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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사관에서  ‘뜻으로 봄’의 해석학적 조명(<함석헌연구>창간호, 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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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사관에서 ‘뜻으로 봄’의 해석학적 조명

김경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함석헌 씨알사상연구원장,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Ⅰ. 들어가는 말

이 글은 함석헌의 ‘고난사관’에서 항상 ‘불편한 진실’이 되어온 핵심문제 곧 ‘역사’라는 말을 그가 쓸 때, 그가 제안한 역사적 사건의 양면성인 사실성과 의미지향성의 융합으로서 ‘뜻으로 봄’이라는 말을 해석학적 측면에서 음미하려는 것이다. 더 간략하게 말하면, 그의 주저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가 단행본으로서 초판(1950)이 간행된 후, 책이름이 제4판(1965)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꾸어졌는데, ‘성서적 입장에서 본’이라는 형용사구를 ‘뜻으로 본’이라는 표현으로 바꾼 의도를 해석학 이해이론의 조명을 받아서 되새김질 해보자는 것이다.
함석헌 연구분야에서 역사가로서의 전문성을 가지고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치밀하게 분석ㆍ조명해오는 이치석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어떻게 쓰여졌을까?」라는 논문 결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방향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주제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그 바탕 위에서 「조선역사」의 인식체계와 역사서술에 접근하지 못할 경우, 사상가 함석헌은 우리 곁에서 더욱 왜곡되고 더욱 멀어지게 될는지 모른다”  이치석,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약사’는 어떻게 쓰여졌을가?」, 『씨알 ․ 생명 ․ 평화』436-437쪽,(한길사, 2007). 이치석의 이 논문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고 오늘날 널리 알려진 함석헌의 대표적 명저가 어떻게 김교신이 이끌었던 ‘본지독자동계성서강습회’(1933.12.31-1934.1.3)에서 발표되고 곧이어 ≪성서조선≫에 연재(1934.2-1935.12)되고, 해방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는가를 자세한 역사적 추적을 통해 알려주면서, 이 명저의 역사적 의미를 논술한 귀중한 논문이다.  

이치석의 우려 섞인 경고는 현실인식과 역사서술에서 성숙한 현대인들은 특정 종교의 도그마적 목적사관 혹은 특정 이념을 전제한 역사의 필연적 ‘정향진화’를 받아드리지 않지만,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역사이해와 역사서술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함석헌 연구에서 ‘불편한 진실’ 요소인 그의 신앙적 신념변수를 의도적으로 배제해 버리려고 한다면, 함석헌 사상의 심층적 이해 과정에서 몰이해 내지 곡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것이다.
함석헌 자신이 개정판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머리말에서 “전체에 수정을 하여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 버리고 책 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고 고쳤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5), 머리말, 18쪽.
고 말했다. 그가 정통기독교적인 신의 섭리사관, 종말론적 역사관, 역사종말의 심판관 속에 전제된 선악 이원론적 종교관을 버렸다는 것은 물론이요, 그의 젊은 시절 신앙의 지반이요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적 기독교 이해’도 떠났음을 의미한다.
그의 사관의 지평이 넓어진 것만이 아니라 깊어지고 높아진 것이라고 본다면, 제도적 종교를 넘어섰지만 ‘영과 진리의 종교’에 다가선 것이요, 정통적 기독교 울타리를 떠났지만 성서적 신앙의 심장에 다가간 것이다. 흔히 일반 지식인들은 함석헌사상의 종교성을 탈색시켜야 함석헌이 ‘보편적 사상가’로서 더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게 될 것이고, 학문계에서 연구대상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석가모니가 브라만니즘을 초극하되 그 정신적 유전자의 계승자요, 예수가 유대교와 모세종교를 초극하되 그 전통의 품 안에서 잘라내면 이해되지 않는 이치는 함석헌 연구에서도 타당하다.
함석헌의 사상이 잉태되고 기본형질이 조성되던 사상적 모태로서의 그리스도교 전통유산의 관점과 그가 지성인으로서 스스로 독립하여 창조적 사색이 영글어 맺힌 씨알사상가로서의 관점이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서로 교차하고 지양(止揚)되는 자리가 ‘뜻으로 봄’이라는 해석학적 이해의 자리이다.
제2장에서 도대체 어떻게 관점이 바꾸어졌는지, 왜 바꾸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제3장에서 “뜻으로 본다”는 은유적 표현이 지닌 역사관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제4장에서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관’은 헤겔류의 관념주의적 보편사 이해와 어떻게 다르며 동시에 역사의미의 지속성을 거부하고 오로지 ‘실존적 역사성’만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자들의 입장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 함석헌의 역사를 ‘뜻으로 본 다’는 명제와 진화론적 실재관 과의 관계성을 살펴볼 것이다.


Ⅱ. ‘성서적 입장에서 본’에서 ‘뜻으로 본’에로의 전환의 동기와 목적

함석헌이 남하(1947) 한 후, 6ㆍ25 한국전쟁의 발발 직전의 해방정국 혼란 속에서, 본래 ≪성서조선≫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단행본으로 간행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50.3월) 초판본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聖書的 立場에서 본」이라는 말이, 일반독자에게 걸림이 될 듯하니 빼면 어떨가 하는 意見이 잠간 나왔으나 그것은 사슴에게서 뿔을 除하는 일과 같아서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이 글의 이 글된 所以는 聖書的 立場인데 있다. 著者의 생각으로는 聖書 立場에서도 歷史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聖書 立場에서만 歷史는 쓸 수 있다. 嚴正한 意味의 歷史哲學은 聖書以外에는 없기 때문이다. 희랍에도 없고 동양에도 없다. 역사는 시간을 人格的으로 보는 이 聖書의 입장에서만 成立이 된다.  함석헌,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3쪽, (서울:성광문화사, 단기4283(1950).4월1일 발행). 이 간행본은 엄밀히 말하면 ≪성서조선≫에 실려 연재되었던 것을 초판이라고 볼 때, 이 간행본( 성광문화사,1950. 4월)은 둘째판인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이 후 역사와 종교를 보는 눈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변한 함석헌의 사관은, 이 책의 셋째판(1961)에서부터 활자로 나타났고, 그 때 책 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 (1961)』로 고쳤다. 몇년 후에 간행된 넷째판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 1965년 9월10일)의 서문 “넷째판에 부치는 말” 이라는 저자의 머리글에서 자세한 심경의 변화를 적어놓았다. 이 논문은 사실 함석헌의 “넷째 판에 부치는 말”을 좀 더 찬찬히 음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위에서 인용한 글 속에서 우리는 함석헌이 1950년 6.25 한국동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역사이해에서 그의 사관이 얼마나 전통적 기독교적 입장에 서 있었던가를 가를 알 수 있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함석헌의 사관의 변화는 1940년대 초반부터 그 자신의 영혼 안에서 조금씩 진행되어왔다. 병으로 두 자녀를 잃는 아픔의 경험(1940)과 계우회사건으로 평양대동경찰서에 투옥당함과 옥중에서 부친상 당함(1940)의 사건, 그 자신이 고백대로 ≪성서조선≫지(誌) 사건으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1년간 옥살이(1942-3.1943.3)는 ‘인생대학’이었다.  함석헌, “넷째 판에 부치는 글”, 18쪽.
해방정국에서 북한에 진주한 소련 공산당에 의해 ‘신의주학생사건’ 주범으로 지목되어 50일간 투옥(1945), 북한 보안대에 의한 투옥(1946), 남하(1947) 후 유영모 선생 지도하의 「노자」공부 등 동양사상등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 변화는 6ㆍ25 한국전쟁의 체험이다. 이 전쟁체험은 함석헌으로 하여금 생명, 역사, 문명, 민족, 인간, 종교, 기독교, 하나님 등 근본주제에 관하여 기존의 견해에 비할 때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환골탈퇴라고 말 할만큼 다메색 도상에서 하늘의 빛을 받아 어둠에 떨어져 보지 못하던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 듯한 개안(開眼)의 경험(사도행전 9장 18절)과 같은 것이었다. 사도바울의 개안이 급작스런  신비체험에 의해 촉발된 종교적 회심사건 이었다면, 함석헌에 있어서는 사실인즉 약 10년 동안(1940-1950)의 치열한 내적 자기 안에서의 진리투쟁결과로 총체적 ‘사유의 패러다임전환’ 있었다. 함석헌의 역사이해에서 전환의 이전과 이후엔 다음과 같은 엄청난 차이가 생겼다. 앞서 인용한 문단과 비교하면 그 변화의 질적 내용에 독자는 놀라게 된다.

감옥 일년에 생각을 파는 동안에 사상의 태두리는 조금 넓어지고 깊어지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이는 것이 있게 되었다.… 1961년에 그 셋째판을 내려할 때에 나는 크게 수정을 가하기로 하였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형식은 그 민족을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되는 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1983), 넷째판에 부치는 말, 18쪽.


위의 인용문을 자세히 음미하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쓰던 때와 다음 같은 차이가 있다. 첫째, 역사철학은 성경에 뿌리를 둔 종말론적 시간이해나 목적지향적 발전사관을 떠나서도 가능한 것이다. 둘째, 계시적 종교임을 주장하는 아브라함의 종교만이 참 종교가 아니라 모든 참 종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이며, 진리를 드러내는 양태(樣態)는 민족시대사적 결과로서 다양성을 지닌다. 셋째,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침으로서 모든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버리고 보편적 세계주의와 과학적 이성의 빛에 납득되는 역사철학을 말하려고 한다.


Ⅲ. 역사를 ‘뜻으로 본다’ 표현의 구체적 의미

그러나 엄밀한 언어의 의미규정을 요구하는 학계에서는 물론이요, 일반 지식인들도 ‘뜻으로 본다’는 이 어휘가 지니는 말을 금방 알아치리기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은유적 표현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군더더기 붙이지 않는 ‘역사사실 그 자체’를 현상학적으로 드러내는 직설적 말하기 같다. ‘뜻으로’라는 단어와 ‘본다’라는 단어가 드러내려는 의미를 바르게 잘 붙잡고 그 양자를 통전해야 한다.
‘뜻’이라는 순수 우리말의 사전적 해설을 보면 중요한 3가지가 중층적으로 상호 얽혀있는 말이다. 첫째, 무엇을 이루려고 속으로 다져먹은 마음이나 마음먹는 행위를 말한다. 한자단어로서 ‘의지’(意志)라고 표현한다. 둘째, 말이나 글의 속내를 말한다. 한자 단어로서 ‘의미’(意味)가 그것이다. 셋째, 어떤 말이나 행동이 지닌 가치나 중요성을 말한다. 한자단어로서는 ‘의의’(意義)가 그것이다. 이처럼 ‘뜻’이라는 우리말은 의지(意志), 의미(意味), 의의(意義) 라는 각각 뉴앙스가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는 중층적이고 복합적 말이다.
‘본다’는 단어는 물론 눈이 지닌 시각적 기능을 은유적으로 차용하여 사물의 내용과 구조를 파악하고, 평가하며, 시각대상의 내용이나 상태 등을 알려고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본다’는 시각적 행위는 다른 오감의 감각행동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직감적 파악능력을 말한다. 시각적 파악은 순간적으로 ‘원근법적’ 거리감과, 사물의 대칭과 비대칭의 질서파악과 무엇보다도 ‘시계범위’(視界範圍)를 지니는 조망능력을 동시에 갖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인지능력을 역사를 이해하는데 적용하면서 ‘뜻으로 본다’는 말로 은유적 표현을 할 때, 결국 역사를 통시적(通時的)이고도 동시적(同時的) 관점을 통전(統全)시키면서 ‘뜻으로 이해한다’는 해석학적 이해의 태도를 말한다.
함석헌의 말을 빌리면 동양적 한문세계에서 역사를 기술하거나 평가하는 학자 곧 역사가에게 엄밀하게 요구되는 3가지 능력으로서 넓고 높은 학문(學問), 뛰어난 재능(才能), 사리분별의 식견(識見)을 요청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識)이라고 말한다. 역사이해에서 그 식(識)은 방대한 량의 지식이거나, 깔끔한 정보처리능력의 재능이 아니라, “식은 뚫어봄, 내다봄, 맞춰봄, 펴봄이다”  위와 같은 책. 37쪽.
이라고 순수한 우리말 다섯 단어로서 서양학문의 해석학 이론이 말하려는 ‘이해의 본질’을 또렷하게 갈파했다. 동시에 그의 주저의 책 제목으로 말하는 ‘뜻으로 본’이라는 어휘에서 ‘본다’는 이해작업이 무엇을 동반하는 정신적 사건인가를 말한 셈이다.
그러면 이제 역사를 ‘뜻으로 본다’는 은유적 표현은 다음과 같은 역사에 대한 그의 해석학적 입장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역사정의(歷史定義)와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의 사관(史觀)을 이미 말하고 있는 셈이다.

(i) 실증주의적 사관을 거부한다. 역사는 사실(事實)의 기록이라 하지만, 이미 골라진 사실이요, 그 사실이 지닌 의미(뜻)를 역사가는 이미 사실수집과 사료가치 판독과정에 이미 개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ii) 역사의 해석과 풀이는 결국 그 역사적 사건의 의미파악이요, 그 사건이 현재에 갖는 의미연관의 파악이다. 잡다한 역사적 사건나열이 아니라 한 줄에 꿰는 관점은 바름(公正), 의로움(義), 생명(生命) 살림, 참 진실(眞實), 위민(爲民), 하나(一) 지향성 등이다.
(iii) 역사를 “꿰뚫어보고, 내어다보고, 맞취보고, 펴보는” 역사해석의 눈 그 자체가 개인의 주관이거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것이라는 극단적 역사상대주의를 거부한다.
(iv) 현대인들이 도달한 역사상대주의는 역사를 중성화시키고 마침내 역사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에 도달하거나 ‘오늘 여기’ 순간에 충실할 뿐이라는 실존주의적 ‘역사성’만 인정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잡다(雜多) 가운데 어떤 질서와 하나(一)지향성을 읽고,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뜻’을 찾는다.
(v) 함석헌의 사관에서 뜻․생명․역사․하나․하나님은 서로 맞물려있는 불가분리적 실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의 역사철학은 부끄러움 없고 가리움 없이 ‘종교적’이다.
(vi) 역사란 생명이 개체적 존재 이면서 동시에 전체적(사회적)존재이기 때문에 자기를 의식하는 전체의식이다. 생명의 본질이 ‘스스로 함’이기 때문에, 역사결정론이란 자가당착이다. 역사의 본질은 자유와 그 자유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감당하면서 ‘반복하면서 자람’의 나선형의 층계오름에 비유된다.  위와 같은 책, 57쪽.

(vii) 함석헌은 생명의 본질이 ‘스스로 함’이기 때문에 우주와 만물은 자기조직화운동을 하지만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은 아니며, ‘우연과 필연’(쟈크 모노)의 법칙에 의해 출현한 것이 아니고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물질주의적 환원주의 실재관을 거부한다.
(viii) 함석헌은 “고(苦)는 생명의 근본원리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낙관주의적 진보사관을 역사비관주의 못지않게 진실이 아니라고 거절한다. 특히 현실 역사 속에서 역사의 모순을 짊어지고 속량하는 주체가 민중(씨알)이기에, 싫던 좋던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며, 역사에 대한 무한책임을 질 수밖에 없게 된다. 민중의 궁극적 구원 없이 역사구원은 없다.


Ⅳ. ‘뜻으로 봄’의 사관과 ‘역사적 실재’와의 관계

흔히 보통 사람들은 ‘역사’라는 단어를 들을 때 세 가지 점을 무의식적으로 상정하기 쉽다. 첫째, 역사는 주로 ‘과거사건’에 관련된 것이고 특정한 과거사건으로서 역사를 다루는 것은 역사전문가의 일거리라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역사’라는 단어를 들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인상은 규장각의 사료들과 과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발생연대 등이다. 둘째, ‘역사’는 무엇인가 인간의 경험과 삶의 흔적이 찍혀있는 실재이므로 ‘자연’과는 구별되는 것이라고 상정한다. ‘역사’는 주관적 체험과 가치가 개입된 것이고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객관적 실재이고 가치중립적이며 항존적 질서와 법칙정립이 가능한 실재이다. 셋째, 역사는 반복불가능한 ‘유일회적 사건’이라는 독자성을 지닌 것이지만, 자연은 반복적인 것이어서 유일회적 성격이 전혀 없는 동질적이고 균질적 인 물리화학적 변화세계 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보통사람들이 ‘역사’라는 단어를 접할 때 발생하는 마음의 상들은 과연 ‘역사적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역사에대한 일반인들의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는 ‘죽은 과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역사는 언제나 역사를 문제삼는 사람들의 정신을 통하여 ‘현재적인 것’이 된다. ‘역사’는 ‘역사의식’을 통하여 언제나 현재적으로 부활하며, 그 의미의 힘으로서 현실생명을 먹이고 키우는 양분이 된다. 함석헌의 유명한 종교시 「맘」이라는 시의 첫 구절은 이 사실을 나타낸다.

맘은 꽃/ 골짜기 피는 난(蘭)/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맑은 향을 토해

골짜기 어느 바위틈에 피어있는 난초 하나를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맘을 지닌 인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난초가 뿌리내려 자신을 지탱하고 양분을 흡수하는 흙은 단순한 규소나 석영알맹이의 집합체가 아니라 ‘썩어진 흙’ 퇴비가 섞인 흙인데 그것은 곧 역사라는 정신문화적 토양이다. 새로운 문화와 역사창조는 ‘무(無)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뭇 사람은 그가 단순한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 되는 필수조건이 다름아니라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곧 인간이란 ‘역사적 실재’라는 자각이다.
‘역사’는 유일회적이고 ‘자연’은 반복적이며, ‘역사’는 가치지향적인 주관적 실재이고 ‘자연’은 가치중립적인 객관적 실재라는 일반통념도 조금만 깊이생각해보면 진실이 아니다. 모든 사건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다. 금년의 봄은 자연의 반복 같지만, 전혀 새로운 봄이다. 자연과학은 객관적 실재계를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해석되고 보여지고 질서지워지는 자연일 수밖에 없다. 앞서 인용한 「맘」이라는 시 종반부를 다시 감상해보자.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형상의 어머니/

어찌 씨알로서 비유되는 인간의 맘뿐이랴. 어찌 사람의 시간의식의 범위 안에서 포촉되는 식물의 성장만이랴? 대자연도 무한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 변화하고 자라며 또 온갖 새로운 형상을 탄생시키는 어머니가 아니던가? 현대인들은 ‘역사’와 ‘자연’을 날카롭게 구별시키는 19세기 역사주의 시대를 이미 통과했다. 특히 함석헌의 역사이해에서 이점은 중요하다. 그의 역사이해는 자연과 분리된 순수관념의 세계가 아니다. 이점에서 함석헌의 역사이해는 ‘뜻으로 봄’이라는 정신적 실재관을 강렬하게 풍기면서도 헤겔(1770󰠏1831)의 역사철학과 구별되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헤겔에게 있어서 “역사적 실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으로서 요약된다.  서남동, “역사적 실재 어떤 것이냐?”, 『전환시대의 신학』, 163쪽,(한국신학연구소, 1976)
첫째, 역사는 자연과 구별되는 것이다. 자연의 과정은 주기적이지만, 역사의 과정은 발전적인 것이다. 둘째, 역사는 그 본질에서 정신의 역사이며, 따라서 역사는 외적으로 관찰될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실재이다. 셋째, 역사과정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행동과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역사과정은 합리적으로 전개된다. 역사과정은 합리적인 것이다. 역사 내 사건의 모순이나 부정적인 것 고통이나 추함도 ‘이성의 간교’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넷째, 역사는 정신의 역사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과정이기 때문에 논리적 과정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의 과정이다.
함석헌의 사관이 ‘뜻으로 보는 역사’라고 말 할 때, 우리는 헤겔의 역사철학의 본질 곧 역사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자기전개라고 하는 헤겔의 보편사이해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피면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관’은 헤겔의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으로서의 보편사이해와 다르다.
함석헌은 헤겔의 영향보다는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의 ‘창조적 진화’ 사상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다. 앞서 말한대로 함석헌은 역사를 자연과 대립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함석헌의 사상은 헤겔의 합리주의에 비하면 도리혀 비합리주의 사상전통에 서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역사는 결정된 리성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역사를 지어가고 이해하면서 짊어지고 나가는 역사주체자들의 자유의 광장이요, 책임의 영역이다.
헤겔이나 마르크스(1818-1883)의 변증법적 역사이해에서 역사를 어떤 ‘법칙성’으로 설명된다면 그것은 이미 역사가 아니고 필연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헤겔처럼 역사 안에서 체험되고 발견되는 ‘부정적인 것들’ 곧 역사적 모순이나 고난이나 죄성은 ‘리성의 간계’라는 멋있는 은유로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고난’은 삶의 가시이기에 끊임없이 극복해가야 할 ‘진주조개’의 아픔이다. 역사적 존재인 인간은 역사적 고난경험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자기존재를 정화시키면서 자유에 이르려고 성숙해가지만, 영원한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 고난의 역사 후에는 유토피아가 온다는 위로는 위로일 뿐 진실이 아니라고 본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서양 지성인들의 역사이해는 세속화되어갔다. 세속화되어갔다는 말은 초월적인 신적 섭리신앙은 역사 자체 안에 갖추어진 진보개념으로 바뀌어갔고, 역사의 종말은 파국적 심판으로 마감된다는 신화론적 종말론은 역사가 점진적으로 성숙단계를 거쳐 반이성적인 것의 극복단계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믿었고, 헤겔과 마르크스는 서로 반대되는 역사의 변증법을 말하고 있음에도 결국은 역사의 진보발전을 믿었고, 역사전과정을 꿰뚫는 의미와 목적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는 전반기 분위기와 서구지성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눈이 달라져갔다. 이른바 ‘역사주의’라는 이념의 시대가 펼쳐졌다. ‘역사주의’라는 것은 ‘역사 상대주의’의 줄임말이라고 이해해야 바르게 파악된다. 역사주의라는 말을 방법론적 측면에서 볼땐 역사전체의 맥락과 전체과정 속에 놓고서 개별역사적 사건을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헤겔과 마르크스 또한 역사주의자들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역사주의는 역사과정 속에서 발생한 모든 제도․이념․관념적 사상체계들이 개별적인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며 그렇기에 상대적인 것이라는 철저한 자각이다.
부르크하르트 (J. Burckhardt,1818-1897), 크로체(B. Croce, 1866-1952), 딜타이(W. Dilthey,1833-1911), 그리고 트로엘취(E. Troeltsch, 1865-1923)는 그 대표적 사상가이며 그들은 역사의 개별성 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19세기 후반의 역사주의(역사상대주의)가 철저하게 내면화 할 때, 역사라는 보편사개념을 포기하고 역사성만을 강조하는 실존론적 역사철학이 나타난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불트만의 실존론적 역사성 강조가 그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역사주의’는 역사에 수미일관화는 보편적 역사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 역사의 진보발전개념도 포기한다. 역사전체를 꿰뚫는 통일원리나 목적을 부정하고 역사를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반복’하는 식물적 성장소멸과정으로 이해한다. 역사를 철저히 자연적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사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역사초월적인 인식론상의 ‘아르키메데스 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시대는 자연과학의 학문태도를 역사이해에 적용하여 역사학의 목적은 ‘사실’의 서술일 뿐 ‘역사전체의 의미’를 묻지 않는 태도가 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기에 걸친 ‘역사주의’ 역사사가들은 인간의 역사의식의 자유와 책임, 창조적 노력, 비체계적 형태의 정신활동, 전체주의적 우상에 대한 비판과 저항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소 이야기가 산만하게 되었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굳이 19세기 서구정신계의 역사주의를 언급하는 근본적 이유는,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에서의 그의 역사의식이 역사전체과정을 꿰뚫어보고, 내다보고, 맞취보고, 펴보는 태도라고 했을 때, 그런 역사의식은 19세기 후반기 서구의 사상계에서 극복하거나 포기하려고 했던 사관의 뒤늦은 뒤따라감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함석헌의 역사이해는 그가 동경사법대학 역사전공과정에서 학습하였을 터인데, 그는 앞에서 말한 ‘역사주의’ 입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같은 그의 진술은 그것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사실의 자세한 기록은 전문가의 일이다. 그들이 역사는 사실(事實)의 역사, 기술(記述)의 역사, 연구의 역사다.  그러나 씨알은 그것보다도 해석의 역사, 뜻의 역사를 요구한다. 세계의  밑을 흐르고 있는 정신을 붙잡게 해 주는 어떤 분명한 주장을 가지는, 말씀을 가지는 역사를 요구한다…… 몇 만 년에 뻗는 복잡한 인류의 일을 통하여 한 개의 의미관련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실로 영원한 뜻, 곧 의지(意志)․의미(意味)를 붙잡아 내는 것이 그의 일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37쪽.


우리는 이상에서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릴 수 있다. 함석헌의 ‘뜻으로 봄’이라는 사관(史觀)은 정통기독교의 타율적 신의 섭리론이거나 기계적 시대경륜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전체과정을 아무 의미없는 개별적 사건의 ‘우연과 필연’의 결과물 이라거나 물질의 법칙적 운동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역사관이 종교사관의 특징을 지닌 때문에, 흔히 오해하듯이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전제하는 반과학주의 역사독단론도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함석헌의 역사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 그의 ‘뜻으로 본 역사이해’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실재관을 진화론과 연관시켜 이해 할 필요가 생기고, 그의 종교적 사관의 핵심을 이루는 그의 ‘역사과정과 창조적 하나님의 상호관계’를 말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 곧  그의 정신의 지성소 안으로 침범해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Ⅴ. ‘뜻으로 봄’의 사관과 진화론적 실재관

함석헌의 글 「넷째 판에 붙여」라는 제목이 붙은 머리말에서, 저자는 책명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치기로 작정한 이유를 세 가지 들고 있다. 그 첫째는 자신의 “믿음이 달라진 것이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책, 17쪽.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의 기독교이해가 달라진 것이고, 주체적으로 기독교신앙을 재해석하여 종파적이고 교파적인 껍질을 벗고, 신앙의 핵심본질에로 육박해들어 갔다. 그 결과 정통기독교의 교리적 권위에 제약당하지 않기로 하여 ‘대속적 구원론’이라는 기독교교리 중 본질적인 요소의 정통교리적 틀을 깨뜨리고 벗어버렸다.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피흘림으로 인간의 죄가 대신 씻음 받았다는 ‘객관적 칭의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결과로 나온 글이 ‘대 선언’과 ‘흰손’ 이었다. 책 제목의 변경이유는 다른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고 함석헌은 술회한다. ‘세계주의’와 ‘과학주의’라는 것이었다고 술회한다.

여기 곁드려서 내 태도를 결정하게 한 것이 세계주의(世界主義)와 과학주의(科學主義)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국가주의(國家主義)를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요, 독단적인 태도를 내버리고 어디까지 이성(理性)을 존중하는 자리에 서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듯한 때는 과학편을 들어 그것을 살려주고 신앙은 그 과학 위에 서서도 성립이 될 수 있는 보다 높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책. 18쪽.
 

위에서 그가 말하는 ‘과학주의’라는 좀 거칠은 표현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과학이 무슨 ‘주의’로서 이념적 역할을 하려든다면 함석헌은 그런 ‘과학종교’에 대하여 싸울 것이다. 종교를 과학의 토대위에 세우려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해하면 ‘실재탐구’에서 정직한 과학과 정직하고 진솔한 종교는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실재’를 탐구하되 ‘실재’를 구성하는 여러 차원 중에서 각각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물론 ‘실재의 서로 다른 차원들’은 양파껍질처럼 각각 따로 따로 떼어 낼 수 없는 유기적 관계와 전일성을 갖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 검사가 가능한 세포수준의 몸의 메카니즘,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의 무의식의 심층차원, 그리고 심층심리학의 심리분석으로는 해명이 않되는 마음의 ‘초월적 신비경험’을 각각 존중하되 ‘실재의 다차원적 통일성’을 함석헌은 믿는 사람이었다. 함석헌의 실재관은 이해하는데 켄 윌버의 ‘존재의 대 홀라키(Horachy)’론이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존재의 대 홀라키(horachy)’란 존재(실재)의 각 차원이 갖고 있는  수직적 ‘위계구조’(hierachy)를 비판하면서 재구성한 켄 윌버의 싱재관이다. 실재 각차원들은 입체적이고 총체적이라고 볼 때, 감각적 체험세계를 다루는 경험과학, 심리정신적 차원을 리성적 합리주의, 그리고 영적 초월체험을 다루는 신비주의는 각각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존재의 대 사슬구조’(the great chain of Being)를 형성한다는 관점이다. 이정배『켄 윌버의 신학』(시와 진실, 2008); 켄 윌버(조효남 옮김), 『모든 것의 역사 』(대원출판, 2004); 켄 윌버(조효남 옮김), 『감각과 영혼의 만남』(범양사, 1998)들을 참조.

근현대 한국사회가 서양의 문물과 과학사상에 접한 이후로,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인문학자들이 출현했다. 그중에서도 종교와 관련된 사상계를 회상할 때, 함석헌만큼 치열한 과학정신을 가지고 그가 전공한 역사, 도덕, 인격, 종교 등을 논의한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인간의 인격적 도덕의식이나, 종교적 영성을 현대사상계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진화론과 관계성 속에서 해명하고 자기 사상을 펼쳐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다.
다행이 우리는 함석헌의 또 다른 역사연구책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머릿말에서 우리는 ‘뜻으로 본다’는 그의 사관과 ‘진화론’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상당히 깊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갖는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의 자매편이다. 잡지 ≪聖書朝鮮≫과 ≪靈斷≫에 실렸던 글들이 크게 두 묶음으로 모아져서 『歷史와 民族』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었다.(제일출판사, 1964). 한길사에서 간행한 <함석헌 전집> 제9권 『역사와 민족』이라는 단행본으로 편집 간행되었다.(한길사. 1983)
함석헌은 역사이해를 하려는 때, 역사이해 준비단계로서 진화론의 관점을 다루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만들어가고 역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우주적 산물이고, 구체적으로 지구라는 행성 속에 출현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간존재의 태반이요 출현과정인 우주진화, 지구진화, 그리고 생명진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서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이해 못할 뿐 만 아니라, 역사의 총체적 의미도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전일체로서의 뜻”을 파악하기위해서는 진화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진화론과 ‘성서적 사관’의 관계를 해명하면서 함석헌은 몇 가지 점을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는 진화의 뜻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진화사실과 진화 학설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성경 창세기 창조설화에 대한 바른 해석학적 관점에 관하여서이다. 넷째, 진화현상에서 법칙과 뜻의 혼동을 범하는 범주오류를 경계하는 것이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역사와 민족』,16-23쪽 참고.

첫째, 함석헌은 ‘진화’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 그것은 생물계의 변천과정, 변화현상, 변화원인을 설명하려는 현상설명이론이지, 그 생명진화 현상의 존재론적 가치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진화론은 단순생명체가 복잡생명체로 종의 다양화가 이뤄지는 원인과 과정의 과학적 기제(메카니즘)을 밝히는 과학적 노력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책, 16-17쪽.

둘째, 진화사실과 진화학설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사실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진화현상이 왜 일어나며 어떻게 일어나느냐를 해명하는 과학적 설명은 다종다양하며, 앞으로도 더 정밀하고 총체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 이론이 계속 발전해 갈 것이라고 본다. 함석헌이 이 책 내용을 처음 발표하던 ‘제3회 동계 성서강습회’(1934.12-1935.1) 시기에는 아직 20세기 후반을 석권하는 유전자암호해독의 분자생물학적 지식에 접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다양한 진화론 학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석헌이 이 책을 쓸 때(1930년대)와는 놀랍도록 발전한 생명에 관한 지식발전, 예들면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에 의해 DNA구조가 발견된(1953) 이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분자생물학자들의 진화이론이 있지만, 진화사실과 진화이론을 곧바로 동일시하는 것을 반대하는 함석헌 인장엔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서, 1960년대 이후 분자생물학 이론에 근거한 유물론적인 환원주의에 입각한 ‘과학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개별 생물학자들의 개인 신념을 생물학적 전문지식과 혼융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예들면, 한국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크 모노(김진욱옮김)의 『우연과 필연』, 리쳐드 도킨스(홍영남 옮김)의 『이기적 유전자』, 에드어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등이 공통으로 갖는 철학적 신념에 대하여 함석헌은 그들의 전문적 지식공헌에 대하여 존중하면서도 기본적인 ‘물질주의적 환원주의’는 순수 과학이론이 아니고 철학적 신념 혹은 그들의 실재관이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이나 분자생물학 지식에 정통하더라도 도덕관념의기원, 종교의 발생, 인간의 인격성과 영성의 이해에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S. 콜린스(이창신 옮김), 『신의 언어』(김영사, 2006)참조.
그 말은 또한, ‘과학적 생물학’과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생물학주의’를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을 함석헌은 견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셋째, 정통 기독교 종교인들이 성경의 영감설과 창조주신앙을 가지고, 종교적 진리를 말하려는 잘못된 태도를 비판한다. 성경경전을 가지고 생명과 우주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적 교과서로 착각하는 시대착오를 함석헌은 통박한다. 성경은 영감으로 가득찬 책이지만, 과학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아니므로, 종교적 진리를 말해주는 상징, 은유, 이야기식 진리담론으로 이해할 때, 진화론과 충돌할 하등 이유가 없고, 더욱 성경이 전하려는 영성적 진리에 대하여 확신과 경탄과 경외감을 가지게 되며, 진화론의 과학적 조명을 받아 성경의 종교적 담론에 담겨진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과학과 종교의 대화, 특히 현대진화론과 기독교신학의 반응에 대한 연구에 집중관심을 갖는 신재식은 최근의 연구논문에서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기초한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대응하는 기독교계의 반응엔 중요한 그룹별로 3가지 입장이 있다고 정리한다. 신재식, 「기독교와 진화론, 그 만남의 역사와 대응」, ≪종교문화연구≫, 제13호. 2009년 12월(한신인문학연구소, 2009), 1-39쪽) 참고.
첫째는 1960년대에 형성된 ‘창조과학회’라는 조직체를 가지고 활동하는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 둘째는 1990년대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적설계 창조론’(Intelligent Design Creationism)이며, 셋째는 ‘진화론적 유신론’(Evolutionary Theism)이 그것이다.
첫째 그룹, 과학적 창조론을 지지하는 그룹엔 많은 자연과학자들도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 입장은 영감으로 씌여지는 성경의 진리를 과학적 사실탐구 영역에도 적용하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 진화론 그 자체를 본질에서 부정하는 매우 보수적 신앙인들의 입장이다. ‘진화’는 동일한 생물종 안에서 일어날 뿐이고, 생물계 내 각종들은 저마다 다른 종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아무리 ‘창조과학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으며 함석헌은 이들의 근본주의적 신앙태도를 30년 전부터 이미 경고한 셈이다.
둘째 그룹, ‘지적 설계론’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진보적 과학사상과 보수적 기독교신앙을 동시에 살려보려는 지성인 그룹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는 두 가지 신념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다윈의 ‘자연선택’ 진화설 이후 장구한 발전을 거듭해온 현대 자연과학계의 진화론이 마치 당연하게 무신론적 환원주의 세계관으로 치달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점진적 진화 속에서 ‘대진화’가 자연스럽게 ‘우연과 필연’에 의해 이뤄져왔다는 확신은 아직 과학적인 검증이 끝난 것 아니라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분자생물학적 진화론은 세포내의 분자적 복잡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거시적 생명체의 형태발생의 복잡성을 ‘분자생물학적 환원주의’로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탄생한 배아생명체가 생명체의 각계를 이루고, 그것들이 유기체적 통일체로 작동하는 생명체로 발현하게 되는 이유를 DNA 염기서열의 복잡한 관계연동으로서 다 설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연과 법칙’, ‘자연선택’에 더하여 ‘지적 설계’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적설계’라고 은유적으로 표현된 ‘초월적 창조자’가 어떻게 ‘우연과 필연’그리고 ‘자연선택’ 과정에 관계하고 개입하는 것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제3의 입장으로서 ‘진화론적 유신론’은 ‘지적설계론’의 입장과 닮은 점이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이 입장은 비슷한 다른 이름의 입장을 총괄하는 표현인데, 예들면 ‘창조적 진화론’, ‘목적론적 진화론’, 혹은 ‘바이오 로고스’등으로 불리우는 입장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진화론적 유신론의 입장은 생명출현과 진화가 ‘유물론적 자연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우연과 필연’의 물리화학적 작용 결과만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창조과학회’처럼 생명종(種)이, 특히 인간종이 별도로 창조되었다는 ‘신화론적 생명관’을 거부한다. 또한 신적인 ‘지적설계’가 진화과정에 반드시 구현되도록 진화과정을 필연적으로 규정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생명의 본질은 ‘자유’이고 돌연변이를 통한 ‘우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생명출현과 진화의 길고 긴 과정이 우연의 지배가 아니라 ‘목적지향성’을 갖고 진화해오는데, 자유와 필연, 법칙성과 우연성, 물질성과 정신성의 상보적 관계성을 강조한다. 함석헌의 표현대로 하면 절대적 초월자(하나님)의 ‘뜻’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화의 미래는 열려져 있다. 신은 당신의 ‘지적설계도’를 강요하고 관철하려 않고 다만 ‘유인하고 설득’한다. 인간생명의 진화단계가 인격성과 책임성을 핵으로 하는 자유의 왕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적 환원주의자 쟈크 모노는 ‘생명과 진화’에 관한 베르그송과 떼이야르 샤르뎅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한다. 『우연과 필연』, 46-55쪽.
그러나, 함석헌에게 있어서는 <생명, 진화, 창조>에 관한 신념과 사상에서 베르그송, 떼이야를 샤르뎅, 그리고 화잇드헤드와 많이 닮았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 영원의 미완성곡이다. 하나님도 죽은 완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바퀴가 구르는 것이다. (…) 생명은 진화한다. 적게 보면 되풀이하는 듯하면서도 크게 보면 자란다. (…)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근본 생각은 영원히 앞으로 나가는 혹은 위로 올라가는 단 한 번의 운동 , 곧 뜻을 이루기 위한 자람이라는 것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이하여는 아무도 본 자가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영원의 바퀴를 이 인생의 일생으로 비유하여 보는 수밖에 없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57-58쪽.


함석헌의 역사관에서 ‘뜻으로 본다’는 말은 ‘의미’와 ‘의지’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뜻”이라는 말의 묘한 맛 그대로, 역사과정 속에서 기존완성품인 신적 설계도대로 ‘의미’를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창조적 참여를 하는 것이다. 결국 함석헌 사관이 종교사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영원의 역사바퀴’는 아무도 본 자가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과정의 보람과 의미는 생명의 충만한 실현, 자유와 정의의 실현, 평화와 아름다움의 실현, 특히 소외되거나 눌림 받는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씨알들과 민초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여부와 그 실현정도에 달렸다. 그 실질적 내용인 해방, 자유, 평등, 평화, 충만, 사귀임의 실현된 정도의 값만큼 문명과 사회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한 시대와 문명의 역사적 평가는 얼마나 방대한 제국의 땅을 평정했느냐, 얼마나 물질적 풍요를 이뤄냈느냐, 얼마나 과학적 진보를 이뤄냈느냐가 판단 기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Ⅵ. 나가는 말

함석헌의 사관에서 ‘뜻으로 본다’는 어구의 함의를 살펴보았다. 그의 사관은 역사상대주의를 거부하고 동시에 역사를 필연적 법칙의 과정이라고 보는 모든 형태의 결정론이나 숙명론에 반대한다. 동시에 역사의 의미를 묻지 않고 다만 실존적 ‘역사성’만을 묻자는 실존주의자들의 역사이해 태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함석헌은 현대 분자생물학계의 거성인 쟈크 모노나 에드워드 윌손의 확신 곧 생명출현에서 인간의 정신적 영성에 이르는 전 과정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물리화학적 법칙성에 의해 정합적으로 출현한 ‘우연이면서도 필연’적 결과라는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입각한 생물학주의 실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신론적이고 반종교적이며 일체의 기존가치를 밑바닥에서 해체하고 새롭게 ‘지식의 윤리’를 재구성하려는 과학적 휴메니즘의 지나친 낙관주의를 경계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보는 역사관’은 진화사실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되 진화를 “우주라는 직물에 짜여진 프로그램설계의 장대한 전개”라고 보는 ‘지적설계론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초월적 일자로서의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인간의 영혼 안에서 직감하고 공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직물의 문양을 설계해가면서 함께 짜아가려는 뜻을 품고, 큰 뜻을 실천하려는 인간들의 역사창조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뜻이란 우리말 어휘가  의미(意味)와 의지(意志)와 의의(意義)를 통전하는 미묘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 뜻의 큰 방향은 역사공동체 안에서 고난당하는 민중들의 한숨이 극복되는 사랑과 정의사회의 구현,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승화, 그리고, 우주신인론적 영성(cosmotheandric spirituality)이 보다 영글어가는 비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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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쟈크 모노(김진욱 옮김), 『우연과 필연』, (밤우사, 1996)
10. 장회익, 『삶과 온생명』, (솔,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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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이클 머피․루크오닐 엮음(이상헌․이한음 옮김),『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 (지호, 2003)
13. 한신인문학연구소, ≪종교문화연구≫, 13호, 2009년 12월(2009)
14. 씨알사상 연구회, 『씨알․생명․평화』, (한길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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