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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상을 통해 본 한국인의 공복사상(제99차 교토포럼, 오사카, 2010.9.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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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조선후기 동학사상과 운동을 통해 본 한국인의 공복사상

* 이 논문은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제99차 ‘교토포럼’의 발표논문이다.  저자의 허락없이 인용 및 복사를 할수 없음을 양지하기 바란다.


           
김경재(한신대명예교수,문화신학)              

[1] 서론

 이 논문은 한국인의 공복사상(共福思想)의 원형적 특성을  19세기 후반 조선왕조 쇠퇴기의 민족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동학운동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여기에서 ‘동학운동’이라 함은 최재우(崔濟愚,1824-1864)의 전형적 종교체험(1860)으로부터 시작된 ‘동학 종교사상 운동’과 동학종교사상에 기초하여 전봉준(全琫準,1855-1895)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 농민혁명 운동’(1894)을 아우르는 말이다.
 2대교주 최시형을 거쳐 3대교주 손병희 체제에 이르러, 동학은  천도교(天道敎)라는 명칭으로 종단명칭을 변경하지만(1905), 그 본질에서는 변화가 없다. 동학 곧 천도교의 특징은 종교철학사상과 사회정치사상의 통전(統全)에 있다. 전자는 인간 내면의 영성혁명이요, 후자는 인간 외면의 사회혁명이다. 전자는 종교요 후자는 혁명이다. 종교와 혁명의 일치를 이룰 때라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더불어 사는 행복한 생명공동체의 실현’이 이루어 진다.  동학적 표현은 ‘후천개벽’(後天開闢)이다. 인간은 개인이면서  사회적 존재이기에, 공동체의 공복(共福) 실현은  인간 내면이 개벽되어야 하고, 동시에 사회가 개벽되어야 한다고 동학은 보았고 실천했다.
 표층적 의미로서 ‘혁명’(革命)은 폭력을 통하여 사회적 모순을 제거하는 정치사회적 근본개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심층적 차원에서 ‘혁명’이란 그 한자어의 본래 의미대로 동물의 가죽 피(皮)에 붙어있는 온갖 불순물을 제거하고, 동물가죽의 특성인 내구성(耐久性), 유연성(柔軟性), 그리고 그 통풍성(通風性)을 살려내거나 회복하는 과정을 은유로 해서 생겨난 단어이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에서 진정한 혁명은 종교와 항상 관련되어왔고, 개인과 공동체로  하여금 그 본래적 모습인 공복(共福) 상태를 복원하려는 종교는 깊은 의미에서 항상  ‘혁명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왜 동학(천도교) 사상과 운동 속에서 한민족(韓民族)의 고유한 공복 사상을 찾아 볼수 있다고 주장하는가? 현대 한국 철학계의 태두 박종홍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학이 한국사상에 있어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는 천도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국사람
   이면 누구나 짐작하는 바이어니와 그 기본정신은 우리의 전통적인 모든 사상의 진수가
   하나로 엉기어 이루어진 결정체라고도 하겠다. 과연 동학에는 한국의 황토 흙냄세가 풍      긴다. 한국인의 체취가 속속들이 배어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사상은 동학을  떠나      서 찾기 힘들 것이다. 한국사상연구회, 崔水雲硏究,『韓國思想』12집(1974), 발간사중에서. 7쪽.,


 위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박종홍은 “동학(천도교)의 기본정신은 우리의(한국의) 전통적인 모든 사상의 진수(眞髓)가 하나로 엉기어 이루어진 결정체(結晶體)”라고 갈파했다. 흔히 한국 교양인들은  ‘동학(천도교)은  유불선 삼교(儒彿仙 三敎)의 융합’이라고 이해하지만, 그 융합이란 단순한 종교혼합(syncretism)이 아니다. 한민족의 종교사상사 과정에서 들어온 외래사상들을 받아드려 한국적으로 소화해 낸 한민족의 ‘집단적 종교적 영성의 원형’이 민족의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지표위로 다시 분출한 것이 東學(天道敎)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학(천도교) 사상과 사회운동 속에서 한민족의 공복사상의 원형적 가치와 지향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제2장에서 우리는 동학(천도교)의 종교사상을 이루는 핵심 개념들을 검토함으로써, 그 밑바닥을 관통하는 한민족의 공복사상을 살펴 볼 것이다. 동학(천도교)의 종교적 핵심사상을 나타내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花定)’ , ‘삼경사상(三敬思想)’과 ‘이천식천(以天食天)’, 그리고 ‘동귀일체(同歸一體)와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을 고찰 할 것이다.
 제3장에서 우리는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한 유물사관에서 말하는 ‘무산계층의 사회혁명’과 무엇이 다른가를 한민족의 공복사상 맥락에서 고찰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혁명의  기치에 표현된 ‘輔國安民’과 ‘除暴救民’, ‘廣濟蒼生’과 ‘內修道文’, 그리고 혁명과정에서 실지로 실천했던 ‘民會와 包接制’ 그리고  동학 혁명군의 ‘弊政改革案’을 살피면서 동학혁명의 공동체의식과 공복이념을 집중조명 할 것이다.
 제4장에서 총괄적으로 정리하면서 우리의 논제에 대한 잠정적 결론을 정리할 것이다.  

[2]  동학(천도교)의 종교사상에 나타난 공복(共福)

  특정 민족공동체의 건국신화는 해당민족의 세계관, 삶의 가치지향성, 종교적 영성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신화적 상징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주지역과 한반도를 삶의 터로서 정한 조선족의 건국신화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군신화(檀君神話) 이다. 단군신화와  초기 부족국가시대의 종교제의로 부터  공통적인 세가지  핵심사상이 추출된다. 高大民族文化硏究, 『한국문화사대계』,제1권, 민족국가사. 357-452.( 고대민족문화연구소출판부, 1970); 『한국문화사대계』,제VI권, 종교·철학사, 22-176.(1970)
그 세가지 핵심사상은  ‘사상’을 공통으로 하는 하늘님 신앙의 제천의식(祭天儀式), 건국이념으로서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추수감사제에 나타나는 집단적 놀이문화로서 매우 역동적인  ‘풍류도적 영성’(風流道的 靈性)  ‘풍류도적 영성’에 대하여는 다음자료를 참고. 柳東植,『風流道와 한국의 종교사상』,(연세대출판부, 1997)
을 들 수 있다.
  동학은 19세기 해체기에 들어선 이씨조선왕조의 타락한 사회현상과 19세기 열강들의 조선 식민화 침략 야욕이 점증하는 위기 상황에서, 한민족의 집단적 무의식 심층에 내재하던 ‘한민족의 영성’이 폭발해 나온 것이다. 그 중에서 동학을 발생시킨 최재우의 원초적 종교경험 ‘시천주’(侍天主)신앙은 한민족의 광명리세(光明理世)의 종교적 표현인  ‘ 사상’과   ‘하날님신앙’이 민족의 위기상황 속에서 다시 재각성 되면서 표출된 것이다. 하날님을 각자의몸에 모신다는 신앙은 하루 아침에 빈부귀천이나 유식무식이나 성별차이를 초극하여 만인의  평등성과 인간 존엄성을 주체적으로 자각하도록 민중(民衆)을 각성시켰다.

2.1. ‘侍天主造化定’

  水雲 崔濟愚의 직접적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해설은  당시 들어온 외래종교 종교인 천주교(西學)나 전통 고등종교였던 불교나 유교가 가르친 바와 차이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동시에 동학(천도교)가 지향해가는 대동세계의 실현 곧 공복(共福) 세상의 기초는
단순한 ‘사회계약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학(천도교) 신앙의 존재론적 근거는  창도자 최제우의 神體驗에서 잘 나타나는데 ‘하날님을 생명안에 모심’(侍天主)라는 말로 총괄된다. 최제우는 다음같이 말한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 主者,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東經大全』, 論學文.28쪽.(정민사, 1986)


 첫째, 동학의 신관 혹은 신체험은 아브라함종교들(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강조되는 타계적 초월신관을 부정한다. 동시에 동아시아 종교적 특성인 범신론적인 비인격적 신관을 부정한다. 동학의 신관은 ‘내재적 초월신’(內在的 超越神)인데, 이때 말하는 초월성이란 공간적 초월이 아니라 ‘규정불가능한 포괄자’라는 의미에서이다.
둘째, 인간 생명의 내면에서 신령한 기운으로서 활동하고, 인간생명을 둘러싼 자연생태적(自然生態的) 실재와의 부단한  생기적(生氣的) 관계성 속에 있으며, 모든 세상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기를 자신의  생명현상과 분리시켜 떼어놀 수 없는 存在自體임을  의미한다.
셋째, 동학적 신체험은 헬라철학적 ‘不動의動者’(the unmoved mover)도 아니고, 단순한 우주생성원리로서 태극(太極)이거나 로고스(Logos) 만도 아니다. 동학(천도교)의 신관은 내재적 초월자이면서 동시에 공경해야할 인격적 대주제(大主帝) 이시다.
 넷째, 하날님의 창조행위는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무로부터의 창조’ 가 아니라, 인위적 행함없이 이뤄지는 뜻의 실현이자 저절로 되어감이다.
 다섯째, 인간으로서  취할 태도는 하날님의 큰 덕에 마음을 지향하여 하나되려는 삶이요, 마음을 바르게 지키고 하날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동학의 신관에서 보면 역사변혁 사업에서 하날님과 인간은 함께 일한다. 하날님의 기쁨, 보람, 행복은 사람을 비롯한 억조창생물의 그것과 함께한다. 그것이 “내 맘이 곧 네 맘이다”(吾心卽汝心)  위 경전. 23쪽)
고 수운 최제우에게 말씀하신 하날님의 뜻이다.

2.2. 三敬思想과 以天食天

  동학사상은 제2대교주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은 동학이 박해를 받던 어려운 시기에 동학을 布敎하고, 抱接制를 두어 교단을 조직하고 교도들을 교육훈련하는 체계를 갖추었고, 『東經大全』과 『龍潭遺詞』등 동학의 기본교설 문서를 간행하였다(1880-1881). 전봉준의 초기 농민혁명의 거사에 대하여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로서 혁명봉기 초기엔 무력봉기를 반대했으나, 봉기이후(1894) 동학혁명에 참여하고 독려하였다. 동학을 조직적 종교단체로서 제도를 정비하는데 공헌한 점 못지않게 동학사상을 한민족의 농경문화적 정신토양 속에 깊이 토착화(土着化)시켰고, 래디칼(radical)하리만치 성육화(成肉化)시킨 점이 돋보인다. 그 대표적 사상이 ‘삼경사상’과 ‘이천식천사상’ 이다. 이 중요한 사상을 동학사상이 지닌 ‘공복’(共福)사상의 종교철학적 기초이론으로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한다.
  최시형은 삼경사상(三敬思想)을 동학의 중요교리로서 가르쳤다. 삼경이란 첫째가 ‘하늘공경’(敬天)이요, 둘째가 ‘사람공경’(敬人)이요, 그 셋째가 ‘물건공경’(敬物)인데, 그 중요성의  서열이 아니라, 유기적관계성에서 순차이다. 다시말하면 ‘하늘공경’은 그 진정성이 ‘사람공경’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고, 동학도인(東學道人)의 경천·경인 신앙의 진정성은 경물(敬物)하느냐 아니하느냐 여부로서 그 진위성과 성숙도가 판명된다는  것이다. 『海月神師法說解義』(천법출판사,2001), 473-484쪽.

  敬天 곧 한날님 모심과 공경은 동학도 가르침의 출발이다. 그런데, 그 하날님은 타계천상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만물을 통하여 無爲而化하는 창조적 內在神이기 때문에, “敬은 敬人의 행위에 의지하여 사실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敬天만 있고 敬人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理致는 알되 실지로 種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다”고 최시형은 말한다.  여기에 ‘시천주’라는 근본종지(根本宗旨)가 ‘인내천’(人乃天)이나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발전하는 존재론적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  
  삼경사상의 특징은 경물(敬物)사상에 이르러 극치에 도달한다. ‘경물’에서 ‘물’(物)은 工學的 과정을 거쳐 제조된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물적존재자(物的存在者)를 말한다. 흙, 물, 공기, 식물, 동물, 물질적 재화등 일체를 말한다. 동학의 경물(敬物)사상은 물건을 아껴쓴다거나 재활용하자는 물질과 물건의 효용극대화 실천운동과 다른 것이다. 물(物) 그 자체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서, 하날님 기운의 창조적 활동시공간이요 사건적 결실물로서의 물(物)을 공경함에 이르러야 ‘天地氣化의 德에 合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계몽주의적 세례를 받은 서구인들은  동학의 삼경사상이 고대원시종교의 ‘물활론적 정령신앙’(animism)의 잔영(殘影)이 아닌가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물(物)의 세계를 비생명적 물질분자의 집합체로만 보는 견해야 말로 도리혀 ‘계몽주의적 신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학의 삼경사상은 최시형의 독특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다” ‘이천식천’(以天食天)사상에까지 이른다.  위와 같은 책. 495-500쪽 .
얼른 듣기에 기상천외한 이교도 사상같이 들리는 이 가르침의 진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소 긴 문장이지만 최시형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내 항상 말 할 때에 物物天이요 事事天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是認한다면 物物     이 다 以天食天 아님이 없을 지니, 이천식천은 어찌 생각하면 理에 相合치 않음과 같으     나, 그러나 이것은 人心의 偏見으로 보는 말이요, 만일 한울 全體로 본다면  한울이 한     울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同質이 된자는 相互扶助로써 서로 氣化를 이루게하고, 異質이     된자는 以天食으天로써 서로 氣化를 통하게 하는 것이니.....‘外有氣化’라 함은 ‘이천식천’     을 말한 것이니 至妙한 천지의 妙法이 도무지 氣化에 있느니라.  위와 같은 책. 495-496쪽.


  만약 서구 그리스도인들에게 동학의 ‘이천식천’ 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시키려 한다면 그리스도교 예배에 있어서 ‘성찬식’을 생각하면 다소 이해가 될런지 모른다. 혹자는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성찬식’ 교리와 동학의 ‘이천식천’ 교리를 은유적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겠지만, 그 또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편견이다. 아주 근본에서 생각하면 최시형의 ‘이천식천’ 가르침은 동학적 범성례주의(pansacramentalism)이며  '神性의 肉化’ 교리 곧 래디칼한 성육신사상( a  radical incarnational thought)인 것이다.
  동학의 삼경사상과 이천식천 가르침을 여기에서 논하는 이유는  그 사상이 동학의 ‘공복’(共福)사상의 근본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인 김지하는 1970년대의 한국군사정권이 급진적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인간다운 사회를 ‘동물농장’으로 변질시켰을 때, “밥은 하늘입니다”라는 시대적 멧시지를 문학적으로 발표하였다. 김지하, 『밥: 김지하 이야기 모음』(분도출판사, 1984)

  ‘밥 한그릇’은 한민족에게 있어서는 영양소를  제공하는 단순한 에너지 보충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요, 하늘과 자연과 사람이 공동노동으로 이룬 공동의 신성한 결실물이었다. 밥은 등을 돌리고 앉아 혼자서 먹지 않는다.  ‘밥상공동체’는 ‘더불어 삶의 원형’이다. 동학의 삼경사상(경천,경인,경물)과 이천식천 가르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생명현실 그 자체가 共生, 共役, 共助, 共榮 하는 ‘더불어 함께 행복을 누리도록 되어있는 신묘한 실재’라는 것이다.  현대문명사회의 가치혼란과 비극은 이 근본적 생명원리를 배반하고 무시하는데서 온다. 지구환경위기와 생명살상의 비극이 감소되거나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는 21세기 초반 오늘의 문명사적 병폐진단을 극복할 새문영의 철학을  김지하는 ‘로터스상’(Lotus Prize) 수상연설에서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존엄한 생명의 존중과 사랑’이라는 보편진리를 생활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새롭고도 폭넓     은 세계관을 창출해 내야 하며, 영성적(靈性的)이며 공동체적(共同體的)인 새로운 생존양     식을 창조해 내야합니다. 인간과 자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사이에 결정적인 친교와     평화를 성취시킬 생명의 세계관 · 생명의 존재양식을 출현시켜야 합니다. 위와 같은 책, 11-12쪽.


  김지하는 20세기 문명을 반생명적인 것으로 휘몰아가는 ‘죽임의 문화’ 가치관으로서 물신숭배, 폭력숭배, 끝없는 욕망충족의 자본주의 경제체계, 요소론적(要素論的) 실재관, 물질/정신의 이원론, 생명경시사상을  열거했다. 위 인용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중요개념은 ‘영성적이며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창조해 내는 것’ 이라는 말이다. 김지하도 그렇고 한국의 사상가들은 그러한 새로운 문명의 주장과 실천적 실현을 위해서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이 발생했다고  본다.
 공복적 생명공동체(共福的 生命共同體)는 하늘과 땅과 사람, 자연과 역사와 신성,  노동과 삶의 의미와 놀이문화의 통일, 개인과 공동체와 뭇생명체들의 공생적 생태문화가 요청된다. 그리고, 민중적 집단지성 혹은 집단영성의 실험이 ‘삼경사상’과 ‘이천식천’을 핵심으로 갖춘 동학사상및 동학혁명을 통해서 19세기 말에 한반도에서 시도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영성적이며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창조해내려는 19세기 말 동학운동이 중앙정부의 수구세력과 특히 동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던 청국(중국)및 일본의 무력적 개입으로 좌절되었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살아서 한민족의 밑바닥에 지하수맥 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2.3. 동귀일체(同歸一體)와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

 ‘공복적 생명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 동학은  현재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들의 ‘同歸一體’를 강조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현재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이들 죽은자들이 또한 현실적 ‘하나의 생명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특히 3대교주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1-1922)의 가르침이었다. 이  교리는 동학의 사생과과 영생관의 본질을 갈파하는 매우 파격적 사상이다.
  ‘동귀일체’(同歸一體)의 교리핵심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하날님의 혼원(渾原)한 창조적 기운이 드러난 현상체이기 때문에, 개인과 집단, 인간과 타생명체,  사람과 하눌님, 물질현상과 정신현상,  등등이 ‘하나’에로 귀일한다는 사상이다. 오익제,  “동학의동귀일체사상”,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논총』(上),269-273.(동학혁명 100주년기념사업회, 1994)

  동학의 ‘동귀일체’ 사상은 불교의 ‘만물동체’(萬物同體)사상, 노장의 ‘도일사상’(道一思想), 성리학의 ‘무극이태극사상’(無極而太極思想)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개체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도 개인주의나 형이상학적 단자론(單子論)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적 ‘하나의 생명’에 귀일하고 그 안에서 영생한다는 사상적 특징을 갖는다.
  물방울이 바다속에 흡수당하여 개체가 망실되는 ‘무차별적 합일’(無差別的 合一)이 아니다. 개체들은 ‘참여적 합일’(參與的 合一)을 통한 영적 대생명 안에서 함께 일한다. 동학사상의 제사제도에서 최시형이 가르쳤다는 ‘향아설위(向我設位)’도  ‘동귀일체’라는 기본원리에서만 가능하다.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재주(祭主)인 어느 후손의 생명은 개체적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그 개인 안에 앞선 조상들의 생명이 생물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체화(體化) 되어있음을 느낀다. ‘향아설위’는 제사상(祭祀床)의 공간적 배치의 문제가 아니며, 절을 올리는 대상이 자아(自我)라는 망발적 발상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날님과 조상이 제사할 대상이며 그것은 同歸一體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학의 ‘동귀일체’사상은 정치사회사상적 측면에서 個人主義도 부정하되 集團主義도 부정한다. 자유와 평등, 개인과 공동체, 물질과 정신이 동시에 살아나는 실재관이자 시스템조직이다. 사람 몸을 비유로 들자면, 10조개의 살아있는 세포가 건강하게 살아있고 하나의 세포안에 전체를 간직하면서(DNA),  10조개의 세포는 유기체로서 한 몸을 이룬다.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의 요지는 인간 개체아의 본성을 영적인 것으로 보며 불생불멸한 것이로되, 사후 他界에서 개체적 영혼으로서 不滅永生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움의 창조가 이뤄지는 ‘大生命的  세상’에 참여하면서 불멸한다는 이론이다. 義菴 孫秉熙法說解義(下), 315-344 쪽.
손병희의 성령출세설은 다음같은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萬有는 원래 하나의 영 , 곧 지기(至氣)이신 하눌님의 창발적(創發的) 타나남인데,   물질적 형태를 지니고 나타난 가시적 세계(可視的 世界)와 불가시적 세계(不可視的 世界) 그  양면성을 지닌다. 실재의 양면성은 분리된 독립실재가 아니라 불가분리적이다. 그 양면성은 마치 주먹 쥔 사람 손에서 손등과 손바닥의 상호공속관계와 같다.
둘째, 인간생명은 만유 중에서 가장 신령한 단계에로 진화발생한 존재이기에, 至氣이신 하눌님의 신령한 성품을 품수받고 태어난다. 至氣이신  ‘하나 영’과 ‘다수로서의 ‘개인영’의 관계는 불가분리적 이면서도 불가혼동적인 관계다. 조상의 영들과 후손 영들의 관계도 불가분리적이고 불가혼동적이다. 그러나, 현실로 드러난 ‘하나의 대생명’ 안에서 하날님 영,  조상들 영, 실존적 개인의 영은 서로 참여적 소통관계를 이룬다.
셋째,  지기(至氣) 혹은 창조적 활동중의 영이신 하날님의 적극적 표현인 가시적 생명세계를 떠나서 하날님이나 죽은자나 산자는 그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지금 여기 눈앞에 전개되는 생명세계가 바로 잠세태(潛勢態)가 실현된 현실태(現實態)이며 종교의 궁극적 관심세계 이어야 한다. 동학은 타계적 세계에서의 영생관을 거부한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단순 생물학적 죽음관도 거부한다.

  이상과 같은 손병희의 ‘성령출세설’은 단순히 생각하면 동학교도들의 죽음이후 영생관 혹은  생사관을 피력하는 교리적 단면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심층적 의미는 개인의 영생관을  넘어서 ‘공복적 생명공동체’의 실현을 지향하는 것이다.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靈性世界와 時空世界의 통합, 산자와 죽은자의 ‘상호침투 순환’(perichoresis) 구조 안에서 참여적 소통,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현재 시간안으로 통합해 들어오는  ‘하나의 큰 생명적 삶’ 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의 큰 생명적 삶’은 ‘공복적 생명공동체’를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지반( the ontological ground)이자 존재론적 능력(the ontological power)이다.  그렇지만, 실질적 현실세계는 뒤틀려있고 병들어 있으며 억압적이고 생명파괴적 힘들로 가득차 있다. 동학의 위대성은 이 ‘부정적 세력들과 구조악’을 파사현정(破邪顯正)하여 건강한 생명세계에로 돌려놓으려는 행동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동학혁명이다. 동학혁명은 혁명적 행동을 통한 동학사상의 가시적 표현이고, 동학사상은 동혁혁명의 불가시적 ‘진리의 談論’ 이다. 동학에서는 종교와 정치, 참 생명과 참 혁명, 개인의 내면적 해방과 사회의 외면적 해방이 늘 함께  병진(竝進)한다.

[3] 동학혁명의 이념과 혁명과정에 나타난 공복사상

  동학혁명(1894)은 동학도가 종교로서 창도한지 34년만에 동학교도를 중심으로하여 뭉친 민중의 사회변혁운동이다. 당시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기 때문에 東學農民革命이라고도 부른다. 동학혁명은 단순한 농민들의 민란이거나 지방토호세력들의 중앙집권 권력층에 대한 정치적 반란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이념안에는 분명하게 반봉건, 반외세침략, 불의와 부정에 대한 정의· 자유· 평등이념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다시말하면, 동학이라고 부르는 생명종교는 반생명적 현실을 혁파하여 공동체적 공복사회실현을 위한 실천적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미 국민의 지지와 통치능력을 상실하고 무능, 부패, 사대주의에 깊이 병든 조선정부는  동학혁명을 통하여 분출되는 창조적 사회변혁의 에너지를 이해하거나 완성하기는 커녕 당시 청국(중국)과 일본등 외세를 힘입어 동학혁명군 약 30만명을 억압잔멸 하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식민지 쟁탈전과 조선지배의 종주국 싸움은 동학혁명군의 평정을 빌미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파병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군사적 충돌로 이어져 마침네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1895)이 발발했고 일본의 승리로서 막을 내렸다.
 역사의 내면기록과 비밀스런 정치적 책략을 알고보면, 동학혁명의 좌절을 가져온 실질적 군사력은 현대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조선 정부군(京軍)의 합동작전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진행과정과 조선에 대한 宗主國 경쟁을 벌려온 청국(중국)과 일본정치세력의 치밀한 군사적·외교적 은폐작전을 상론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동학혁명 군대의  기치에 표현된 ‘輔國安民과 除暴救民’, ‘廣濟蒼生’과 ‘內修道文’ , 그리고 혁명과정에서 실지로 실천했던 ‘民會와 抱接制’, 그리고 執綱所의 ‘弊政改革案’을 살피면서 동학혁명의 공동체의식과 공복이념을 집중조명 할 것이다.
 
3.1.  輔國安民과 除暴救民 기치에 나타난 동학군의 공복이념(共福理念): 정의로움

동학혁명은 全琫準, 孫和中, 金開男 세사람의 이름으로 동학혁명봉기의 이념과 명분을 온세상에 알리는 창의문(倡義文)을 세상에 발표함으로써 불이 붙었다(1894년 음력 정월) 창의문은 동학혁명군의 혁명선언문인 셈이다.  약 700자 정도로 작성된 간결하지만 단호한 정의심에 충만한 ‘倡義文’의 마지막 문단을 아래에 인용한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다. 근본이 쇄삭(碎朔)하면 국가는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보국      안민의 책(策)을 생각지 아니하고 다만 제몸만을 생각하여 국록(國祿)만 없애는 것이 어      찌 정당한 일이겠는가. 우리들은  재야의 유민(遺民)이나 군토(君土)를 먹고 군의(君衣)      를 입고 사는 자다. 어찌 차마 국가의 멸망을 좌시 할 수 있겠는가. 팔역(八域)이 동심       (同心)하고, 억조가 순의(詢義)하여 이에 의기를 들어 보국안민(輔國安民)으로써 사생       (死生)의 결단을 한다. 금일의 광경에 놀라지 말고 승평성화(昇平聖化)로 함께 들어가      살아보기를 바란다. 吳知泳, 『東學史』,199쪽 (文宣閣, 1973)


  동학혁명군의 대장기(大將旗)에 씌여저 있는 혁명군의 이념은 ‘보국안민’이요 ‘제폭구민’이었다. 위에서 인용한 창의문을 보면, 동학군의 혁명목표가 프랑스 혁명에서처럼 왕조정치를 없애고 공화제정부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말하자면, 혁명군이 정권쟁탈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려는 국가정체변혁(國家政體變革)의 야망이 아니었다. 다만, 국가의 근본은 국민이라는 것과 국민이 부셔지고 약해지면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다. 현실정치는 중앙이나 지방이나 행정관료들이 부패,무능,사리사욕, 국민수탈, 인권박탈등 국가멸망 직전상황이다. 불의한 정치권력자들의 폭력에서 민중을 구하고, 국내외 국가위기 상황에서 나라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 혁명봉기의 목적임을 선언하였다.
  ‘八域이 同心하고 억조가 순의(殉義)하여’라는 말에 유의하여야 한다. 전국방방곡곡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한 맘이 되어 ‘의를 위하여 죽음’(殉義)을 각오한다는 것이다. ‘승평세계’(昇平世界)란 ‘태평한 세상’을 말한다. 창의문 마지막 구절에서 “승평성화(昇平聖化)로 함께 들어가 살아보기를 바란다”라는 구절에서 ‘승평성화(昇平聖化)’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앞에서 김지하의 저항문학세계의 화두 ‘밥’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승평성화로 함께들어가 살아보자”는  외침은 “영성적이며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런 세계는 한민족이 고대사회로부터 꿈꾸며 달려오는  ‘공복적 생명공동체 실현’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昇平聖化’, 또는 ‘영성적이고 공동체적인 생존양식’, 또는 ‘共福的 생명공동체’등 무어라고 부르던지 그 사회가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의로움’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동양문화 정치사회사상의 최고 이념적 화두(話頭)는 ‘인의’(仁義)인데, 현대어로 번역하면 ‘사랑과 정의’인 셈이다. 동양적 성군(聖君) 정치학의 궁극목적이 ‘仁義의 실현’이었지만, 사회적 국가공동체에서 더불어 삶을 통한 공동행복 추구가 가능하려면, ‘정의로움’이라는 도덕가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동학혁명은 증언하는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지적대로 정의(義) 없는  사랑(仁)의 실현이란 지극히 감상적 정치 낭만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중산계층의 ‘다수의 행복론’에로 전락하여 힘없는 사회계층에 대한  정치적 억압, 경제적 직간접 수탈, 그리고 문화적 소외를 외면하는 도덕적 위선이 지배하게 된다.  동학혁명의 창의문에서 ‘輔國安民, 除暴救民’의 깃발 속에 담겨있는 핵심이념은 ‘共福的 생명공동체’ 실현의 제1차적 당위적 조건으로서 ‘정의로운 사회실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2. 廣濟蒼生과 內修道文에 나타난 동학의 공복사상: 생명존중과 평화

 廣濟蒼生은 ‘세상의 모든 백성을 널리 구제한다’는 동학혁명군의 의거동기를 말하는 구호이다. 흔히 輔國安民과 함께 동학혁명을 일으킨 동기와 목적으로 병행구(竝行句)로서 말해진다.   內修道文은 포덕30년(1890) 12월에 2대교주 최시형이 동학도중 특히 여성등을 대상으로 하여 꼭 준행해야 할 일곱가지 조목의 가르침을 말한다.  
 ‘廣濟蒼生’을 좁게 생각하면 불의한 권력에 의해 억압수탈당하는 인간의 해방과 구원이라는 정치사회적 자유 · 평등 · 박애로 압축된 휴머니즘 정신의 구현에 국한되게 된다. 그러나, 동학사상과 동학혁명과정에서 人間主體的 思惟가 강하지만, 人間主體的 사상은 人間中心的 사유와 다른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廣濟蒼生’은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과  간디의 아힘사(不殺生)사상과 통하는 비폭력 평화지향성을 갖는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해월 최시형에 의해 가르쳐 졌다는 ‘內修道文’이다. ‘內修道文’의 7조목(七條目)의 핵심내용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海月神師法說解義』, 內修道文,505-514쪽

 제1조. 보모효도하고 남편공경하고 자식며느리를 사랑하라. 하인을 자식처럼 여기고, 육축(六畜)도 아끼며, 나무라도 생순(生筍)을 꺾지말며, 어린자식을 때리거나 울리지 말라.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
 제2조. 한번사용하여 더러워진 물을 땅에 버릴때 함부로  멀리버리지 말라. 땅에 침이나가래나 깨끗하지 못한 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3조. 모든 일을 행하거나 행한 후에 부모님께 아뢰듯, 항상 맘으로 한울님께 심고(心告)하라.
 제4조. 먹고 남은 밥, 국, 채소류 반찬을 새것과 섞지말고 따로 보관하라.
 제5조.  아침저녁 밥을 지을때, 새물에다 식량을 다섯 번씩 씻어 밥을 짓고, 밥이되어 그릇에 담을 때 심고(心告)하라.
 제6조.  깨어져 금난 그릇에 음식을 담아먹지 말고, 살생(殺生)하지 말며, 하루 세 번 식사준비하고 음식을 먹고 치우는 일을 부모님 제사섬기듯 정성스레 하라.
 제7조.  집 밖에 용무나 활동을 위해  나가고 들어올 때, 물건을 주고받을 때, 심고하라.  

  이상의 일곱가지 내수도문 생활조목들은 단순한 것같아 보이지만, 생명존중, 생명사랑, 위생철저, 평화와 감사 생활을 강조한다. 새로 돋아나는 나무의 生筍을 꺾지말고, 집에서 기르는 六畜을 아끼고 사랑하며, 어린아이를 체벌(體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행위와 같다는 가르침에서 ‘생명존중’ 사상의 극치를 본다. 더러워진 물을 함부로 버리거나 침이나 가래를 함부로 땅에 내뱉는 행위를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조목에서는 현대의 생태적 윤리의식(生態的 倫理意識)을 훨씬 능가한다.  金用天, ‘內則과 內修道文에 관한 연구’,『東學思想戰展開의 諸問題』139-180쪽. (2004)
   
  위에서 간추려 살핀 ‘內修道文’이 동학도들의 여성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가르침이라는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첫째, 여성의 역할과 모성적 심성이 얼마나 영성적 共福공동체 형성에서 귀중한 기능을 하는가 보여준다. 둘째, 더불어 삶을  통한 공복적 생명공동체 실현은 인간생명의 행복추구만을 가지고서는 성취 될수 없으며, 식물과 동물 그리고 땅과 생태환경이 모두 행복하는 ‘生態的 共福’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3.3. ‘民會와 抱接制’ 그리고 혁명군의 ‘弊政改革案’ : 생명의 自發性

 동학운동에 나타난 한민족의 ‘共福的 공동체사상’ 특징을 밝혀내기 위하여 동학운동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민중이  집결하여 일종의 ‘民會’형식으로서 평화적 의사소통을 정부권력당국에 개진하는 현상을 검토하려 한다. 그리고, 한반도 서남부 지역 호남지방 대부분을 점령한 동학혁명군이 당시 사회의 제반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하여 ‘弊政改革案12條’를 설정하고 자치적(自治的)으로 ‘共福的 共同體’ 형성을 위하여 어떻게 노력했던가를 살펴보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民會와 개혁운동을 추동하는 자발적 단위공동체(單位共同體) 조직망으로서 동학의 ‘抱接制’에 주목하려 한다.
  이 세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원리는 ‘생명활동의 자발성’이란 것이다. 건강한 생명은 개체로서나 공동체로서나 ‘생명은 스스로 함’이라는 근본원리를 현실화 한다. 이 원리가 언론및 정보소통의 맥락에서는 언론의 자유, 열려진 대화와 상호소통, 집회결사자유 형태로 나타나며, 정치적 행동으로서는 지방자치, 참여적 민주주의, 권력수임자에 대한 國民(住民)召還制등으로 나타난다. 동학운동과정에서 나타내 보인 民會, 抱接制, 그리고 弊政改革案實施 등은 단순히 미성숙한 동학운동의 과거현상이 아니라, ‘共福的 共同體 實現’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생명의 자발성의 보장이 요청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명은 스스로 ‘自己組織化’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生命의 自發性 原理’와 ‘生命의 自己組織化 原理’는 한민족의 민족성가운데서 대륙적 기질인 力動性 혹은  激情性을 타고 폭발 할 때, 집단적 힘의 폭발로 나타난다. 趙芝薰, 『韓國文化史 序說』, 19-29쪽 (나남출판사, 1996)
대표적 예를 들자면 동학혁명의 발발, 3.1 독립만세사건, 1987 시민민주화운동, 1980년 광주민중항쟁, 2007년 소고기 수입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의 촛불시위, 세계올림픽 운동경기 응원단 일명  ‘붉은 악마들’의 열광적 응원문화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거기엔 생명적 자발성, 자기조직화의 질서, 역동적 응집력, 多樣性 안에서 일치(一致), 집합적 자기(集合的 自己)로서 동아리 팀웍의식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먼저, 동학운동에서 ‘民會’의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자. ‘民會’란 사전적 의미로서는 국가의 실질적 구성권자인 민(民)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집하여  집단적 의지를 밝히고 그 실천이행을 요구하는 대중적 집단행동이다.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도시국가에 있었던 시민의 총회(總會)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중앙집권적 군주제도가 경직되었던 조선사회에서는 ‘民會’ 그자체가 국가정복 반란죄나 사회질서 혼란죄로서 응징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민중의 집회 결사 의사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도 않았고, 힘없는 민중은 ‘民會’로 모일 용기나 조직단체가 없었다. 근대한국사회에서 ‘민회’의 최초 발생은 동학운동 때부터라고 볼 수 있겠다. 김창수, ‘신원운동(伸寃運動)의 전개’, 『東學革命 100年史』(下), 400-444쪽 참조.(東學革命 100周年 紀念事業會, 1994).

  동학의 ‘民會’의 시작은 동학 창도자 최제우가  정치범으로 참수(斬首)를 당한 억울함과 부당함을 풀어주고 당국의 재판기록을  바로잡아달라는 요청인 것이다. 이것이 敎祖伸寃 운동이다.  동학도들로서는 교조(敎祖)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동학도의 정당함과 진리성을 만천하에 밝히는 일이 중요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동학이 종교단체로서의 포교활동 자유및 교인들의 신분보장 문제가 시급했다. 일부 부패관리는 邪道를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동학교도들의 사유재산을 박탈하여 착복했는데 그런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야 하는 현실적 시급함도 있었다.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은 영불연합군에 의한 북경함락과 병인양요(1860), 일본의 반강제적인 조선과의 수호조약채결(1876)과 한미통상조약채결(1882)등으로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이었다. 그럼으로 조선정부 당국은 불법적이라고 본  동학종교단체의 교조신원(敎祖伸寃) 청원 따위를 진지하게  처리할 위민민본(爲民民本)정신이나 정치적 통찰력이 없었다.
 동학의 ‘민회’ 성격의 민중집회는 公州集會(1892), 參三禮集會(1892), 光化門前伏閤上訴1892), 그리고  2만여명이 회집한 報恩集會(1893)에서 절정에 달했다. 보은집회의 당시 상황을 일별하는 기록자료는 당시 상황을 다음같이 전한다.

  이 때 모인 동학교도들의 수는 약 2만명으로, 그 반(半)은 성 안에 수용하고 나머지 반은 성
  밖에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교도들은 접별(接別)로 모여, 낮에는 성(城) 안에서 주문(呪文)을
  암송하고 있었다. 海月은 성 안에 거주하면서 모든 교도들을 통할 하고 徐丙鶴, 孫秉熙,孫天民,
  李國彬등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參禮聚會와 伏閤上訴 등을 통하여 경험을 쌓은 동학교도
  들은 報恩聚會 단계에 와서는 매우 조직적이 되었으며 또한 규율을 잘 지켜 전투때의 군대조직
  과 같은 규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질서정연하였다.  위와 같은 책, 439쪽.


  조선후기 정치사에서 듣지도 못하고 경험해 본적 없는 일, 곧 2만명 규모의 자발적인 민중의 집단적 의사표현의  현실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報恩集會’에서 절정에 달한 ‘民會’에 놀란 고종(高宗)은 호조판서(戶曹判書) 魚允中을 현장에 내려보내 수습토록 했다.  그런데, 어윤중은 高宗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에서 그가 살핀 동학도들의  ‘민회’의 성격을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이 집회는 조그마한 무기도 휴대하지 않은 것이므로 다름아닌 민회(民會)와 같은 것이다. 일찍이 듣기에 각국에는 역시 民會가 있어서 정부와 정령(政令)에 있어서 국민 및 국가에 불편함이 있으면 회의하여 강정(講定)한다 하니, 이 집회도 그와같은 것이므로 어찌 비류(非類)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은 책, 442에서 중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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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적으로 판단 할 때, 동학혁명 발발(1894) 직전까지 활발하게 전개된  동학의 ‘민회’는 다음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동학의 민회는 매우 평화적 형태를 지녔으며, 그러나 간절한 집단적 항소및 민의를 정부에 전달하려는 의지가 발현된 것이다. 敎祖伸寃 운동으로 시작된 民會는 종교신앙의자유, 포교의 자유, 신체및 재산의 부당한 억압및 압류에 저항하는 기본권 주장으로까지 민중의 의식화(意識化)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동학의 민회는  민중의 집합자체가 强勸動員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발성과 자유의지에 의한 회집이라는 것이다. 동학의 경우 교도들의 지역적 조직망 제도인 유기적 ‘抱接  制’자체가 민중의  自發性, 自治能力, 自己組織化의 실천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동학의 ‘민회’의 의미를  현대국가 민주정치제도의 ‘代議政治’와의 관련에서 말한다면 ‘참여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의 정치’(of the people)에  이르러서야 민주주의 참가치가 명실공히 실현된다는 것이다. 지난 20세기동안 특히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의 정치발전에서 ‘節次的 民主主義’를 담보하는 보통선거제도(by the people)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제도로서 三權分立(for the people) 마져도 공허한 形式的 民主主義로 전락된다는 것을 무수히 보았고 경험하였다. 그럼으로, 민회(民會)를 통한 사회구성원의 참여적 민주주의가 ‘공복적 생명공동체 실현’에 매우 유익한 것임을 확인하여 준다.   
 동학혁명이 단순한 농민중심의 ‘貧者와 無産者의 社會階級혁명’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의 ‘공복적 생명공동체 실현’을 꿈꾸는  한민족의 민족집단적 영성의 분출이었다는 증거로서  동혁명군의 사회개혁안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전주성(全州城)에 입성한 동학혁명군은 숫자로 약 3,000명이 되었고, 輔國安民의 혁명 명분대로 동학혁명군은 다음같은 12개조의 기율(紀律)을 정하여 포고했다. 위와 같은 책, 502쪽.

 전주성을 완전 점령한 동학군은 정부군과 협력하여 전남일대의 치안질서 확보와 민생보호를 위해 소위 ‘全州和約’을 채결했다. 동학군의 협력없이는  호남지역은 무정부상태의 정치공백지대로 변질될 위험이 있었기에, 조선정부는 동학혁명군으로 하여금 지역마다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동학군은 ‘弊政改革案 12조’를 정부측에 제시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다. 폐정개혁안 12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위와 같은 책, 517쪽.

  (i)동학교도와 정부 사이에 宿怨을 없애고 庶政에 협력한다. (ii) 貪官汚吏 죄상을 조사하여 벌한다. (iii) 횡포한 富豪를 엄벌에 처한다. (iv) 불량한 儒生과 兩班을 징벌한다. (v) 奴婢文書를 소각한다. (vi) 七班賤人의 인간차별대우를 개선하고 白丁이 쓰는 패랭이(平凉笠)를 없앤다. (vii) 젊은 과부의  재혼을 허가한다. (viii) 규정 외의 雜稅는 일체 폐지한다.(ix) 관리채용은 문벌을 타파하여 人材本位로 등용한다. (x)일본인과 밀통하는자는 엄벌에 처한다. (xi)  公私債를 불문하고 기왕의 것은 일체 면제한다.  (xii)土地를 平均으로 分作한다.

  이상의 폐정개혁안12조의 정신은 신분차별 철폐, 부당한 세금징수 철폐, 농토의 합리적 분배경작, 지방토호와 악질 관료와 타락한 유교 유생들의 징벌, 합리적 관료공무원의 등용,강대국의 내정간섭반대 등이다. 이 모든 일들이 執綱所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자치(自治)로서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학은 ‘공복적 생명공동체’가 민회와 자치를 통해 그 기초가 놓여짐을 실험하였다.

[4] 맺는말

 이 논문에서  ‘共福的 生命共同體’를 지향하거나 형성하려는 한민족(韓民族)의 특징들을
“한민족 전통사상의 진수(眞髓)의 결정체(結晶體)”(박종홍)인 東學사상과 동학혁명 운동 안에서 고찰하였다. 그 특징들을 정리하면서 이 논문을 마치려 한다.
 첫째, 한민족의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하날님ㆍ자연ㆍ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宇宙神人的 靈性’(cosmotheandric spituality/ R. Panikkar)을 기초로 한다. 초월적 유신론에 기초한 전통 기독교문명과 다르며,, 자연이 곧 神이라고 보는 인도계 종교문명의 범신론적 동일성 철학과도 다르다. 물론 근세 서양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던 물질/정신의 실체론적 이원론(R.Descartes)과도 다르다. 侍天主造化定 ㆍ 三敬思想 ㆍ事人如天 사상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물질위주의 경제공동체도 아니고, 물질가치를 폄하하거나 억압하는 정신주의 공동체도 아니며, 인간중심주의 공동체도 아니다. 그것은 天․ 地․ 人
3실재가  어느 하나에로 흡수통합되는 합일(合一)이 아니고 상호회통(相互會通)하는 생명의 누림이다.
 둘째, 한민족의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생명은 하나다’라는 同歸一體 사상에 기초하여 지나친 個人主義 哲學이나 全體主義的 哲學을 거부한다. 개인과 전체의 관계는 ‘세포와 몸’의 관계처럼 동시에 살아있고 유기적 관계속에 있다. 심지어 살아있는 자손과 이미 세상떠난 조상들의 관계도 ‘하나의 큰 생명’ 안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믿는다. 東學의 性靈出世說과 向我設位論은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생각의 반영이다. ‘공복적 생명공동체’ 안에서는 개인과 전체가 행복해야하며, 산자와 죽은자가 다같이 행복해야 한다.
 셋째, 한민족의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他界主義와 來世主義가 아닌 創發的 現實世界를 중요시 하며, 그 구체화 과정에는 생명ㆍ정의ㆍ 평화ㆍ자치ㆍ자발성의 가치가 필수적이라고 간주한다. 인간평등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불필요한 殺傷이나 자연에 대한 汚染行爲가 단죄되는 ‘生態學的 倫理’ 사상이 동학의 內修道文과  弊政改革案12條  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공복적 생명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려면 정치적 제도와 질서를 갖춰야하는데, 공동체구성원이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주체자로서 ‘참여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넷째, 한민족의 ‘공복적 생명공동체’는 그 형이상학적 철학적 실재관이 ‘존재’(being)보다 ‘생성’(becoming), 리(理) 중심의  靜態的 秩序보다 기(氣)중심의 力動的 過程을 중시한다. 현대철학사조로서 말한다면 分析哲學보다 過程哲學 思潮에 더 친화적이다. 특히 東學사상체계가 그렇다. 그 철학적 기질 안에서는 역동성, 창조적 모험, 유기체적 관계성, 새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추구등이 강조된다. 어쩌면 지난 100년 혹은 짧게는 한국전쟁 후 60년동안 비교적 짧은 기간안에, 한민족이  産業化ㆍ民主化ㆍ情報化 사회에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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