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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민중,시민운동 제 3의 눈(죽제추모 광주 YMCA강연, 200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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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강연200907]
                 씨알, 민중, 그리고 시민운동체의 영성
         -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의 양미간(兩眉間)에  
                     시민운동체 제3의 눈 점안(點眼)을 위하여-


                                                    김경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1] 주제의 의미와 목적

 한민족의 역사속에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깊이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민중항쟁 피가 흘려진 빛고을에서, 호남이 낳은 세계적 민중신학자요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죽제 서남동(1918-1984)의 서거 25주기 기념강연을 갖게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특히 이강연회의 주관이 광주의 시민단체들(광주YMCA, 광주YWCA, 광주교회협의회등)로서 성사된 것을 고인은 영광스럽게 생각 할 것이다.
 < 씨알, 민중, 그리고 시민운동체의 영성>이라는 오늘의 주제를 내걸고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뜻은 두 가지 이다.
 첫째, 2008년 이명박(MB)정권의 집권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전개되는 심상치 않는 정치사회적 상황, 곧 심각한 민주주의 역사퇴행 기류 앞에서, 우리는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전환점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역사인식이 착시 현상이었지 않았는가  성찰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한번 시민운동의 제3의 눈 점안식(點眼式)이 되고자 한다.
  MB정권의 4반정책기조(四反政策基調)반민주, 반생명, 반민중, 반평화 정책기조는 대통령 개인의 몰역사적 시대의식과 대형토목공사 강행으로  경기부양을 기대하는 조급증과 장래 역사적으로는 국토발전을 이룬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평가 받으려는 헛된 기대와 야망에서 기인한다. 또한 MB정권의 일탈된 정책기조는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반민주적 수구보수세력이 형식적 민주주의 탈을 쓰고 역사의 수레바퀴 전진을 가로막고 후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보수적 기독교세력이 MB정권의 가신집단(家臣集團)으로 전락하여 갈릴리 예수복음을 변질시키고, 한국 기독교의 순교자들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감행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 현대사의 시민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이 1987년 시민항쟁의 승리로서 완료된 것이 아니라, 투쟁중인 진행형의 시대상황임을 자각하면서 그 돌파를 위한 시민운동체의  정신적 무장 곧 시민운동체가 지녀야 할 ‘때를 분간하는 눈’ 으로서 역사 미래진로를 꿰뚫어보는  제3의 눈 점안(點眼)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둘째, 이 강연은 본질적으로 역사철학적․종교신학적 사상강연으로서 일차적 성격을 지닌다.  강연자의 전공분야와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국강연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릇 인간의 역사적 삶이란 지난날의 구체적 생활 체험속에서 영글어지고 체득한 역사 공동체의  집단지성이 해석학적으로 그 지평을 확대심화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때론 현실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2009년 오늘 한국역사 현실은 과거없이, 과거를 뛰어넘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삶이란 과거 생명의 거름 위에 자라고 피어난 꽃이다. 오늘날 현실을 구성하면서 현실을 창조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힘과 책임을 지닌 민주시민단체의 주체적 사회변혁운동이 이전보다 더 큰 힘을 지니기 위해, 1960-1980년대에 특히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 인권운동․평화통일 운동을 견인해가던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의  통찰력에 주목해야 한다. 이 강연의 중요한 목적이 거기에 있다.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이 1960-80년대에 한때 유행하던 사상운동이 아니라, 오늘에도 보다 성숙한 시민운동의 지반과 미래지향적 비젼을 위해 큰 도움되는 사상운동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오늘 강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같이 3단락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i)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씨알의 자기초월 주체성 (ii) 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 민중의 집단영성 (iii) 역사변혁의 주체로서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의 출현과 그 과제, 이 강연의 세단락 소주제들이다.

[2]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씨알의 자기초월 주체성

 신천 함석헌( 信天 咸錫憲, 1901-1989)은 그리스도교가 한국에 전래된(1784) 이후, 자생적으로 영글어진 토착적 역사철학자, 종교사상가, 시민평화운동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사상의 대표적 트레이드마크는 ‘씨알사상’이다. 그는 이곳 광주 YMCA 강당에서도 여러차례 시국강연과 사상강좌를 한 바 있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정신사적으로 말하자면 1970년대 중반에 자생적으로 발생한 한국 ‘민중신학’의 선구자가 되고, 토양이 되고, 가장 강렬한 동반자적 전우가 되었다. 그러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옛말처럼,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은 색깔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르고 그 지반이 다르다. 달라서 서로 갈등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혀 서로 보완하고 새의 두 날개처럼, 수레의 두 바퀴처럼, 부처님의 양미간 제3의 눈을 가능케하는 두 개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안병무와 서남동을 비롯한 민중신학의 선구자들이 대부분 함석헌을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민중신학과 함석헌의 씨알사상과의  같음과 다름에 대하여 남달리 관심을 가졌다. 우선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의 차이와 특징을 알아보기 전에 씨알사상의 핵심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씨알사상의 ‘씨알’이라는 순수 우리말 어휘는 다석 유명모의 고전풀이에서 유래했지만, 그 말을 ‘씨알’이라고 기표(記標)하고, 그 단어에 철학적, 종교적, 정치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분은 함석헌이었는데, 『씨알의소리』월간지 발간(1970) 때부터 본격화 되었다.
둘째, 씨알사상의 ‘씨알’이라는 어휘 속에는 강렬한 주체성이 담겨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고 하듯이, ‘씨알’은 ‘민’(民)이라는  한문글자로 표기된 호칭을 거부하고 자기가 자기를 주체적으로 이름갖기를 선언한 것이다. 평민(平民) , 서민(庶民) , 시민(市民) , 우민(愚民), 국민(國民) 등 뒤에 붙이는 민(民)은 주체성이 없다고 업신여기거나 어리석거나 통치대상으로서의 백성일 뿐이었다.
  주체성의 자각은 동시에 주인의식이 깨어남을 나타낸다.  왕, 대통령, 지식인, 귀족, 특권층, 공무원과 경찰, 심지어 국가나 헌법조문이 나라의 주인인 것이 아니라 민(씨알)이 진짜주인이라는 의식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라살림, 사회살림의  실질적 생산자, 소비자, 조직책임자, 역사를 메고가는 역사창조자 이기 때문이다. “민(民)은 봉건시대를 표시하지만 씨알은 민주주의 시대를 표시합니다. 아닙니다. 영원한 미래가 거기 압축되어 있습니다”
셋째,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맨사람’을 나타내려는 뜻이다. 맨사람은 두가지 외면적 내면적 의미를 함축한다. 외면적 의미는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없는 ‘보통사람’ 이라는  뜻이다. 내면적 의미는, 외면적 사회적 페르소나(탈, 가면, 옷,직위, 직분, 직무)를 참 자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본래성을 지키고 살려내려는 의미를 함축한다. 인간의 순수성, 본래성, 하늘이 혹은 대자연이 품수해준 본래 소박하고 진솔한 품성을 지키고 발현시키려는 의지를 갖는다. 무한경쟁이나 동물왕국에서 이뤄지는 약육강식의 사회적 삶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진화론적 정치철학과 경제정책을 거부하고 저항한다.
넷째,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오랜 농경문화의 바탕에서 농사짓은 기본법 곧 씨와 토양의 관계를 은유로서 중요시 한다. 식물의 씨앗은 토양 흙에 뿌리내려 성장하고 영글어지듯이, 사람의 삶은 의로운 생명들이 죽어 퇴비가 된 역사라고 부르는 흙을 먹고 자라며 역사를 중요시한다. 역사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속에 살아있는 삶의 총체성이기 때문에, 현재의 역사를 진지하게 건강한 생명의 밭으로 일궈가는데 심혈을 쏟는다. 현재의 역사적 현실에 책임적이지 않거나 도피적인 모든 사상, 종교, 지식, 언론은  공허하고 반 생명적이다. 함석헌은 사이비 종교단체, 사이비 언론사, 사이비 정치단체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민(民)곧 씨알을 마취시키고 서서이 죽이는 원수들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같이 울고(共鳴), 같이 느껴주는 (共應) 전체를 개체 안에 감지하는 생명철학 사상이다. 씨알사상이 아무리 개체성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전체생명을 떠나거나 분리된 개체생명은 없다고 본다. 함석헌은 그 관계를 ‘나무와  숲의 상호관계’로 은유한다. “씨를 메기자는 것이 숲이요, 숲을 이루자는 것이 씨다”. 함석헌은 ‘씨알헌법’ 제1,제2,제3장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씨알은 “낡은 제도와 사상에서 해방되어 제소리를 내고 공명하는 생명체들”이라는 것과, “전체는 부분을 뫃아놓은 것보다 크다”는 것과 “부분은 전체 안에, 전체는 부분 안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섯째,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단순히 사회역사적 존재일뿐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생명체’임을 강조한다. 그 말뜻은  ‘씨알’이라는 글표시에서 뒷글자 ‘알’의 해명에서 강조한다. “ 윗표시 큰 동그라미(ㅇ)는 극대 혹은 초월적인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작은 점(․)은 극소 혹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를 표시하는것이고, 맨 아래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형이상학적 존재철학이나 신학사상에 있지않고, 그 명제에 따르는 실천적 진리에 있다. 다시말하면, 씨알의 입은 하나님의 입이 되고, 씨알의 고난은 하나님의 고난이 되고, 진정한 씨알들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가 된다. 역으로 말하면, 씨알들이 역동적 생명활동으로서 참을 세워가지 않는 공동체에서는 하나님도 침묵한다. 하나님도 무력하게된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로 오르지 못하고  퇴보하고 타락하게 된다.
일곱째, 씨알사상에서 ‘씨알’은 사회공동체의 맨밑바닥을 떠받히는 어머니같은 모성적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불의한 사회공동체가 뱉어놓는 모든 오물을 감당하고 치워내야하며, 더 나아가서 망나니같은 자녀들의 죄를 엄중하게 꾸짖되 회개시켜 변화시켜야하는 무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한 가정에서 어머니는 가정의 불행을 가정식구 다른 누구에게 전가시킬 수 없듯이 ‘대속적 고난의 짊’을 짊어지면서 역사공동체를 ‘전화’(淨化)시키고, 사람다운 얼굴모습을 갖출 때까지 산고(産苦)의 진통을 앓아야 한다. 보복이나 분풀이나 특권자리의 자리바꿈을 꿈 꿀 수 없다. 여기에 씨알사상의 ‘씨알’ 개념에서  종교적 차원이 드러나며, 일반 사회운동체가 거기까지 함께 가기 심히 어려운  한계선이 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시민운동은 그 자리에까지 나가야 한다.

[3] 죽제 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 민중의 집단영성

 죽제 서남동(竹齊 徐南同, 1918-1984)의 민중신학은 1974년 그의 사상이 문자로 표현되기 시작하여 과로로 인한 불행한 죽음 까지 불과 10년 짧은 시간동안 , 천재 예술가의 예술작품활동같이 , 불같은 정열로 한국 신학계에 파스칼의 유작 『팡세』(1670)같은 단편과 논문들,  좀더 자세하게 해설되어야 할 신학논문을 남기고 갔다.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앞으로 설명될 것이지만, 21세기 지구촌의 모든 역사변혁의 시민운동에 두 눈처럼 작용하면서 그 두눈의 양미간에  ‘제3의 눈’을  점안(點眼)시켜줄 창조적 지성의 눈빛이 된다.
 이 강연에서 우리는 앞선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대한 총괄적 요약처럼 그의 민중신학의 핵심사상을 다음같이 먼저 요약해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신학하는 태도나 방법론에서, 실존주의적 결단성을 가지고 성서와 사회현실을 사회경제사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실존주의적 결단성”을 가진다는 말은 나의 인격적 진지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문제에 대하여 책임적 결단을 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회경제사적 시각을 가진다”는 말은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거나, 민중의 현실문제를  이해하려 할 때,  구원의 사건이나 죄의 현실성을 정치경제적 조명등을 문제의 본질에 비취면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들, 예들면 출애굽사건, 시내산 계약사건, 이스라엘 왕국 건립과 멸망사건, 십자가 사건, 종말적 부활사건등을 모두 초자연적인 계시사건으로서만 해석하여  그 사건들의 진실접근을 막았다고 본다. 위에 열거한 중요한 성서의 사건들의 의미가 평면적인 정치․경제적 사건이라거나 그런 의미만을 지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사적으로 보아야 그들 사건의 지닌 의미의 중요한 진면목이  더 잘 보인다는 뜻이다.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사회경제사적방법을 가지고  성서와 역사를 볼 때,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돋보인다고 강조한다. 서남동은 물적토대와 상부이념구조 ․ 존재와 의식 ․ 환경과 유전 등의 상호교호관계성을 인정하지만,  인습적 사고와 교과서적 중도론을 타파하려면 사회적 제조건이 인간성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개인영혼은 집단영혼이랄 수 있는 민중의 공동사고와 집합적 인격체의 열망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난다고 본다. 인간신체로서 비유하자면,  전통신학은 인간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문제삼지만, 민중신학은 신체기관들(organs)과 그것들의 유기적 관계성을 문제삼는다.
둘째,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구원을 죽은 후에 천국가는 영혼의 구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그런 요소를 종교가 지닌다는 것을 서남동은 인정한다), ‘오늘의 구원’에 관심을 갖는 이론과 실천이다.  ‘오늘의 구원’이라는 종교적 어휘를 가장 성경적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다면 ‘오늘의 해방’이라고 본다. 오늘의 인간사회에서 개인과 집단을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억압하고, 질식시키고, 비인간화시키는 힘을 깨뜨리고 인간답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 종교의 일차적 목적이라고 본다. 성경을 꿰뚫고 흐르는 큰 물줄기는 민중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원사의 전개이야기로 본다.
  오늘 여기에서 펼쳐지는 ‘생역사적 현실재’(biohistorical Reality)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본류(本流)이며, 하나님의 창조관심의 초점이다. ‘하늘’은 구원사의 시원이겠지만, ‘땅’은 그 종착점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이 주기도문의 핵심이다.
  성령의 일차적 활동도 방언․예언․신유․초능력이라는 종교현상적 기이한 일을 넘어서, 그 본질은 분열․소외․악령에 사로잡힘․군대귀신에게 눌림․소통불능․이간질등의 죄적 현실에서 해방시켜 자유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셋째,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억압받고 빼앗기는 소극적인 ‘서민대중’의 뜻만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고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집단적 인격체라고 본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이란 ‘민’(民)의 ‘무리’(衆)를 의미하므로, 인간의 개인성보다는 집단성을 중요하게 본다.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민중은 프랑스 혁명이후 서구사회에 주류를 형성한 부르조아적 ‘시민계급’도 아니고, 러시아 볼쉐비키 혁명이후 공산주의사회에 주인으로 등장한 푸롤레타리아트적  ‘무산계급’도 아니다. 근로자, 농민, 도시서민, 소외계층 전반을 포용하면서도 역사의식에 있어서 깨어있어서, 민중의 부당한 비인간적 예속․억압․빈곤의 되물림․비인간적 대우를 극복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의식화된 민의 무리’를 말한다. 민중이 역사의 객체인 처지로부터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투쟁의 역사과정이 세계사나 한국사의 진행방향이라고 본다.
넷째, 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 ‘믿는다’는 종교적 언어는 신앙의 대상에 대한 ‘역사적-인격적 앎’이요, 그에 대한 궁국적 관심을 가지고 ‘신앙대상의 원형적 삶을 닮으려는 행위요 따름 행위’이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신앙적 고백의 의미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는, 예수의 동정녀탄생․신성인성을 지닌자․대속적 죽음을 하신자․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신자․ 승천하셨고 다시 재림하실 분등 사도신경의 내용을 지적동의하는 일과 다르다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이나 대속신앙이란 성령의 은혜와 격려안에서 신자가 예수를 재연하고, 예수 사건을 다시 신자 생명 안에서 발생시킴으로서 예수와 하나됨(atonment= at+one+ment)의 사건이라야 한다.
  진정한 역동적인 주체적 믿음이란 신조내용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승인행위가 아니라, 그의 삶과 일치하려는 실존적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 ‘성령론적 공시적 사건체험’이란  신앙이란 언제나 ‘지금의 문제’에 참여함으로서 과거 역사적 사건이 지금 나의 사건이 되고, 동시대적 ․공시적(共時的) 체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서남동은 오늘의 한국보수적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회구조적 악과 제도의 모순을 보지 못하고, 관념론적 신학․기업체 성장모방 목회 ․반공이념에 속박된 교회․제도교회의 교권존속만 추구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 교회는  ‘민중의 한(恨)의 사제’가 되지 아니하고 권력과 야합하거나 유착한  가신집단(家臣集團)이 되었다.
다섯째,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죄’의 본질을 개인의 도덕적 차원에서보다 더 근원적인 죄, 곧 사회집단적 죄의 현실과 사회집단적 회개를 촉구하는 맥락에서 본다. 서남동은 개인의 인격과 영혼의 깊은곳에서 은밀히 짓는 죄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직하게 볼 때, 오늘날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와 죄적인 사건들은 사회부조리, 사회모순, 사회구조적 부정의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발생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배계층과 권력소유자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의 현상유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법질서를 강조하고 민중의 정당한 권리주장과 민주시민으로서 주권적 행동을 범죄자를 규정할 때, 민중신학은 단호하게 불의한 법질서와 사회구조악을 혁파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이요 정의가 된다. ‘민중’을 미화하거나 ‘의로운 무리’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민중신학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터무니없이 많이 가진자나 권력자들보다는 가난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현실적 삶의 실상을 더 뚜렷이 볼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을 가지며, 용서받을 수 있는 신의 은총을 보다 먼저 받는 ‘신의 우선적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신의 보편적 사랑도 말하지만 가난한자들과 눌린자들에 대한 신의 ‘편애적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여섯째,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하늘나라(天國)를 하나님의 나라(神國)와 대비시키고, 전자와 후자는 보완적 관계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신약성경의 본래정통은 메시야왕국 곧 하나님나라(神國)의 도래를 대망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메시야왕국으로서 신국의 상징은 정치적․사회적․참여적 상징이다. 단순한 열반과도 다르고 유토피아와도 다르다. 메시야 왕국은 메시야정치를 필수적으로 동반하고 요청한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자로서 역사적 주권을 명실공히 회복하는 것이 메시야정치의 목적인데, 메시야 정치는 평면적 차원에서 정권교체적인 혁명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철저한, 더 포괄적인, 종말론적 형태변화(transformation)을 의미한다고 서남동은 강조한다. 그것은 ‘몸의 집단적 부활’을 동반하는 것으로 상징되는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만유 가운데 만유로서 현존하는  비젼을 갖는다(고전15:28). 그 날이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일하시되 민중의 손발을 통화여 일하시며, 역사의 진전 자체 속에 신은 육화하시어 일치를 이루시되 민중의 집단적 생명속에 육화하시어 민중과 일치를 이루시는 방식으로 하신다.   민중이 메시야적 기능을 갖는다는 말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보수정통신학은 몰이해 하고,  인본주의적 신학이나 자유주의적 신학은 쉽게 오해한다.

[4] 역사변혁의 주체로서 민주시민의 집단지성의 출현과 그 과제

 지금까지 둘째단락과 셋째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서남동의 민중신학이 말하려는 핵심적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 현대 사회사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이 두가지 사상은, 아직 한국사회의 학계나 지성사 및 정치운동사 속에서 그 의미가 충분하게 평가되지 못한체 있다. 이 양자의 관계성과 차이성을 서남동 자신이 다음같이 명료하게 증언하고 있다.

  안병무선생은 함선생의 씨알개념을 잘 밝혀주는 글을 썼는데, 거기에서 그는(안병무) “존재론적․우주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씨알’이고, 역사적․ 사회적인 차원에서 말하면  ‘민중’  이다”고 구별했다. 이 구별은 잘된 구별이라고 생각된다. 그 한마디 말로서  할  말을 다 한 셈이다. 이것은 씨알의 양면성을 지적한 것인데, 그것은 씨알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평가도 된다. ‘민중’을 말하는 사람은 ‘씨알’을 늘 맘에 두어야 할 것이고, ‘씨알’을 말하는 사람도 ‘민중’을 늘 맘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을 외면한다든지, 인간의 사회적․역사적 측면을 망각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으로써 강연자는,  1987년 민주시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후로 우리사회에 등장한 역사변혁의 주체자로서 ‘민주시민’이라고 통칭하는 집단지성이 자신의  제3의 눈으로서 점안(點眼)하자는 주장을 대신 할 수 있다. 인용문 내용이  본 강연의 목적이었다.
 한국 근현대 정치사회사적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동학혁명(1894), 3.1운동(1919), 4.19학생혁명(1960), 5.18광주민중항쟁(1980)을 통하여 끊임없이 씨알들과 민중의 자기목소리 곧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씨알들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싸워왔고, 그 댓가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감내하였다. 그러나 냉엄하게 뒤돌아 볼 때, 앞서 언급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서구사회에 등장한 소위말하는 ‘시민계급’이 주도한 것이라기보다는 농민들, 학생들, 소상인과 자영업 노동자들, 사회주변부 소외계층들이 목숨내걸고 싸운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에서(1980) 전 시민이 반민주군부세력에 저항하고 싸웠지만, 청년학도들과 힘없는 서민들에 대한 군부독재집단의 무자비한 살육과 만행을 보고 시민들의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 ‘5.18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루었다.
 다시말하자면, 광주민중항쟁 소식이 사이비 언론기관과 정권에 의해 차단되고 가리워졌음을 고려 할지라도, 이 소식을 들은 전국토의 ‘시민계급’이 프랑스 혁명 때처럼 역사변혁의 주체 세력으로서 들고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줄여말하자면, 한국정치사회사는 개화기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봉건사회’로부터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국가정체에로의  전환을 했을 뿐이고,  문화사상사적으로는 모든 인습적 전통에 결부된 허구적 권위를 비판적으로 청산하는 ‘계몽시대정신’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해방후 60년이 지나도록 한국사회는 아직도 관료적 권위주의,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통치자의 독재, 형식적 대의의회제도 명분으로 치장한  당파주의,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아부하고 굴종하는 사법기관과 언론기관들의 추태를  현실에서 목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1987년 민주시민의 항쟁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 항쟁은 이전까지의 씨알들이나 사회바닥 사람들과 소외 계층인 민중들이  합류했을 뿐만 아니라, 첨으로 자발적인 화잇칼러 시민들이 민중(씨알)과 더불어 역사변혁의 주체로서 등장한 사회운동사에서의 이정표를 이루는 사건이었다. 비로소 한국사회도 민주시민계층의 집단지성이 역사의 무대위로 등장한 것이다. 그것의 연장이 2008년 어린여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참여한 자발적 시민들의 집단지성의 표출로서 ‘촛불사건’인 것이다.
  역사의 변화를 모르고, 아직도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인습에 젖은 현 정권주역들과 사법부 충견들과 보수 언론계 글쟁이들은 ‘촛불시위’가 MBC 방송작가 PD들의 선동에 놀아난 대중들의 정치적 광란이었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한국사회는 이미 루비콩 강을 건넌 것이다. 공안정국을 강화하고, 아무리 ‘엄정한 법적 대응’을 강조하더라도, 역사의 도도한 강물의 흐름을 하찮은 경찰 방패로 막을 순 없는 것이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1987년 민주시민항쟁후 20년만에 다시 순수한 감수성을 지닌 어린 여학생들과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어머니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미국소고기 수입문제 곧 소고기 파동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진짜 이유는, 우리들의 지구 문명사는  이제 생명을 억압하는 국가권위주의 시대가 이미 끝났다는 것과, 대의적 민주주의 의회제도는 존속하겠지만 진정으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형식적 정치제도나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의 껍데기는 물러가라는 시대정신의 소리인 것이다. 천심이 민심으로 반영된 것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집단지성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영혼도 개인영혼이고 지성도 개인지성이 더 빛을 발휘할 경우가 있지만, 현대는 개인지성이 집단지성 속에서 더 고양되고, 집단지성은 개인들 지성의 총합보다도  더 놀라운 ‘자기초월의 경험과 역사넘어의 비젼’까지를 느끼면서 응시한다. 현대 과학의 컴퓨터 정보기술공학이 이를 돕고, 지구화된 우주의식이 인식지평을 우주적으로 확대시킨다. 드디어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이 1960-80년대 말까지 갈고 닥아낸 투명한 두 개의 눈, 곧 씨알지성소에서 발하는 양심의 빛과 민중의 집단지성에서 발하는 실천적 지혜의 통찰이, 새로 등장한 민주시민의 양미간에 제3의눈을 점안(點眼)시켰기 때문이다. 제3의 눈을 통해서 볼 때, 다음의 사실이 더 명확하게 보이며 민주시민의 과제가무엇인지 동시에 보인다.

 첫째,  MB현정권의 반민주적 정책기조를 단호하게 응징하고, 해방후 60년간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오늘까지 키워온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고사시키지 못하도록 헌법제1조를 분명하게 확립해야 한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라는 국가주의시대의 개념을 현대어로 번역하면 ‘민주시민’이다. 언론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평화시위의 자유, 서울광장 시민사용의 권리, 정권비판의 권리와 자유를 모두 허락받고 하라는 정권은 민주주의 정권이 아니다.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전가보도 처럼 꺼내드는 MB정권은 대통령 취임선서 때, 헌법위에 손얹고 선서한 엄숙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한, 대통령 권한을 존경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고  그 위임해준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둘째, MB 현정권의 반생명적 정책기조를 민주시민들은 단호하게 비판하고 23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예산을 집중 부어넣어  전국토를 토목공사현장으로 만드는 반생명적 4대강 공사를 중단시키고, 정정당당한 공개적 타당성 검증과 민의를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MB정권에게 국민이 위임한 국정위임기간은  5년이지만, 한번 파헤쳐지고 훼손된 강토의 생태적․지질학적 복원은 500년 이상이 걸린다. 한국지성사회 전문가 교수들과 세계의 최고 전문학자들이 MB정권의  ‘4대강 대토목공사’를 중지하거나 최소한도로 축소하도록 권고하는데,  타당성이 회의적인 경제논리로 밀어부치는 이 행정독재를 용납하면, 훗날 후회해도 너무나 돌이킬수 없는 비극이 올 수 있다. 제3의 눈이 바라보는 인류미래의 문명은, 오늘의 경제제일주의 가치를 극복하는 ‘생태학적 영성’을 지향하고 있다.
셋째, MB정권의 반민중적 정책기조를 단호하게 바꾸도록 촉구하고 필요한 시민단체의 연대투쟁을 강화해야한다. 우리사회가 빈부양극화로 인하여 인간성이 피패해가고,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동물왕국 먹이사슬구조를 인간사회발전의 원리로 용인하는 19세기 ‘사회진화론적 정치철학’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인간다운 얼굴을 갖춘 사회건설’을 촉구해야 한다. 용산참사 희생자를 ‘엄정한 법집행’이라는 논리로 못본체하는 현정권의 경제정책기조는 가난한자들, 민중을 외면한 부자중심의 정책이다. 한참 꽃피어야 할 초중고 우리자녀들이 입시와 과외공부로 인해 청소년시기를 강제몰수 당하여 심신은 피폐해가고, 학부형은 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반민중적 정책기조는 언론법개정발상이나 부동산 세법개정취지에서 잘 드러난다. 민중은  구걸이나 하찮은 금액의 경제보조대상으로 취급당하기를 거부한다. 땜질식 ․ 생색내기식 사회복지정책을  거절한다. 민중은 거지가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것이다. 시혜대상이 아니라, 주인으로 모셔야 할 대상인 것이다.
넷째,  MB 정권의 반평화적 정책기조가 진정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한 공생공영의 시대로 나갈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김대중 문민정부시기와 노무현 참여 정부시기에  채결된 남한과 북한의 두국가 사이의 협정을 존중하지 않고 부정하는 정권은, 주권국가로서의 역사적 지속성과 점진적 역사전진의 원리를 통체로 부정하는 이질적 권력집단이 되고 만다.  국내에서 보수반공주의 이념으로 시야가 고정된 보수집단의 눈으로 보면 MB정권의 대북정책이 안보를 튼튼하게 했다고 평가할지 모르나, 국민전체의 눈으로 보면 불안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나라 밖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참으로 딱한 후진국 국민으로 볼 것이다. 민주시민들은 이 수모를 그대로 방치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역사벽혁주체로서 민주시민의 제3의 눈의 점안(點眼)은, 모든 잘못을 네탓으로 돌리고, 너를 정죄하고 점령하여 승자로서 자리바꿈을 하자는 정치야욕을 갖지는 않는다. 그런 야욕은 야당으로서 정치집단이 가질 수는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집단지성의 힘과 집단적 힘의 결속을 통해 역사를 보다 아름다운 인간공동체가 되도록 변혁해가야 한다는  책임을 가진다. 동시에, 씨알의 영성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사회의 모든 슬픈 현실의 책임이 궁극적으로는 ‘생각하는 백성’으로서 ‘참여적 지성’이 되지못했던 인과응보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기회개와 성찰을 항상 게을리하지 않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009.6월 23일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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