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7 (08:42) from 218.39.129.99' of 218.39.129.99' Article Number : 505
Delete Modify 김경재 Access : 6691 , Lines : 177
한류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연대한문연&문화신학회,2011.11.24)
Download : 한류 심포지엄 20111124.hwp (56 Kbytes)
[한류 심포지엄 20111124, 한국문화신학회 & 연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주최]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
                                                               
                                                                 김경재
 
목차

1. 들어가는 말 : 주제탐구의 문화신학적 관심, 방법, 과제
2. 문화현상으로서 한류에 대한 문화콘텐츠학적 원인분석과 ‘정의’ 진단
(1) 왜 한류가 발생하였는가?
(2) 한류의 TV드라마와 한국대중가요(K-pop) 문화현상에 나타난 한류의 특징
(3) 한류의 예술적 상징성에서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우상적 기능과 정의문제
3. 한류를 일으킨 원형적 심성과 그 역동적 창조성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
(1) 폴 틸리히 성령신학의 ‘3가지  생명운동론’에서 조명
(2) 함석헌 고난사관의 ‘3가지 생명원리론’에서 조명
(3) 현영학의 탈춤신학과 유동식의 풍류도적 예술신학에서 조명
4. 에필로그
(1) 문화산업주의와 문화내셔널리즘을 넘어 ‘새로운 문명, 하나의 세계’ 출현을 촉매  
(2) 한국기독교의 맘몬주의와 교리적 종파주의를 넘어 ‘생명 평화 정의’ 공동체를 촉매

[1] 들어가는 말 : 주제탐구의 문화신학적 관심, 방법, 과제

2011년 늦가을 11월, 4회에 걸쳐 논의되고 있는 한국문화신학회와 연대기독교문화연구소 공동주최의 심포지엄 주제는 ‘한류와 정의’ 이다. 이 큰 주제를 기독교문화신학의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필자는 심포지엄의 주제에 대하여 ‘문화신학’의 과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므로 ‘문화신학’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신학의 한 전문분야인가 ‘한류’와의 관련해서 잠시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문화신학은 “종교는 문화의 실체요, 문화는 종교의 형태이다”(틸리히)는 고전적 명제에 기초하여 문화현상 속에 깃들어 있는 동시대 인간공동체의 ‘궁극적 / 준궁극적 관심’을 분석해 내서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한류는 오랜 문화공동체로서 축적해온 한민족의 문화적 잠재력이 1990년대 부터 한반도국경과 민족을 넘어서 온 세계로 확장해간 문화현상이다. 한류라는 문화현상에 대하여 인문학과  사회학의 여러 전문분야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적지않는 연구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신학자로서 필자는  에니메이션, TV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소설, 게임, 문화산업 조직과 운영등 예술문화 전문가들의 전공영역 담론들에 추가하여 또 하나의 아마추어적인 문화신학적 사족을 달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화신학은 그들 담론속에 담긴 문화형식 혹은 문화형태로 표현되거나 표출된 한류의 ‘궁극적 / 준궁극적 관심’의 성격을 복음의 빛에서 조명하고 성찰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신학은 복음이 세상적 삶현실의 궁극적 비젼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함의하는 것 , 다시말하여 온 인류의 자유해방 · 정의평등 · 생명평화 · 우상타파 · 영생초월등의 신앙적 이념의 빛으로서 한류의 문화현상을 이념비판적으로 그 빛과 그림자 양면을 평가하고 성찰한다. 이 논문은 한류라고 부르는 문화현상에 대한 복음적 조명및 평가의 성격을 띈다.
  둘째, 문화신학은 ‘종교’와 ‘문화’의 상호관계성이 단순한 수직적 혹은 수평적 차원에서의 ‘실체-형태 이원구조’(substance-form structure)가 아니라, ‘변증법적이고 상호순환 구조’(dialectical-perichoresic structure) 안에서 작동한다고 본다. 이 말의 뜻은 복음의 본질과 한류문화현상 이해가 상호작용하면서, 한국인의 삶을 리얼한 ‘생명의 잔치’가 되도록 봉사하는 공동과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를 담고있는 ‘그릇 이나 의상’같은 고정된 형태와 형식이 아니라 ‘피와 살과 신경망’을 갖춘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것이다. 복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진정한 ‘생수와 생명의 떡’이 되려면 문화라는 유기적 현실체로서 육화(肉化)하지 않으면 않된다. 종교는 문화 그 자체는 아니지만, 문화로서 구체화되지 않은 교리적 관념체계로서 머문다면 그것은 죽어 그 몸이 경직된 종교일 뿐이다. 문화신학이 한류라고 부르는 문화현상에 대하여 비판적 성찰을 한다는 뜻은, 정통기독교의 ‘성속이원론’의 교리적 잣대를 가지고 문화현상을 고답적 도덕기준으로서 평가한다는 말이 아니다. 도리혀, 그 역으로서 현대지구촌 문화현상의 빛 안에서 정통적 복음해석을 재조명한다는 상호조명을 문화신학은 목적으로 한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 복음의 증언과 육화방식은 매 시대마다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글의 구성은 서론을 포함하여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제2장에서 한류문화현상에 대하여  문화콘테츠학 관점에서 한류발생 원인, 현장 상황, 위기와 도전등을 예술문화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요약할 것이다.  다시말해서 ‘한류문화현상’ 서술담론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견해에 경청하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한류의 여러 문화콘텐츠 중에서 TV드라마와 한국대중가요(K-pop)로 통칭되는 젊은세대들의 군무음악예술(群舞音樂藝術)에 제한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류 문화현상 중에서 ‘겨울연가’나 ‘대장금’으로 대표되었던 TV드라마와 K-팝의 전령사격인  ‘아이돌 팝’(idol pop)이 한류의 밑바탕에 흐르는 기본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한류를 주도하는 대표적 문화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상징론에서 ‘시뮬라크르’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피고, 왜 한류담론에서 ‘정의’가 문제되는가를 언급 할 것이다.
 제3장은  본 논문의 중심 부문인데,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에 상존한듯한 민족 심성의 원형적 특성을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할 것이다. 특히 폴 틸리히, 함석헌, 현영학, 유동식의 신학적 혜안을 빌어 한류현상을 문화신학적으로 조명해볼 것이다.
제4장 에필로그에서,  ‘한류와 정의’라는 두가지 키워드(Key word)중에서 ‘정의담론’이 지닌 의미를  문화산업 및 문화내셜널리즘과 관련하여,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과 창조성을 가지고 이념비판운동의 촉매자로서 한류현상이 기능해주기를 기대하는 관점에서 약간언급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류가 현대 한국 개신교의 경직된 현상에 주는 메시지를 살펴 볼 것이다.

[2] 문화현상으로서 한류에 대한 문화콘텐츠학적 원인분석과 위기진단

(1) 왜 한류가 발생 하였는가?

 한류가 발생하고 진행되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주요한 동기들 즉 국가 문화정책과 문화산업적 요인, 한국민의 문화적 능력과 집약적이고도 중층적인 근현대 사회변동 경험에서 축적된 역동적 역사체험, 전자정보 기술혁명이 가져다준 미디아의 위력, 그리고 쏘련 사회주의 몰락이후 전개되어가고 있는 지구촌의 자본주의적 세계화라고 부르는 경제질서가 복합적 원인으로서 작용했다.
 첫째,  한류의 시작단계 혹은 준비기는 1980년대말, 서울 88올림픽을 계기로해서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을 알리고 알려는 의욕을 가진 문화정보적 소통의 필요성에서 시작되었다.       ‘88 올림픽’은 한국민으로 하여금 세계 지구촌 속에서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자리매김과 자기정체성을 묻는 계기가 되었고, 오랜기간동안 동아시아의 약소국가로 인식되어 왔던 한국이 세계 올림픽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을 보고, 세계인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및 제3세계 국가들은 한국이라는 작은나라의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역동성에 주목을 하면서 한류을 수용할 심리적 토양이 형성된 것이다.
 둘째,  한류가 발생확장해간 이유중 경제적 동기에 기인하여 정부와 기업과 문화계가 ‘문화사업’으로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목적으로서 국가적 기획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문화외적 요인을 무시 할 수 없다.
  순수한 문화활동과  예술적 창작활동이 경제적 뒷받침 없이 쉽게 달성될 수 없음은 현실이다. 그러나, 한류의 시작과 추진동력의 기본 심장에  ‘문화창조의 열정과 미학적 신명성’이 주도하는가 ‘문화산업의 수익성과  경제적 상품성’이 주도하는가의 문제는  한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점은 본론에서 중요한 아젠더로서 계속 논의할 것이다.
  셋째,  한류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아시아와 지구촌에 퍼져나갈 수 있있던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서 지식정보화시대와 디지털 기술공학문명의 발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기술문명에 들어선 지구촌 곳곳의 인간들은 공간과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나라’ 한국문화의 진수를 눈과 귀와 몸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 정보화지구촌 시대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한류는 가능했던 것이다.
   넷째,  한류의 비밀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민족이 경험하고 극복한 근현대 인류사회사의 중층적 시련과 역경을 극복한 문화민족의 문화콘텐츠라는데 관심의 무의식적 쏠림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은 세계사의 ‘고난의 영왕’(Queen of suffering)이 되었다. 조선조 봉건사회에서 민중의 고난, 19세기말부터 불어닥친 세계열강들의  식민지배통치 시련, 냉전시대의 정치이념적 인간집단의 광기,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의 소외경험, 형식적 민주주의를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현대사에서 피로쟁취한  시민혁명의 고귀한 체험, 자연자원이 없는 주변부 국가에서 기술집약적 디지털 기계수출국과 정보화사회에로 최단시일 안에  이룩한 집중력등등이 지난 120년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다. 그런 역사적 삶을 살아온 한민족이 만들어낸 문화콘텐츠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세계인들 특히 아시아인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 점이 궁금했던 것이고 한류를 통해 그점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류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서  타민족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매우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한민족의 문화·미학적 자질과 자산과 능력이 한류를 가능케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4가지 원인이 간접적이거나 외면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다섯째 원인은 직접적인 내면적 원인이자 본질적 동력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이 논문은 바로 그 점이 무엇인가를 문화신학적 측면에서 고찰하려는 것이다.

(2) 한류 문화콘태트중 TV드라마와 K-팝을 통해 나타난 한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류방생의 동인중 위에서 언급한 직접적이고도 내면적 동력으로 여겨지는 한민족의 문화·미학적 자질과 자산, 그리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 해내는 문화창조적 능력이 과연무엇인가라는 연구는 민족우수성을 자화자찬하는 소아병적 과대망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한민족의 문화예술적 능력속에 깊이 내재한 문화예술적 DNA의 분석은 필요하고 진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얼굴을 직접보기 어렵듯이, 한류의 문화예술적 특성을 검색하는데 있어서 TV드라마와 K-팝에 대한 아시아및 세계의 한류팬들과 언론들의 소감과 평가를 우선 귀담아 듣는 일이 필요하다.
 우선 한류를 절정기로 촉발시킨 TV드라마 작품들,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큰 문화적 돌풍을 일으킨바있는 <겨울연가>와 중국 및 아시아문화권에서 큰 반응을 일으킨 <대장금>의 수용자분석과 드라마 작품으로서의 텍스트분석을 시도한 전문가들의 연구보고서를 드려다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류를 통해 나타내 보인 한국 TV드라마는 고전연극론에서 멜로드라마가 갖춰야할 텍스트의 핵심구성소를 잘 갖춘 드라마로서  작품성에 한류인기의 첫째원인이 있다.
   TV드라마는 도덕강좌도 아니고 철학강의이거나 진지한 종교적 영성함양을 목적으로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즐기기 위한 문화적 욕망충족의 대상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음식이나 의복이 아니라 정신적 갈증, 갈등, 공허감, 가치혼란증에 대한 영적 존재자들로서의 욕망충족행위이기 때문에, 단순히 스트레스해소나 대리적 욕망충족을 넘어서 삶의 승화나 창조적 재충전의 기회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드라마는 고도로 경제산업이 발달한 일본이나, 경제선진화를 목표로하여 앞만 보고 달려왔던 아시아인들에게 우선 강렬한 ‘인간다운 삶의 자기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강렬한 감정성을 지녀 시청자를 흡입시키면서도 헐리우드형의 폭력적이거나 직설적 성적욕망의 감정표현이 아니라  사랑감정표현의 절제, 도덕적 진실과 인간의 선한 심성에 대한 신뢰와 궁극적 보상, 무엇보다도 직접적 욕망충족보다도 욕망의 승화를 시청자는 자기 안에서 경험한다. 흔히 한국 드라마가 지닌 몇가지 정형화 된듯한 틀에박힌 작품전개의 패턴들, 다시말하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랑이야기, 선과 악의 양극화된 대비, 음모에 의한 주인공의 상처와 좌절, 시련속에서도 도덕적 순결성과 자기희생적 숭고함, 암이나 교통사고같은 과장된 돌발사건의 개입, 미덕에 대한 궁극적 보상으로서 해피앤딩이 도식적 드라마패턴으로서 약점이라고 지적되곤 했다.
  그 모든 한국드라마의 약점지적이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아시아인들에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사랑,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는 인간다운 사회, 신실과 정으로 연계된 가족의 중요성, 물질적 이익과 동물적 폭력성을 넘어서는 인간다움을 상기시키는 작용을 했다. 줄여말하면, 한류가 발생하던 초심으로 돌아가보면 ‘문화산업’으로서의 기획성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문예활동’으로서의 예술성이 태풍의 눈이 된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 한국드라마가 아시아인들에게 준 호소력은 오랜세월 가부장중심문화 속에 짓눌려지내오던 여성으로서 인간승리 스토리를 통하여 ‘여성해방’의 메시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어우러저 공인간성(共人間性, Mitmenschlichkeit)이 발현되는 인간성의 건강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다.
 한류드라마가 아시아인들에게 준 문화적 호소력과 충격의 기술적 요인으로서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 배경음악, 수준급의 촬영기법, 중심인물들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패션, 한국의 자연풍광과 이색적 음식문화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찌보면 드라마작품제작의 기본요소들이다. <대장금>이나 <다모>같은 참신하게 영상예술로 표현된 사극적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어서, 지혜와 불굴의 용기로써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고도의 전문성까지 갖춘  ‘커리어 우먼’으로 자기실현을 이루는 드라마를 통해서 관객들은 ‘대리만족’을 넘어서서 ‘인간승리’를 찬양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두가지 한류드라마의 특징에 대하여 영상문화비평가 이수연은 한류 TV드라마가 왜 청중에게 관람동기와 구매동기를 부여하는가를 작품의 소구성(訴求性)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 다음같이 짧게 요약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소구성은 환상의 구현과 감정적 사실성이라는 두가지의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은 바로 이 환상적 측면과 사실적 측면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상은 수용자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에 매혹적이지만 감정적 사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환상은 신기루 일 뿐이다. 또다른 소구성은 환상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면의 제약을 고려하여 이제 한류문화콘텐츠의 다른 장르 K-팝문화 현상이 왜 아시아와 세계젊은이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는지 핵심만 살펴보기로 하자. TV드라마가 세계적 호응면에서 동질적 유교적 문화토양을 바탕으로한 아시아국가들에서 더  호흥이 컸다면, K-팝으로 총칭되는 ‘群舞的 대중음악콘텐츠’는 음악성이 지닌 초국가적 보편성과 어울러져 더 큰 폭발적 반응을 얻고있다. 한류음악이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문화현상은 왜 가능한 것인가?
  한국대중음악이 한류의 또하나 대표적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초창기 한국 예술음악인들의 헌신적 공헌과 함께 대표적 연예기획사들(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들의 문화산업적 기획능력과 수많은 ‘이이돌 그룹들’(idol groups)의 발굴선발, 교육훈련, 외국연예기업체와의 협력등에 힘입은바 크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3사방송국의 음악콘서트와 경연대회, 그리고 한국대형 연예기업체들이 아무리 상업적 마인드를 가지고 ‘예술적 문화’를 ‘상업적 기업’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평받는 일면이 있다하더라도 오늘날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자연드럽게 받아드려지는 현실에서 긍정적, 부정적 양면성은 공평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한류를 이어가는 한국대중음악의 자세한 분석이나 전문적 음악성의 비평적 해설에 있지 않다. 그러한 작업은 문화신학자의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TV드라마에서 이미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왜  요즘  ‘아이돌 팝’이 국경, 인종, 민족, 그리고 이념을 넘어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 호응을 얻는가 그 음악적 비밀코드를 간파해내려는데 우리의 관심이 있다.
 첫째, 주지하다시피 K-팝으로 통칭되는 한국적 젊은 이들의 ‘群舞形態의 한국대중가요’는 음악과 춤과 가사가 어우러지는 매우 역동적 종합 예술음악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아이돌 팝’(idol pop) 그룹들의 춤과 노래를 보고 듣노라면 그 옛날 산야를 무대로삼아  심신을 단련하고 예술적 기예를 익혔던 신라 화랑들의  현대적 부활을 보는듯 하고, 강강수수월레를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조상들의 신명나는 댄스음악의 현대판 부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엔 개인이 아닌 집단공동체의 역동적 몸동작과 조화로운 힘의 예술,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모티브의 주입을 통해 지속되는 신명남과 어우러짐, 단순한 놀이문화로서만 아니라 새로운 이상적 사회실현을 꿈꾸며 준비하는 예언적 언행들의 숨결이 숨겨저 있다.
 둘째, 한류의 중심장르로서 날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 젊은이들의 ‘군무적 대중가요’의 음악적 특징으로서 한민족의 문화적 특성을 바탕에 깔고서 지구촌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혼융시키는 음악적 융화성(融和性)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융화’(融化)는 녹아서 아주 다른것이 되는 것을 뜻하고, ‘융합’(融合)은 여럿이 녹아서 하나로 합치는 것을 뜻한다면, 융화(融和)는 서로 어울러져 화목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댄스 & 일렉트로닉’ 음악장르와 닮은  아이돌 그룹의 ‘군무적 대중음악’을 보고 들으면 그 안에는 음악적 계보상으론 발라드풍의 사랑의 노래가 있는가하면, 정통흑인음악, 발랄하고 경쾌하게 질주하는 듯한 뮤직하우스 스타일, 힙합이나 랩이 들어간 이색적인 리듬의 노래 스타일 등이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각각 음악적 특성을 잃지않는 묘한 ‘융화’적 음악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명칭자체가 ‘아이돌 팝’이 된 것도 세계나 한국의 대중음악 장(場)에서 독특하고 차별화된 음악적 실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명칭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음식문화에서 ‘비빔밥’처럼 비빔밥 구성소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살아있으면서도 전체가 어우러져 이전에 없던 독특한 음식맛을 내는 한국적 예술미의 현대음악적 재현으로 느껴진다.
 셋째, 한류대중음악의 특성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이돌 그룹들의 예술문화직업에 종사하는 예능인으로서 자기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인데, 아이돌 팝그룹이 ‘사회비판정신’과 ‘섹스와 돈의 우상숭배’ 양자 사이에서  항상 유동적으로 불안정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영국의 비틀즈 노래패나 미국의 마이클 잭슨의 음악세계도 첨엔 ‘탐욕과 위선에 병든 사회와 현대인’에 대한 강렬한 문명비판 운동으로서 시작되었다가 점차로 거대한 문화산업의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힘앞에 굴복하여 현실적응과 현실탐익의 문화산업단체로 전락하듯이 한류의 아이돌그룹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한류와 정의’라는 두 개의 아젠다가 동시에 성립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한류대중음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를 단순한 음악적 기예의 측면만 보고서는 이해 않되는 숨겨진 어떤 요소를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물질과 권력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들이 새로운 삶을 지향하는 무의식적 갈망을 한류대중음악 콘서트에서 읽거나 느끼는 것, 곧 새로운 삶의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면서 현재 식상한 세계문명질서를 비판적으로 저항하는 문화적 상상력의 의한 새로움에 대한 지향성인 것이다.그것이 진정한 문화의 힘이다. 이 점을 놓친다면 한류는 권력과 자본의 패권논리에 다시금 포로가 되어 태풍이 열대성 고기압으로 변화되듯이 그 역동성과 매력을 상실하고 말 위험이 항상 있는 것이다.

(3) 한류의 예술적 상징성에서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우상적 기능과 정의 문제

  한류만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일종의 유사종교적 기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스포츠, 섹스, 대중문화를 교묘하게 관리조종하여 독재적 정치가들이 대중의 관심을 중심주제에서 주변문제로, 창조성에서 소비성에로,  존재의미의 관심에서 존재현실의 관심에로, 궁극적 관심에서 일상적 관심에로 돌려놓은 수단으로서 이용하기도 한다. 모든 대중문화가 저급 문화라거나 대중음악에 쉼취하는 팸덤들이  ‘깨어있는 역사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단정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인간의 문화활동 속에 깃들어있는 의미활동 속에 문화현상이 유사종교적 기능을 담당하면서 인간들로 하여금 세속주의적 가치들을 ‘종교적 대상’으로까지 승격시키고 거기에 몰입하거나 몰입당하게 함으로서 진정한 인간의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를 때, 문화신학은 문화현상이 드러내는 유사종교적 기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TV드라마나 K-팝 장르에서, 주연급 배우와 음악가수및 연예인들은 현대인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아이돌 팝’이라는 호칭자체 속에서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도 직단접적으로 젊은 세대 예술인들과 그 예술행위가 수용자들에게, 모방하고 흠모하고 심지어 숭앙하고 감격해하는 ‘종교적 대상’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그들의 파격적인 패션스타일, 엘렉트로닉 사운드와 신비로운 가사들, 역동적 동작의 춤과 노래들은 단순히 음악영역을 넘어서 문화종교적 의미를 담지하는 것이다. 꿈과 환상을 심어주고, 당분간 현실 그 자체를 잊게하여 몰입하게 하며, 심지어 맹목적인 헌신과 추종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문화비평가 이동연은  “스타가 만들어낸 문화적 표현물들과 공연, 그리고 각종 장식물들은 문화산업시장에서 상품으로 소비되면서 대중에게 기념비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유사종교적 우상의 아이콘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소비 메카니즘이다” 이라고 갈파한다.
 그런데, 문화신학이 주목하는 것은, ‘아이돌 팝’ 연예인들이나 가수들이 ‘종교’를 의도적으로 참칭하거나 이용하거나 대신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사실이다. 참다운 종교적 대상을 부정하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들이 관계하는 ‘문화예술활동’을 대치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종교가 말하는 ‘신적인 것, 혹은 궁극적 실재’의  구체적  ‘상징’ 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원본이 없는 우상’으로서  유사종교적 성향과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시뮬라크르’(simulacre)나 마찬가지이다. 이 불어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흉내, 모의, 외모, 겉치례, 환상, 환영>등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단어이다.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는 종교를 신이나 절대자같은 실체를 전제하지 않고서도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라고 종교현상학적으로 규정한바있고, ‘궁극적 관심’이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관심”이며 종교란 바로 그런 ‘궁극적 관심에 붙들린 상태’라고 말한바 있다. ‘아이돌 팝’에 열광하고 심취하는 청중이나 특히 열성팬들에게는 교회와 성당과 사찰에서 받는 자기 삶의 의미보다 ‘아이돌 팝’ 콘서트에 더 몰입을 경험 한다면 대중문화가 그들에겐 종교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원본이 있는 종교냐 없는 우상이냐’라는 관념론적 담론은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진정한 문제는 정통종교이거나 유사종교 기능을 하는 문화종교이거나 간에 종교가 주는 실질적 ‘존재변화체험’ 곧 자기실현, 자유인으로서 해방, 생사문제의 해결, 사랑자비의 실천능력 고양, 진선미와 일치 등을 경험하게 해주는냐의 여부만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성서적 종교의 관점에서 참종교의 시금석으로서 ‘정의’ 문제가 거론된다. 사실 신구약 성경에서 참 종교로서 야훼신앙과 우상종교로서  바알신앙과의 갈림길은, 종교가 해당 종교 귀의자에게 주는 위로, 풍요로움의 약속, 안전, 다산과 번영, 생명의 충만감 같은 점에 있지 않고 ‘정의로움의 요소’가 핵심이었다. 황금송아지가 상징하는 부와 권력은 오늘날도 한류라는 문화산업에서 경제적 부가가치창출과 명예로움의 만족감과 국가이미지 제고라는 정치아젠다로서 작동한다.
  한류와 관련하여 ‘정의로움’의 요소는 3가지 차원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한류문화 현상이 문화창조적 아이콘으로서 긍적적인 ‘시뮤라크르’가 되느냐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현대 대중문화의 ‘우상’이 되느냐도 결국 ‘정의’ 요소가 사느냐 죽느냐로서 결정된다. 첫째, 한류문화산업의 창작진들과 출연자 연예인들과 연예기획사와 소비대중등  각 구성원들간에 공정성과 투명성과 인격적 존중이 담보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둘째, 한류문화상품이  제3국에로 수출될 때 여타 민족문화와 지역 문화산업체와의 상호관계성에서 상보상생적 관계가 ‘정의로움’이라는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영위되고 있는가? 셋째, TV 드라마이건 아이돌팝이건 세계에 진출하는 한류의 문화콘텐츠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과 권력과 소비문화의 잘못된 문명질서를 ‘정의로움’의 이름으로 분노하는 저항적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현상으로서 1980년대 말부터 나타난 한류에 대한 문화콘텐트학적 분석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별했고, 말미에 한류와 ‘정의’라는 주제가 왜 이번 학술심포지엄의 제목 속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양자의 관계성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이제 본 논문의 중심부에 들어가보고자 한다. 다음장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류를 창발(創發)시켜낸 조선 동이족 후예들의 집단적 민족심성의 원형적 특징을 문화신학적으로 조명해보는 과제가 될 것이다.

[3] 한류를 일으킨 원형적 심성과 역동적 창조성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

(1)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3가지 생명운동론’에서 조명


  조지훈(1920-1968)은  민족성이라는 것은 동일한 풍토적 환경에서  역사발전을 겪으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동안에 형성된 공동적 마음바탕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성격은  풍토적 특성으로서 ‘대륙성’과 ‘해양성’ 두가지가 서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대륙성이란 대륙적 지질 기후 풍토가 주는 대륙적 웅혼성일 터인데 이것이 민족성 속에 역동적 ‘격정성’을 길러주었고, 해양성은 남방적 해양에 접해있음으로 인하여 길러지는  예술적 ‘평화성’을 길러주었다고 분석한다.
 민족성은 자연환경영향아래서만 아니라 오랜 정치역사적 공동경험에 시달리면서도 형성되는데, 한민족은 동아시아의 동쪽에 위치하면서 주위에 여러나라와 관련을 맺어야하는 다린성(多隣性)과 삼국시대 이후론 반도 땅 안에 갇힌 고립성(孤立性)의 제약을 받아 각각 ‘적응성’과 ‘보수성’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위와 같은 자연환경과 역사환경 특히 정치사회적 공동경험에서 형성된 민족심성은 문화창조의 특성으로서 감각적 ‘수용성’과  ‘조형성’을 길러주었다고 분석하였다.
 정리하면 한민족의 민족심성은 그 특징으로서 대조되는 3가지 조(組)로서 압축되는 양면성을 지니게 되는데, ‘격정성과 평화성’, ‘적응성과 보수성’, ‘수용성과 조형성’으로 대립되는 양극적 성격을 갖게된다. 중요한 것은 이 양극적 요소들은 이론적 분석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일 뿐 실재로는 이 양면적 대립소들이 신묘하게 어울러지고 융합 될 때, 한민족의 독특한 기질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고, 각각 대립소들이 분열적으로 나타날 땐 온갖 부정적 민족 심성이 표출된다고 보았다. 예들면,  격정성은 광기성과 조급성으로, 적응성이나 수용성은 모방성과 짝퉁 선호기질로, 평화성과 보수성은 사대적 극우파 정치이념으로, 조형성은 심각성이 결여된 감상주의에로 흐르게 된다.
 필자는 조지훈의 민족심성 형성에 대한 가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민족 심성의 여섯가지 특징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나타남으로서 ‘한류’라고 통칭하는 독특한 예술적 맛과 멋을 창발시킨다고 보고싶다. 그것들은 어떤 TV 드라마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불굴의 강인한 성격과 인애와 평화지향적 이미지로 나타나고, K-팝 군무속에서는 웅혼한 역동적 동작 가운데 조화와 생기(生氣)의 신선한 바람으로 감지되고, 현대팝음악의 여러 장르들이 음악적 조형성을 띄면서 한국 아이돌팝의 특유한 음악성으로 감동을 준다.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생명의 존재론적 양면성을 통전·융합·조화시키는 제3의  원리 혹은 제3의 감추인 능력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기독교 신학은 그것을 가능케하는 실재가 바로  ‘힘과 의미’의 통전자요 ‘새로움과 생명’의 창발자인 성령이라고 이해한다. 그러한 성령론적 생명관에서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인간생명 운동의 3가지 차원을 다음같이 분석하고 그 양극성적 분열을 극복케하는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를 구원받은 상태 혹 건강한 생명상태로서 설명하였다.
 틸리히에 의하면 모든 생명들은 그들의 존재성을 지속하기 위하여 세가지 근본적 운동 속에 있다. 틸리히는 그 3가지 운동을 ‘생명의 자기통전 운동’, ‘생명의 자기창조 운동’, 그리고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이라고 명명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그리고 그 범주안에서 진화선상에 출현한 여러 가지 다양한 수준들의 모든 생명체 안에서, 어떤 생명체안에서는 희미하게 혹은 보다 명료하게, 이 세가지 운동은 나타난다.   폴 틸리히는 생명의 위와 같은 세가지 기본 운동의 결과가 인간생명 차원에서는 각각 인격현상, 문화현상, 종교현상으로서 보다 더 명료하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 the self-integration movement of life)은 생명체가  자기로서 중심성을 지닌 개체로서 자기를 의식하고 지탱하려는 자기중심적 생명충동 속에 뿌리 박고 있다. 이 운동이 인간이라는 생명종에서 자기의식을 갖춘 인격성으로 꽃 피었다.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인간존엄성 의식에서 극치에 이른다.
  그런데, 인간생명체의 자기통전운동은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 있는 ‘개체화와 참여’(indivualization and participation)라고 표현되는 두가지 생명현상의 상의·상자·상보·상생(相依·相資·相補·相生) 속에서만 그 실현이 가능하다. 개인생명이 인격적 개체로서 영글어지려면  개체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들과의 관계적 참여 속에서만 형성가능하다. 3대 타자는 자연, 역사, 그리고 사회인 것이다. 인간은 그의 실존상황 아래에서 언제나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양극의 한쪽으로 기울어 질때, 생명은 병들고 자기통전 상태인 역동적 건강성을 상실하게된다.  생명의  연대성과 사회성을 철저하게 인지하고 참여하는 개체적 인간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제3의 신비한 힘 또는 원리가 ‘생명의 영으로서 성령’이라고 기독교는 고백한다.
 틸리히의 생명신학에서 생명의 둘째 기본운동은 ‘생명의 자기창조운동’(the self-creation movement of life)이다. 이 운동은 생명이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서 동일한 생명패턴을 무한 반복하면서 제자리에서 뱅뱅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앞을 향해 전진하려는 생명충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창조’라는 단어는 물론 인간이라는 생명단계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나타나지만, 인간이하 생명체에서도 약하고 희미하게나마 이전보다 다른 것, 다양한 폼세를 창발시키려는 본능적 충동 속에 있다. 진화곡선상에서 인간 생명종 단계에 이르러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문화’라는 현상으로 꽃피어 났다.  
 그런데,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두가지 서로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 있는 ‘역동성과 형태’(dynamics and form)의 상호관계성 안에 있는데, 양극성이  ‘상의 상자 상보 상생’ 관계 안 있을 때에만 건강하고 그침없는 창조적 운동이 가능하다. 인간생명 체험단계에서 ‘역동성’이라는 범주안에는 자발성, 자유분방, 힘의 충일성, 신명성, 놀이성 개념이 다 포함된다. 다른 한편 ‘형태성’ 이라는 범주에는 규칙, 질서, 법률, 제도, 조직, 형식등의 개념이 다 포함된다. 인간 실존적 문화창조 활동안에서는 이 두가지 구성적 요소가 상호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서 서로를 제약하고 서로가 다른 구성소를 무시하려는 충동 속에 휩싸이게 된다.  율법, 정치적 제도와 법률, 예술적 형식과 형태이론은 문화창조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억압한다. 이 긴장 갈등을 창조적 상보관계에로 승화시키는 제3의 생명원리와 힘이 성령이라고 기독교는 고백한다.
 틸리히의 생명신학에서 생명의 제3운동은 ‘생명의 자기초월운동’(the self-transcendence movement of life)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하고 우발성에 존재위협을 받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생명있는 것들은 단순히 제자리에서 반복운동 하거나, 새것을 지향하려는 전진적 창조운동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한계를 돌파하려는 ‘초월’운동을 하려한다. 인간생명 현상에서 이 운동은 마침네 ‘종교현상’에서 극치를 이룬다.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은 말하자면 위로 오르려는 생명의 상향운동이다. 비상(飛上)충동 이며 유한성을 극복해보려는 운동이다.
 그런데, ‘생명의 자기초월 운동’ 역시 인간실존 상황에서는 두가지 서로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서 요동치게 되는데  그 두 대극적 요소는 ‘자유와 운명’(freedom and destiny) 이다. ‘자유’란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자기를 초월하려는 인간 의지와 존재의 용기이다. ‘운명’이란 숙명이라고 해도 좋고 필연이라고 해도 좋은 삶의 근본적 한계성을 다 내포한다. 예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 생노병사의 인간 한계상황, 천재지변등 거대한 자연시련등이다. 운명을 초극하려는 인간생명의 자기초월 충동은 때론 종교, 숭고한 이념, 과학지상주의등을 절대화시킴으로서 우상화 혹은 악마화 라는  덫에 걸린다. 반대로 자유를 극단화시킴으로써 교만(hubris), 무제약적 탐욕(concupiscience), 허무주의, 세속주의에 빠지곤 한다. ‘자유와 운명’의 양극성을 ‘상의 상자 상보 상생’관계구조 안에서 건강한 자기초월 운동으로 지양하려면 제3의 원리 혹은 힘이 필요한데 기독교는 그것을 은총과 사랑의 능력이신 성령이라고 고백한다.
 한류가 건강한 역동성과 생기발람함과  예술적 조화를 표출해내는 문화운동으로 계속 발전하려면, 틸리히가 분석한 생명의 세가지 운동이 지닌 서로 대립적인 요소들 곧 ‘개체성과 사회성’, ‘역동성과 형태성’, 그리고 ‘자유와 숙명’의 상호관계성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창발적인 승화예술 이라야 한다. 그 양자를 통전시키는 의미와 능력의 통일적 실재가 성령인데, 일반 문화운동 속에서 ‘성령’은 결국 ‘생명의 기(氣), 숨결, 해방과 화해의 촉매로서 나타난다.   

(2) 함석헌 고난사관의 ‘3가지 생명 원리론’ 에서  조명

 함석헌(1901-1989)은 한국역사를 지어가는 한민족 성격중 가장 중요한 특징을 두가지 들었다. 그 하나는 “호양부쟁(好讓不爭)”의 성격으로서 오늘날 말로서 표현하면 관대 · 박애 · 예의 · 청렴 · 자존등의 개념인데  순수 우리말로 압축 표현하면 ‘착함’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기본성격은 중국 『후한서』에서 우리민족 성격묘사를 하는 글중에  “인성질직강용(人性質直彊勇)”이라는 표현인데,  요즘말로하면 용감 · 올곧음 · 굳셈 · 지조 등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순수 우리말로 압축표현하면 ‘날쌤’이라고 보았다. 다시한번 『후한서』표현으로 하면 ‘강용이근후’(强勇而謹厚)라는 것이다.
  현재 많이 변해버린 한국민의 심성을 보면 함석헌의 생각은 지나치게 민족심성의 좋은 면, 그것도  오랜 옛날 우리조상들의 심성묘사같이 들리지만, 집단적 민족심성의 가장 밑바닥에 ‘착함과 날쌤’으로 압축표현되는 두가지 성격이 있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류를 연출해 나가는 문화콘텐츠 모든 분야에서 ‘날쌤’이라는 역동성과 ‘착함’이라는 인간본연의 인(仁)의 함축성을 빼놓고서는 ‘한류’의 한류다움은 그 원샘터를 찾기 어렵다.  
  함석헌의 씨사상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성찰할 수 있지만, 그 중 한가지로서 필자는 한국적 ‘생명철학’으로서 읽고자 한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은 세가지 기본원리를 주장한다. 첫째는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원리, 둘째는 ‘생명은 스스로 함이다’라는 원리, 그리고 셋째는 ‘고난은 생명의 구성소이다’라는 원리인 것이다.
  첫째,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원리는 생명이란  사람의 몸처럼 유기체적으로 서로 관계되어 있는 ‘一卽多, 多卽一’의 화엄적 연기세계(緣起世界)로서 相依· 相資 · 相補· 相生 관계속에서 개체이면서 전체이다는 자각이다. 함석헌의 이 첫째원리는 폴 틸리히의 생명신학의 첫째 기본운동인 ‘생명의 자기통전적 운동’하고 통한다.
  둘째, 함석헌의 생명철학의 둘째원리인 ‘생명은 스스로 함에 있다’라는 원리는 생명의 자발성, 자유, 역동성, 창조성, 자기조직화 운동을 강조한다. 함석헌의 이 둘째원리는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둘째기본운동인 ‘생명의 자기창조운동’과 상응한다. 함석헌은 다음같이 말하는데 신학자 폴 틸리히의 생명신학과 생각이 통한다.
  
생명은 지어냄(創造)이다. 맞춤(適應) 위에 대듦이 있듯이 대드는 바탈(性) 뒤에는 끊임없이 새 것을 지어내려는 줄기찬 힘이 움직이고 있다. 생명은 자람이요, 피어남이요, 낳음이요, 만듦이요, 지어냄이요, 이루잠이다.  하나님은 나타내는(啓示, 現實) 이다. 절대의 뜻(意)이다. 끊일 줄 모르는, 다 할 줄 모르는 의욕이다. 의욕보다도 의미다. 의미기 때문에 의지요, 의의(意義)다. 그것은 영원  히 된것(完成)이면서 또 영원히 되자는, 되고 있는 것(未完成)이다.

 셋째, 함석헌 생명철학의 셋째원리는 ‘고난은 생명의 원리이다’라는 주장에 있다. 이점은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생명철학을 서구 철학사에 나타난 생명철학과 구별시켜주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 생명이 있는 곳엔 언제나 항상 고난이 있다는 것, 고난은 생명탄생과 지속과 자기승화의 필요불가결한 구성소라는 인식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미화하거나 찬양할 것은 아니지만 도피해서도 않되고 부정적으로 억업해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고난은 생명을 정화시키고 더 높게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이 생명의 셋째원리는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세 번째 기본운동 ‘생명의 자기초월운동’과 상응한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인 씨사상에서 보면, 하나님 · 역사과정 · 사람(민중)의 삼자관계는  마치 진흙바닥에 뿌리 박고서 솟아난 연꽃이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연꽃줄기가 수면위로 꽃을 피워내는 생명현상으로서 은유된다. 그 삼자 곧 뿌리, 줄기, 꽃잎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뒤집어 생각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온 우주 생명’을  맨  꼭대기에서 본 것이고, 역사는 움직이는 시간과정에서 본 것이고, 민중(씨알)은 맨 땅 바닥에서 본 것이다.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땅위의 민중고난은 역사의 고난현실이요 곧 그것은 하나님의 고난이기도 하다. 맨 바닥의 흙중의 흙인 고난당하고 있는  민중의 생명 안에 참 샬롬이 실현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다. 이미 실현된 천국일지라도 온전한 만물의 성취 ‘새 하늘과 새땅’을 기다린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이다. 한류는 민중의 고난과 희망을 예술로서 보여주는 것일 때 뭇 사람을 언제나 감동시킬 것이다.  
  ‘한류’를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함석헌의 생명철학이 말하는 세가지 생명원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류가 아무리 현대 대중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문화산업으로서 발전하더라도, ‘문화상품’으로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운동’으로 발전 해가려면, 한류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문학, 예술, 경영, 기획 모든 전문가들의 문화창조 작업과정 속에 현대문명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철학적 비젼이 작업바탕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은 지나치게 ‘고난’을 터부시하며, 인간의 ‘한계상황’을 부정하고, 대중을 ‘쾌감원리’로서 이끌어가면서 일차원적 ‘욕망과 충족’의 메카니즘 속에 몰입시켜가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틈새를 끼고 들어온 것이 상업주의요 섹스어필하게 하려는 성욕자극 예술형태이다. 그리고, 상업주의와 성애주의는 굳건한 동맹을 맺고서 ‘한류’의 본래적 문화예술적 생명력을 세속화 시켜버릴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다.

(3) 현영학의 탈춤신학과 유동식 풍류도적 예술신학에서 조명

 한국의 민중신학은 그동안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하여 하여 후학들에게 더많이 영향을 끼치고 연구되었다. 그 결과 한국 민중신학은 ‘사회정치신학’ (a socio-political theology)으로서 각인 되어온 감이 강하다. 그것은 틀린 이해는 아니지만, 1970년대 민중신학자 제1세데 3인방 중에서 또다른 한 분 현영학의 ‘탈춤신학’을 통해 보여준 귀중한 통찰을 소홀히 한 감이 없지 않다. 이번 한류에 대한 신학적 조명을 함에 있어서 현영학의 탈춤신학과 유동식의 풍류도적 예술신학의 관점에서 한류를 조명하는 것은 ‘한류’가 일단 ‘정치사회사건’으로가 아니라 ‘문화사건’으로서 발생한 것이기에 더욱 더 중요하다고 본다.
 현영학(1921-2004)의 탈춤신학은 그의 탁월한 문화신학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기념비적 논문 「한국탈춤의 신학적 이해」는 탈춤에 대한 최초의 신학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한국신학사에 길이 기억할만한 논문이 되었다. 당시 군사정권의 독재성에 비판적이던 대학생 저항써클에서 탈춤을 통하여 정치적 사회비판을 즐겨행할 때, 현영학은 한국탈춤은  단순히 정치적 비판의식의 표현으로서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더 깊고 넓은 종교적·사회문화적 의미가 엿보이고 있다”고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위 논문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할 자리가 아니므로 한류와 관련하여 몇가지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현영학은 마샬 맥루한의 명언이었던 “매체가 메시지 이다”를 인용하면서 탈놀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놀이의 구성요소를 입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탈 놀이의 구성요소들, 즉 탈, 음악과 무용, 공연시기와 장소, 재담, 연희자와 관중등의 복합적인 구성요소들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리라고 본다. 재담에서 나타나는 희극적 갈등구조의 메시지도   이 복합적인 구성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현영학이 아직 생존해 계신다면 오늘의 ‘한류’를 가장 정확하게 신학적 해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신학자였을 것이다. 특히 한류의 문화콘텐트중에서 ‘K-팝’ 명칭아래에 총괄되는 모든 젊은 이들의 ‘군무적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가수들과 무용수들과 작곡가및 안무가들은 현영학의 이 논문에서 혜안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류 K-팝의 춤과 노래와 재담은 탈춤의 그것들과 형식만 다르지 본질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둘째, 현영학은 탈춤의 신학적 해석에서 탈춤을 통해서 춤추는자나 관중들이 ‘비판적 초월경험’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의 지론 곧 “이 세상에 대한 인간정신의 예속을 웃어버림으로써 해학은  이 예속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극복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현영학은 피터 버거와 호이징거(John Huizinga)의 통찰을 한국의 탈춤 속에서 발견하고 다음구절을 인용소개한다.  “놀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각하고 비극적인 현실의 삶 안에 그 것과는 전연 이질적인 규율이 지배하는 즐거운  세계와 시간으로 쐐기를 박는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한류’는 일종의 ‘문화적 놀이’라고 보는데,  문화의 한 기능으로서  예술적 놀이이기 때문에, 특히 ‘아이돌 팝’의 음악, 춤, 재치있는 지껄임등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욕망대리충족 시간만이 아니라 관중이 비판적 자기초월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동식은  현영학과 동년배로서,  민중신학 제1세대와  교류를 함께하면서도 가장 오래 장수하시면서 독특한 풍류도적 예술문화신학을 그의 신학의 여로 결실물로 한국 기독교계와 문화계에 제시한 분이다.  풍부한 내용을 지닌 그의  풍류도적 예술신학 중에서 ‘한류’와 관련하여 두가지 점만을 다시 주목하려고 한다.  첫째는 그의 화랑도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종교적 해석이요, 둘째는 그의 풍류도 신학의  ‘한 · 삶 · 멋’이라는 삼원적 구조론에서 특히 풍류도의 체(體)를 ‘멋’으로서 보는 예술신학적 해석학이다.  
  첫째, ‘한류’와 관련시켜 화랑도를 새로운 눈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유동식에 의하면 “화랑이란 풍류도를 몸에 지닌 주체적인 청년 지도자들이었다” 대립하던 삼국통일을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던  젊은 이들의 단체였지만, 요즘 생각하는 군입대 예비병력의 훈련목적과는 전혀다른 것이었다. 화랑무리는 요즘말로하면 'K-Pop'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아이돌그룹에 비유 할 수 있다. 화랑들의 무대는 명산대천이였고 아이돌 그룹들은 조명등이 비취는 무대인점이 다를 뿐이다.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유동식은 화랑은 한국민족문화형성의 터전을 만들었다고 보면서, 화랑들은  도의로서 서로 몸을 닦고(相磨以道義),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기며(相悅以歌舞),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遊娛山水)을 주목했다.   화랑무리들은 대자연을 무대로 삼고 노래와 춤으로서 서로 즐기면서도 육체적 쾌감을 탐익한 것이 아니라  도의로서 정신적 내공을 쌓고, 초월자 신령(神靈)들과 접촉을 통해 요즘 말로 영성수련하고자 명산대천을 찾았다. 말하자면 화랑은 육체수련, 예능수련, 종교수련을 함께하는 새시대를 열어갈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이다. ‘한류’중에서 K-Pop으로 통칭되는 오늘날의 젊은 신세대 가수연예인들이  그 지속적 에너지를 유지해가려면, 단순한 문화산업 연예기획사에 예속된 존재라는 자기의식을 넘어서, 21세기 화랑의 무리들이라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유동식의 풍류도 신학에서 주목할 점은 풍류도를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있는 원형적 영성이라고 판단하면서 풍류도의 내용적 실체를 ‘한 · 삶 · 멋’ 이라는  순수 우리말 개념으로 총괄표현해 냈다는 점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고 말한다. 9세기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속에 한문글자로 잠들어 있는 풍류도를 부활시키려면 오늘의 우리말을 몸으로 하여 부활해야 한다.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왈풍류’(曰風流),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 이라는 네마디 한자구절 속에 담겨진 보이지 않는 ‘종교와 문화’의 상호관계를 우리말로서 표상화 내어 ‘한 삶 멋’으로 나타낸 것은 참으로 탁견이라 하겠다.
  유동식의 풍류신학에서는, 한문정신문화계의 ‘체상용’(體相用)이라는 존재드러남의 삼원적 기능론을 차용하여  ‘멋’을  풍류도의 ‘체’(體)로 본 것이 유동식 예술신학의 특이점이다. ‘멋’은 예술이요, 신바람이요, 춤과 노래이며, 성령활동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느낌이다. 신학적으로 부연한다면 신학의 최고단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춤추는 ‘찬양의 예배신학’이라는 말이다.
  ‘진선미’를 말 할 때, 서구 철학사상사는 철학적 진리탐구와 도덕적 선의 탐구를 예술적 미의 탐구보다 은연중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유동식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종교의 구경단계로 본다는 말이다. 21세기 영성시대에 종교적 영성은 예언자, 과학자, 예술가의 영성의 통전이라야 할 것이다. ‘한류’란 예술문화를 매개로하는 한민족적 영성의 발로이자 표현이다. 예술문화의 책무는 권력과 노동과 물질에 노예가 되어있는 인간들을 아름다움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일이며, 멋의 경지란 『大學』에서 말하는 ‘된데 머무는 것’ (在止於至善)으로서 큰 배움과 삶의 온전한 경지일 것이다. 유동식의 예술신학의 단면을 열어보인 문단을 인용해보자.

  ‘아름답다’는 우리말은 예술작품이 지닌 미(美)가 무엇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아름’은 ‘아람’의 변음으로도 볼 수 있다. 밤알이 영글어서 밤송이를 열고 자신을 내보였을 때, 이것을 ‘아람분다’고 한다. ‘아람’이란 무르익은 속알이요, ‘답다’는 그 형상이 여실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름답다’를 한자로 의역한다면 ‘진여’(眞如)가 된다. 불변의 진실이 표현된 것을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한류’의 문화콘텐츠가 TV드라마이든 음악, 미술, 연극 무엇이든간에 ‘한류’를 만들어가는 모든 종사자들이 명심할 것은 ‘아름다움의 형상화’가 본연의 자기정체성인 것이지 그 외 다른 무엇이 아님을 다시한번 더 다짐할 일이다.  특히 기업체의 자본권력, 정부의 정치권력, 대중들의 소비자권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한류’를 수단으로서 이용하려드는 압력이 점점 더 거세어져 갈 때,  속물화 되어가는 인간을 아름다움의 예술로써 구원하는 문화활동 본연의 사명자각이 절실한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유동식의  삼태극적 구 조이 풍류·예술신학에서 제3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의미를 한국대중음악 그룹멤버들 구성방법에서 음미하고자 한다.
 댄스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아이돌’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K-pop 멤버들의 구성은 특히 3인조가 많았다고 한다. 3,5,7,9등 홀수로 구성된 팀들이 지닌 역동성은 균형과 안정과 반복적인 패턴이 지속되는 좌우대칭성이나  음양원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요소를 촉매하고 출현시킨다. 음양의 이원구조가 지닌 긴장은 해결되고 잃어버린 통일성이 회복된다. “ 3이 들어가는 곳에는 통과, 재탄생, 변화, 성공이 뒤따른다....셋보다 작은 것은 불완전해 보이고, 셋보다 많은 것은 지나쳐 보인다. ...셋은 포용하는 종합을 통해 일체성과 완전을 선언한다.”
 한국미술계에서 고미술사의 원로인 고유섭이 한국미의 특징으로서 ‘비정제성’(非整齊性, asymmetry)을 말하고, 201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세흐트만은 “질서는 있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 준결정물질(準結晶物質)”의 존재를 밝힌바 있는데, 이것은 유동식의 ‘한 삶 멋’에서 말하는 제3의 원리로서 ‘멋’이 한류의 역동성과 새로움과 재탄생을 창발시키는 비밀이 아닌가 생각한다. 삼위일체론 신비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하나의 사랑의 띠로 묶는 ‘연합의 힘’이요 ‘새로움의 창조힘’이라고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말해왔다.

[5] 에필로그

   (1) 문화산업주의와 문화내셔널리즘을 넘어 ‘새로운 문명, 하나의 세계’를 촉매

지구촌이 나날이 가속화 되어가면서 문화들은 상호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문화혼종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한류’ 중에서도 K-Pop  장르는 그 변화속도가 다른 문화콘탠츠에 비하여 빠른 것을 볼 수 있다. 예술 비평가 이동연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아이돌 팝은 탈국적화(de-nationalization)를 넘어서 초국적화(trans-nationalization)   하고 있다.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국적, 한국 아이돌 팝에 열광하는 다국적 팬덤, 그리고 아이돌 팝을 제작하는 시스템의 그로벌화가 초국적성의 주요한 요소들이다.

‘한류’의 탈국적화와 초국적화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지닌다. 긍정적 측면을 본다면, ‘한류’ 초기에 부딪힌 장벽으로서 한국과 다른 나라에 엄존하는 문화내셜널리즘을 허물어뜨릴수 있다. 정부는 ‘한류’를 국가이미지 제고에 수단방법으로서 사용하려는 조급한 애국심으로 ‘한류’를 후원하면서 ‘한류’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억압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한류’의 탈국적화는  아이돌 그룹멤버들의 국적이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더우 가속화된다. 아이돌 팝의 탈국적화와 초국적화는 한국 청소년들의 대중음악 활동을 온세계에 알리고 문화산업시장에서 그 영역을 다면화한다는 장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동시에 틸국적화나 초국적화는 ‘한류’에 위기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음악스타일이 혼종적인 음악형태로 갈수록 변화하고 그룹멤버들도 국적이나 인종이 다양해질 수록, ‘한류’의 독특한 매력은 살아져버릴 위기를 맞는 것이다. 아이돌 팝의 문화콘텐츠 영역을 두고서만 말하더라도, 음악스타일이 미국대중음악적, 흑인음악적, 유럽적 음악스타일이 어울러지고 혼종적으로 연출되면서도 K-Pop 그룹만이 가지는 한민족의 독특한 예술의 맛이 바탕에깔려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제3장에서 살펴본 한민족의 독특한 예술적 ‘맛’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드라마적으로 형상화되어 표현될수 있는가 문제는 온전히 여러 문화장르에 종사하는 예술인 전문가들의 창조적 역량에 달려있다.
 음악분야만이 아니라, TV드라마 분야에서도 소나기처럼 한번 지나가고 만 <겨울연가>나 <대장금> 못지 않게 아시아 대중과 세계인들의 예술적 감정을 움직 일수 있는 문화적 소재는 많다고 여겨진다. 예들면, <원효대사>· <명의 허준> · <등신불과 무녀도> · < 문둥이의 아버지 성자의 지팡이> · <토지> · <명성황후> 등의 소재는 어떻게 창조적 각본을 쓰고 연출해 내느냐에 따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풍부한 예술문학적 소재들을 깆춘 것이라고 본다.
 여하튼 ‘한류’가 제작기획사들의 문화산업주의와  정부의 문화내셜널리즘에 속박당하지 않고 한민족의 문화운동으로서 그 창조적 역동성을 어떻게 지속해 갈 것인가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류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문명, 하나의 세계’ 실현을 촉매하는 창조적 문화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한류와 한국 기독교: 맘몬주의와 교리적 종파주의를 넘어 ‘생명 평화 정의’공동체 촉매

 마지막으로, ‘한류’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을 마감하면서 그 문화적 운동의 빛과 그림자 아래서 한국 기독교의 현황을 잠시나마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맘몬주의와 교리적 종파주의 동굴에 갇혀있는 한국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문화퇴행적 집단’으로 비춰진지 오래이다.
 개화기 초에, 한국사회의 개화및 근대화에 적지않은 공헌을 한 기독교회가, 교회사 120년만에 변화하는 문화상황에 가장 둔감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종교단체가 되고 말았다. 현재 개신교 교회예배에 앞서 연출되는 소위 ‘음악 선교단’의 곡과 가사들은 19세기 미국 부흥회에서 부르던 타계지향적 복음성가 가사들, 감상적 멜로디, 무절제한 전자확성기와 타악기의 남용등으로 영성의 정화나 승화는 커녕 ‘소음’ 단계로 전락하고 있다.
  ‘한류’의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목회자들의 일반적 감정은 매우 부정적이어서 타락한 세속문화의 범람이라고 단정해버리고 그 창조적 의미를 보지 못한다. 다른 한편 기독교 가정 아이들도 가정과 교회 밖에서는 ‘한류’의 바람에 휩쓸리거나 선호한다. 이러한 이중적 괴리의 극복이 시급하다. ‘한류’는 잘못발전하면 현대 자본권력에 포로가되고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면서 결국태풍이  ‘열대성 고기압’으로 변질되는 것처럼  살아지고 말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관심과 격려와 참여적 비판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교회가 꿈꾸는 ‘생명 평화 정의 공동체’ 실현에 촉매역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렇게되기 위해서는 한국 개신교가 먼저 만몬주의와 교리적 종파주의 동굴에서 벗어나서 ‘생명 평화 정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나라 전진기지로서 다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맛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히는 문화퇴행집단, 문화테러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박장순, 『문화콘텐츠학 개론』,(커뮤니케이션북스,2006)
2. 김기덕, 『한국전통문화와 문화콘텐츠』,(북코리아, 2007)
3. 필립 스미스 지음/ 한국문화사회학회 옮김, 『문화이론, 사회학적 접근』,(이학사,2008)
4. 유상철외 4인 공저, 『한류의 비밀』, (생각의 나무, 2005)
5. 백원담, 『한류』,(펜타그램, 2005)
6. 김수이편저, 『한류와 21세기 문화비전』,(청동거울, 2006)
7. 임향란, 우상렬외 공저, 『한류 한풍 연구』,(북코리아, 2009)
8. 이수연, 『한류드라마와 아시아 여성의 욕망』,(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9. 이동연, 『아이돌』,(이매진, 2011)
10.조지훈, 『한국문화사 서설』, (나남, 1996)
11.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1883)
12.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연세대출판부, 1997)
13.유동식, 『소금 유동식전집』, 별권, <예술과 신학의 만남>, (한들, 2010)
14.NCC 신학연구위원회 편, 『민중과 한국신학』 ,(한국신학연구소,1982)
15.요한 호이징하/ 김윤수 옮김, 『호모루덴스』,(까치, 1993)
16.고유섭, 『한국미술사 급 미학론고』,(통문관, 1972)
17.마이클 슈나이더 지음, 이충호 옮김,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경문사, 2002)
18.Paul Tillich,Systematic Theology, vol.3.,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3)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