생명사상」, 위와 같은 책, 127-150쪽.
 (iv)  유헌식, 「문명비판과 초월적 자연주의 」, 위와 같은 책, 151-180쪽.
 (v)  양명수, 「자연과 자유」, 위와 같은 책, 181-210쪽.
 (vi)  임헌영, 「씨알의 생태환경사상」,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 83-106쪽(한길사, 2001)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점은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20세기 전반기 세계정신사에서 공명을 이루는 한국적  ‘생의철학자’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씨알사상을 생명철학으로 파악할 때, 그것이 지닌 21세기 지구촌의 생태계 붕괴라는 세기말적 문명위기를 타개하는데 도움되는 의미를 찾아보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볼 때, 위에서 예로 든 몇편의 대표적 논문들중 임헌영의 「씨알의 생태환경사상」과  박재순의 「씨알의 생명사상」은  오늘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연구논문들이다.

3. 생의 철학으로서  씨알사상과 21세기 생태학적 지구영성(ecoglobalspirituality)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서양정신계에서 일어난 ‘생의 철학’ 운동은 몇가지 점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 첫째, 무엇보다도 생의철학은 19세기를 지배하던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실증주의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생명이 지닌 독자적 특유성과 가치를 자리매김하였다.
 둘째, 특히 자연과학적 이론과 기술공학적 능력에 의하여 세계현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면서부터 과학주의적 합리주의가 실재의 전 영역을 규정하고  절대규범으로 우상화되었을 때, 생의 철학은 물질계와 구별되는 유기체적 인간 생명 안에서 체험되는 역사적 실재․인격적 실재․예술적 가치․윤리적 정언명령등을 재강조하여, 인간적 삶체험의 내면적 지성소를 세속화의 물결로부터 지켜내었다.    
 그런 공헌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생의철학’은 그 진화론적 사유체계에 모순되리만큼, 지나치게 물리적 자연세계와 유기적 생명세계를 구별하여 인간을 우주적 자연세계와 불가분리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약화시키게 되었다. 유기적-정신적 실재인 인간이 우주에 대하여 성찰한다는 인간중심의 주객구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우주자체가 인간생명 속에서, 인간생명을 통하여, 인간생명과 더불어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라야 한다. 인간이란 우주진화의 꽃이며, 함석헌이 말한대로 우주나무에 열린 영근 씨알이며, 장회익이 말한대로 지구라고하는 온생명 유기체중 ‘중추신경계’ 기능을 담당하는 유기체의 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장회익, 『삶과 온생명 』, 194-197쪽 (솔, 1998)
  
 토마스베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지질학적으로 신생대(Cenozoic era)가 끝나고 생태대(Ecozonic era)에로 전환기라고 본다. 이 문명사적인 새로운 지질학적 대전환기에 필요한 것은 인간과 지구의관계, 신과 세계의 관계, 인간과 정치사회적 제도들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 요청되는 시대라는 뜻이다. 토마스베리/ 토미스클릭 신부의 대화, 김준우역,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 19-27쪽(에코조익, 2006)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특히 그의 역사이해에서 ‘하나’를 지향하여 세계가 전일화(全一化)되어야하고, 하나의식을 고양시켜 각각의 생명체나 자연물이 서로 한 몸의 지체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31쪽 이하 .
  그리고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생의철학자’로서 생명의 유기체적 특징, 인격성의 중요함, 의지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 인간 영성의 꽃핌현상으로서 종교의 의미등을 강조하지만, 그의 씨알사상은 서구 ‘생의철학’ 일반이 강조하는 자연과 대립되는 역사, 물질과 대립되는 정신, 비생명적 우주자연과 대립되는 생명적 우주역사가 아니라, 그 양자를 아우르고 통전하는 생명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씨알사상에서는 몸의 영성이 중요하고, 역사로부터의 수직초월이 중요하지 않고 역사의 총체적 구원이 중요하게 된다.  씨알사상을 생명사상 관점에서 논한 연구로서 박재순의 연구가 두드러진다.
    박재순, 『한국 생명사상의 모색』,220-261쪽( 한국신학연구소, 2000)
더욱이, 서양의 ‘생의철학’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생명세계 맨 밑바닥을 구성하고 생명적 역사를 지탱하고  정화시켜나가는 ‘고난담지자로서 씨알생명’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생의철학’이 단순한 ‘적자생존,무한경쟁’을 당연시하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  
 함석헌의 ‘생명’사상에서 고난과 저항은 중요한 주제이다. 씨알은 고난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고 저항한다. 생명의 본바탈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생명철학에서 저항은 폭력과 남을 죽이고 내가 살기위한 저항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고, 사람답게 살기위한 비폭력 저항이다.
  다시말하면  함석헌의 생명철학으로서의 씨알사상은 두가지 생명의 기본원리를 강조하는데, 그 하나는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난은 생명의 또 하나의 원리”라는 것이다. 기독교신학적으로 말하다면 성서의 두전통은 ‘성례전적 전통’과 ‘계약전통’인데, 전자는 우주자연의 창조적 과정을 창조주의 내재적 성육화과정으로 파악하는 생명긍정의 세계관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과 자유와 평화로운 삶에서 소외된자 없도록 하는 예언자전통의 열정 곧 정의에 입각한 생명의 사회적 연대성책임에 대한 각성을 나타낸다.  김애영, 「로즈마리류터의 생태여성신학」, 『현대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146-147쪽(대한 기독교서회, 2006); Sallie Mcfague,  김준우역,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111-122쪽(한국기독교연구소, 2008)

  함석헌의 ‘생의철학’으로서 씨알사상은  서구지성사 20세기 초에 발전한 ‘생의 철학’과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위에서 말한 성서적 두 전통을 그의 씨알사상 안에 지님으로써 동아시아적 생명철학사상으로서의  독특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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