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31 (20:16) from 203.252.17.163' of 203.252.17.163' Article Number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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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선교과제로서 해석학적 종교신학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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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선교과제로서 해석학적 종교신학 정립

김경재(한신대, 조직신학)


[1]들어가는 말:  왜 해석학과 종교신학은 책임적 신학도의 관심의 되어야 하는가?  

1. 오늘의 지구촌, 한국사회는 열린사회로서 다양한 종교-문화가 함께 숨쉬는 사회라는 점.
  세계종교분포현황: 기독교:15억, 이슬람교:10억, 힌두교:7억,불교:3억, 유교:,기타 민족종교:  
2. 오늘의 세계와 한국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난제들의 해결은 특정종교 하나만으로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관용과 협동이 없이는 분쟁, 갈등, 전쟁을 회피할 수 없다.
3. 인류는 진리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문화,역사, 자연환경의 서로다른 배경에 따라 고유한 문화     와 다양한 패러다임의 종교가 발달하게 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4.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복음의 진리는 영원하고 절대적일지라도, 복음의 구체적인 표현과      삶으로서의 "서구역사적 기독교 형태"는 상대적이고, 특정한 역사적 인간상황에서의 그리스도     인들의 반응결과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결과 "다양성 속의 일치"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과 정신이 고양되고, 복음의 "선교지 해당문화와 역사현실 속에로의 肉化"가 선교과제가 되었     다.
5. 한국사회에서 우리들의 조상들의 구원여부의 문제, 타종교들과의 대화와 협동문제, 복음이 한     국 문화 속의로의 토착화문제가 현안의 문제로 닥아세게 되었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취하는 세가지 입장

  (1) 배타주의적 입장(정복론적 입장): "오직 하나의 참종교, 한 구원자가 있을 뿐이다. 타종교는 비진리이며,정복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대화나 종교간의 협동은 불필요하다."
   장점: 자기가 귀의 하는 신앙진리에 대한 확신과 선교의 정열, 신언(神言)으로서의 경전에             대한 귄위와  교회애 대한 사랑.( 성경과 그리스도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단점: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배타적, 정복적 태도는 같은 사회 안에서 긴장,갈등,불화, 전            쟁등을 일으킨다. 타종교문화 전통의 다양성에 대하여 연구하지 않고 독선적 태도와             편견을 지닌다. 하나님의 무궁성과 인간의 역사적 상대성을 간과한다.

(2) 포용주의적 입장( 성취설의입장): "오직 한분 하나님만이 진리이시며, 하나님은 다양한 민족과 나라들의 문화와 종교들을 경륜하셨다. 잠정적, 예비적, 불완전한 타종교의 구원체험과     구원의 길들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완성되고 성취된다."
   장점: 하나님의 무궁성과 인간의 역사적 상대성에 대한 인식과,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긍정한            다. 타종교 안에 있는 윤리적 , 종교적 진리와 귀중한 유산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동을            추진한다. 살아계신 영존하신 하나님만을 절대라고 생각하며, 모든역사적 종교의 상대            성을 감지한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진리와 은혜의 온전성과 투명성을 간직한다.
   단점: 역사적 기독교의 우월성을 전제하고, 타종교의 불완전성과 열등성을 암묵적으로 전제            함으로 참다운 대화와 협동의 길을  불가능하게 한다.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 일반             계시와 특수계시의 이분법적 도식이 서구 백인신학 중심의 독선적 패러다임이다.

(3) 다원주의적 입장( 생명구원설의 입장): "궁극적 진리체험의 길은 문화, 역사, 자연환경의 차이에 따라서 다양한 길이 있다. 종교의 구원 패러다임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구원교    리의 우열경쟁을 지양하고 생명구원의 실천현장에서 서로배우고 협동하여 성숙해가야 한다."

   장점: 인간 구원체험과 진리인식의 상대성, 구원개념의 다양성과 구원론 패러다임의  제한성           을 충분히 숙지한다. 인간 삶의과정을 진리체험의 지평확대심화 과정으로서 파악한다.  
   단점: 개별종교의 궁극성과 자기 정체성, 종교적 정열, 선교의 정열을 약화시키고 섣부른          보편구원론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미성숙한 사람은 종교혼합주의, 상대주의로 오해한다.


[2] 주제의 핵심에 대한 신학적 고찰

  왜 세상에는 다양한 세계관, 철학사조, 종교문화들,그리고 다양한 신학운동이 있어왔는가? 그것은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진리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를 띄고 나타날 적엔 언제나 진리를 체험하고 언표하는 구체적 인간공동체가 겪는  삶의 체험과 삶의 표현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체적 인간공동체는 추상적으로 존재하지않고 구체적이고도 독특한 기후 지질 토양의 조건, 역사적 조건과 환경, 언어구조와 문화전통, 생산양식과 경제적 제반조건에 구속당하고 동시에 그것들의 제약조건을  극복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순수계시는 언제나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굴절된 형태를 띄면서 경전, 제의, 신학, 문화형태 속에 담겨서 전승된다. 그래서 문화와 구원체험으로서의 종교적 상징체계는  다양하고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지구상의 문화와 종교가 단조롭거나 단색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원무궁하심이 그 하나의 이유이며, 또다른 이유는 인간공동체 집단의 삶의 체험과 표현방식에  다양성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트푸르트학파의  비판적 사회철학자 율겐  하버마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과 관심의 영역은 크게 세가지로 범주화하여 대별할 수 있다.
  첫째관심의 영역은 흔히 우리가 자연과학 탐구영역이라고 대별하는 분야이다.  경험적이고도 분석적인 자연과학적 학문들은 질서정연한 자연의  항구적 법칙과 이론들을 찾아내려 하며, 그 법칙을 활용하여 자연을 지배 조정하며 예측하려는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이성(理性)기능 중에서도 '도구적 이성'을 발전시킨다. 이 영역의 관심은 사실성, 이론 정합성, 실증성, 효용성등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둘째관심의  영역은 흔히 우리가 인문과학 영역이라고 부르는  삶의 분야이다. 이 분야 연구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문화전통이라고 일컫는 역사와 문화현상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  현실세계이다. 이러한 영역에 대하는 인간의 관심은 역사적-해석학적 학문들을 통하여 역사와 전통 속에 표현되어있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데 관심을 가진다. 인간적인 삶이란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흡수하여가는 창조적  해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서 인간의 이성적 활동은 '역사이성'을 집중적으로 구사한다.
    셋째관심의 영역은 흔히 우리가 사회과학 영역이라고 부르는 정치 경제 사회활동의 영역이다. 이 셋째관심의 영역에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배 피지배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왜곡된 관계, 정치경제적 사회체계와 인간의 생활세계의  갈등관계등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념비판과 사회비판을 통한 해방적 관심에 집중된다. 그리고 '비판이성'이 주도를 한다.
   인간의 인식과 관심을 가치영역별 분화된 범주로 나눌 때, 신학의 학문적 성격은 초월자와의 관계라고하는 계시적 차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학문으로서 존재하는 한  둘째번 관심의 영역 곧 '역사적-해석학적 학문분야'에 속한다. 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개념은 역사나 전통과의 공주관적(共主觀的) 대화를 통해서 역사와 전통속에 담겨있는 진리의 의미를 '이해'(Understanding)하는 일이다. 물론  신학의 전공분야를 더욱 세분화 하면, 하버마스가 분류한  삶의 인식의 세가지 영역과 그 각각 영역에 대응하는  방법론적 관심이, 신학 안에도  모두 중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서학의 문헌비평학이나  성서 고고학분야의 탐구는 거의 자연과학적 탐구방법을 활용해야 풀릴 수 있다.  또 기독교윤리적 관심, 가난한자들의 해방과 인식론적 특권에 관한 주장, 남미의 해방신학이나 한국의 민중신학의 방법론 속에는 하버마스가 말하는바 인간의 세번째 관심과 인식의 범주 곧 해방적 관심을 핵으로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의 두꺼운 중심영역은 그 본질상 역사적-해석학적 관심과 인식을 주로하는 둘째번의 관심과 인식의 대상세계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중심개념은  자연현상의 사실성을 분석, 설명, 개조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현상의 소외성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이념비판적 성찰 곧 정치경제학적 해방이라는 관심도 아니고,  그 학문의 중심적 성격은 삶과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 우주 속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소외를 극복하는 구원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3] 종교신학 정립의 기초적 토대로서 해석학의 중요성

 한국 신학계와 목회현장에 한국신학 수립을 위한 한국 기독교공동체의 진지한 학문적 노력은 1960년대 이후 뚜렷한 두개의 선을 나타내 보이면서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1960년대 중반기에 월간 <기독교 사상>지를 매개로 하여 펼쳐지고 지속되어가는 복음의 "종교-문화적 토착화" 과정이요, 또하나는 1970년대 중반기에 태동하여 주로 <신학사상>지를 매개로 하여 펼쳐지고 지속되어가는 "사회-정치적 토착화"과정으로서 민중신학의 태동이 그것이다. 두가지 모두 복음이 한국적 민족공동체 속에 외래 서구종교 형태로서가 아니라 보다 "생명의 떡과 생수"로서 육화(肉化)하기 위한 진지한 몸짓이었다. 전자는 토착화신학, 문화신학,그리고  종교신학의    형태를 띄고 끈질기게 추구되고 있으며, 적지않는 초기의 열매를 거두어 드리고 있다.  후자는 민중신학, 정치신학, 한국여성신학의 형태로서 역시 진지한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충실하고 알찬 한국신학이 보다 온전한 형태로 세계신학게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적 종교문화신학이나 민중신학이나,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그간 보다 충실하게 논의되지 못한 영역이 본격적인 해석학 분야였다. 해석학은 오늘날 20세기 학문분야에서, 특히 정신과학 분야에서는 피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인 것이다.   신학이 계시의 학문이며 사도적 전통과 권위에 복종하는 고백과 믿음 안에서의 순종의 학문이라는 독특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신학의 학문적 성격이 갖는 그러한 이유를 빌미삼아 "해석학을 비켜 지나가거나 도외시 해서는 아니되며", 계시와 신앙고백적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모든 인문과학의 꽃이랄수있는 해석학을 "뚫고 지나가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신학은 학문임을 그치고 억측과 독단과 정당성 없는 권위주의의 희생이 되어 현대문명사회에서 하나의 사적인 일거리, 사적인 관심거리로 전락되어 버린체,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의 빛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장과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성숙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성경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다. 다른 어느나라 그리스도인들 보다도 성경을 사랑하고  많이 읽고, 믿음과 생활의 기본원리로서 받아드리고 있다는 사실임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었다는 사실, 날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영감과 은혜와 생명의 능력을 받아 살고 있다는 사실, 예배에서 설교를 말하고 들으며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며, 회개하고 은혜받아 감격해하는 그 모든 과정이 "경전"과 "사도적 전통" 속에 농축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구원의 진리가 지닌 "능력과 의미가" 해석학적 과정을 통하여 오늘 여기에서 한국인의 생명속에서 현재화(現在化)하고 육화(肉化)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독자가 알던  모르던, 의식하던지 아니하던지  문제가 아니다. "해석학"이라는 용어나 해석학의 여러가지 이론과 법칙들을 이해하거나 못하거나 그런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사도적 전통을 통하여 한국인이 구원의 "능력과 의미"를 체험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학문적 이론으로서의 해석학적 설명 이론보다도 앞서고 "해석학적 사건으로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 교과과정 안에서, 성서신학이나 이론신학 과정 속에서, 신학도들은 "해석학" 또는 "해석학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성서주석학의 기본지식으로서, 본문 텍스트의 바른 "이해의 기술이론"으로서, 신학도들은 해석학에 관하여 많은 말을 들어왔지만, 현대 정신과학 분야에서 일어났던 치열하고도 진지한  철학적  해석학 논쟁이나,  사회과학적 해석학 이론 논쟁의 의미에 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진보적 신학교육기관에서는  불트만의 "비신화론"을 공부할 때, "전이해"(前理解) 개념이나, 이해와 신앙의 관계와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호관계성"에 관하여 듣기도하고 독서도 하지만, 인간의 존재방식 자체가 다른 모든 생물과 구별되어 바로 "해석학적 존재"이며, 해석의 과정속에서 인간의 삶은 영위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자들과 신학도들은 너무나 쉽게 모든것을 성령의 은혜와 감동감화, "성령의 내적증언"이라는 교리에로 도피한다.
   그러나, 해석학이 말하려는 것은, 해석학적인 이해의 과정이  "성령의 내적증언" 을 대신한다거나, 하나님의  계시적 구원행위의 주권적 선행성(先行性)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 영혼 안에서 성령의 진리조명과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 행동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말해서, 그러한 은혜의 사건이 인간에게 의미있는 능력의 사건으로서 체험되고 이해되기 위하여서 "해석학적 사건에로의 인간정신의 참여"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않으면 인간의 인격적, 영적 의미체험은 한갖 기계적 물리사건이 되어버리거나, 악령에 사로잡히는 자기상실의 인간소외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4] 현대 해석학 이론의  인간존재방식에 대한 통찰들

  우리는  '종교신학' 수립을 위한 해석학적 조명을 시도하기 전에 현대 해석학이론들 중에서 종교신학의 정립에 의미있는  20세기 해석학 이론들의 몇가지 통찰을 개관하기로 하자.  우리 논제의 성격상 여기에서 우리들은 현대 해석학 이론의 모든 과정을 고찰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과, 그에 대한 율겐 하버마스의 비판, 그리고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전환 이론에 국한 하여 살피기로 하자.  왜냐하면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왜 종교신학 및 토착화신학 이론은 해석학적 통찰들을 거쳐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며, 하버머스의 비판적 해석학 이론은 전통과 권위의 왜곡되고 은폐된 언어성의  형태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은 한국과 같은 다원종교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의 구원 상징체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지를 눈뜨게 해주기 때문이다.
 
 1. 슈라이에르맛허로부터 시작해서 빌헤름 딜타이에 이르러 일단 완성되는 '고전적 해석학'은 양자 모두 당시를 풍미하던 자연과학적 학문의 객관성에 대립하여, 정신과학의 학문적 특성과 그인식론적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해석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그들도  부지중에 자연과학적 진리인식의 도식 곧 '주체와 객체'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양자간을 다리놓으려는 주객구조의 도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로마서 강해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고전해석학에서는  로마서를 읽는 독자(신자)는 일단 중립적인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모든 한국의 역사적 상황 밖으로  나와서서, 객관적 자세를 견지하려는  자연과학자의 태도처럼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중립적인 위치에 자신을 정위하고 객관적으로 바울의 이야기만을 경청하려고 해야 한다. 이해의 대상인 텍스트 로마서 속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독자(신자)는 바울의 마음에 느꼈던 체험과 같은 체험을  '감정이입'을 통하든지  로마서 서신에 표현된 바울의  구원체험 내용을  '추체험' 함으로서 이해가 성립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해자(해석자)가  본문해석  행위이전에 독립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선재한다는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또한 이해되어야 할 텍스트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본문 속에 고정불변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정학하게 알수 있다는 해석의 엄정한 객관적  인식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19세기 역사주의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사실성을 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런데 20세기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그러한 소박한 객관주의적 인식론과 역사주의, 그리고 선험적 주체성의 철학적 관념론을 넘어서려고 했던 것이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의 통찰을 물려받은 가다머는 하이데거와 같이 무엇을 이해한다는 '이해'의 현상은 자연과학에 대비되는 정신과학의 독특한 진리인식 방법론에 그치는것이 아니고, 인간존재가 다른 모든 생물학적 존재나 사물적 존재와 구별되는 특징으로서  인간의 독특한 존재방식이라는 것을 밝힌다. 인간적으로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무엇을 이해하고, 이해되는바의 것으로서 자기존재의 내용을 형성해가면서 살아가는 해석학적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이해'는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이뤄지지않고 무의식적으로, 일상생활속에서 자각되지 않는 상태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행된다. 친구와 대화를나누고, 구멍가게 주인과 잡담을 하고, 신문과 텔레비를 보면서 웃고 분노하며, 소설을 읽고 성경을읽고 설교를 듣고,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명곡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등 그 모든 행위가 '이해'의 연속이며, 그 모든 행위동작 속에서는 끊임없이 해석학적 사건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인 것이다.
 3. 가다머는 가치중립적으로 인식대상에 맞서서 선재하는 인식의 주체자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해(해석)하기 이전에 모든형태의 이해(해석)작업 자체를 가능하게 하기도하고, 제약하기도 하는 이해자(해석자)의 '선이해구조' (先理解構造)에 주목 한다.  이해자 곧 로마서라는 바울의 편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해석자 한국인 김씨는 수천년동안 흘러내려온 한국문화와 역사가 그에게 준 문화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미 자기와 세계에 대한 어떤  선이해를 가지고 있다. 죽음에 대하여, 의미있는 삶에 대하여, 죄책감정과 심판사상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과 증오에 대하여, 정의로움에 대하여, 인간다움에 대하여, 공동체에 대하여,  남녀성차별과 그 질서에 대하여, 시간과 영생에 대하여 등등 해석자 김씨는 어떤 선이해를 가지고 선이해 구조 안에 있다. 김씨는 로마서 편지 앞에 백지상태로서 대면하지않고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선이해구조'속에서 텍스트를 대하고 있다.
   인간의 '선이해구조'는 고정불변한 상태로 되어있지않고 삶의체험과 대상과의 만남 속에서 언제나 변하는 매우 탄력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선이해구조'는 다른말로 표현하면  삶을 이해하고 세계를 체험해가는 해석자의 비고의적 편견(Vorurteil, Prejudice) 이기도한데, 인간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자가 아니고 역사적 유한자이므로 이러한 '선이해구조'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걸음 더나아가서 그 '선이해구조와 선이해'자체는  새로운 역사적 전통과 새로운 경험지평과를 접맥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4. 인간은 언제나 특별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 안에 있기 때문에, 일정한 상황속에 유폐된 존재로서는 사물과 진리의 전체성을  통체로 일시적으로 조망할 수 없고 일정한 정신적 시계(視界)와 관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인간 실존방식을 인식론적 "지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평은 결코 고정되어 있거나 폐쇠적인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산에 오르면 전망시계가 더 넓어지듯이,해석학적  지평은 삶 속에서  끊이없이 확대심화 된다. 해석자가 텍스트를 통하여 새로운 전통이 지니는 삶의 지평과 만날 때, 해석자의 마음 속에는 '지평융합'(地坪融合,Verschmelzung der Horizont)이 일어난다.
   한국인 김씨는  로마서를 읽음으로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죄와 심판에 대하여, 사랑과 용서에 대하여, 하나님의 분노와 아가페적 사랑에 대하여, 역사의 진행과 순환과 목적에 대하여 새로운 지평을 만나게 되고, 이전에 자기가 지닌 지평과의 융합을 통하여 버릴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융합시킬것은 융합시킨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김씨가 로마서를 읽기전에   그가 지녔던 모든 한국인으로서의 존재와 삶의 지평을 송두리체 폐기처분하고 성경에 나오는 그것들로서 온통 대치하는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울사도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지녔던 이 세상 모든 것을 분토처럼 여기고, 이 세상을 못박아버린다는 고백은 그의 철저한 중생과 전환을 인상적인 문학적 표현형식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는 여전히 유대인으로서 제사, 율법, 하나님의심판,예언자, 약속과 언약들, 양심, 종말, 시간과 영생등등,사울로서의  전이해가 있기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속죄신앙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값없이 주는 복음의 감격이 가능하여 바울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 역설같지만, '선이해구조', '선판단', '기존지평', '전통'등은 새로운 지평융합을 가능하게 하고, 삶의 세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학적 고리이며 중매자인 것이다. 이것은 해석학적 이해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대화적이며, 해석학적 순환원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그모든 해석학적 이해의 과정은  언어성을 본질로 하고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한국의 그리스도인 김씨가 세계와 인생을 보는 마음의 눈에는 여러가지 해석학적 지평들이 융합되어 마치 하나의 커다란 호수처럼, 혹은 잘 삭은 퇴비의 옥토처럼 거름지다. 그의 마음의 밭에는 단군 할아버지 이래로 줄기차게 종교적 영성의 전통으로 내려온 하느님 신앙이 있었는데, 그 하느님은 지고하신분, 밝고 광명정대하신분, 대자대비하신분, 억울한 사람과 지성이 지극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 하늘에 계신분으로 믿어져 왔다. 그러면서도 그 한국인의 전통적 하느님은 너무나 지고하셔서 하늘 저 멀리 어덴가에 존재할 것같은 초월적 하나님 이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을 읽고서 성경에 증언되는 하나님 신앙에 의해 김씨가 믿는 하느님과 성경이 전승하는 하나님신앙이 지평융합을 이루어 보다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이 없고서야 성서가 전하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는 한 분 하나님"(엡4:6)의   초월성, 내재성, 과정성이 동시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김씨의 마음의 밭에는 불교에서 영향받은 화엄사상도 있고, 유교에서 배운 천명사상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 체험안에서 작은 지평들이 융합되어 역사적 인격적 하나님이면서도 이름할 수 없고 텅빔의 충만으로 계시는  無와 空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이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신관을 예로들어 보았지만 구원과 영생, 심판과 용서, 자비와 사랑, 진실과 성실, 의와 공의로움등 모든 중요한 신앙적 개념들도 그렇게 지평융합 되었다. 물론 쉽게 지평융합되지 않는 요소들도 있다. 그것들은 융합되지 않은체 병존 시키거나 결단을 통해 선택해야 한다.
 6. 김씨의 마음 속에 이뤄지는 삶 체험과 진리체험의  지평융합은 전통과 새로운 전통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뤄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언어성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은 생각을 한 연후에 언어로 표현하는것 아니라, 사유한다는 행위자체가 언어성 안에서 이뤄진다. 물론 언어는 말로서 하는 구어(口語)와 글로서 하는 문어(文語)와 각종 상징어(象徵語)가 있으며 그것들은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교육과정을 거치고 언어로서 발달하고 체계화해왔던 역사적 과정이 있었지만, 좀더 곰곰이 생각하면 언어성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되는 기초조건이기 때문에 언어없이는 생각도 할수 없고, 다른 의미를 이해 할수도 없으며, 따라서 지평융합 자체도 불가능하다.
  인간이 세계를 가질수 있다는 사실자체가 언어에 의존한다. 모든 이해는 언어라는 매체를 통하여 창출되며, 따라서 그 본질은 언어적이다. 세계가 언어적으로 구성되고 인간의 인식활동 자체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형성되는 한, 모든 의미의 이해는  언어의 독특성과 언어의 문법적 체계에 의하여 그 특유한 사고의 방식과 이해의 방식을 드러낸다. 헬라어, 히브리어, 중국어, 독일어, 한국어는 각각 독특한 언어문법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어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경전의 번역이 가능하면서도, 번역하기 힘든 톡특한 뉴앙스를 가진 어휘들은 해당문화의 언어 속으로 그 의미가 지평융합되면서 의역(意譯) 된다.
  산스크릿이나 팔리어로 본래 기록전승된 원시 불교의 경전들이 중국어로 번역될 때, 이미 중국 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노장사상의 無, 空, 無爲, 寂定등의 어휘나 개념이  없었으면 불교경전의 중국어 번역이란 불가능하였거나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원시불교의 경전이 원어로부터 중국 한자에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본래 인도종교로서의 불교사상이 중국 노장 사상과 지평융합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리하여 인도불교는 중국불교화 된것이다. 중국에서 화엄종을 중심으로한 대승불교가 그리고 선종(禪宗)이  활짝 피어난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본래 하브리어와 헬라어로 된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었다는 사실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7.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서는 언어와 전통은 불가분리적이다. 철학적 해석학은 인간경험의 특성과 이해의 문제, 그리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언어와 전통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비판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언어적 전통의 매개를 통해 도달한 인간공동체의 합의된 현실 안에도 사이비 의사소통에 의해 왜곡되고 강제된 요소가 있을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모든 전통들이 진정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려면, 전통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무제한한 토론의 가능성 곧 상호의사소통이라는 공론화의 가능성이 전통안에서 확보되지않으면 않된다고 강조한다.
    전통 안에서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인간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종교문화사 속에서 얼마든지 예를 찾아 볼수 있다. 특히 종교가 초기의 영적 생동력을 잃고 지배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거나, 인간사회를 비인간화시키는 종교적 관습으로서 역기능하는 경우를 생각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중세암흑기의 교권통치사회, 바라문교와 힌두교 사성제의  신분계층적 윤회사상, 신라와 고려말기에 왕권의 시녀로 변질한 사이비 호국불교사상, 조선조 말기 제사문제로 천주교 신자들과 정적들을 박해한 유교적 이데올로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8. 한국은 전형적인 종교다원사회인데, 근래에 일부 한국 개신교안에  매우 배타적이고 호전적이며, 타종교 말살정책을 선교의 열정이라고 착각하는  근본주의적 광신주의자들이  발호하여 종교간의 갈등 특히 불교와의 긴장갈등을 유발시키는 불행한 일이 연속되고 있다. 그들의 그러한 배타주의적이고도  정복론적 선교신학이, 넓고 길게 볼 적엔, 한국과 아시아의 기독교 선교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극단적인 배타주의적 선교신학이 발생하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성경관이 대체로 문자주의적이며, 매우 열광주의적 신앙체험을 가지고 있거나 극단의 교조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에 쇠뇌되거나 유폐되어 있기 때문에  불교 천도교 유교등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거의 백지상태이거나 매우 편파적이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사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의하면,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이기를 신조로하는 자연과학의 연구에서도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는 일정한 과학적 이론체계의 집성물로서의 틀 곧 패러다임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과학사에 나타난 우주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각양각색의 패러다임들이 있어왔다. 프톨레미 천문학, 갈리레이 역학, 뉴톤의 고전적 물리학, 양자물리학, 최근의 혼돈이론등등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이론들은 자연을 이해, 설명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일정한 특정 패러다임에 친숙하거나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도리혀  다른 자연과학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가 친숙한 패러다임에 매우 집착적이다. 그런 사람은 자연과학자 일지라도 '패러다임전환'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과학적 패러다임사이에는 그 정합성과 이론의 치밀성과 적용범위의 광역성에 있어서 차등이 있고, 그래서 경쟁하는 패러다임들중 최고의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9.   그와 마찬가지로, 일단 한국의 고등종교들, 적어도 불교,유교, 천도교, 원불교, 도교등은 인간 구원체험의 다양한  구언패러다임이라고 볼 수있다. "타종교 안에도 구원이 있단 말인가?"라는 대심문관의 종교재판식 질문은, 매우 기독교 호교론적 열정을가지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질문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불교신자와 천도교 신자와 유교신자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은 다르듯이, 기독교적 구원패러다임과 불교적 구원패러다임은 다르다. 그러나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듯이 기독교에 의하여 중생하고 구원체험을 한 사람과, 깨달음의 해탈과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의하여 진여자성(眞如自性)을 회복한 사람의 삶의 행적은 몹씨 친화적이다. 다시말해서, 본래적 인간성을 회복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자유하고, 사랑하며, 정의를 위해 힘쓰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타자의 생명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닮거나 통하는 면이 있다.
  토마스 쿤이 말한대로 양자물리학이 가장 최근의 과학적 패러다임이라는 사실로서  밝혀졌다고 해서, 뉴톤물리학은 과학이 아닌것이 아니라, 그것도 훌륭한 한 과학적 패러다임이듯이,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의 복음이 주는 구원 패러다임이  가장 온전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불교의 불자들은 그들의 구원패러다임을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양자 구원 패러다임의 섣부른 우월론 경쟁이나 종교비교론적 접근방식은  바람직 하지 않다.왜냐하면 국화꽃과 장미꽃중에서어느꽃이 더 아름답운 진짜 꽃이냐고 묻는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이 서로를 상보함으로서 온전한 빛의성질을 성명해 내듯이  한국의 가장 위대한 두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서로 상보적 관계 속에서 서로 배우고 서로의 진리 체험에 의해 서로를 조명하면서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정행(正行)에 협동해야 할 것이다.
 

[5] 맺는말 : 해석학적 종교신학은 선교의 정열을 약화시키지 않고 성숙하게 강화한다

 한국신학의 정립은 신학자들의 머리나 서재에서 신학적 조립품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의 탯집에서 잉태되고 출생되는 것이다. 서구 신학의 전통과 한국종교의전통을 종교적 대화나 비교연구를 통하여 종교신학 혼합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거나, 번역신학작업으로서도 한국신학이 정립되는 것 아니다. 한국인이 복음의 본질에 부딪혀 그들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받고, 그들의 전통이 말하는 의미와 가치들과 충분하게 지평융합을 이뤄 자기 영혼을 통한 주체적 신앙고백과 신학적 진술과 상징적 종교의례표현을  할 때, 거기에 자연스러운 한국신학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한 한국신학의 정립은 생명의 잉태와 출생과 성장과  같은 매우 생명론적이고 유기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신학자들의 심령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진행사항인 것이다. 그러한 창조적 과정에서, 해석학적 통찰과 해석학적 조명은 한국신학 정립에 절대불가결한 기초훈련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해석학이 말하려는 모든 인간 현존재 방식, 이해의 과정, 역사성, 언어성, 이념비판론, 의사소통이론등은  한국신학 정립과장에서 독단적 광신주의와 무책임한 상대주의나 보편주의를 극복하게 하고,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을 바르게 지켜가면서 매우 열린 개방성을 지닌 신학적 작업을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기독교와 한국의 타종교와의 만남, 그들을 향한 선교정책에 있어서 바람직한 모델은 이상의 해석학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기존의 배타주의적 정복론적 모델이어서는 않된다는 것은 명백해진다. 심지어 성취설적인 포용주의적 모델도 보다 탄력적인 유연성과 해석학적인 겸허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정복론적 모델과의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복음과 피선교지의 문화-역사적 상황과의 상호관계성은 "해석학적인 순환성" 속에서 상호 주체적이며, 상호조명적인 쌍방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모델을 새로운 품종나무의 새로운 "접순"을 옛 나무가지에  접목함으로서 새품종의 과일을 얻고자 하는 나무의 접목과정으로 비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모델을 "접목모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접목모델은 새로운 품종의 유전인자가 일으키는 "창조적 변혁의 능력"을 담보하면서, 동시에 그 우성적 유전인자가 현실화 될수 있도록 성장과 과일의 수분작용을 진행시키는 본래 기존의 나무가 지닌 주체적 생명활동을 동시에 담보한다.  
  해석학적 종교신학은 흔히 오해하듯이 종교다원론이 빠지기 쉬운 무책임한 종교적  상대주의나, 종교혼합주의나, 보편적 종교구원론을 모두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해석학적 종교신학은 기독교의 복음전도의 사명을 약화시키자거나 중지하자는 의도가 아닌 것은 더욱더 말 할 필요가 없다. 도리혀, 해석학적 종교신학은 신구약성서 전체를 통하여 들려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일무이하신 유일신 신앙에 충실하자는 것이며, 하나님 그 자신 이외의 모든 역사적 종교, 경전, 신학체계, 교의등을 하나님처럼 절대화하려는 우상화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복음의 자유를 확보하여, 열린사회, 지구촌 시대에서 복음의 우주성과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정체성을 동시에 확보하자는 것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민족과 종교문화가 하나님의 경륜과 통치권아래 있음을 적극적으로 고백하자는 세계종교현상에 대한 신학적 해명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祭禮 儀式의 한국문화 土着化 과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Korean Inculturation of the Ancestormemorial Services for the Korean                                                 Protestant Churches -






           이 논문은 1996-97 한신대학교 학술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된 논문임.








              연구자: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김경재





                 1997년 7월30일
      그리스도교 祭禮 儀式의 한국문화 土着化 과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Korean Inculturation of the Ancestormemorial Services for the Korean                                                 Protestant Churches -
                                                         
                                          
                                                  

                        목 차

1. 서론

2. 동북아 문화전통 속에서 그리스도교 문화토착 갈등과 오늘의 현황

  2-1. 복음의 傳敎와 문화상황과의 관계성
  2-2. 마테오리치의 補儒論的 문화적응주의와 초기 조선천주교인들의 문화갈등
  2-3. 개화기 한국 개신교 안에서 일어난 제사의례 논쟁에 관한 고찰

3. 죽음이해및 종교적 상징과 종교의례의 초월적 매개기능
  
  3-1. 인간의 죽음이해와 인간의 자기초월적 반응
  3-2. 종교의식에 있어서 상징과 실재

4. 문화선교의 지평열림과 한국교회 상제례 토착화 작업
 
  4-1. 피선교국 문화신학의 발아와 문화선교 과제의 자각
  4-2. 상제례에 임하는 기독교인의 기본관점
  4-3. 장례에 관련된 기초적 문제점 고찰

5.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의 추도예식 분석과 그 신학적 의미

  5-1. 한국천주교회 추도예식
  5-2. 개신교 예수교 장로회 추도예식 지침서
  5-3. 진보적 개신교단의 추도예식 지침

6. 맺는말


 참고도서







      그리스도교 祭禮 儀式의 한국문화 土着化 과제에 관한 연구   


1.  서론

  우리의 연구주제  "그리스도교 祭禮儀式의 한국 토착화 과제"는 동북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의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론을 특히 祭禮 문제를 중심으로하여 고찰함으로써, 특히 한국 개신교 안에서 內燃하고 있는 종교문화적 갈등문제에 대하여 문화신학적 대안제시를 통해  한국사회와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적 분쟁을 완화시키고 바람직한 그리스도교와 한국 전통문화와의  화해를 도모하고저 한다.
  16세기 중국에서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1552-1610)의  補儒論的인 문화적응적 선교정책이 로마 바티칸 당국에 의하여 제약을 당하고, 典禮論爭(rite Controversy) 결과 중국적 종교예식과 '上帝, 天'등 중국적 신호칭 사용을 금지한다는  교황 클레멘트 11세의  금령(1715년)과 교황 베네딕트 14세에 의한  제사예전 집행과 그 참여에 관한 재차  禁令(Ex qou singulari,1742)이  발표된 이후 그리스도교의 중국선교는 좌절이 되었다. 마침네 교황청에 의하여 보유론적 문화적응 선교정책을 폈던 예수회의 중국선교부가 교황청에 의하여 해체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러한 당시 로마 카토릭교회의 타문화 배타적 독선주의에 기초한  동북아시아 유교적 정신문화 유산을 이교적 우상숭배로 규정한 선교정책은 그 뒤 10년후(1784년)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한국 천주교회 신도들의  가정에 엄청난  피바람을 불러오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동북아시아 유교문화전통과 그리스도교문화 전통사이에 끊임없는 문화갈등적 관계의 제일차적 원인제공이 되었다.
  이 연구는 전통적 유교적 문화유산으로서의 상제례의 종교의식이 그리스도교(천주교와 개신교) 선교 역사과정에서 폐지되고 부정되어 왔던  교회사적 고찰, 그러한 선교정책 결정에 대한 신학적 타당성및 부당성에 관한 비판적  고찰, 그리고 그런  선교정책이 적용되거나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 사회의 종교사회학적인 개화기로서의  시대정신 상황고찰, 그리고  오늘의 토착화론에서 재론되는 상제례의식의 제정에 관한 신학적 이론근거를 밝혀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주제는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이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해명되지 아니하면 않되는  매우 복합적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종교사적, 문화신학적, 선교교회사적, 정치사회사적 시각이  동시에 우리의 논제에 조명되지 않으면 바르게 해명되기 어려운 주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크게 다섯장으로 나누어서 고찰될 것이다. 각 장에서는 다음의 내용들이 검토 될 것이다.  
  제2장에서는 왜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복음과 그 복음이 傳敎되는  선교지 해당 문화와의 상호관계가 적극적으로 재고찰 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를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언급할 것이다. 동시에 18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방 그리스도교 선교정책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 할 것이며, 20세기 후반 오늘 한국 개신교 교계안에서 이뤄지는 상제례문제를 둘러싼 한국 가정 안에서의 종교적 갈등을 조명할 것이다.  
  제3장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상제례 의식에 있어서 그 외형적 형식을 규정하는 한국인의 내면적 사생관을 종교의례와 상관관계 속에서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사후의 생명관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사생관을 신학적으로  고찰 하면서, 종교의례의 상징성및 실재성의 관계도 살필 것인데, 왜냐하면 상제례 의식은 단순한 형식적 의식이 아니라 그러한 외형적 宗敎儀式을 집례하고 그 의식에 참예하는 사람들의 意識的 또는 無意識的  사생관, 인간감정의 정서적 반응형태와  그 표현성, 종교적 감성의 표현및 초월적 실재와의 매개수단으로서의 종교의식의 기능등 삼자관계를 고찰해야만 바르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제4장에서 우리는 위와같은 기초적 지식을 토대로하고 1960년대 중반기 이후 세계 기독교 선교신학의 변화추세와,  현재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안에서 시도되고 있는 상제례 토착화시론을 한국천주교 시안, 한국 진보적 개신교 시안, 한국 개신교 보수적 시안을 구체적으로 검토 비교 고찰할 것이다.
  제5장에서 우리는 이상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면서 우리 논제에 대한 잠정적 결론을  내려 볼 것이다.


2. 동북아 문화전통 속에서 그리스도교 문화토착화 갈등과 오늘의 현황

2-1. 복음의 전교와 문화상황과의 관계성
  
  喪祭禮 儀式을 둘러싼 그리스도교와 전통문화와의 갈등은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교의 종교문화적 전통과 피선교지의 전통문화와의 문화갈등, 문화적응, 및 문화변용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하려는 것은 상대적 문화형태를 초월한 영원한 "복음 그 자체"라고 주장하여 왔지만,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항상 일정한 서구 그리스도교 종교문화의 형식 속에 담겨지고 해석된 복음이었던 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된다. 선교사들은 그들의 종교문화 형식 속에 담겨져 있는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사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복음 그 자체와 문화와의 갈등문제도 신학적으로는 고찰되어야 할 문제점이 문화신학적 차원에서 있지만, 현실적  문제는 복음을 담고 있는 서양 그리스도교 종교문화와 피선교지 전통문화와의 문화적 갈등문제 였던 것이다. 한 문화를 형성했던 문화 실체로서의 종교와 그 종교적 진리체험을  상징적 제도적  그릇으로 담아 표현하는 일정한 형태으로서의 문화와의 관계는  "실체와 형식" 이라는 불가분리적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것이다.  
  더우기 喪祭禮 儀式과 같은 종교적 예식의 문제는 종교적 예식이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 관습적 요인들을 그 안에 함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어느 특정종교의 종교적 예식 절차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진리 형식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종교가 발생한 후, 그 종교의 핵심적 진리가 피선교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종교에 귀의하는 신자들의  삶 속에  새로운 종교적 진리가 보편적으로 내면화 하려면 종교적 의식, 특히 상제례와 같은 근본적인 宗敎禮式을 통하여 자리잡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자리잡은 상제례의식같은 종교의식은 쉽게 변화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그 변화를 외부적 힘을 통하여 강제적으로 이루려 할 땐 격렬한 반발과 진통이 동반되는 것이다.
  제23차 세계개혁교회  총회 (August,1997,Debrecen,Hungary)의 주제는 "복음과 문화"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도 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하나님의 선교신학의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복음과 문화" 의 상호 관계성을 신학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우리는 문화에 관한  잠정적 규정을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은 제7차 세계교회협의회 캔버라 대회에서 채택된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문화란 한 공동체에게 의미의 공동 틀을 제공해주면서 그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문화는 언어, 사고형태, 삶의 방식, 태도, 상징들, 그리고 전제조건들 속에서 보존      되고 미술 음악등 예술적 제축형태 속에서 축하된다. 문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과 집단유      산을 구성하는데 그것들은 또한  오고 오는 다음 세대에 전승되어 가는 것이다..."(WCC 캔버      라 대회, 1993)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서구 브르죠아 기독교 문명사회는 그들의 이념체계의 형태로서 그리스도교 복음을 자기 멋대로  변질시켰고, 그들의 문화 역사적 가치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절대화하여 19세기 유럽 백인문명의 문화이데올로기를 우상화하고, 그들의 제국주의적 수탈을 정당화하였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20세기 초 변증법적 신학 운동을 펼쳤던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한 신정통주의 신학운동은 역사적 시대적 산물로서의 일체의 문화적 실체로부터  복음 그 자체를 엄격하게  분리시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하였다.
   기독교를 포함한 일체의 역사적 종교들로부터 복음 그 자체를  철저하게 구별하려 했던 바르트 신학적 의도와  통찰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전반기의 개신교 선교신학을 주도한 바르트-크레머의 신학적 정렬과 통찰력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동북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그들의 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 곧 종교란   "인간 스스로 의로워 지려하는 인간적 성취시도(human achievement), 또는 인간적 自己義(human self-righteousness)"라고 보는 데 문제가 있다. 칸트웰 스미스(C. Smith)가 애써 강조하는 바처럼 "거룩한 전통의 축적물로서의 종교"는 항상 물상화되고 우상화 될 위험을 안고 있지만, 모든 위대한 종교체험은 결코 인간편에서 먼저 발동을 걸어서 발생하는   인간적 시도이거나 인간의 능동적 정신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모든 위대한 종교체험 안에는  "초월적인 것의 현존"이 있으며, 신성한 것에 의해 인간이  조명되고  변화 받는 자기초월 경험, 곧 "은총의 능력, 진리의 빛에 의해 변화 받는 경험" 이 있다. 바르트-크레머의 종교비판은 19세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자기 기만과  자기 포만감에 빠졌던 서구 19세기 자유쥬의적-인본주의적  기독교를 특히 염두에 두고서 비판한 것이다.   
  둘째,  바르트-크레머 선교신학은 복음과 문화의 만남에서 인간의 "해석학적 응답성"에 대하여 충분한 책임성과 자리를 주지 않았다.  즉 인간의 정신적 삶의 존재방식 자체가 해석학적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너무나 인색하였다. 복음을 받아드리고 복음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모든 과정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함으로서 "해석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리"를 박탈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삶에 있어서도  인간의 정신적 삶은, 식물의 물리화학적 반응과 다른 방식, 곧  "이해"라고 부르는  해석학적 과정을 통하여 전개된다.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에 대한  바른 이해,  고백, 신뢰행위이기 때문에  그 믿음의 사건이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 일지라도, 인간의 해석학적 응답과정을 통하며 인간의 참여적 책임성이 동반되면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문화와의 역동적 관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방식과, 반응하는 방식과, 표현 서술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21세기 기독교의 선교과제 중 하나는 "복음과 문화" 관계의 바른 정립이다. 특히 제3세계교회 선교정책에서 그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핵심적 과제가 된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정신문화적  백지상태에서 이뤄지지 않고,  동아시아의 종교적 토양과 그 문화유산들과의  긴장갈등, 투쟁, 대화,창조적 변혁, 지평융합 등을 통해서 이뤄지고 또 앞으로도 이뤄져 갈 것이다.   우리들의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필자의 신학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피력하려고 한다.

첫째, 복음은 자유,해방,정의,생명의 능력으로 사람들 속에 선포되고  위로부터 선물처럼 주어지        지만, 그 복음이  듣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과 생명수가 되려면 복음이 선포되는 문화적 역        사적 삶속에 성육화 되지 않으면 않된다.    
둘째, 복음의 토착화 또는 문화-역사적 삶 속에 성육화 하는 과정은 일방적인 문화이식이나
     문화정복을 통해 이뤄지지 않고  삶 체험의 "지평융합"과정을 통해, 토착인의 생명체험을        통해, 토착문화를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 시키면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셋째, 복음의 토착화는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거나 상대화 시키는 종교적 혼합주의로서 이뤄저서        는 절대 아니되고,  복음의 자기정체성의 질량적 확대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류문화를 서구 기독교문화 형태로서 획일화 동질화시키려 하지 않고 문        화의 다양성을 소재로하거나 또는 매게로 하여  복음을 꽃피우게 한다.
넷째, 복음은 한국문화에 새로운 도전과 생동력을 부여함으로서 한국 문화와 종교는 복음에 의해        조명되고 비판받으며, 역으로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의 문화와 종교에 의해 조명되고             영향을 받음으로서 서양의 그 것과는 다른 독특한 한국인의 문화-생명공동체를 형성한다.        즉 문화와 복음선교는 해석학적 순환구조 속에 있다.
다섯째, 한국인에게 복음이 받아드려지는 생명운동의 과정에서,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 근저 안        에 원형적  영성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을 가정하기로 한다.  그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원        형적 구조는 한국인 종교체험의 유형적 특징을 결정한는 構造的 形態素로서 "풍류도"라고        부르는 유동식의 입장을 수용한다.  풍류도는 구체적인 제도적 종교이거나 체계적 교리 집        적물이 아니라, 수만년동안  한국인들이 지질 기후풍토, 계절의 순환구조, 영성적 초월경        험, 거룩한 것과의 접촉경험과 경험방식, 궁극적으로 공동체적  삶이 지향하려는  비젼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면서 침전된 정신적 유전인자와 같은 성질의 것이다.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신학적 관점에서 한국에 전레된 그리스도교 선교정책이, 상제례토착화 과정에서 바르게 적용되었는지 고찰하기로 한다.


2-2. 마테오리치의 보유론적 문화적응주의와 초기 조선 천주교인들의 문화갈등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 속에 토착화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면서 우리는 17-18세기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될 때,  초기 카토릭 바티칸 당국의 문화 선교정책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교 선교에 얼마나 큰 역기능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단순한 선교영역의 확장에 지장이 초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련과 문화적 갈등 속에서 나이어린 피 선교국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조선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수난을 당해야 했는지를 좀더 비판적으로 냉철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17-18세기 조선 천주교도들이 받았던 박해의 원인이 단순히 제사문제를 둘러싼 종교
의례상의 교리적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다시말해서 초기 한국 천주교도의 박해는 세가지의 커다란 원인이 중층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었다.
  그 첫째 원인은 前近代的 당시 지배세력이 지니고 있던 신유학의 지배이념과 근대적 개화물결을 타고 들어온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한 개화세력과의 충돌 즉 사회지도 이념간의 충돌이었다. 사회를 전통적 왕족및 사대부를 중심으로하는 양반계층, 의술인 천문역관 생산기술인 및 전문관리를  중심으로 대두하는 중인계층, 농민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주축으로하는 상민계층, 그리고 제일 낮은 백정 노비 창우등 천민계층 이상 엄격히 구분된 사회신분계층을 지켜가면서  전통사회를 지속시켜가려는 유교적 지배계층과 남존여비사상이나  사회신분제를 철폐하려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한 계몽기적 개화사상과의 충돌이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둘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게된 원인은  조선왕조 지배계층간의 고질적인  당파싸움에 휩쓸린 붕당적 정쟁(政爭)의  희생물로서 정적을 궁지에 빠뜨리고 제거하려는 생존투쟁에서 서학이나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구실을 잡아 박해를 가하게 된 것이다. 초기 조선천주교의 박해기에 그 희생자들 대부분 남인계 사대부들 이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셋째, 천주교 박해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주자가례를 정통적 규범윤리와 인간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규범적 예법으로서 삼고있던 사회 속에서, 주자가례에 기초한 전통적 상제례 예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온 천주교의 선교정책과 바티칸 당국의 사목지침에 따르려는 한국 천주교도들이 당한 희생 이었다.
 요약하여 말한다면 초기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될 당시 상제례를 중심으로한 박해와 문화적 갈등의 원인은 단순한 종교의례적 원인만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제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론에서 이미 살핀데로 한국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자생적 교회성립은, 18세기 중국을 왕래하던 지식인들의 새로운 세계관과 철학 종교사상에 대한 학구적 관심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 본격적인 그리스도교 선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선교회는 에수회 수도회의 성교결과였으며, 특히 16세기 마테오리치(Matteo Richi,利瑪竇,1552-1610)의 업적의 결과였다. 마테오리치는 남경을 거쳐(1595) 마침네 북경에 들어왔다(1600). 당시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의 허락을 얻어 1601년 북경에 천주교회당을 세우고( 후에 아담샬이 보완개축하여 南天主堂으로 불림) 사광계(徐光啓) , 구태소(瞿太素),이지조(李之藻)와 같은 높은 학자와 고급왕궁관리를 비롯한 2,500여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커다란 선교의 열매를 거두었다.
 예수회 신부 마테오리치의 중국선교의 성공원인은 당시 명나라 중국황실자체가 문화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세계문명의 중심지라는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타종교및 사상과 문화유입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수용적 태도를 취했다는 문화개방정책이 그 중요한 상황적 원인이었다. 비록 천문지리 역학 지도제작기술, 시계자명종이나 만원경등 광학기계의 제작이나 활용, 풍금등 음악기계와 의료기술등 르네쌍스이후 서양 계몽주의 시대적 산물로서 서양문명의 기술적 결과물에 대하여 중국 황실과 지식집단이 큰 호기심을 나타내어 문화수용적 태도를 취했지만, 당시 중국은  문화대국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었기에 당당하게 문화개방정책을 위했던 것이다.
 여기에 상응하여 마테오리치는 중국의 고전 유학사상에 대한 깊은 연구결과 원시유교사상의 상제관(上帝觀)등 기본적 자연신학이 스콜라 신학의 자연신학단계에 어울리는 것임을 간파하고 자연신학에 부족한 점을 계시신학으로 보완한다는 점에서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정책을 확고하게 견지해 갔던 것이다. 이것은 마테오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부가 피선교지의 문화종교 전통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교를 그 문화 속에 육화시켜 나간다는 문화적응주의를 채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응주의란 복음의 본질에 위배되거나 충돌되지않는 한, 피선교지의 문화전통을 존중하고 그 문화전통과 함께 호흡하거나 수용하면서 복음의 본질내용을 피선교국에 육화시켜나 간다는 선교신학의 입장인 것이다. 마테오리치에 의하면 중국인의 上帝 숭앙의 祭天儀禮나  조상제사는 복음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는 중국의 문화적, 정신적 토양이며 전통적 유산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마테오리치는 <天主實義,2권 >, <敎友論,1권>,<西國記法,1권>, <幾何原本,6권>,<萬國與圖>등 열아홉가지 이상의 저술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진리와 서양문명을 중국에 전달하는 놀라운 선교업적을 이룩하였다.<천주실의>는 1603년 중국 북경에서 출판되어 그 뒤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서학과 천주교의 본질을  알리는 중요한 독서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천주실의>가 일혀진 역사적 시기는 지봉 이수광(1563-1628)의 <芝峯類說>이나 어유당 유몽인(1559-1623)의 <於于野談>에 그 독후감이나 논평이 실려있는 것으로 봐서 17세기 초부터 임이 확실하다. 이수광, 허균등 개척자시대를 거쳐 18세기초 중국을 통한 신문화유입과 천주교 연구에 기틀을 마련한 큰 학자가 경기도 광주의 星湖 李瀷(1681-1763)  이다. 그의 제자 안정복 유성룡들을 매개로하여 초기 한국 천주교의 기틀을 놓은 이가환, 정약전, 정약종,정약용,이승훈, 이벽, 권철신, 권일신,이기양, 이윤하, 황사영, 이범우등이 배출되었다.
 명나라  神宗의 호의를 받아 높은 벼슬을 지내면서 중국 선교에 굥헌을 한 마테오리치가 죽고 중국천하는 청대로 바뀌면서 강희제(康熙帝,1662-1722)와 건륭제(乾隆帝,1736-1795) 치세로 바뀌었다. 이 시대에 중국은 고증학이 크게 발달하고 그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실사구시의 학풍이 크게 일어나던 때이며 동시에 천주교가 전래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그런데 바로 이무렵 중국문화에 대한 바티칸 당국의 선교사목지침이 변경되면서 중국에서의 그리스도교 선교는 일대 타격을 받게되었고, 그 결과는 조선 천주교의 박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 문제를 역사적으로 잠시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마테오리치가 세상을 뜬지 22년만에 중국선교를 중심으로하여 일어난 카토릭 신학자, 선교사, 및 사제들간의 뜨거운 典禮論爭(Rite Controversy)은 단순히 카토릭의 성례순서를 논하는 논쟁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타문화, 타종교를 어느만큼 인정하면서 선교정책을 펴 나갈 것인 가에 대한 당시 카토릭 신학의 입장천명 문제였기 때문에, 그 역사적 의미와 평가를 엄정히 하여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하며, 오늘 우리의 주제를 밝혀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典禮論爭의  발단은 예수회 중국선교사들 처럼 중국 본토에 와서 선교활동을 펴던 도미닉수도회 선교사들이나 프랜시스칸 수도회 선교사들의 견해가 예수회 수도자들과 다른데서 발단되었다. 마테오리치가 그리했던 것처럼 예수회의 선교대상은 중국의 지식층 그룹이 주류를 이루었고 도시와 황실을 중심으로한 지식계층이었다. 중국사회의 상층계층은  대체로 중국 고유의 유교사상이나 전통적인 종교의식의 본질을 잘 알고 있으며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예수회 선교사들이 볼적에 '하나님 칭호'문제에서 중국전통대로 天 또는 上帝로 호칭한다해도 문제될 것 없다고 보았고, 조상제사문제도 공자의 禮와 孝에 관한 가르침의 정신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본질적 충돌이 않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주로 농촌지역과 민도가 낮은 일반 서민들 속에 선교영역을 설정한 도미닉, 프란시스칸 수도회 소속 선교사들의 견해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견해와 아주 달랐다. 일반서민의 조상제사는 잡귀숭배및 조상신 숭배사상과 혼합종교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으며, 중국인들의  神 호칭도 성서의 그것과 같다고 할수 없으므로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 문제를 바티칸 당국에 직소하게 되었다. 바티칸당국은 1715년 클레멘트 11세의금령(Ex illa die)과 1742년 교황 베네딕트 14세의 금령(Ex quo singulari)에 의하여, 중국 사회의 오랜 문화전통인   제사는 중국 카토릭 신자들에게 엄격히 금지되고, 신호칭도 '天主'로만 통일하여 사용토록 제한 되었다. 그리고  1773년엔 중국주재 예수회 선교부가 교황청 에 의하여 해산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중국문화 전통에 대한 모욕적인 자의적 해석은 당시 카토릭 당국의 문화 제국주의적 발상과 선교지 문화를 완전히 이교적 몽매문화로 속단하는 경솔함에 의한 것이었으니, 그 결과는 중국황실 당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중국에서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추방과 그리스도교 선교 금지명령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중국에서 천주교가 쇠퇴해가는 시기,  그 무렵 조선에서 막 싺트려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자들에게 바티칸의예전논쟁 결과는 말 할 수없는 정신적 당혹감과 박해의 비극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도리켜 생각하건데 만약 전례논쟁이 좀더 신중함과 지혜로운 대응으로 이뤄지고, 그리스도교 복음이 그 본질을 지켜가면서도 중국 전통문화에 접목하려는 문화적응주의 선교정책을 계속 추진했더라면 동아세아의 역사와 세계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며, 조선에서의 10,000명에 가까운 순교자의 피를 흘리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유교와 그리스도교는 좀더 깊은 상호대화를 통하여 피차 창조적 발전을 이뤄 갔을런지도 모른다.
  조선 천주교 초기 지도자들이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천주교리를 연구하고, 자생적 교회형태를 이뤄가면서, 이승훈, 이벽, 권철신, 정약종등이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종교적 영적 지도와 지침을 받으려고 했던 1784년 전후에 , 중국 북경주교로 임직한 사제는  프란시스코 수도회 소속 구베아 주교(Alexandre de Gouvea, 湯士選) 였다. 구베아 주교는 중국의 전례문제에 관한 로마 교황청의 명령을 엄하게 지키고, 신자들로 하여금 유교적 祭祀儀式에서 떠나도록 독려한 유명한 주교였으므로, 자연히 조선교회의 초기 신자들로 하여금  제사를 폐지하도록 엄하게 지침을 사신편에 내렸다.
  우리는 조선 천주교 초기 역사를 읽으면서 이해 할수 없는 한가지 사실에 부딪힌다. 그것은 수많은 순교자를 냈던 그 박해기에 자생적 조선 천주교의 기틀을 놓았던 지도적 인물들, 이승훈, 이벽, 정약용등 가장 빼어난 순수한 지도자들이 初發心을 버리고 박해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나마 배교(背敎) 하게 되었다는 사실기록에 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政爭에 휘말린 양반의 후예로서, 그들의 신앙지조를 지켜나아감이 혈통중심으로 이뤄졌던 당시 사회에서 그들의  부모와 가문 전체에게 생사문제를 가져다 주었기에 고민하고 주저하고 信心이 일시 약해졌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기 조선천주교 지도자들의 영웅적 신앙투쟁 전열에   일시나마 당혹감과 혼란, 고민과 회의를 가져다 준 것은  그들의 信心이 약해서가 아니고 선교지 문화정황을 무시한 로마 카토릭 당국의 선교정책 그 자체에 대한 회의와 납득할 수 없는 선교신학 이론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천주교사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북경주교의 편지와 물품을 받은 조선교회는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에 즐거워 하     였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제사를 미신이라하여 결코 지내지 말도록 하라는 主敎의 결재(決     裁)는 수많은 교우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그리하여 반대자들에게 박해의 구실을 마련해 주     게 되었다.  즉 관청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우를 잡아내어 고문하기     시작하였다. 그 일 때문에 많은  교우들이 재생(再生)의 즐거움을 잃고 천주교의 실천을 멈추     었다.

당시 고문당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천주교 주교의 지시에 의하여  위폐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변증의 논리로서 정하상의 <상제상서>에서 논하는 논리는 두가지이다.
  첫째, 위폐를 모시지 않은것은  목수의 손으로 만들어진 나무에 부모의 이름이 씌여지고 혼령           을 모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으므로 위폐를 부모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부모의 젯상에 음식을 차리지 않는 것은 사후의 영혼은 물질적 음식을 잡수시는 것이            아니므로, 진정하고도  성실한 마음으로 부모를 모시는 예를 갖춘다면 잠자는 부모님            앞에 음식상을 진설하지 않듯이 더욱더, 돌아가신 부모님 영혼 앞에 음식상을 차리는것           은 도리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상의 두가지 변증 내용이 진정으로 제사 의례중, 위폐를 모시지 않고, 음식을 진설하지 않는 이유라면 그 변증은 매우 빈약하고 너무나 합리적 사고이거나, 종교적 상징의례를 무시한 논증이라고 비판 할 수 밖에 없다. 본시 유교의 제사의례중 음식을 차리는 것도  지성을 표현하는 예와 효의 지극한 정성에서 울어나서 하는 禮의 표현이고, 위폐를 만들어 모시는것도 종교의례적 상징행위인 것이지, 거기에 반드시 혼령이 빙의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폐 그것 자체가 부모도 아니고, 부모의 혼령이 거기에 장소적으로 빙의하는것은 아닐지라도 可視的으로 위폐 위에 씌여진 부모 이름을 통하여 부모를 생각하고 그 은덕을 더욱 애절한 맘으로 추모하는 것은 마치 고등종교에서 불상이나, 십자고상이나 마리아 상을 만들거나 성자상을 만들어 경건한 예배의식을 행하는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본래적 제사정신이 무속적 귀신사상과 혼합하여 매우 주술적 부적기능처럼 오용되거나 잘못이해되는 폐단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聖像"이 본래 그런목적은 아니었는데, 성상을 부적처럼 숭상하게 될 때, "성상파괴 운동"(Iconoclasm)이 일어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조선 천주교 초기 신도들이 제사를 폐지하고, 위폐를 불사른것은 그들 스스로가 제사의례를 기독교신앙에 배리된다고 생각하여 주체적으로 그리하였다고 하기 보다는 다분히 로마 교황청의 사목지침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당시 동양종교나 문화전체를 이교적인 것이라고 무시하던 교권당국의 신학적 강요에 접하여, 초기 조선 그리스도교 어린 교회가 순종하는데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초기 지성인으로서 자생적으로 서학을 탐구하여 열심있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북경주교의 단호한 제사폐지 지시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고민을 하다가 교회를 떠나게 된 많은 신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한다.
   북경주교 구베아의 단호한 제사제도 폐지에 대한 사목지침을 신앙심으로서 받아드리고 순종한 사람들은 주체성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원리가 지배하는 인간다운 사회적 갱신을 염원하던 개화지향적 인물들 이었고, 허례허식과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옥죄는 전통의 무거운 규범을 철폐해야만 새로운 세계가 앞당겨 올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변화를 갈망하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봉건적 조선사회를 이념적으로 지배하는 유교적 통치원리의 구체적 인간통치형태가 제사제도로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때마침 구베아 북경주교의 엄한 사목지침을 계기로 하여  제사제도를 과감히 폐지하려는 결단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하상의 <상제상서>에 나타나는 변증이나, 진산사건으로 채포되어 문초를 받은  윤지충의 변호가 당국에 의해 받아드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신해교난(1791)이나 신유교난(1801)의 실질적 빌미가 바로 제사제도문제 였던 것이다. 천주교도들이 제사제도를 폐지하여 전통적 상제례를 무시함으로서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깨뜨렸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렵혔으며, 결과적으로 반역죄에 해당한다고 당국이 천주교 박해타당성 논리를 펴 갈 수 있었던 것은, 주자가례를 근본 골간으로하는 당시의 상제례제도에 대항하는  단순한 종교 의식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유지 보존이냐 혁신이냐의 의미를 내포한 가치관의 패러다임 전환시기의 논쟁이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집권층은 그들의 모든 보수논리를 동원하여 새로운 사회지도이념의 대두를 막으려 했고, 혁신적 개혁세력의 등장을 거세하려 했고, 정통유교사상과 다른 어떠한 대내외적 종교나 철학이념의 경쟁적 도전을 경계하려 했기 때문에, 그 표적으로서 천주교도들과 동학도들을 사문난적죄와 국가 반역죄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서  철저하게 핍박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상제사를  폐지하라는 바티칸 당국의 사목지침을 성실하게 따르려고 했던 조선 기독교 교도들은 조선의 정치적 집권당국에게 박해의 빌미를 잡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의 조상제사 의례를 이교적 종교행위라고 규정하고, 그 폐지를 명령했던 1742년 바티칸 당국의 교황 베네딕트 14세의 교황칙령은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반성해야 하며, 그 과오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카토릭교회가 1990년대 한국 천주교의 상제례토착화 과업을 선언하고 진지하게 전통문화를 수용하거나 재 해석함으로서 선교의 문을 과감하게 넓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위대한 신학적 결단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2-3.  개화기 한국 개신교 안에서 일어난 제사의례 논쟁의 고찰
 
  한국에 전파된  개신교의 신앙적 유형은 여러가지 면에서 100여년 앞서서 들어온 조선 천주교의 신앙유형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며 , 그에 따라서 조상제사문제에 대하는 신도들의 태도에도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 나타난 조상제사 문제를 둘러싼 논쟁 곧 상제례 토착화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한국 개신교의 일반적 특징을 먼저 간략하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첫째, 조선천주교회가 서방 카토릭신부의 정식입국을 통한 사목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서학에 관련된 서적을 연구하다가 자생적으로 발전한 자발적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1784년 최초로 조선천주교회가 명례동 김범우의 집에서  시작된 것처럼, 개신교 최초 교회 설립도 1885년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의 정식 입국 이전, 만주지역과 황해도 소래에 이미 자생적 교회가 설립되어(1884년) 예배공동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조선 카토릭교회의 시작이 카토릭교회의 전통답게 성사(聖事) 와 교리(敎理)의 전파와 깨달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본질에 접촉하게 되고 교인들의 훈련이 이뤄졌다면, 개신교는 압도적으로 성서를 통하여 복음전도가 이뤄지고 성서를 읽고 성서를 통해 회심을 경험하고 복음의 본질에 접하게 되었기 때문에 개신교 신앙은 성경중심적이요 성례전을 소홀히 하는 교회의 유형적 특성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요꼬하마에서 이수정의 <縣吐漢韓新約聖書>의 발행(1884), 심양에서 서상륜과 이응찬의 도움으로 발간된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의 발간(1882년)이 그 좋은 예이다.
  셋째, 조선 카토릭교회는 첨엔 양반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다가 점점 박해기를 거치면서 중인계층으로 넓혀지고 마침네 서민계층으로 전파되었지만, 개신교는 첨부터 서민계층 민중계층을 그 선교대상으로 했으며, 조선 천주교회는 성직질서 중심의 교회전통에 따라 중국 주제 구베아 주교의 사목지침과 멀리는 로마 바티칸당국의 선교지침에 종속되어 있어서 민족주의적 교회성향을 나타내지 못하고 점점더 '로마적'교회로 변모해 갔다. 그에 비하면 한국 개신교회는 본격적인 개화운동기에 그리고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  점령기에  발전해갔기 때문에 매우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고, 민족의 해방과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신앙이 분리될 수 없었다. 그러나 개신교 교회도 교파주의적 교회선교가 이뤄짐으로서 교파적, 분파적 씨앗을 그 안에 지니게 되었다.
  넷째, 한국 개신교의 기초를 놓은 선교사들의 신학적, 신앙적 배경이 매우 경건주의적이고, 복음주의적이고, 성경중심주이적인 보수신앙 유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마치 조선천주교회의 초창기 전교시대에 중국에 주재하는 외국 선교사및 주교들이 조선의 전통종교와 문화를 매우 부정적으로 가치평가하고, 제사제도 폐지를 비롯한  종교문화유산을 문화정복론적으로 대했듯이, 개신교의 선교사들도 대체로 부정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동북아 종교정신문화와 고전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젊은 20대 후반기의 청년선교사들이었고, 당시 전통종교들이 그 생동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선의 전통문화유산과 복음을 상관시키려는 태도보다는 문화정복론적 태도, 즉 피선교지 문화를 배타적으로 파기하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교문화를 문화이식시키려는 선교신학적 기본틀을 가지고 있었다.  1920-30년대 평양신학교에 장로교의 근본주이신학 전통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되어 갔다.
  다섯째, 전통상제례 의식의 토착화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제사제도 폐지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천주교 교회의 상황과 개신교의 그것과의 차이를 고찰함이 필요하다. 거시적으로 보면 조선 천주교회나 조선 개신교회나 양자는 이 나라의 개화기에 계몽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대사적 상황을 배경으로하여 나타났기 때문에, 제사제도를 핵심으로하여 낡은 사회를 지탱하려는 보수적 유교사회를 혁신하려는 의지지향성 때문에 번잡하고 형식적인 제사제도를 폐지하거나 간략하게 효도정신만을 살리는 의식으로 개혁하려는 정신을 지닌다는 점에 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조선천주교회는 아직 조선왕조의 정치권력이 폐쇠적으로나마 강하게 작동하고 있을 때이므로, 제사문제를 중심으로하는 당국자와 조선천주교회의 갈등충돌 요인 속에 매우 정치사회적인 요인이 중심으로서 작동한다는점이다. 그에 비하면 개신교는 이미 조선이씨 왕조가 망한 뒤이기 때문에 조선왕조권력과의 힘의 역학관계에서는 해방되었지만,일본의 식민통치 관계에서 특히 신사참배를 점차로 강화하려는 국가권력의 상징에 대한  우상숭배 강요라는 정치적 묘한 상황속에서 일체의 종교의식이나 종교적 상징행위를 거부하려는 "성상파괴운동정신"과 간접적으로 관계되어 있었다는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개신교가 전통 제사문제를 부정적으로 처리하게 된 근본적 배경은 성경중심으로 인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거기에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주는 강력한 말씀을 제사의례에 적용시킨 '성경무오설에 입각한 문자적 성경해석'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개신교 안에서 제사문제가 일간신문의 논설을 통하여 쟁점화 된것은 1920년 8월27일 경북 영주군 문정리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자살사건으로 부터 기인하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권성화와 박성녀라는 부부가 모친상을 당하여 유교식 상제례 방식으로 아침저녁  신주를 모신 조석상을 차려드리고 지성을 다해 탈상전까지 매일 조석상을 모시는데, 남편 권성화가 예수를 믿게되어  망자에 대한 床食을 차리는것을 금지시키자, 효부 박성녀는 남편과 심하게 다툰후에 남편의 불효한 죄과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속죄하리라 작정하고, 시모의 신주를 뒷산에 묻고 물에 투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위 사건이 신문의 사회면에 보도되자, 당시 서울 기독청년회(YMCA) 총무를  맡고있던 이상재는 1920년 9월1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종교상에도 조선혼을 잃지말라(勿失하라)" 라는 논제로서 글을 게제하고 당시 기독교교회 안에서 제사제도에 관련하여 위폐모시는 것을 우상숭배시하거나, 제사예식에서  절하는 행동을 우상숭배시하여 배타적으로 전통문화의 상제례의식을 폄하하는 태도에 비판적 글을 실어 굳어져가는 교리적 개신교 신앙의 경직성에 경종을 울렸다. 중요한 이상재의 논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았다.
   
   부모의 신주(神主)를  가지고 한 말로 '우상'이라 부르며,부모의 혼령앞에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는 이름 아래 타매(唾罵)를 하는 것이 어찌 옳겠다 할 수 있으리요......
   나의 생각에는 오직 돌아간 부모를 사모하여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하면 어떠한      형식으로   예식을 행하던지 다 반대할 수 없겠다 하겠으며, 원래 조선 사람이 돌아간 부모      의 영혼을 위하고 삼년 안에 조석상식과 혹은 평생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그 부모      를 그리며 사모하는 효성에서 나오는 것이다.예수교와 아무상관 없을 뿐만 아니라, '네 부모      를 공경하라'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되는 일 일 것이다.

  위 이상재의 글 속에는 당시 개신교 일반의 성직자들이 이미 제사지내는 일과, 제사시에 절하는 예식 형태를 우상숭배와 연계시켜 몹시 비판적으로 대한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크리스챤으로서 자유혼을 가지고 살았던 이상재로서는 그러한 경직한 교리적 사고는 결코 기독교신앙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도리혀 문화적 전통 양식이 다른 것일 뿐 "부모공경"이라는 십계명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상재의 이러한 생각은 이상재 개인 혼자의 견해라기 보다는 당시 보다 주체적 기독교신앙을 간직하려고 했던 일군의 사람들의 견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상재의 견해를 반박하는 글이 곧바로 이어서 동아일보에 실려 찬반논쟁이 붙게 되었다. 반대논설은 당시 남감리교 종교(宗橋)교회 양주삼 목사로 부터 나오게 되었다. 양주삼목사는 이상재가 전통적 제사의례를 조선혼, 또는 조선정신의 보존과 연결시키는 논리를 받아드릴 수 없었으며, 보다 합리주의적 계몽정신의 기치를 들고 일어나서 제사제도는 과학지식이 덜 발달하던 시대, 그리고 도덕적 의식이 성숙하지 못하던 시대의 잔존물에 불과함으로 합리적 과학정신과 보다 성숙한 도덕의식을 가지고 제사제도같은 것을 과감하게   철폐하여야 한다는 제사폐지론을 주장하였다. 양주삼 목사 논지의 중요부분을 들어보기로 한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조선정신과 조선혼을 보존한다 함은 그는 큰 오해라. 나는 그 일에      찬성치 못하겠노라......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세계인류가 다 경력(經歷)하고 벗어버리고     자 하는것이며, 과학지식이 천단(淺短)하고,종교사상이 불일(不日)하고, 도덕관념이 유치할      때 쓰던 일종 미신적 풍속이요, 의식적(儀式的) 도덕에 불과한 것이라. 그런고로 조상에게 제     사하는 사람의 수효가 날로 감(減)하고,달로 줄고 해로 감축(減縮)하여 불구에 세계상에 한사     람도 없게 될 것이 분명하도다.

 양주삼 목사는 이상재선생과 함께 개화기 한국 개신교의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사상을 대변할 만한 지성적 지도자 였으나, 제사문제 폐기여부에 관한 한, 그리고 제사정신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한 두 사람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 보였다. 양주삼 목사는 제사제도는 지난간 전근대적, 비과학적, 비합리적, 덜성숙한 도덕의식의 단계에서 발달했던 시대적 유뮬이니, 진보발전적 역사관에 의하여 자연히 폐기처분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이상재는 제사제도는 일종의 문화전통의 유산으로서, 전통 속에는 민족공동체의 정신적 유산이 담겨져 있는것이니, 함부로 교리적 잣대로 제사제도를 판단하여 우상숭배시 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본 것이다.
 동아일보의 정간사건으로 인해서 제사제도에 관련한 지상논쟁은 잠시 중단되었으나, 1926년  변형태 선생은 "조상숭배에 관한 나의 태도"라는 글을 선교사들에게 돌리고 조선인의 제사의식은 결코 우상숭배가 아니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조선인의 제사시에 효의 표현으로 절하는 몸짓에 적용하는것은 언어도단 임을 강변하였다. 1931년 채필근목사는 전통제사의식은 우상숭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제사시 음식진설, 영정이나 신주를 내세우는것, 절하는 예법,등등 전통적 제사예법에 관련된 일체 행위를 비신앙적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한다고 금지시켰는데, 이것이 보수적  장로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1920-30년대 개신교 교회 안밖에서 일어난 조상제사제도에 관련된 지상논쟁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드린 주체적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전통문화와 복음의 관계성에 관련된 신학적 문제제기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1920-30년대 나타났던 서로 다른 입장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목회현장과 선교일선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드린 한국 가정에서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드리지 않은 형제간 사이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정신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구체적 제사문제로서 표면화되고 있는 문화적 갈등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근본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첫째, 인간의 공동체 집단이 일정한 종교적 신념체계를 공유하다가, 새로운 종교의 유입으로           인하여 구원체험 유형과 신념체게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 날 때, 상제례와 같은            종교의식상의 문제는 어떻게 전통의 계승과 가치관의 변화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적으           로 성취 할 수 있는가?  
  둘째, 새로운 종교의 구원관을  공동체 구성원의 일정부분이 받아드릴 때, 종교의식의 형식적           변화와 종교인들의 사생관등  근본적 신념 체계와는 어떤 적적한 적응태도가 요청되는           것인가?
  셋째,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천주교, 개신교)에로 개종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죽           음에 대한 이해및 사후 영혼의 영생사상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가의 문제.

이상의 문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정신문화, 종교문화 속에 전파된 이후, 삶과 죽음에 관한 이해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는가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3. 죽음이해및  종교적 상징과 종교의례의 초월적 매개기능

   3-1. 인간의 죽음이해와 인간의 자기초월적 반응

   祭禮를  중심으로 하여 발생하는 한국 가정에서의 정신적 갈등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 안에 다양한 구원패러다임을 지닌 종교들이 다원적으로 존재하며, 그러한 종교 다원사회에서 종교간에 전통적으로 지켜오고 있는 죽은자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그 예식에 대한 유형적 차이에서부터 온다. 우리가 앞장(제2장)에서 살펴본데로, 역사적으로는 개화기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될 때, 제사문제로 표면화한 종교적 갈등은 단순한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라, 통치권력의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개화기 세로운 혁신세력들이 지닌 사회변혁 의지 間의 충돌의 면이   없지 않아 있었고, 더 나아가서 조선조 18세기 천주교 박해사건 뒤에는 종교적 구원관의 차이라든지 통치 이념간의 명분있는 갈등적 대결 때문이 아니라, 제한된 권력이나 생산력의  물적토대인 토지를 독점하려는 붕당적 밥그릇 싸움때문에 확대된 원인도 이미 살펴 보았다.
  그러나 오늘 개신교 목회 현장 안에서 일어나는 제사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의 요인은 정치적 이념이나, 붕당적 권력투쟁에서 부터 연유하는 요인들은 살아지고 종교적 요인이 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드려다 보면, 종교적 신학적 신념체계간의 견해차이도, 지식사회학에서 말하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주도적 신학써클의 "사유의 존재 제약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인간은 죽는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자라고 하는  유한의식과, 그 유한성을 어떤 의미로든지 극복하려는 유한성의 자기초월 운동은 인간의 종교행위의 중요한 모티브를 이룬다. 또한 종교의 본질도 이러한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자기초월운동 가운데서, 형태와 방식은 다르더라도 자기부정을 통한 유한의식의 초극이야말로 종교를 거룩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위대한 종교들은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자로 성숙시키거나 깨달은 존재로 변화시키거나 영생의 신념을 갖도록 고무시킴으로서 이제 더 이상 자기의 죽음에 대한 '근본적 염려'를 초극하여 이웃과 세계와 전체실재를 위하여 보다 창조적으로 살도록 하는 힘과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게종교들을 다양한 유형적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인간의 유한성의 극복태도 즉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가의 접근방법으로서 대별 할수도 있겠다. 두가지 대별되는 유형으로서 '우주론적 종교'(cosmological religions)와 '구원론적 종교'( soteriological religions)가 그것이다.
 '우주론적 종교'는 인간존재를 우주자연의 근본적 존재방식에 적응시킴으로서 깨달음과 조화의식을  통해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우주자연, 존재 그 자체와 하나가 되는 일치의식 또는 만물동체감(萬物同體感)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려는 '동일성의 원리' 위에 서 있는 종교를 말한다. 한국의 종교로서는    불교, 도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선도등이 모두 이러한 '우주론적 종교'의 독특한 형태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주론적 종교에서 제사의식이란 본질적으로 죽은자에 대한 추도의 마음표식이며, 죽은자들은 자기자신의 생명 안에, 우주전체의 생명 안에, '객관적 불사성'(objective immotality)으로 전환되면서  고양된다. 말하자면 조상들은 현재생명 안에서 불사한다. 동학 2세교주 최해월이 '향벽설위'를 극복하고 '향아설위'하라고 동학도들에게 가르치는 가르침의 요체가 그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주론적 종교'에서는,  개체아(個體我) 의식이 전체아(全體我) 의식 속으로 고양 확장됨으로서 '개체와 전체와의 존재론적 동일성' 원리에로 돌아간다. 불교 원효의 生死一如의  해탈과 불생불멸하는 一心에로의 廻向, 유교 서화담의 一氣長存說, 최수운의 性靈不死說, 노장의 무위자연적 神仙不老長生說등이 모두 '우주론적  종교'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구원론적  종교'는 인간존재를 인격적 절대신및 신령들과 관계성 속에서 그 개체아의 사멸성을 불사성으로 구제받는다는 '참여와 변화의 원리' 위에 서 있는 종교를 말한다. 한국의 기존종교나 외래종교로서는 무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들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구원론적 종교에서 제사의식이란 단순한 추도의 마음표시 이상의 차원, 곧 신령세계 또는 초월세계와의 영적 교류및 영적 감응을 기대한다. 죽은자는 어떤 형태로든지 사후의 변화를 통하여 그 개체아의 실재성을 지속하여가면서 후손들과의 '불연속적인 연속성'을 지속한다. 그런데 '불연속적인 연속성'이 가능하려면 일상적 俗의 시공간 안에서는 불가능하며, 聖의 성별된 時空間이 설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교에서 처럼 굿이라는 종교적 제의를 통하여 이뤄지든지, 기독교 에서처럼 성령의 임재와 은혜 안에서 "성도들의 교통"(communication of saints)을 믿는다는 신앙체험 안에서 이뤄지든지 죽은자의 개체성은 당분간 지속되고 보장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한 종교적 확신이 '영혼 불멸설'로 보편화된다.
  그리스도교의 사도적 신앙의 전통에서 사도신경에 고백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것을 믿습니다"라는 신조의 고백은 살아있는 신자들 끼리의 코이노니아 교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초대 사도적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은총 안에서 산자와 죽은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같은 시대사람의 시공간 차이를 극복하면서 서로 영적 교통을 할 수 있다는 체험적 증언과 그러한 신앙적 신념을 나타내는 고백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의 교통'에 대한 신앙적 고백과 신념이 뉴톤-데까르트 적  인과율적 기계론이 지배하게 된 근대이후 세계관 속에서, 특히 개신교 신앙영역 안에서 급속히 약화되거나 살아지게 되었다. 종말신앙과 종말론 교리는  세계 끝 시간에 관한 부록처럼 옮겨져 가고, 이승 안에서의 자연질서는 초자연의 세계와 철저하게 분리되고, 이승은 초자연의 영역으로부터 차단되어 인과율적 물리질서와 가치론적  도덕질서만이 작용하는 속된 세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구원론적 종교'에서 이승과 저승, 성과 속, 영원과 시간, 초자연세계와 자연세게, 하늘나라와 세상나라, 영계와 인계라는 범주적 개념으로 설정된 실재의 두 차원을 어떤 관계방식으로 연결시키며 해석하는 가에 따라서 제사의식 또는 종교의식은 그 유형적 특성을 달리하며 그 종교 의례 내용과  종교적 상징행위 자체가  달라진다.
  '구원론적 종교'에서 성과 속, 靈界와 俗界, 초자연계와 자연계는 엄정하게 구별되고 자연스런 연속성은 불가능하며 그 양자 영역간의 혼동은 인간세에 불행을 가져오지만, 일정한 종교의례를 통하여 제한된 시공간에서 그 두 차원은 상통(相通) 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그 두 차원의 교통은 종말의 시간 이전에는 불가능 하며, 오로지 산자가 죽어서 영계로 옮겨가지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두가지 입장으로 대별될 수 있다. 무교와 카토릭은 전자의 입장에 해당하고, 한국 개신교의 입장은 후자의 입장에 해당한다.
  그러한 미묘한 차이는 개신교의 추도예배(추도예식)를 근원적으로 제약하여, 추도예배를 글자그대로 돌아가신 이를 추모,추도,회상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하여 사후에  앞서간 성도들을 만날 것을 기대하는 '기념식'및 '윤리의식 강화시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개신교 추도예식의 결정적 약점은 그 시간이 '종교적 시간'으로서의 일종의 聖과 俗의 일상적 분렬이 잠시나마 극복 초극되고 성속이 하나가 되었다거나 역설적 일치를 이루었다는 '종교적 체험'을 하지못한다는 점에 있다.
  개신교의 추도에베에서 예식 참여자들은  "意識의 차원에서 儀式에 참여하는 도덕적 합리주의  세계안에 머물러 있다". 다시한번 압축하여 말한다면, 현대 한국 개신교에서 행해지는  추도예배의 결정적 약점은 근대합리주의의 主體性의 세계관, 意識의 哲學, 칸트적 윤리의식에 너무나 메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성령의 감화감동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시공간을 넘어서서 성도간의   우주적 일체감과 서로 통하는 하나되는 감정을 맛 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은사를 방언,예언, 신유등의 개념으로 축소 시킨다. 간단하게 말하여 개신교의 추도예배는 종교적 차원을 잃어버리고 도덕화되고, 의식화되고, 합리화되었다. 여기에 개신교 추도예배의 위기와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있다.
  
  3-2. 종교의식에 있어서 상징과 실재

 종교적 체험은 초월경험과 영적차원과의 관계성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징과 종교의식은 종교체험과 실재를 표현하는 절대적 매개물이 된다.
 제사제도나 신을 예배하는 예배의식에서 거의 모든 시간은 상징과 의례로서 체워지게 된다. 상징과 의례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곡하게 된다. 조상제사 의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온갖 행위가 상징적 행위이며 종교적 의례라고 이해하면 많은 오해와 갈등이 풀어질 가능성이 있다.
 제단이나 젯상을 설치하고, 촛불을 켜거나 향을 사르며, 음식이나 꽃을 제단(젯상)에 바치고, 기도문이나 축문을 올리며, 절을 하거나 십자가 성호를 그리며, 신주(위폐)를 세우거나 지방을 써서 부치며,  제사후에 음복을 하거나 소지(燒紙) 행위 자체가 모두 상징적 종교의례인 셈이다.
제사의례 아니더라도  기독교 일반예배 의식에서, 제단에 촛불을 밝히고  십자가를 벽에 세워붙이고, 마리아 성모상 앞에 경배를 드리며, 천주교에서 성자 성상을 경배하며, 떡과 포도주를 성별하여 성만찬 의식을 집례하며, 헌금을 드리고, 찬송을 부를 때 일어서고 앉는 행위등 일체 예배 행위가 종교적 상징의례를 떠나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상징은 상징하려는 실재를 지시할 뿐만 아니라, 상징하려는 실재의 의미와 능력에 존제론적으로 참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상징은 단순한 기호물이나 표식물과 다른 것이다. 종교적 상징을 궁극적 실재를 지시하거나 초월적 실재를 지시하는 상징으로서 대하지 않고 상징물 자체를 신성시하거나 절대화하거나 예배적 주술적 대상물로 삼아버릴 때, 상징의 우상화가 발생한다. 그러한 상징의 우상화를 저항하려는 운동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는 두번 크게 일어났는데, 성상파괴운동(Iconoclasm)과 종교개혁운동(Reformation)이 그것이다.
  성상파괴 운동과 우상제작 금지운동은 특히 개신교의 말씀중심의 예배 의식을 가져왔고 일체 종교적 상징물 제작과 성상숭배 행위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강화해 왔다. 조선 천주교 전래시, 제사 행위에 있어서 신주를 불살라 땅에 묻었던  행위, 음식을 젯상에 올리는 것을   중지시켰던 행위, 개신교에서 영정에 절하거나 성묘시 묘 앞에서 절하는 행위등을 엄격히 금지시켰던 교리적 가르침은 '상징의 우상화'를 염려한 남어지 지나치게 종교적 상징기능을 약화시켜 버린  양면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1920-30년대 이상재와 양주삼의 제사논쟁을 중심으로 한  두 견해차이에서 본바 처럼, 이상재는 전통적 유교제사 의례를 상징 차원에서  포용하려는 입장이었고,양주삼은 근대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정신에 서서 제사의례 행위 그 자체를 전근대적 미신행위라고 보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우상숭배로 전락 할 위험이 읷다고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제사의례가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인간행위 일진데 상징성을 배제하고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정하상의 "상제상서"에서 보는바 처럼, 초기 조선 천주교도들이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하지 않는 이유나, 위폐를 모시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정하상의 변증적 논리는  종교 상징론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만약 제사상에 음식 올리는 일이나 위폐를 설치하는 행위를 정하상의 논리데로 한다면, 카토릭의 성체성사 의례나 마리아상 예수고상 흠숭행위가 모두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필자는 제사상에 음식을 다시 진설하고 위폐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 천주교도들이 전통적 제사 행위의 상징성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합리적 이해를 도모한 것은 매우 설득력이 없는 것 이었다는점을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한국 개신교에 있어서, 전통적 제사행위를 금지시키는 신학적 이유는 주로 십계명의 문자적 해석에 기초하여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 제2계명을 그 중심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좀더 진지하게 생각 해 볼 때, '우상'이란 상대적이고 유한한 것을 절대화하고 신격화하여  그 대상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절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은 몸을 굽혀 예를 표하는인간의 외면적 행위를 말한다기 보다는 자기존재를 그 신적 대상 앞에 굴복시키고 신적 대상에 완전히 자기를 복속시키는 행위를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우상 앞에 절하는 행위"를 할 때, 인간의 무한한 자유로운 존재가치는 무가치해 지고, 노예적 존재로 전락하며, 비인간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의 규정을 "눈에 보이는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 일체를 말한다고 성경의 계명은 강조하는 것이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神像이나 종교적 상징물보다는 보이지않는 절대적 가치나 힘들이다.  예를 들면  인간을 지배하고 그 능력에 인간을 복종시키는 절대적 정치권력숭배, 배금주의적 금력숭배, 절대화된 가치이념 숭배등이 더 무서운 현대판 우상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전통 한국인의 제사에서나  성묘시나, 제상 앞에서 "절하는 행동"은 성경이 금지하는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우상숭배 금지계명과는 본질적으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상례를 당한 가정에서 문상을가거나, 제사행위에서 절이란 동양인의 "말없는 전인적 몸짓"이며, 그러한 몸짓을 통하여 말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원하고 총체적인 감정과 예를 단일행동에 담아 표현하는 몸의언어이며, 상징행위인 것이다. 제사 행위에서, 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이라는 행동 속에는, 추원보본 하고픈 감정,  참회하고 후회하는감정, 존경하고 그리운 감정, 애도하고 추모하는 감정, 효도하고 우애하고픈 감정, 근신하고 뜻을 이어가려는 다짐 등등 모든 총체적 감정의 종합적 표현인 것이다.
   음식의 진설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음식대신 꽃을 바치는 것은 용납되고 음식을 바치는 것은 미신행위라고 보는 시각은 음식문화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왜곡된 시각인 것이다. 음식이나 꽃은 모두 자연의 소재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정하상의 말대로 혼령이 음식이나 꽃향기를 직접 흠향하거나 먹고 마시는것이 아님은 둘다 동일하다. 그러나 농경사회 속에서 들에서 무수히 자라는 꽃들을 보면서 생활하던 아시아 농경문화 속에서 알곡으로 지은 밥한 그릇을 정성스레  바치는 것은 꽃 한다발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존경과 예를 표하는 행위 였으니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나오는 상징의 기능적 효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실화로서 전해 온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공원묘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의 공원묘지는 넓은 시외 공간을 잔디로 잘 가꾸고 시신을 매장하고, 가족들이 일년에 한두차례 찾아와 추모하는것은 동서가 다를 수 없다. 어느날 백인노인 한분이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와서 먼저 타계한 할머니 무덤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온 가족이 정성스럽게 기독교 식으로 기도하는 예식으로 성묘를 했다. 마치 같은 시간 같은 공원묘지 조금  떨어지 묘소 앞에서는 중국계 이민3세 할아버지 한분이 아들 딸 며느리와 후손들을 거느리고 와서, 묘 앞에 음식을 차리고 절하는 예법으로 성묘를 했다.
  백인노인과 중국계 이민 3세 노인은 같은 마을에서 가깝게 지내는  잘 아는 사이 인지라, 성묘후에 백인 노인이 중국노인에게 농담을 걸어왔다. "돌아가신 할멈이 깨어나서 음식을 맛있게 잡수셧다고 얘기 합디까?". 중국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엔 백인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 할멈은 일어나셔서 당신 아들 손주가 마련해온 꽃바구니 향기를 잘 흠향 했노라고 합디까?". 두 노인은 함께 큰 웃음을 웃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예를 표하는 상징물과 예식방법은 문화-역사적 전통에 따라서 다양하다는 것과, 그 모든 것은 상징적 종교의식 이므로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4. 문화선교의 지평열림과  한국 교회의  상제례 토착화 작업

4-1. 피선교국의 문화신학의 발아와 문화선교과제의  자각

  기독교 복음이 외래 선교자들에 의해 한반도에 전파된지 천주교는 200년이 지났고 개신교는 100년이 지났다. 복음은 개화의 새 물결과 전통의 보수물결이 서로 긴장 갈등하는 문화사회적 상황 가운데서 한국민의  마음밭에 떨어졌다.  한국 천주교는 복음전파 과정에서 특히 상제례문제로 인하여 10,000명 가까운 순교자가 피를 흘렸고 개신교도 적잖은 갈등과 박해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상제례문제가 복음의 한국전래과정에서 심각한 문화갈등적 요인으로서 작용하게 된 것은 주로 세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살폈다. 그점을다시 한번 아래에서 명확히 정리해 보자.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부딪힌  신앙적 갈등이다. 복음전래 당시 한국사회는 유교적 가정의례가 토착화되어  사대부 양반 가정에서는  형식이 번잡스러울 정도로 된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이 규범적 예식서로서 사용되었다.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위에서 말한  유교적 제사정신과 종교의례가   무교적 다령신앙및 민속적 귀신숭배신앙과 종교습합을  이룬 채 조상숭배(祖上崇拜)신앙으로서 자리잡고  전승되어 왔다.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기독교신앙은, 앞서 말한 대로  무교적 다령숭배 및 귀신숭배 신앙과 부분적으로 종교습합을  이루고 있었던 당시 유교적 상제례 의식과  충돌을  낳게 되었다. 다시말하면 효(孝)정신에 기초를 둔 유교제사의 근본정신으로 부터 민속화된 조상숭배 및 귀신숭배신앙을 구별해 내는 현명한 통찰을 갖지 못했다.
  둘째는 종교사회학적 갈등 요인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래되어 졌던  18-19세기 한국 근세사회는 조선왕조가 해체기에 들어갔던 시대 전환기였다. 국내정치의 문란과 외세의 위험이 그치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사회를 통치하던 지배적 가치이념은 유교였기 때문에, 유교적 가치관과  유교식 관혼상제례의 준수는 곧바로 사회의 기존질서를 지탱해가는 필수적 요소이었다. 그러므로 상제례의 변경은  곧바로 당시 조선왕조의 사회해체를 유발  촉진시키는 위험한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왕권과 지배계층은  새로운 "구원의 도"를  전파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험시하였고 사회통합을 깨트리는 반국가적 집단으로 단죄하였다. 그 결과, 개화세력과 기독교신앙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정치사회적 요인이 상승작용하여 전통적 상제례 의식을 기독교적 의식으로 변경하려 했던 초기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리하여 상제례 문제가 직접적인 빌미가 되어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리게 되었다.
  셋째는 선교신학과 선교정책의 졸속 및  과오문제 이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으로 기독교신앙이 전래될 때, 처음부터 상제례문제가 그 충돌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는 중국선교를 함에 있어서 유교문화와 유교적 상제례를 동북아시아 문화적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다가 사회의 하층계층에 선교임무를 맡았던 도미닉파 선교회 및 프란체스코 선교회들은 유교적  상제례가 실질적으로는  귀신숭배신앙과 종교습합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중시하고, 로마 바티칸 당국에 조상제사 금지령을 호소 하였다. 그 결과 "예전논쟁"(禮典論爭)이 일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당시 로마 바티칸 교회당국은 조상제사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다(1742).  그 결과 한국의 초기 카톨릭 교회도 앞서 말한것 같은  심한 문화갈등과 종교박해를 받게 되었다.
  다른 한편 19세기 후반 한국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들은 그들의 헌신적인 사랑의 봉사와 복음전파 노력으로 인하여 큰  공헌을 이루었으나, 동북아시아 문화전통의 내용과 그 깊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한국 전통문화 유산 일체를 서구 기독교문화로서 대치되어야 할 "이교문화" 또는 "우상종교문화"로서 속단하는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사려깊었던 극소수의 초기 선교사들을 제외하고 대개가 연령적으로는 20-30대요 신학적으로는 보수적 근본주의신학의 영향을 받았던 초기 선교사들에게 아시아 종교문화의 본질을 깊이 숙지하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한편 세계 카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기점으로 하여 기존의 선교신학 정책을 과감히 개선하였는데 선교지역의 종교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선교정책으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한국 카톨릭교회는  "상제례토착화 연구"를 오랜기간 추진하여 전통적 조상제사 및 상제례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 예식 속으로 수용함으로써 복음의 토착화 노력을 한국 개신교 보다 한발 앞서서 추진하고 있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대로 한국 개신교는 상제례문제에 있어서  토착화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한국사회 속에서 문화갈등적 집단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설날, 한식, 추석등 민족명절과 각 가정에서의 조상 기일(忌日)이 되면  개신교도 가정에서는 종종, 상제례 의식절차 문제로 인하여 형제 간에 우애를 상하게 된다거나 본인들도 신앙적 갈등을 많이 겪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전가족 일가친척들이 이미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된 가족의 경우는 좀 덜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의 경우에는 "상제례에 관한 가정의식 절차와 그 형식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2.  상제례에 임하는  기독교인의 기본관점

  4-2-1. 삶과 죽음의 주관자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의 원리
 기독교인은 생명의 주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생사간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의 영광에 초청받는다. 그러므로 상제례에 임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 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느니라"(눅20:38)
 기독교인들은 인생이란 본래 흙으로 지음받았고(창2:7), 들의 풀과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으로 살게 하시고 영혼을 불멸하게 붙드시며, 영원한 영적 생명으로 덧입혀 붙들어 주심으로써 우리는 죽음을 넘어 영생함을 믿는다(요14:1-2,롬8:38-39,고전42-49). 죽음은 분명히 유한한 인간의 처음과 마지막을 감싸는 두 괄호이지만,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성의 괄호를 감싸 안으시는 더 큰 괄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땅위의 육신의 죽음을 넘어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는다.   

 4-2-2.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를 믿는 영생 소망의 원리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살아계심을 믿더라도 우리 자신의 삶의 흔적과 결과를  정직하게 돌아볼 때,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으며 스스로 영생을 쟁취할 수 없음을 안다.우리의 죄가 너무 깊고 크기 때문에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들려주는 복음의 초청을 붙잡는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말씀을 붙잡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  우리들은 누구나 만세반석이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드는 자에게 은총으로 값없이 구원을 주시는 십자가의 도리를 믿고 영생의 소망을 지닌다.  우리는 상제례에 임하여 우리들의 대제사장 되시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히 12:2) 영생하는 생명의 도리를 굳게 소망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자가 복 있음을 알고 모든 염려와 근심걱정을 주께 맡기고 소망가운데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와 하늘나라의 소망을 우러러 바라보는 신앙자세를 지닌다.

 4-2-3. 보혜사 성령 안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사랑의 원리
 죽음은 인간의 시공4차원의 세계를 넘어서는 신령한 세계의 차원으로 넘어 감이다. 유한한 우리들 인간으로서는 이곳과 저곳, 시간과 영원, 산자와 죽은자들을 다리놓을 연결능력이 없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 안에서는 모든것이 통할 수 있고 동시적 시공간의 은혜시간 안에 있음을 믿는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6)
 기독교인들은 사도적 전승 안에서 성경진리에 기초한  사도신경을 누구나 고백한다. 사도신경은 그 셋째항목의 신앙고백에서 "성령을 믿사오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특히 "성령 안에서는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친교만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령의 은총 안에서는 산자와 죽은자가 서로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이 신앙생활 가운데서  경험하는 오묘한 체험적 진리다. 변모산상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대화하며, 고린도교회에서는 죽은자들을 위해서 세례까지 받았다(마17:1-8,막9:2-8,눅9:28-36,고전15:29)
  상제례의 종교적 의식절차가 이뤄지는 성별된 시공간은  단순한 심리적 위로나 도덕적 마음다짐의 시공간이 아니다. 진정한 종교적 시공간은 평소생활에서는 분리된  것으로 경험되던 영원과  시간이 성령 안에서 통하며, 돌아가신 사람의 영혼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성령의 은혜 안에서 서로 교통할수 있음을 믿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곳과 저곳이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로 통해있는 생명세계이며, 이곳과 저곳은 각각  차원이 다른 질서세계일 뿐이지 성령 안에서는 하나로 통하여 있음을 믿는다.

  4-2-4.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성육신 신앙의 원리
 성육신 신앙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 "(요1:14)을 믿는 신앙이다. 성육신 신앙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을 모든 영지주의적 신앙과 대조시키는 기독교 진리신앙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는 진리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이 구체화되고, 역사화되고, 현실화 되면서 몸이라는 형체를 입으면서 진리가 구현되는 법도를 말한다.
 복음은 구체적인 문화, 언어, 그리고 역사적 상황 속에 육화됨으로써만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의 떡과 생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새 시대의 문화 선교는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영원한 복음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형태 속에서 증언되고 고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복음은 왜곡되고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잘못된 문화를 심판하고, 정화시키고, 속량한다. 복음은 구체적인 문화의 빛 안에서 조명되고 이해되며 증언된다. 복음은 다양한 문화의 형태와 정신이 복음의 본질에 위배되지 않는 한, 다양한 문화는 긍정되고 수용되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표현하는 형태로서 봉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4.3. 장례에 과련된 기초적 문제점 고찰

    4-3-1. 장례와 제레에 관련된 용어문제
 상례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태에 직면하여 죽은자를 정중히 모시는 절차인 만큼 가장 중요한 예법이다.  사람이 임종한 후 매장과 탈상에 이르기까지  상중에 행하는 일체의 예절을 상례라고 한다. 상례는 장례 또는 장의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상여 또는 운구가 집을 떠나는 때 갖는 의식을  장례식 또는 발인식이라고 부른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날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제사행위는 기제사, 추도식, 추모식, 추도예배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으나 추모제(追慕祭)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용어문제에서 한국교인 가정에서 흔히 통용되는 "제사"라는 용어나 "추도예배"라는 말보다 "추모제"를 권장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예배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인간의 종교행위가 본질을 이루기 때문에 고인의 추모예식에 예배라는 말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추도"라는 단어보다 "추모"라는 단어가 보다 소망의 신앙을 간직하는 기독교적 표현이다. "예식"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사회적 행사표현인 "식"보다  종교적 의식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본 지침서는 "임종예식","장례예식","하관예식","추모예식"으로 표현하기로 한다.

 4-3-2. 검소하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의식
 기독교인들은 상제례에 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몸과 마음이 흐트러짐 없는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여  타인의 본이 되어야 한다.  허례허식이나 의미를 알수 없는 습관에 매인 복잡한 예식은 신앙의 결단으로써 과감하게 버리고, 간결하면서도 정중한 예식이 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간소화 하되, 그 대신 간소화한 예식이나 의식 준비절차는 최선의  정성과 성실을 핵심으로 한다. 장례에 관련되는 모든 준비와 절차는   기독교장의사의 협조를 받되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3-3. 상제례 의식에서 민속신앙과 종교습합된 귀신 숭배신앙은 불가
 한국 가정의 전통적 상례는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을 기초로하여 그 예식절차가 진행되어 왔지만, 일반가정에서는 순수한 유교식 상례법이라기보다 전통민속신앙 특히 귀신신앙과의 종교습합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사자밥"을 놓는 것 같은 일이 일반 가정에서는 관습적으로 행해 진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일체의 귀신숭배신앙을 용납하지 않는다.

 4-3-4. 상제례 의식 가운데서 촛불이나 향을 사용하는 일에 대하여
 촛불은 어둠을 밝힌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으므로 기독교 의식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본래 향 피우는 일은  영혼과 신을 불러내리게 하는  강신(降神)의 의례로서 행해진 것이지만, 기독교인으로서는 그런 강신의 의미로서는 용납하지 않고 다만 조의(弔意)를 표하는  상징행동으로서, 그리고  상가(喪家)의 경건한 분위기와 안정,조문객의 조의표현, 그리고 주위환경을 청결케하고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향을 피울 수 있다.
 상을 당한 교인가정이나 비기독교인 가정에 조문을 갔을때, 빈소가 어떻게 차려져
있는 가를 살피고 정황에 알맞는 조의를 표해야 한다. 먼저 향을 피우거나 꽃을 올리거나 한 연후에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경건하게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하든지, 두번 절하든지  이 두가지 예법 중에서 한가지 예법을 자신의 신앙양심에 거리낌 없는대로  취하여 조의를 표한다. 그 후에, 상주나 고인의 유족들과 위로의 인사를 서로 한다.

 4-3-5. 상제례 의식에서 "절하는 禮"에 대한 신학적 이해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전통에서 산자나 죽은자에게 절이라는 형식은  예(禮)표현의 고유한 양식이다. 절은  동아시아 문화전통이 함께 공유하고 그 의미를 함께 인지하는   예절문화의 고유한 형태일 뿐 결코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언급하는 우상숭배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앞에 절하는 행위"란  유한한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그 앞에 인간의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복종시키는 잘못된 행위로서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고 우상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한 우상숭배 행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상제례에서 절하는 몸짓은 고인에 대한 조의,  추도, 추모의 심정과 명복을 비는 뜻을  말없이 전인적(全人的) 몸짓에 담아 표현하는 전통적 예법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가 상제례 시에 고인의 영정 앞이나  묘소 앞에서 절함으로 써 조의,추도,추모의 정을 표하는 행동을 우상 앞에 절하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금지시킨 것은 성경말씀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계명의 참 뜻을 바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그러한 성경문자주의에 얽매여 절하는 행위를 한국 기독교인에게서 빼앗아 버린 것은 한국문화공동체 안에서 한국 기독교인을 스스로 낯선 국외자로 만들어 버리는 반문화적 선교정책이었다고 우리는 반성한다.
  이미 3대 이상 믿는 기독교 가정에서 기독교적 상제례 예식법이 체질화되어 전가족 일가친척이 절하는 행동 없이 기도형태로써 조의,추도 ,추모의 뜻을 표현하는 것도 아름다운 예법이므로 그런 가정에서는 굳이 "절하는 예법"으로 되돌아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족과 일가 친척 중에서 때와 장소를 따라 "절하는 예법"으로써 조의, 추도, 추모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함이 필요하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양심의 자유와 마음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함이지 외모의 형식이나 계율에 얽매인 율법주의자가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3-6.  위패를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이는 일에 대하여
  유교적 상제례 의식에서 사대부 가정에서는 위패를 만들어 사당에 모시거나, 사당이 없는 가정에서는 기제사 때마다 화선지에 "0 0 0씨의 신위(神位)"라는 지방을 써 붙이고 예식을 거행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위패나 지방을 만들어 모시는 행동은 돌아가신 혼령이 그 자리에 장소적으로 임재한다는 신령의 빙의(憑依)를 신앙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동이라면  기독교인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것을 종교적 상징물로서 받아드리고 활용하는 자유를 견지한다면 문제 될 것 없다.  돌아가신 고인의 영혼은 위패나 종이에 임재하도록 모실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지극한  마음 가운데에 모셔야 하기 때문에 굳이 위폐를 만들필요는 없다.  기독교신앙의 관점에서 산자와 죽은자의 감응과 통함은 "성령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이뤄지는 영적 교통이며 감응"인 것이지 나무조각이나 종이위에 장소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제례 특히 추모제(기제사) 때에 고인의 사진이 없어서 추모제 의식에서 "중심(中心)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에는 위패나 지방을 써 붙이지 아니하고 그 대신 "0 0 0씨 제 # 주기 추모제"  라고 화선지에 쓰고, 그 아래에 짧은  성경구절을 써 붙이고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다.

 4-3-7. 상제례시에  제사상 위에 음식물을 진설하는 일에 대하여
  상제례시에 고인의 영정 앞에 음식을 차리는 일은 기독교인으로서 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비록 음식을 진설한 제사상을 차리는 동기가 추모의 정과 고인에 대한 정성 그리고 정성들인 음식물을 매개로 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죽은자는 물질적 음식을 흠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패나 지방을 써붙이지 않는 이유와 같이 음식을 제사상 위에 차려놓지 않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고인을 추모하는  후손이나 조문객이 그들의 추모의 정을 표현하는 가시적 형태로서  고인의 영정 앞에 그 무엇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작은 꽃바구니나 꽃다발로서  그 예를 행함이 좋다.
 그러나,  만약 가족 중에서 굳이 음식을 제상에 올리기를 원한다면  고인이 생시에 즐기던 음식을 중심으로하여 정성스럽게 음식물을 마련하여 진설 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런 경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신령한 영혼은 물질로 마련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성을 흠양하는 것인즉, 어디까지나 정성과 지극한 추모의 정을 음식물로써 표현하는  상징행위 이상의 의미가 없음을 신앙적으로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핵심요지는 꽃다발을 올리거나, 음식물을 올리거나, 이 두가지는 모두 다 물질을 매개로하여 고인에게 드리는 정성과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상징이라는 점이다. 그점을 분명히 깨닫는다면 제사상의 음식진설의 의미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말이며,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상제례시에 음식을 장만하여 예식 후에 참여자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그것은 "음복"의 정신을 신앙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음복의 정신을 신앙적으로 이어간다는 말은 상제례에 함께 참석한 일가친지들이 음식을 함께나누며 고인을 추모하는 "성도의 교통과 사귀임"으로 창조적 변형을 이루어 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음복을 통하여 전통문화의 좋은 점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인간이 어울려 노동함으로써 생산해 낸 음식물을 매개로 하여  어우러지는  생명의 연대성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의 차례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놓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4-3-8. 장례시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와 유족의 복장에 대하여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은 옳은 일이다. 전통적 유교복식대로라면 너무나 수의가 복잡하므로 핵심적 복식예법에 필요한 형태로서 간소화한 수의를 입힌다. 삼베로 만든  수의가 마련되지 못할  경우에는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중에서 가장 아끼던 깨끗한 옷을 입힐 수도 있다.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 중에서 남은 옷가지들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여 장례 후 태워버리는 일반인 습속을 기독교인은 따라서는 않된다.  그러한 행동은 물질낭비이며 신앙적으로 민속신앙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으로 생각하여 남은 옷가지들을 의미있게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유족들은 고인에게 수의가 입혀진 후 상복으로 갈아 입는다. 유족들의 복장은 전통적인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여자들은 흰 치마저고리를 입거나 검정옷을 입고, 남자들은 검정색이나 화려하지 않은 색상의 양복을 입거나 한복을 입는 것 모두 가능하다. 삼베 상장을 팔에 끼거나 옷에 부착 할 수 있다.

  4-3-9. 첫성묘(삼우재), 탈상예식, 추모제의 주관 등에 관하여
 우재(虞祭)란 본래 죽은 이를 지하에 매장하였으므로 죽은 이의 혼령이 방황할 것을 염려하여 우재를 거행하여 혼령을 편안하게 하려는 뜻에서 행하는 의식으로서 초우,재우,삼우가 있었다. 기독교인은 우재의 본래 의미에 구애받지 않고 장례 3일후 첫성묘(삼우재)를 하여 유가족들이 묘소를 살피고, 믿음 안에서 피차 위로와 소망을 돈독히하는  추모자리가 되는 것이 좋다.
 탈상일자는 정부의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부모,조부모,배우자까지는 100일째로 하고, 전통적 유교장례법에 의하면 3년째 대상일로 하고 있으나, 기독교인들은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여 탈상 일을 잡는 것이 좋다. 그리스도교 희망의 신앙에 기초를 두고 가정형편에 따라 가족들이 협의하여 탈상일자를 정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면 근신하는 기간을 보통 40일로 지켜오고 있으므로, 첫 성묘후(삼우제후) 주일을 제외한 40일째 탈상이 바람직하다. 여기에서 주일을 제외하는 이유는 주일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추모제(기제사)의 범위는 가족들이 기억하는 조부모대 까지로 한다. 명절추모제는 성묘하는 것이 권장할 일이며, 부모 양친이 모두 돌아가신후 3년이 지난후에는 가족들이 협의하여 부모양위 중 한 분의 추모제 날에 양위 부모님을 함께 추모하는 합동추모제를 드려도 좋다.  추모제의 주관은 장남이 아니더라도 좋으며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셔도 좋다.

  4-3-10. 화장과 묘지문제 및 비기독교인에 대한  배려정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람의 육체는 흙 곧 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육신의 몸이 죽으면 육체는 자연으로 환원되고, 속 사람 곧 영혼은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시신을 장례하는 법은 자연환경과 문화전통에 따라서 매장, 화장, 수장, 풍장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한국인은 매장법이 주류를 이루지만, 화장의 장례법도 신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일부 기독교인 중에는 화장법이 몸의 부활신앙과 대립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잘못 생각하는 신도가 있는데, 그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부활의 몸은 생존시에 지녔던 육체의 소생이나 재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영적 몸이요 신령한 몸"(고전 15:35-49)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국토의 공간면적을 생각하면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넓은 묘지점유는 잘못된 생각이다. 매장한 후 20-30년이 지난 후쯤 남은 유골을 거두어 교회의 공동 납골당에 함께 모시는 방법도 연구해 가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지녀야 할 상제례법에 임하는 기본적 관점과 신앙적 태도를 살펴 보았다. 상제례는 인륜의 대사이며 특히 가족들과 일가친지들이 함께 모여 이루어 나아가는 공동체 윤리의 가장 중요한 종교의례이다. 가족이나 일가친지 중에서 기독교 예식이 참으로 의미있고 경건하며 가장 소망스런 예식법례라고 인정 할 수 있도록 정성과 성심을 다하여 복음의 빛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는 중에서도 비기독교인이 종교적 차이로 상제례 예식 가운데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한 깊은  배려와  관용의 정신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상제례기간 중 교리적 논쟁이나 종교적 배타심은 경계해야 할 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5. 한국 그리스도교회의 추도예식의 분석과 그  신학적 의미

 한국 그리스도교회 공동체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상제례의 한국 문화 토착화 문제에 직면하여 적지않는 시행착오와 문화선교신학적 갈등을 겪어 왔으며, 그 갈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도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개신교 진보교단 안에서 祭禮의 토착화 시도를 꾸준히 추진하여 연구와 목회현장에서의 적용시험을 거듭해 왔다. 아래에서 우리는 천주교의 추도예식, 예수교 장로교회(통합)의 추도예식,  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추도예식을 분석검토하면서 바람직한 상제례 토착화의 방향을 모색해 보려고 하다. 여기에서는 상례는 다루지 않고 제례 곧 한국 각 가정에서 맞이하는 추도예식에 국한 하기로 한다.

 5-1. 한국 천주교회 추도예식

  한국 천주교회는 제2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교회갱신의 정신을 받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계기로 각종 예배전례를 개편하거나 토착화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여, 200여년전 제사문제로 10,000명의 순교자를 낸 신앙선열들이 후손답게 의미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선도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래에서는 1989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 제시도니 최기복 신부의 추도식 안을 소개하려고 한다.
  준비와 유의사항:  조상추도일이 닥아오면 가족은 다음이 유의사항을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                       다.
      1) 마음준비로서 고해성사를 받고, 마음을 깨끗이 하며 돌아가신 고인으 ㄹ생각한다.
      2) 몸의 준비로 목욕재계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최고의 품위와 예모를 갖출 수 있            는 복장을 착용한다.
      3) 집 안 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특히 제사드릴 곳을 잘 정도낳고 꾸민다. 벽에는십자가            를 모시고, 그 아래에 고인의사진을 모시고, 제상에는 촛불과향을 놓는다. 정성껒             준비한 제물을 진설 할 수있고, 꽃으로 꾸밀수도 있다.

  본 추도식 순서:
     1) 개식 해설:추도예식(제사)의 취지설명과 함께 개회를 알린다.
     2) 성호경과 성가 : 성가를 부르는 동안에 고인의 영정을 내모실 수 있다.
     3) 분향제례: 祭主가 분향한 후 참석자 모두는 제주와 함께 再拜한다.
     4) 시작기도: 시작을 알리는 기도를 드린다.
     5) 시편송도: 시편 27:1-11,13:1-4, 또는 시편 103:1-5,13-22ㄹ르 송도한다.
     6) 성경봉독: 집회서 3:1-16,요한복음15:1-17, 요한1서 3:14-18, 에페소서 5:5-20,등을                    읽는다.
     7) 주례자의 말씀: 예식 주례자가 봉독한 성경말씀을바탕으로 제사의의미, 선조의유언,                     가훈등에 대하여 되새긴다.
     8) 신앙고백
     9) 신자들의 기도 : 신자들의 기도는 자유롭게 바칠수 있으며 기도문으로 대신 드릴 수                     있다.
    10) 분향과 배례: 술, 과일,음식,꽃 등을 봉헌 할 수도 있다. 참례자가 많을 경우에는 대                     표자 몇명만 할 수도 있다.
    11) 독축
    12) 묵념: 참예자가 침묵중에 고인께 감사드리면서 잘못에 용서를 구하며,새로운삶의 결                  의를 다진다. 아울러 필요한 은혜에 대하여 선조께 전구를 청한다.
    13) 화해와 사랑의 인사
    14) 주의기도와 영광송
    15) 작별고함
    16) 마침성가 : 마침성가를 부르는 동안 영정을 본래 위치로 모셔갈 수 있다.
    17) 음복: 사랑과 일치의 잔치로서 선조와의 통교,가족간의 일치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이상에서 본대로 제사예식에 관한 한국 천주교회의 시안은 전통적 유교식 제사 예식순의 형태를 과감하게 거의 수용하면서  그 형식 속에  그리스도교적 신앙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향피우기, 再拜, 음식진진설 가능성 개방, 분향과 배례, 묵년등이 특히 인상깊게  예식 속에 받아드려 져 있다. 다만 초기 조선천주교회 신도들이 순교정신을 존중하여 위폐를 만들어 세우는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5-2. 한국 개신교 예수교 장로회(통합) 추도식 예식 지침

 한국 개신교 목회현장에서의 추도예식은 지방마다, 교파마다 조금씩 특징을 나타내지만 본질적인 순서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아래에 예수교 장로회(통합) 안을 소개한다.

  준비 유의사항: 1) 추도일은 고인의 별세일 거행하는것이 좋고,추도일이 주일과 겹치면 전                       날이나 다음날 거행함이 좋다. 시간과 장소는 가족의 합의하에 정한다.
                 2) 추도하는 선조는 직계 가족에 한하는 것이 좋으며 추도식의 지속은 고인                       의 자녀가 생존할 때까지 함이 좋다.
                 3) 고인의 가까운 친척,친지들에게 추도식이 있음을 알릴 수도 있다.  
                 4) 고인의 사진과 약력을 준비하고, 생전녹음해둔 육성이나 녹화해둔것을                        준비하여 상황에 따라 활용하는것도 좋다.
                 5) 식전을 꾸밀 경우,상 위에 고인의 사진을 세워놓고 꽃으로 장식 할수있                       다.
                 6) 음식을 준비하되, 진상(상차림) 해서는 않되며, 추도식 후에 참가자들이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활용한다.
                 
  추모식 순서:  1) 개식사: 주례자가 지금부터 故 *** 씨의 *주기 추도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 신앙고백: 다같이 사도신경을 암송함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3) 찬송 :534장이나 다른 적절한 찬송을 부른다.
                4) 기도: 기도맡은 사람이 기도한다.
                5) 성경봉독: 히브리서 11:1-12을 봉독한다.
                6) 말씀: 추도식 인도자가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설교한다.
                7) 기도: 순서맡은이가 기도한다.
                8) 고인의 양력보고 , 추모사, 고인의유뮬 유언등을 소개하고 추모한다.
                9) 찬송 531장이나 다른 적절한 소망찬송을 부른다.  
               10) 축도: 목사의 축도로 추도식을 마친다.

 이상의 개신교 정통교회의 추도식은 전통적 한국인의 제사의식의 모든 형식을 철저히  파기시키고, 거의 약식 가족예배 형식을 취하되, 말씀중시의 경건예배시간과 다름 없는 예식 식순을 진행하는 셈이 된다.  음식진설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며, 지방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촛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는 것을 금지시키며, 고인의 영정을 내다 놓는 행위도 금지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허락한 고인의 영정을 행한 기도대신의 절하는 것을 절대 금지시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위와 같은 개신교의 추도예식은 대단히 간소하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일가친척으로서 그 예식에 참여하는 자는 매우 무미건조함을 느낀다. 종교의 상징성이 너무나 제거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서적 충족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종교적 위로와 영적 갈증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운 감정을 느낀다.
   
  5-3. 진보적 개신교회 추도식  

  한국 개신교의진보적 교단중 하나인  기독교장로회 소속한 경동교회는 교회설립 50주년을 기년하는 행사중에서 상제례 토착화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고 상제례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잇는 한국 개신교도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주체적으로 새로운 추도식 예식서를 출간하였다.  그 예식서에 나타난 추도예식순서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준비유의사항: 1) 조상추모의례를 제사라고 부르지   말고 '추모제'라고 부름는 것이 좋다.
    2) 기일이 가까워 오면 가족들은 고인을 생각하고, 마음준비를 하며, 추모제 당일날은 몸          과 맘을 정결하게 하고 근신하는 자세로 기일을 맞는다.
    3) 고인이 가신날, 가족들은 정한 장소와 시간에 모인다. 추모제를 지낼 장소에 고인의           사진, 촛대 두개, 향로 ,꽃병등을 탁자나 상위에 올려 놓는다. 십자가를 고인의 사진          보다 높은 위치에 걸어 놓거나 사진 곁에 세워 놓는다. 향로나 촛대를 준비하지 않아          도 된다.
    4) 고인의사진이 없는 경우나, 사진을 모시는 경우에라도, 다음과 같이 한지에 써서 사진          윗쪽에 붙여 놓는다.
   
      " 아버님 ***님(또는 교회에서 맡았던 직분) 제 *주기 추모제"
            성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위 성구 대신 고인이나 가족이 좋아하는 짧은성구를 써 놓을 있다.
    
    5) 추모제 장소준비가 끝나면 온가족이 사진을 향하여 둘러앉고, 추모제 인도자는 사진            오른쪽에 위치한다. 촛불을 켜고 추모제를 시작한다.

  추모제 순서:
 1) 묵상과 개회기도: 온 가정은 고인을 추모하면서 성삼위 하나님께 묵상기도한다.
     추모제 인도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음성구중 한성구를택하여 낭독하는동안 가족들은 묵        상기도한다.   (시편23편 또는 시편 121:1-8)
     개회기도를 드린다.
 2) 사도신경 고백
 3) 가족 대표가 향을 피우고 두번 절한다.: 절 할 때 남은 가족도 함께 절하거나 영정을 바      라보며 고인을 셍각한다.
 4) 찬송 :다음 찬송가 곡중 한곡을 골라 부른다:429,431,349,543,535장
 5) 성경봉독과 말씀의 뜻새김: 신구약 성경을 미리 정하여 놓고, 인도자 또는가족 식구중 한                                 사람이 봉독한다.
 6) 대표기도: 참석자 중에서 한사람이 대표로 기도한다.
 7) 찬송부름:
 8) 고인에 대한 추모 말씀(생략 할 수도 있다)
 9) 성령 안에서 고인과 영적교통: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성도의교통"을 믿으며 성령의 안혜                           안에서 고인과의 영적 대화를 마음 속으로 약 1분동안 갖는다.
10) 주님가르치신 기도 : 주기도를 한 목소리로 드린다.
11) 축도: 목회자가 참석하였을 때축도한다.
12)  추모제 마침과 음식나눔:

 이상의 경동교회 추모제 시안은 한국 천주교회 예식순서와 한국 개신교 보수교단의 예식순서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특징은 절하는 행동을 허락하며, 위폐를 모시지 않고 추모일의 의미를 성구를 곁드려 한글로 풀어쓰며, 무엇보다도 "성령 안에서 고인과 의영적 교통시간"을 넣음으로서 추모제 시간을 단순한 도덕재무장 시간이거나, 신앙생활을  재다짐 하는  시간임을 넘어서 진정한 종교적 시간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경동교회의 지침은   모든 교인이 이 지침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지 않고, 특히 절하는 문제로 가족간에 갈등이 있을 때, 절하는 예절이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명문화 한 획기적 개신교의 예식서로서  평가된다.그러나 본 지침서는 동시에 부연하기를 이미 전가족 식구가 절하는 행동을 없애고 기도형태로서 예를 표하도록 전체 가정이  정착 되었다면 그대로 준행하는 것이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 함으로서 탄력성을 두었다.
 
6. 맺는말

지금까지 필자는  한국 가정의 질서와 화목과 한국사회의 가치관에 절데적 중요성을 지니는 조상제사의 문제를 어떻게 그리스도교적 신앙 관점에서 한국 문화 속에 토착화 시킬 수 있는가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분석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역사적 연구나  교회사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18세기 조선 천주교회의 수난을 초래 했던 제사문제는 단순한 종교의례상의 이질성 때문이 아니라, 제사제도로서 나타나는 전통 유교적 지배이념과 개화기의 신진 변혁세력간의 충돌로서 사회지배계층은 제사제도를 폐기시키려는 천주교도들을 사회해체를 조장하는 반역적 역도들로 파악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적 이념이 문화사회적으로 특정 지배이념으로 변질되었을 때, 새로운 종교의 도입은 곧잘 지배이념간의 갈등과 투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초기 천주교 신자들이나 19세기 개신교 신자들이 제사제도를 폐기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혁명의식은 사회전체의 진보와 인간화를 저해하는 보수적 반동세력으로서 유교적 이념이 제사제도와 결탁되어 사회전체를 정체와 형상유지상태로 지속하려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조상제사문제가 그 형식과 본질에서 빗나가 한국문화 속에  바르게 정착하지 못한 것은 제사제도가 反開化思想의 상징적 모습으로  일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치어 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계몽주의적 반발은 서구사회에서도 겪어야만 했던 일종의 시행착오였음을 알게 된다.
 
 둘째, 선교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 할 때, 16세기 마테오리치의 보유론적 선교신학정책을 비판하고, 바티칸 당국이 동양의 정신문화 유산 전체를 이교문화 및 우상문화로 단정하고, 17-19세기에  문화정복론적 태도를 취한것은 커다란 잘못이었으며, 피선교국의 신자들 특히 18세기 조선의 천주교도들에게 엄창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아시아적 정신문화와 종교문화를 심도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文化移植論的 선교신학을 견지한 서구신학적 오만은 깊은 반성과 발상법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한 근본주의적 신학적 태도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 개신교의 동북아시아 선교정책 속에서도 그대로 지속되었으며, 그러한 배타주의적 문화정복주의 선교신학은 서구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식민수탈정책과 시대적 괘적을 함께 하면서 오늘날 아시아 지역에 반기독교적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이 아시아 문화 속에 화육할 때, 아세아 문화속에 있는 반인간적 요소들, 반 복음적 요소들은 복음에 의해 변화되고 심판받으면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 문화의 모든것이 반복음적이거나 비복음적인 것이 아니므로,도리혀 복음이 아시아인들의 진정한 생명의 양식이 되려한다면 아시아적 문화 속에 육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셋째,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개신교가 전통 제사예식의 기독교적  토착화에 대하여 한국천주교회보다 더욱 보수적이 된 것은 종교적 상징신학이 빈약하고, 성경해석에 있어서  지나친 교조주의적 경전문자주의에  메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개신교는 좀더 상징신학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탄력적 사고로서 말씀중심의신앙 유형을 보충해야만 한다. 제사행위나 성묘시에 한국인이 가져왔던  자연스런 몸짓으로서의 절하는 풍속을  우상숭배하는 일과 동일시하는 단순논법과 단세포적 사고로서는 새로운 영적 시대를 열고갈 수 없다. 개신교 추도예식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절하는 예법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는 없으나, 아직도 한국사회가 종교적 다원사회임을 감안하여 절하는 행위로서 예를 표하려는 가족구성원의 태도를 우상숭배자라고 매도하는 종교적 오만은 극복되어야 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교적 관용정신이 견지되어야 한다.  
 
 넷째, 가장 바람직한 한국문화속에 신토불이 형태로 토착화된 그리스도인의 상제례의식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제정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인의 마음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심령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통과 복음의 본질이  지평융합되면서, 새 생명이 모태 속에 수태되고 자라난다는 사실이다.지금은 과도기적 문화변화기요, 다양한 문화가 상호 중층적으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창조적 변화를 일으켜가는 시대이다. 서양 2,000년의 기독교 문명권에서 형성된 추도식 형태를 그대로 문화이식 시키는것이 능사가 아니며, 반대로 전통을 고집하면서 번잡하고 시대착오적인 주자가례적 제사의식을 민족문화의 본질을 보존하는듯한 착각으로 전통집착적인 태도 역시 금물이다. 복음은 인간을 자유하게 하면서, 모든 형식주의와 전통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한다. 그러나 복음은 동시에 율법을 완성하고 온전하게 하면서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가죽 부대를 요청한다. 지금은 새로운 가죽부대의 샘플을 여러가지 형태로 선 보여야 할 때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추도식 시안이나, 한국 개신교 경동교회의 시안은 그 좋은 창조적 시도라고 평가된다.

                         참고도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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