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1/05 (10:24) from 129.206.82.100' of 129.206.82.100' Article Number : 55
Delete Modify 김경재 Access : 19051 , Lines : 291
종교간의 갈등현황과 그 해소방안에 대한 연구
Download : confliction.hwp (83 Kbytes)
        종교간의 갈등현황과 그 해소방안에 대한 연구
                 -한국 개신교와 불교의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김경재(한신대, 신학)
http://soombat.org


-목차-

1. 연구의 목적, 범위, 방법
2. 한국 종교 현황와 그 갈등현상
3.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성향에 대한 원인분석
4. 종교간 대화와 협력태도에 관한 세가지 모델과 평가  
5. 종교간 배타적 태도와 갈등관계의 극복방안
6. 나가는 말: 열린종교와 생명공동체를 지향하여

1. 연구의 목적, 범위, 방법

 이 논문은  한국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현상을 파악하고, 그 원인분석을 통하여  갈등해소를 위한 합리적 방법을 제시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이 열린종교적 태도로 전환토록 촉매하여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통한  대승적 생명공동체 창조에 공헌하도록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종교신학적 연구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전형적인 종교다원 사회여서 세계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 무교는 논외로 하더라도 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카톨릭교, 개신교, 대종교를 비롯한 민족종교들이 한국 역사와 문화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가 말하는 종교적 ‘시장상황’이 한국사회 속에서도 나타나면서, 종교간의 경쟁, 대립, 갈등, 협동등 다양한 반응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종교간의 갈등문제를 논하되, 불교와 한국 기독교간의 갈등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여, 타종교들과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에도 참고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연구범위를 시대적으로는  20세기 후반에 국한하고, 연구종교는 개신교와 불교의 상호관계성에 집중하며, 연구방법은 문헌연구와 사례연구와 종교사회학적 조사연구방법을 필요에 따라 병행한다. 특히 종교사회학적 연구는 그 분야 연구결과를 참고할 수 밖에 없다.  이 논문은 신학의 한 전문분과로서의 종교신학 영역의 연구성격을 지닌다.

2. 한국종교현황과 그 갈등현상

 한국사회는 전형적 종교다원사회이며, 비록 부분적으로는 종파간의 갈등이 있었고 정치적 지배권력의 교체기에  국가 정책적으로 특수종교에 대한 억압 사례가 있지만 서구의 갈등 상황에 비하면 매우 평화공존적임이 특징이다. 1919년 3.1 만세사건에서 보거나, 민족통일 인권운동 생태환경운동에서 그 예를 보듯이 한국의 다양한 종교들은 공동협력하고 공동대체하는 지혜와 마음을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일부 극단적 종파주의자들이 종교간의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가 작용한 결과이며, 이 연구는 그 이유들을 심층차원에서 밝혀내고 갈등해소방안을 제시하는데 있지만, 종파간의 갈등이유중 하나가 교세확장에 관련된 이해충돌과 경쟁관계에 있는 종파에 대한 경계심등이 작용한다고 보아도 틀린 것이 아니다. 먼저 한국종교 현황을  객관적 자료에 의해 분석 검토해보기로 한다.
  한국 종교들의 교세에 관한 현황자료는 각 종파가 제시하는 자료의 객관성을 확증할 길이 없다. 각 종단의 통계자료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통계학적으로 고의적이 아닌 통계수치의 중복, 누락, 통계학적 전문기술의 부족등으로 인해서 그 진실한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실지로 일본 경우, 일본인구는 1억 1천만명인데, 종교인 숫자는 1억 6천만명으로 1974년 통계로 나타났다. 불교가 6,300만명, 신도(神道)가 6,700만명, 기독교가 100만명, 기타종교가 1천만명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확성을 자랑하는  일본정부 통계청의 오류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종교관 때문이다. 일본인은 기독교계학교에서 세례를 받고, 신도(神道)의식으로 결혼식을 하고, 불교의식으로 장례를 치뤄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와 마사이꼬(澤正彦), 일본기독교사(대한기독교서회, 1969), 9쪽.,  이자야 베다산, 일본인과 유대인(스노카와,1971),122쪽.
 한국 개신교의 경우 통상적으로는 1,000만성도 혹은 1,200만 성도라고 대형집회에서나 기독교계 신문지상에서는 말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보면 각 지교회의 교적부(敎籍簿) 관리방식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처럼 철저한 교구중심제가 아니므로, 교인의 잠정적 생활주거지 이동상황이 있을 때 교인수 파악에서 숫자계산의 중복현상이 발생할 경우가 있다. 예들면, 지방 중도시 A에  현주소를 두고 동네 A'교회의 교적부에 등록한 열심있는 신도 김집사는 자녀의 서울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의 B동네에 전세방을 내어 자취생활을 하게하면서 B‘ 교회를 자주 출석하는 경우 서울의 B’교회에서도 교인숫자에 포함시키는 경우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한국종교의 각 종단이 발표한 교세현황 수치를 택하지 않고, 국가 통계청이 객관적으로 실시한 ‘199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가지고 논하기로 하겠다. 통계청, 한국통계연감, 47호 (대전: 통계청,2000),98-99쪽.

  1995년 현재, 남한의 총인구수 44,553,710 명중 50.7% 인 22,597,824명이 어느 한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생활을 하고있다고 응답했으며, 49.2% 인 21,953,315명은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고. 남어지 2,571명은 ‘미상’(Unknown)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다양한 종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요 한국역사와 문화사 속에서 종교의 역할이 지대하였기에, 국민의 대다수가 종교에 귀의하고 있을 것으로 속단하기 쉬우나 국민숫자의 절반정도가 ‘종교없음’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민의 49.2%라는 통계숫치가 말한대로 국민의 절반이 글자그대로 ‘종교없음’의 무종교인으로서 철저한 세속주의적 세계관이나 무신론적 실재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다음의 구체적 한국종파별 교인 통계숫자에서 나타나겠지만, 국민 총인구수 대비  종교인의 백분율 50.7% 속에 무교는 질문 항목 속에 포함되지 않았고, 자기의 종교가 ‘유교,라고 응답한 수자는 210,927명으로 나타났는데 이 숫치는 한국 국민수  대비 백분율로 보면 0.05% 미만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유교를 종교라고 생각하는 국민보다는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상제례등 전통적 종교의례 속에서 살고있지만 유교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교의 종교성 여부논쟁은  종교학계의 뜨거운 논쟁이지만 여기서 그 문제를 다룰 자리는 아니다. 유교의 종교성 논쟁에 관하여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김승혜, “20세기 한국 유교의 다섯가지 쟁점”, 한국종교연구, 제3집(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2001),1-66쪽.

  ‘1995년 인구주택 총조사’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활동하는 각종단의 교세현황 신도수 통계는 아래와 같다. 통계청, 한국통계연감, 제47호 (대전: 통계청, 2000), 98-99쪽.
(국민수 대비백분율, 종교인 총수 대비 백분율은 필자의 계산수치임).
구분    신도수(남자/여자)              국민총수대비 백분율.종교인총수 대비 백분율

불교    10,321,012 ( 4,870,853 / 5,450,159 )                   23.16 % .    45.67 %
개신교   8,760,336 ( 4,087,356 / 4,672,980 )                   19.66 % .    38.76 %
천주교   2,950,730 ( 1,339,295 / 1,611,435 )                    6.62 % .    13.05 %
유교       210,927 (  113,951 /   96,976 )                     0.47 % .     0.93 %
원불교      86,823 (    39,555 /  47,268 )                     0.19 % .     0.38 %
천도교      28,184 (    13,215 /  14,969 )                     0.06 % .     0.12 %
대종교       7,603 (     3,642 /   3,961 )                     0.01 % .     0.03 %
대순진리회   62,056 (    28,916 / 33,140 )                     0.14 % .     0.27 %
기타        170,153 (    76,645 / 93,508 )                     0.38 % .     0.75 %

종교인 총수     22,597,824 ( 10,573,428 / 12,024,396)           50.72 %
무종교인 총수   21,953,315 ( 11,782,401 / 10,170,914)           49.27 %
미상                 2,571 (     1,523 /      1,048)           ----
국민총수        44,553,710  (22,357,352 / 22,196,357)          100.00 %

 종교의 가치와 그 사회적 영향력을 계량적 수치로서 가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의미없는 일이다. 초창기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역사에서 처럼 예수공동체와 석가모니 부처 주위에 모인 원시불교 공동체가 숫자적으로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종교들에 비하여 미미했지만 제국과 역사를 변혁하고 문명사를 바꿔놓은 일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인의 숫자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충분히 있다.  위의 통계숫자가 보여주는대로, 1995년 당시에 한국인이 귀의하고 하고 있는 3대 종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이며 그 각각의 국민총수 대비 백분율은  불교가 23.16 %, 개신교가 19.66%, 천주교가 6.62 % 로서 국민 총수의 49.44 %가 세종파에 귀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종파는 한국 종교인 총수의 97.48 %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성이 지대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연구는 특히 불교와 개신교의 종교간 갈등문제를 중심주제로 논의 될 것이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위의 통계수치가 함의하는 바를 몇가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국종교사나 문화사 속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Christianity)의 전래역사는 다른 종파에 비교할 때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천주교의 전래역사를 1785년 서울 진고개의 김우범 교인 집에서 최초의 자발적 천주교회의 회집사건을 주체적인 한국 천주교 창립년도로 본다면 지금부터 216년 전 일이요, 그 사건이후 꼭 100년 후인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 입국을 기점으로 계산한다면 개신교 역사는 116년에 불과하다.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대한 기독교서회, 1982), 63쪽, 502-503쪽.
  유홍렬, 한국천주교회사, 증보판, 상권(가톨릭 출판사, 1994), 89쪽.

  다시말하자면, 근현대 한국사회의 변화와 역사문화 창조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은  그 길지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실로 막대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그 뿌리와 중심 교리와 공유하는 종교전통 유산의 측면에서 볼 때, 상이한 종파라기보다는 같은 그리스도교 종파에서 분지(分枝)해 나간 두 개의 큰 가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스도교 전래 200여년만에  그리스도교는 한국사회의 최대 종교로서 그 위치를 갖게 되었다.  
  개화기 이후만 생각하더라도 한국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끼친 긍정정, 부정적 영향을 영향을 언급함 없이 한국 현대사를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국민총수의 19.66% 숫자를 신도수로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 종교인총수의 38.76 % 차지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여타의 기존 한국 종교들 특히 불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지니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불교계와 기독교계 양자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신교가 불교와의 관계에서 빚어내는 갈등사례는 매우 우려할 만한 점이 있는 것이다.
  1998년 6월26일, 제주 원명선원에서 종교계만 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놀라게 한  훼불사건이 발생했는데, 대웅전에 안치되있던 천불상중 750개 불상 두부와  삼존불이 무참히 파손. 되었다. 기독교사상, 1998년 11월호는 “불교와의 성숙한 관계, 익은 신앙”이라는 주제로  훼불사건을 특집으로 다루고(9쪽-67쪽), 원명선원의 훼불현장을 사진으로(56쪽-64쪽 참조) 독자들에게 보도했다. 말로만 들리던 부끄러운 훼불사건 현장 사진을 기독교 독자들에게 공개한 것은 처음있었던 일이었다.
범인은 놀랍게도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그 사람은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 제주 삼양교회 교인 김수진 이라는 열심 교인 이었으며, 자신의 신앙적 신념에 의하여 정당한 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삼양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원교단인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에 소속한 교단산하 교인이었으므로, 불교계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KNCC 대외협력위원회는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고  삼양교회 김수진 신도가 이 사건을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동년 8월7일,  KNCC 총무 김동완 목사는 대한 조계종 총무 송월주 스님에게  이 사건에 대한 깊은 유감의 뜻을 담은 공식 사과공한을 보냈고,  KNCC 산하 전 교단장에게 다시는 이러한 종교간의 갈등과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교단산하 신도들을 교육지도 해줄 것을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1980년 이후만 하더라도 크고 작은 불교사찰 방화, 불상파괴, 불교에 대한 공개적 비방사건등이 30여건이 발생했으나, 그동안 기독교 광신도들이나 정신 이상자들의 무책임한 행위로 사건들을 축소 해석해 왔다. 범인의 색출이 쉽지 않았고, 붙잡힌 경우일지라도 범인이  이단적 기독교 소종파 신도로 흔히 판명되곤 했기 때문에, KNCC나 교회의 지도층이 불교와 기독교간의 종교갈등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았었던 것이 사실 이었다. 그러나, 제주 원명선원 훼불사건으로 인하여, 불교와 기독교간의 갈등문제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고, 이단적 광신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노정되었고, 종교간의 갈등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두 종단의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에 큰  사회문제가 될 것임이 분명해졌다.
  월간 기독교사상지(1998.11월호)에 실린 훼불일지중, 범인이 기독교신자로 판명된 아래에 열거하는 구체적 사례만 보더라도, 불교와 기독교간의 갈등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사례 1) 1982년 5월, 명진홍은 불교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종교모임을 서울에서 열었다. 그          는 “예수 천당, 불교지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불교계를 심히 자극시켰고, 양식있          는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사례 2) 1884년 2월, 서울 삼각산에 소재한 무량사와 일선사의 법당 벽화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와 절 밖에 있는 불상에 오물이 칠해졌고, 마애불이 훼손되었다.
사례 3) 1987년 12월, 제주 탐라교회 신도 양산하는 관음정사와 대각사에 불을 질러 전소시          켜 체포되었다.
사례 4) 1989년 4월, 서울 삼각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에 빨간 십자가를 칠하고 불상을 파          괴하였다.
사례 5) 부산 베델교회 신도 표차종은 석굴암의 불상이 ‘우상숭배’ 대상이고 이단종교의 산          물이라고 공언하면서 석굴암 불상을 훼손시키려 접근했으나 차단 당했다.
사례 6) 1995년 6월, 한 기독교 광신자가 광주의 미륵정사에 침입하여 불상과 법당을 손상          시켰다.
사례 7) 1995년 9월, 기독교 광신자 박오순이 제주도의 다섯군데 불교사찰에 들어가 불상을          불태우거나 큰 손상을 입혀 체포되었다.
사례 8) 1995년 한 개신교 목사라는 신분의 인물이, 전남 강진 무위사에 들어가 후불 탱화          에 빨간 십자가를 그린 뒤 체포되었으나 풀려났다.
사례 9)  1996년 서울 삼각산 화계사 위쪽 약 1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참선을 위해 건축된            콘크리트 건물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졌다. 5월엔 화계사 대적광전 본존불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사례10)  1998년 8월, 충북 청주 보현사에 훼불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근처          청북교회 신도였는데, 평소 절이 늘어나는데 불만을 품어 불상을 파괴하였고, 자신          의 행동이 옳았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위에 열거한 사례에서 감지하듯이, 비록 훼불사건을 행동으로 옮긴 극단적 기독교 보수신자나 광신적 신자 수는 전체 개신교 신도숫자에 비하여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가진 개신교 신도수는 전체 신도숫자의 4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귀하는 다른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한 비율은 44.3%, 중도적 태도는 33.1%, 수용적 태도는 22.6%로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이원규,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성서연구사, 1994), 272쪽.
이원규는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대한 조사연구를 분석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성별로는 여성의 경우 더 강하고(남 38.0%, 여 48.7%), 나이       로는 40대의 경우 가장 강하며(20대 36.0%, 30대 41.4%, 40대 55.4%, 50대 43.5%, 60대       41.7%),  교단별로는 소위 보수교단일수록 강하고( 성결교 68.3%, 예장 합동 58.5%, 침       례교 56.1%, 예장 통합 46.6%, 감리교 40.0%, 기장 13.5%) , 교회직분이 높을수록 강하       다.(장로 55.0%, 권사 51.3%, 집사 49.6%, 평신도 35.8%). 위와 같은 책, 273쪽.


위에 나타난 종교사회학자 이원규교수의 연구결과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성이  개신교도 중에서도 다소 진보적인 사회참여와 개방성을 강조하는 KNCC에 가입한 교단 소속 교인들과 한국기독교  총연합기구에 참여한 보수교단 소속의 교인들 사이에 상당한 편차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러한 편차는 교회를 지도하는 교역자들의 신학적 입장에 의해 교인들이 설교나 교회교육을 통해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증거이며, 개신교 교역자들의 신학적 입장이 그만큼 종교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키는데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한국인의 가치관>(1990)과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1998) 앙케이트조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 종교인의 숫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3대 종교중에서, 배타적 성향을 나타내는 종교단체가 개신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설문지는 부정적  질문형태로서 응답자의 견해를 알아보고, 반대로 긍정적 질문형태를 통해 반응자의 태도를 조사했다. 예들면 종교인의 배타적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던진 질문 “진정한 종교는 하나 뿐이다”에 찬동하는 종교인 비율은 불교가 19 %, 천주교가 23 %, 개신교가 45 %로 나타났다. 타종교에 대한  포용적 태도의 비율을 알아보는 질문 “ 여러종교의 교리는 서로 틀린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같거나 비슷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찬성하는 비율은 불교인 87.0%, 천주교 85.4%, 개신교 61.7%로 나타났다. 이원규,“한국교회의 종교적 배타성 문제”, 기독교사상, 1998. 11월호, 42-43쪽에서 간접인용.
현대사회연구소가 행한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연구>(1990)에 의하면 자기가 귀의하고 있는 종교 이외 타종교는 “철저히 배격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성직들의 응답 비율은 승려가 3.0 %  임에 비하여 개신교 목사는 30.5 %로 나타났다. 위와 같은 자료. 43쪽에서 간접 인용.

  이상에서 살핀대로, 한국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 특히 불교와 개신교의 갈등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그 갈등해소를 적극적으로 도모하지 않으면 갈등관계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 개신교의 경우 전체신도수 876만명 중에서 약 절반정도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통계조사 수치로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도들 50 %가 모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서 타종교에 대하여 공격적 언행을 직접 나타내는 것 아니고 또한 공격적 파괴적 행동자체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타종교 특히 불교에 대해서 훼불사건 사례처럼 공격적이거나  파괴적   행태를 보이는 극단적 보수신앙자 및 광신적 신앙자들이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 배타주의 성향이라는 정신적 토양 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면, 왜 한국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전통을 물려받은 한국 천주교에 비하여 보더라도 판이하게 다르게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보수적 태도를 갖게되었는가? 왜 한국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종교갈등을 야기시키는 문제의 종파로 사회인들에게 인식될만큼 보수적 배타주의 태도가 큰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모든 결과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종교간의 갈등 원인분석과 20세기 후반에 세계종교계의 동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3.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성향에 대한 원인분석

개신교의 배타적 태도에 대하여 정치문화사적, 선교신학적, 사회경제사적 세가지 측면에서 좀더 자세한 원인 분석이 요망된다.     첫째, 정치문화사적 고찰이란,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전파해되었을 때 개화기의 바람을 타고 들어오면서 ‘전통가치 부정’ 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린 경위를 살피자는 것이다. 둘째, 선교신학적 측면에서의 고찰은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하고 한국 개신교 성직자들의 양성을 독점했던  19-20세기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적 보수신학의 핵심본질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셋째, 사회경제사적 고찰은 한국 개신교의 교파주의 및 개교회중심적 교회론이 지닌 현실적  역학관계가 종교갈등을 부체질 할 수 밖에 없는 경쟁지향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선교현장의 이해관계문제를 검토하자는 것이다.

   3-1.  정치문화사적 원인분석: 개화열풍이 지닌 전통가치 파괴와 전통억압으로부터                                     해방의식

18-19세기 그리스도교 선교자들의 전교과정에서 대표적 인물들 예들면 카톨릭의 달레(C.C. Dallet), 미국무성의 동양통 록힐(W.W. Rockhill), 매켄지(F.A. Mekenzie), 민비와 친했던 영국의 저명한 여행가 비숍(I.B.Bishop)등 인물들이, 18-19세기 당시 조선의 종교문화 상황에서 받은 인상은 ‘조선엔 종교부재’라고 판단하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다.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120-121쪽.
물론 동북아시아 문명권에 사는 민중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종교적 영향력이나, 대부분 한자어로 기록전승된 종교문화적 보화를 그들이 깊이 이해하지 못한 한계성을 감안해야하고, 서구 종교의  판단잣대를 가지고 평가하는 평면적 인상기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불선 삼교로 흔히 통칭되는 전통종교들이 민중의 삶 속에서 생명력있는 힘과 위로와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 본래적 힘을 상실한 종교적 형식주의 권위주의 또는 무교와의 습합형태로 변질되어 길흉화복이나 점쳐주고 액땜질 해주는 기복종교로 변질해 있었다. 일종의 종교적 진공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중들은 동네의 무당종교나 잡귀숭배에 의해 지배되었고, 유불선 삼교가 “그 운을 다했다”고 동학도들이 표현 할 만큼  상층지배계급 일부에겐 의미있을지몰라도 대부분 민중에게는 유뷸선 삼교로부터 버림받은 형국이었다.
  이러한 종교문화적, 정치사회사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 특히 한국 개신교는 개화라고 부르는 시대적 카이로스에서 수용되었고 그 기초뿌리를 민중들 속에 깊이 내렸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수호조약 체결이후 계속해서  미국(1882), 영국과 독일(1883), 프랑스(1886)등과 국교를 트면서 동양의 은둔국은 세계에 그 모습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해야만 했었다. 당시 집권층인 유교세력과 정치 집단은 ‘위정척사론’ 과 ‘동도서기론’으로 외국의 이질문화와 특히 이질적 종교의 조선 전래를 초창기엔 강력히 금지시키려고 모든 조처를 강구했다.
  한국의 개신교가 전래될 무렵인 19세기 후반, 한국은 개화라고하는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고 있었으며, 개신교의 선교전략은 당시 조선왕조의 정책과 민중들의 요구를 동시에 잘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개화’를 방편으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적 선교사업을 이루어 나갔던 것이다.  19세기 말 교계신문은 그러한 당시 분위기, 곧 개화와 교회선교가 일심동체처럼 진행되고 인식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전하고 있다. “우리의 교리가 경향에 더욱 흥황하여, 나라가 개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 1898년 1월19일자 사설.
고 했으며, “차차 우리교회가 흥왕하여서 조선이 속히 개화에 진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1896년 6월2일자 사설.
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개신교 선교는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운동, 서양 의학에 기초를 둔 병원설립, 민중에 파고드는 복음전도라고 하는 3박자 선교정책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이다. 1909년 당시 기독교계 사립학교 총수는 장로교 605개교, 감리교 200개교, 천주교 침례교 안식교가 세운 학교까지 합하면 950여개 학교, 학생 총수 22,000 여면이었다.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238쪽.
이러한 당시 상황을 한국사 학자 이만열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기독교는,  한국의 사회변화와 민족운동에 깊이 관여하기에 앞서서, 기독교적 가       치관과 서구의 기독교적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였다. 그러한 문화가 단순히 한국에 이       식 되었다기보다는 한국의 개화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한국에서 새로 일어나고 있던 자       생적 근대요인과 접맥하여 사회의 변화에 기능하고 있었다. 이만열, 한국기독교문화운동사(대한 기독교출판사, 1986), 6쪽.


이만열 교수의 말대로, 맨 처음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접촉하면서 일으킨 누룩과 같은 변화력은 정치사회사상이나 민족문제에 앞서서 전통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억압의 ‘부정적 쇄사슬’로부터 ‘개화’운동을 통해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곧바로 이어서 민족운동과 개신교는 접맥되어, 종교운동, 민족독립운동, 개화교육운동이 함께 이뤄지지만 최초의 모습은 ‘개화’라는 시대적 정신에 적절하게 적응했던 것이다. 조혼 주초 밀주 등 각종 구습타파, 사주팔자론과 잡귀숭배의 미신타파, 유교적 상제례 의식의 간소화 및 폐지, 여권신장, 한글보급을 통한 문맹퇴치, 병원과 학교교육을 통한  합리적 사고의 보급등 조선사회의 근대화 개화과정에 개신교의 역할은 눈부신바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뒤돌아볼 때,  19세기 한국의 ‘개화운동’과 개신교의 교세확장과의 함수관계에 있어서 이제는 그 공과를, 빛과 그림자를, 긍정적 공헌과 전통문화 파괴라는 과오를  동시에 냉정하게 재평가해야만 하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특히 왜 20세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한국 개신교가 전통종교들 특히 불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가를 그 역사적 뿌리에까지 캐고 들어가면 ‘개화기’에 개신교가 취했던  무분별한 ‘전통파괴’와 ‘개화’를 ‘복음화’와 평면적으로 동일시 했던 과오와 지도력 부족에 기인함을 알게 된다.
  특히 1901년 전후, 조선사회에서 불교의 위치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하에서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갔지만, 신라통일기나 고려조시기는 왕실의 반영을 비는 호국적 국가 종속적 성격을 띄고 기복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조선조말기엔 불교가 본래적 인 우주적 종교로서의 위대성보다는 기복주의로 흘러 ‘개화파’들에게 극복의 대상으로까지 보여졌던 것이다.  1901년경, 조선 기독교 신문에 비친 불교나 유교의 제사제도 폐해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대한(大韓)에 부처를 경신(敬神)하며 마귀를 숭봉하는 풍속이 성하여 온나라 사람     들이 다 크게 병이 들었는지라.  <그리스도신문>, 5권, 11호(1901.3.14)


  슬프다 세상 사람의 우상을 숭배함이여, 당장에 살아있는 부모의 뜻을 순종치 아니하고     근심을  끼치다가 부모가 죽은 후에 그 신주(神主)에게 제사를 지내며  효도를 다한다      하는 사람은  재주있는 장색에게는 절하지 않고 그가 만든 우상에 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11호, (1897.4.14), 우상론.


위에 인용한 신문기사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이미, 1901년 조선 개신교는 불교인들의 불상에 예불 올리는 것이나, 유교식 제사의례에서 절하는 예식을 ‘우상에게 절하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당시 불교가 민속신앙과 종교습합 하였을지라도,그리고 아무리 당시 유교적 제사가 허례허식에 치우쳐 종교적 감동을 주지 못했을지라도, 한국 개신교가 그러한 종교행위 자체를 ‘우상숭배’로 규정하여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개화운동’의 명분아래서 일체의 전통적 가치나 종교행위를 철폐해야할 비판적으로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개신교는 전통적 종교형식들, 특히 상제례행위나  추석등 명절에 성묘나 가정에서의 다례에서 ‘절하는 예법’ 까지를 '우상에게 절하는 행동‘으로 비약해석하는 교리적 경직화를 노정하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는 아직도 문화적으로 한민족의 심성에 토착하지 못하고 외래종교로서 이해되고 있는 점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3-2. 선교신학적 측면: 근본주의적 보수신학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과 타종교간의            갈등

  한국 개신교가 ‘개화’열풍을 타고 전래해 왔기 때문에, 당시 조선인들을 빈곤, 무지, 억압, 미신, 불평등, 질병, 타국에의 예속과 굴종으로 몰아간 근본 원인이 정치적  통치권자들의 부패타락 못지않게 전통문화 속에 깃든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요소 때문이라는 단순사고가 초기 개신교도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사실 그런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신교라는 기독교종파에 귀의한 대부분의 민중들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한자로 표현된 불경이나 사서삼경같은 전통종교의 경전이나 고전에 쉽게 접할 수 없는 평민들이었다.  그리하여, 초기 한국 개신교도들은 ‘예수믿는다는 일’은 ‘전통 종교문화와 그 유산과 풍속’을 아무 미련없이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한 전통문화와의 갈등문제는 ‘상제례’문제에서 가장 예민하게 노출되었고, 그 문제는 지금까지도 목회현장에서 큰 숙제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가 한국의 전통종교들 특히  불교와의 갈등관계에 들어가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초기 한국에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선교사들의 근본주의적 보수신학, 특히 성경무오설에 입각한 성경권위의 절대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그 본질에 있어서 계몽주의 이후 현대주의 지성이 전통기독교의 진리를 훼손한다고 염려하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운동이요, 더 정확하게 그 특징을 말한다면 성경 영감설을 기초로하여 성경무오적 권위를 가장 근본적  기독교진리의 사활이 달린 핵심교리라고 믿는 교회운동 및 신학운동을 말한다. 박아론 교수는 근본주의 신학의 본질적 정의에 대하여 베이커신학사전(Baker's Dictionary of Theology)과  웨스트민스터 교회사 사전(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Church History)에서 적절하게 인용하여 아래와같이 정의하고 있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기초적 신앙원리들을 보존하며 현대주의라는 신학운동에 존재하는
   워험스러운 신학적 경향성들을 저항하며 저지하는 목적으로 근래에 일어난 신학운동이      다.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Baker House,1975), p.233.


   근본주의란 19세기적 성경영감론을 회의하는 자들에 대한 반항적 운동이다. 이 운동의      2대 산맥으로서 프린스톤 신학교를 중심으로하는 구파 칼비니스트(the Old School          Calvinist)가 있고, 세대주의자들(the Dispensationalists)이 있다. 박아론, 보수신학은 어디로가고 있는가?(서울:총신 대 출판부, 1985),13쪽에서 인용.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Church History(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1971), p.348.

근본주의 신학운동은 장로교 신학운동만이 아니라, 칼빈니스트와 알미니안주의자들, 침례교도들, 개혁주의자와 세대주의자들, 성령운동자등 다양한 보수적 신앙운동이다. 그들이 내세운 근본주의 신앙의 근본 교리들은 성경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이라는 다섯가지 였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성경연구에 있어서 비판적 연구방법 곧 고등비평을 용인하지 않으며, 생물학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을 용납하지 않으며, 일체의 합리주의적 이성주의나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근본주의 신학운동은 나이아가라 모임(1895), 근본주의 진리증언 총서발간(1909-1912),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설립(1929), 신복음주의 운동본부 풀러 신학교설립(1948)등 분열과 분파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해갔다. 한국에 미국의 장로교선교사들이 대대적으로 파송되어 평양신학교를 창설 운영하던 무렵은 근본주의 역사중에서 가장 활발했던 ‘자유주의와의 투쟁시기’(1900-1930)였던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선교사들의 기본신학적 로선이 근본주의였으며, 그들의 지도를 받았던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 목사들의 또한 근본주의신학으로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보수신학의 거두 박형룡박사와 그 제자들은 그들의 보수신학을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부르지만 ‘성경무오설’을 근본적 교리로  삼는다는 점에서 근본주의 신학과 아무 다른점이 없다.  예수교장로교(통합)의 신학적 기초는 본래 근본주의신학 이었으며,  장로 개혁신앙전통을 강화하여 다음과같은 다섯가지 근본교리를 특히 강조한다. 성경무오성( the Infallibility of ther Scripture), 하나님의 주권성(the Sovereignty of God), 속죄의 제한성(the limited Atonement), 단회적 중생(the unrepeatabity of Regeneration), 성도의 견인성(the preserverance of the saints).

  한국 개신교에서 속칭 ‘보수주의 교회’ 또는 ‘복음주의교회’라고 하는 부류에는 장로교(합동), 침례교, 순복음교회, 성결교, 감리교(예감), 오순절교회등 다양한 교파들이 연대적 보수진영을 구성하고 있으나, 그들 다양한 교파들을 동질의  보수적 개신교 진영으로 묶는 단 하나의 공통 교리가 바로 ‘성경의 무오성’(the Infallibility of the Scripture)인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의 무오성’은 성경의 문자 문자가 계시적 영감에 의해 씌여진 계시적 경전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고 절대적 진리를 계시해주고 있다는 교리를 말한다.
 사실 신구약 성경은  엄청난 종교적 보화의 바다이며 영적 영감의  진리증언 집대성물이며, 교회를 부흥하게 하며, 인간의 심령과 사회를 능히 변혁시킬만한 능력을 그 안에 담지하고 있는 인류의 보고이다.  그러나, 성경이 아무리 계시적 영감성을 지닌 경전이라해도, ‘성경문자무오설’ 교리는 엄청난 혼란과 독단을 신도들에게 심어주며, 특히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갖게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개신교도들이 타종교들에 대하여 왜 그렇게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는가 그 원인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 이유가 성경에 대한 사랑, 신뢰, 그리고 교리적으로 그렇게 배운 성경 문자무오설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계시적 영감의 경전으로서 사랑하고 신뢰하며,  열심히 읽고 은혜를 많이 받은 신자일수록,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갖게되기 쉽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의 태도에 있어서, 바른 경전이해의 ‘해석학적 성숙’을 이뤄내기 전에는 개신교도들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해소시키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도, 그가 성경 안에서 말 할 수 없는 영적 은혜와 변화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 직면할 때 당황하게 되고 보수적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         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신5:7-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          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2:5)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이상의 인용한 성구들은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 신도들이 타종교에 대한 그들의  배타주의적 태도를 강조하는 대표적 성경구절 들이다. 성경의 문자무오설을 굳게믿는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도들은 위에 인용한 성구들의 해석에 있어서 현대 성경연구방법의 다양한 해석학적 분석이해 능력을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양식사적 비평방법, 편집사적 비평방법, 전승사적 비평방법, 문학비평적 연구방법등을  알지도 못하고 용납하지도 않는다.  성경은 문자그대로 계시적 진리의 경전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 개신교중 보수적 개신교 교단 소속이 60% 이상이 되는 현실에서, 타종교 특히 불교를 배타적 태도로서 대하고, 불상을 우상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단순사고는 종교적 경전을 단지 ‘문자적’으로 이해하게하는 경직된 율법주의적 경전관 때문인 것이다.

      3-3. 개신교 배타주의적 태도의 사회경제사적 고찰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원              리에  노출된 개교회중심적인  교회론의 문제   

 한국 개신교도들이 천주교에 비하여, 그리고 유럽이나 영미의 개신교에 비하여 이웃종교들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특히 불교를 경쟁적 갈등관계에서 파악하는 세 번째 이유로서 교회론의 변질을 들 수 있다.  개신교신학 역시 이론상으로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의(Una), 거룩한(Sancta), 보편적(Catholica), 사도적(Apostolica) 교회라고 신앙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다종교사회 상황 가운데서, 개별교회공동체가 스스로 존립을  지탱해가야하는 ‘시장상황’(Market Situation)에 처하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크고 작은 개신교 교회총숫자는 2000년 현재 약 50,000 교회이고, 평균 개교회 교인숫자는 도시교회는 346명 농촌교회는 44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장상황’ 속에서 한국 개신교 교회들은 종파간, 교파간, 개별 교회간에 치열한 경쟁이 생기고, 교인 확보를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선교전략이 모색된다. 이원규,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 205쪽.

  일정한 동일지역을 포교나 선교활동 대상으로 삼고있는 종교단체들은 종파나 교파를 초월하여 같은 종교인으로서 서로 교제하고 선한 지역사업에 협동하면서 지내는 것이 아름답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우리 한국사회의 종교갈등 현주소가 있다. 다른 종파간의 대화 협력은 그만두고서 동일한 개신교 교파들의 경쟁적 교회설립은 교파가 다른 경우 상호경쟁과 견제의식에로 치닫기 쉽상이다. 이런 피터 버거가 말하는 종교기관들의  ‘시장상황’ 속에서는 종교간의 대화 협력보다 상호 견제 경쟁 갈등 상황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1970년대부터 한국 개신교에 크게 불어온 미국 보수적 복음주의 선교신학 ‘교회성장론’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영향보다는 갈등을 가속화시키고 증폭시킨 부정적 역기능을 수행했다. 그것은 미국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한 풀러학파(Fuller School)가 주장하는 선교신학의 기초이념 속에 종교간의 대화나 협력을 부정하게 하는 보수적 배타적 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고도 산업화, 공업화, 도시화, 경제성장제일주의 정책을 추진한 한국사회 속에서, 사회윤리적으로 ‘고독한 군중 집단’이 생기고 물질적 정신적 축복을 갈망하는 심리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전통적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새롭게 자기정체성을 확보해줄 강력한 소속감을 보장해주는 보수적 교회공동체 특히 ‘적극적 사고방식’과 선택받은 자들의 ‘물질적 축복’을 보장해주는 ‘교회성장론’이 급속히 확산 되었다.
   교회성장론의 대표적 신학자들로서 와그너(P.Wagner), 맥가브란(D. McGarvran), 헌터(G. Hunter), 마일즈(D. Miles),  켈리(D. Kelley)등을 열거할 수 있는데, 신학적으로 그들은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Evangelism)와 ‘성경의 절대권위’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신학자들인 것이다. 보수적 교회성장론자 켈리의 선교신학에 의하면 특정 개교회나 교파는 강하거나 약할 수 있는데 강한 교회는 성장하고 약한 교회는 쇠퇴한다.  성장하는 강한 교회와 교파가 되려고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녀야 한다고 켈리는 본다.

   강한 교회들의 특징은 교인들에게 전적인 충성심과 사회적 연대감과 강한 위탁             (commitment)을 요구하고, 교인들에 대하여 믿음과 생활방식에 대한 엄격한 훈련을 하      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성과 함께 선교적 열정을 지니며, 믿음에 대하여 절대      적이며, 생활방식에 있어서 같은 멤버들과의 동체감(conformity)을 요구하는대신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를 회피한다. 약한 교회는 믿음에 있어서 상대주의적이거나 개인주의적      이고, 내적인 다양성과 다원주의에 대하여 관용적이며, 경전이나 교리에 대하여 강요하      지 않고, 개종시키기 보다는 외부인들과 대화하는 태도를 가지며, 교회에 대해서는 제한      된 위탁만 나타내 보이고, 집단 안에서의 확신이나 영적 통찰을 효과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 이원규,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 188-189쪽.


  위와 같은 교회성장론의 선교신학적 오리엔테이션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양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부장용과 역기능이 뒤따르게 되었다.  무리한 ‘성장신화’, 가시적 대형 교회건물에 의존하는  ‘교회지상주의’ , 배타적 집단의식과  집단이기주의 팽배, 사회윤리의식의 부재등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본 논문과 관련되는 결정적 문제점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를 주도했던 교회성장론자들이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열린자세를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고, 종교다원현상에 대한 진지한 선교신학적 성찰을 포기하고 타종교와의 대화, 관용, 협동의 태도는 곧 교회를 약화시키는 결정적 질병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교회가 강하게 되고 성장하려면, 복음주의적 보수 신앙공동체에 대한 전적인 충성과 위탁 헌신을 요청했으며 보수적 교회공동체의 동질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다름’과 ‘차이’를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복해야할 ‘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시켰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왜 한국 개신교가 1970-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와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도, 한국과 같은 종교다원사회에서 여전히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 태도와 종교적 갈등을 조장시키게 되는가 그 세 번째 이유가, 교회성장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경쟁과 성장을 최고 관심으로 삼는 복음의 변질,   개교회중심과 교파중심의 왜곡된 교회론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총괄적으로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면, 한국 개신교가 이웃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성향을 지니게 된 세가지  핵심원인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개신교가 개화물결을 타고 전래되면서 전통문화와 잔통문화의 핵심인  전통종교들을 극복대상으로 보았다는 점. 둘째로, 미국에서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향이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고 근본주의 신학의 핵심은 ‘성경무오설’이므로  성경을 많이 읽고 사랑하는 개신교 교인들은 ‘성경문자주의자’들로 훈련되어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는 점. 셋째로 1960년대 이후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시장경쟁 상황을 밑바닥에 깐 보수적 선교신학자들의 ‘교회성장론’ 신학자체가  종교간의 대화나 협력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등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세계 종교학계나 신학계는 지구촌 시대가 현실화되면서 제기되는 종교적 다원사회에 직면한 인류정신문명의 카이로스를 창조적이고도 생산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진지한 학문적 실천적 노력들을 진행시켜왔다. 다음 장에서 그러한 노력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견해들과 문제점을 고찰하기로 한다.

4. 종교간 대화와 협력태도에 관한 세가지 모델과 평가

  20세기 문명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은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심층적으로 만나 대화하기 시작한 일이라고 역사가 토인비는 지적했다. 그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이정표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채택한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69), 605-612쪽.
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중 논의하고 채택한 수많은 선언문 가운데 한가지요, 그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큰 주목을 끌만한 문서가 아니라고 그리스도교권 밖에서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등 비셈족계 종교들 입장에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Nostra aetate'는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그러나, 14세기 포르튜칼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선교이후, 그리고 17-20세기 기간동안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아시아및 아프리카 식민침탈과 더불어 이뤄진 그리스도교 선교신학과 역사철학  이론에서 본다면 획기적 변화가 그리스도교 자체 안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반성적으로 성찰되었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20세기 초까지 공식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이외 다른 문명권 안에 존재하는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은 단순한 이교(異敎)가 아니라, 정복하고 개종시키고  심판해야 할 ‘거짓종교’, ‘우상종교’, ‘자연종교’, 인본주의적 종교‘라고  단정해 왔기 때문이다. 1965년 이후 분명히 지구촌의 문명전환기에 처하여, 인류가 당면한 종교다원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성적 연구문헌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종교다원현상에 대한 도서목록을 참조하려면 한일철, 종교다원주의의 유형(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권말의 참고도서 목록을 참조하라.
  

  종교간의 만남에서 취하는 다양한 태도를 배타주의(Exclusivism), 포용주의(Inclusivism), 다원주의(Pluralism)로 나누어 설명했던  앨런 레이스(Alan Race) Alan Race, Christians and Religious Pluralism: Patterns in the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Maryknoll,New York: Orbis Books,1982)
의 3가지 모델 분류법에 따라 한국의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가 지닌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분석평가하기로 한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 입장은 글자그대로 자기가 귀의하고 있는 종교 이외의 모든 타종교들을 참종교로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짓종교’로 단정하여 그 존재성 자체를 거절하고 배척하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는 타종교를 멸절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이 진리를 위해 옳은 일이며, 가능하다면 타종교인들을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에로 개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의 배타주의적 종교인들은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등 셈족계 종교들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발견되지만, 극 소수일지라도 어느 종교에든지 이런 배타주의 태도를 가진 신도들이 있을 수 있다. 기독교 안에서의  배타주의 태도를 가진 신도들, 목회자,신학자들의 확신은 대체로 성경무오설의 교리를 신봉하여, 계시적 유일경전인 성경에 씌여진 대로 기독교만이 유일한 계시종교, 대속적 구원종교, 오직 유일한 참종교라고 확신하며, 결과적으로 타종교는 자연종교, 인본주의적 종교, 거짓종교라고 단정한다. Paul Knitter, No Other Names?: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6), pp.75-96.

  배타주의적 태도를 갖는 신도들은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신앙적,신학적 확신’이 강하며, 그 중에서는 ‘구원체험적 신앙’을 가진분들도 많아서 종교심리학적으로 강력한 정동적(情動的) 에너지를 동반하는데, 일부는 광신적으로 까지  치닫게 된다. 종교란 폴 틸리히가 말하는대로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 이기 때문에, 배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종교집단은 자기 종교에 대한 전적인 충성과 위탁, 강렬한 전도열, 교세확장을 위한 물심양면적 헌신, 동류집단에 대한 강한 연대감, 성경경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구절 암송등 강점을 갖고 있다. ‘교회성장론자’들이 말하듯이 배타주의적 태도를 갖도록 교인을 교육 훈련하면 결과적으로 교회가 강해지고 숫적으로 성장하게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배타주의적 태도자체가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철저한 준행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현대인의 삶의 양식자체가  인간 상호간의 관계망이 보다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연계되면서 생활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만약 배타주의적 태도를 가진 종교집단원들이  자기신념에 철저하려 한다면, 별도로 은거하여 집단적 생활공간을 영위하고 의식주 해결과 문화 교육 의료 문제등을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중세 수도원적 집단생활을 하기 전에는 배타주의는 자가당착적 신념이 된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타종교인이 생산한 음식물을 먹고, 타종교인들이 경영하는 교통통신 수단에 의존하며, 내 생명이 위급할 땐 타종교인들의 의사도움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만약 배타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사회속에서 타종교를 ‘거짓종교, 우상종교’라고 매도하면서 정복적 태도를 취하거나 박해한다면, 세계 타지역 소수기독교 집단체는 그 곳 다수 종교인들로부터  보복적 대접을 받아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종교분쟁’으로 치닫게 된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 태도가 이론적으로 바람직 스럽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배타적 진리관, 닫혀진 해석학적 독단성, 인간의 유한한 역사성과 상대성에 대한 무지, 다양성의 축복에 대한 불감증등 때문이다. 배타주의자들은 ‘참종교는 오직 하나만 있을 뿐이고, 그렇다면 남어지는 모두 참이 아니다’는 단순 배중율 논리에 사로 잡혀 있다.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자체는 영원할지 모르나, 그것의 역사적 실현과 구체적 응답 형태는 종교집단의 지질 기후풍토, 역사체험, 언어와 문화전통에 따라 제한되고 성격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배타주의자들은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한다. 한국에서는 박형룡의 보수신학이나 조용기목사의 순복음교회 선교신학이 배타주의적 태도의 대표사례로서 언급 할 수 있다. 박형룡, 박형룡저작전집 제VIII권, 현대신학비평 (상권) (서울: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1983), 359-371쪽.
    조용기, 말씀과 믿음(하권) (서울: 순복음교회 평신도교육연구소, 1997),301-302쪽.
 
  포용주의 태도는 ‘포괄주의’ 또는 ‘성취설’이라고도 부르는데,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 이외 이웃종교들 안에도 진리체험, 고상한 윤리와 예술, 영적 진리와 불완전하나마 구원체험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타종교들도 하나님의 세상구원 경륜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타종교의 좋은 점을 포용하되 보다 온전한 그리스도교 안에서 온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입장이다. 넓게보면,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 타종교에 대한 포용과 대화 정신, 세계교회협의회(W.C.C) 종교대화국의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입장이 포용주의 태도라고 말 할 수 있다. Paul Knitter, No Other Names?, 제6장: The Mainline Protestant Model과 7장: The Catholic Model이 같은 포용주의적 입장이라고 대별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포용주의 태도를 지니는 사람들은, 고대교회 로마의 클레멘트나 알렉산드리아 오리겐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는 유대민족이나 이스라엘역사에 제한되지 않고 보편적이며 전 우주적으로 임재하시고 활동하신다는 신학적 입장을 현대적으로 확대심화 시킨다. 성경이 증언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스도교 ‘문명권의 신’이나 ‘그리스도교 종교집단의 신’ 으로 국한 시키려는 전통기독교의 좁은 시야를 비판한다. 포용주의적 태도의 최대 덕목은 관용성과 개방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뒤를 따르면서 예배받는 피동적 신이 아니라, 선교사들보다 앞서서 모든 민족역사, 만민들의 생명, 성인들과 현자들의 지혜와 가르침들 속에서 당신의 세계구원 경륜을 이뤄가고 계신다고 신앙고백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받아들인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타종교 안에도 계시와 구원체험이 불완전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모든 타종교를 완성시켜 온전하게 하며 타종교의 참종교성의 진위를 판단하는  판단척도  규범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온전한 계시적 진리’ 라고 주장한다.
  포용적 태도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만이 아니라, 교양있는 종교인들이 취할 수 있는 건전한 태도이다. 왜냐하면, 종교에는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성격이 있다면, 아무리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적 태도를 당연시하는 힌두교, 불교, 도교인들 일지라도, 자기가  구체적으로 귀의하는 종교가 최고, 최선의 진리라고 확신하는 ‘자기종교 우월성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나마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포용주의적 태도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배타주의태도보다는 성숙한 태도이다.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충성과 위탁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종교인이 경험한 진리체험과 구원체험의 증언에 경청하고,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자세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숙한 포용주의가 지닌 가장 큰 공헌은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와 기독교를 발생시킨 원점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 생명을 통해 드러난 복음 그 자체’를 동일시하지 않고 분별하는 지혜인 것이다.
  포용주의 태도가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류적 입장이긴 하지만, 학문이론상으로는 여러 가지 도전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 가장 핵심비판은 포용주의적 태도가 은폐하고 있는 검증되지 않고 객관성이 결여된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계시의 궁극적  규범성 주장, 최종 수렴자로서 그리스도교의 완결신앙 확신, 타종교안에 나타난 계시체험과 구원체험을 불완전하거나 부분적인 것이라고 보는 견해등이 무지의 소치이든지 주관적 확신이든지, 아니면 은폐된 기독교 ‘우월의식’이 표현이기 때문에, 진정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같은 종교갈등소지가 있는 사회에서 기독교지도자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이 배타주의로부터  포용주의에로 성숙해 간다면 단계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 개신교안에서 포용주의 태도의 대표적 인물로서 탁사 최병헌과 장공 김재준을 들수 있다.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연세대출판부, 1997), 182-205쪽, 240-275쪽.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신학(한국신학연구소, 1994), 200-209쪽.

   마지막으로 종교 다원주의 태도는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종교신학의 중심 ‘화두’로서 그리스도교 대부분의 신자들이나 목회자보다는 현재는 일부 그리스도인들과 학자들 중심으로 서서이 확산되어가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관이라 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학자들의 사변적 이론놀음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지구촌이 당면한 문명사적, 정치사회적, 생태학적 위기 극복을 위한 절실한 생존문제가 계기가 되어 촉발된  기독교계 지성인들의 고민이었다는 점을 기억함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종교다원론의 진전에 큰 공헌을 한 학자들은 죤 힉(John Hick), 윌프레드 스미스(Wilfred C. Smith), 죤 캅(John Cobb. Jr.), 라이몽 파니카(Raimundo Panikkar), 앨런 래이스(Alan Race), 니터(Paul Knitter), 죠지 린드백(George Lindbeck)등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대표적 다원주의 종교신학자들의 저술목록은 아래 자료 참조.
한일철, 종교다원주의의 유형 (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참고문헌, 294-299쪽.

   종교다원론자들의 입장에도 다양한 차이와 특유성이 있지만, 여기에서 대체로 공통적인 입장을 요약하여 그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로 한다. 종교다원주의 태도는 배타주의는 물론이요 포용주의가 내포하고있는 문제를 과감히 극복하려는 ‘지성적 용기’로서 축발된다. 그들은 인간존재의 역사적 상대성과 해석학적 제약성을 철저히 자각한다. 다시말하면, 지구상에 나타난 의미있는 역사적 종교들은 ‘진리’ 또는 ‘진리의 자기계시’에 대한 인간학적 ,역사적, 언어문화적 응답형식에 의해 제한된  ‘상대적 절대체험들의 형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기 종교만이 최종적, 절대적, 규범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단적 우월주의라고 본다.
   동시에 포스트모던 사회가 경험하는 ‘다양성의 축복’과 ‘차이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려 한다. 그러므로, 흔히 종교다원주의 태도가 세간에 오해되듯이,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종교종합주의나 종교혼합주의를 지향한다는 오해는 바로 잡아져야 한다.  도리혀 현대 성숙한 책임적인 종교다원론자들은  현존하는 세계 종교들이 지닌 고유의 특성을 간과하거나 약화시켜 가지고  획일적인 세계종교를 꿈꾸는 단순사고와 종교혼합주의를 가장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계하고 그런 태도에 대하여 비판한다. 또한 종교다원론자들은 종교란 교리적인 이론체계라기 보다는 신성한 ‘초월경험의 삶 자체’로서 이해한다.  무엇이 ‘바른 교리’(Orthodoxy)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실천하는가의 ‘바른 실천’(Orthopraxis)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Paul Knitter, "Toward a Liberation Theology of Religions",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Ed. John Hick and Paul Knitter(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8), pp178-202.

  다원주의적 태도는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 성숙과 창조적 변화'를 지향하는 용기를 지니려하며(John Cobb.Jr.), 인류가 당면한   현실적 고통과 위험을 감소시키는 구원행동에 동참 할 것을 강조한다(Paul Knitter). 이론상으로는 종교적 다원주의 태도는 가장 성숙한 종교에 대한 태도라고 말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종교다원주의 태도’는 상대주의에 떨어질 위험을 늘 안고 있다. 또한 ‘궁극적 관심’으로서 종교가 지닌 매우 중요한 ‘정동적 열정’을 대중들은 상실하기 쉽다. 무엇보다도, 해석학적 이해이론이 충분하게 습득되지 않은 한국 기독교계와 같은 지적 미성숙 상태에서는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생산적 대화가 되지 못되고, ‘독단과 오해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예를 들면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질문자가 이미 ‘구원’이란 이런 저런 내용을 함의 해야 하는것이라는 ‘구원에 대한 전이해’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감리교 교단 안에서 일어난 것 같은 변선환교수의 ‘종교재판’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간의 대화나 만남의 태도로서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 태도의 근본입장과 그 장단점을 간단히 살펴 보았다. 한국사회에서 종교간의 갈등, 특히 개신교와 불교와의 갈등문제는 위 세가지 태도중에서 극단적 배타주의를 가진 개신교 신도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들 배타주의 태도를 지닌 개신교 집단은 비난하거나  정죄하기 전에, 그들은 사실 잘못된 지도와 교육 훈련으로 인해서 인식론적, 해석학적 독단론에 희생된 피해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바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보다 성숙한 포용주의 태도나 다원주의 태도에로 변화하도록 그들을  성숙시켜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종교갈등을 해소시키는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 갈등해소를 위한 현실적 대안들을 다음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5. 종교간 배타적 태도와 갈등관계의 극복방안

  한국사회의 종교간 배타주의 태도는 개신교도들 가운데서 주로 많이 발견되며, 그로 인한 종교간의 갈등관계는 일부 개신교도의 훼불사건이나 타종교비방등 바람직하지 않은 종교간 갈등현상을 노출시켜왔다. 그런데  서론에서 말한대로, 종교간의 갈등해소 과제는 갈등관계 속에 있는 당사자 종교 신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갈등적 상황으로 몰고갈 수 있는 매우 위험스러운 요소인 것이다.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시켜 갈등관계를 상호이해와 협동관계로 전환시키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호 ‘대화를 넘어 창조적 변화(Beyond Dialogue toward the Creative Transformation)'  John Cobb. jr., Beyond Dialogue: Toward a Mutual Transformation of Christianity and Buddhism(Philadelphia:Fortress, 1982). 이 책에서 죤 캅은 단순한 상호대화단계를 넘어서서 상호창조적 변화의 단계로까지 진행하려는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 자세가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로까지 진전하는 성숙한 대화가 요망된다. 그 구체적 대책과 방법을 몇가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5-1. 종교 및 종교문화사 교육을 통한 이해지평의 확장

  종교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배타주의적 신도들이나 종파는 제한된 경험과 지식으로 인한 편협한  사고가 독단적 독선적 종교인을 양산하게 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각 종파들이 공유하는 한국의 종교사 및 세계 문화사에 대한 통시적 교육을 통해, 이해지평을 넓게 해줘야 한다. 예들면,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는 한국 불교사, 불교사찰의 가람배치의 의미, 불교예술의 상징성, 불상이나 불교석탑, 탱화나 불상들의 다양한 의미등에 대하여 아무런 예비 지식이 없을 수 있다. 초중등학교 시절 집단 수학여행기간 동안 잠간 들린 한국 불교사찰들의 생경한 인상이 불교에 대한 예비 지식의 전부일 수 있다. 불교사찰 입구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사천왕의 부릅뜬 눈, 대웅전 지붕의 단청이 각인시킨 원색적 강렬한 인상, 온갖 한자로 기둥마다 씌여진 낯선 불경 구절등이 불교에 대하여 따뜻한 인상을 가지게 할 순 없다.
   그러나 사람은 아는 만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 한국 개신교도들에게 기초적인 한국 불교사 및  사찰 소개, 불교미술 이해, 불상과 석탑 연구논문등을 일부 읽기만 해도 종교적 교리를 떠나서 불교에 대한 친밀감을 갖게 된다. 한국 불교도들에게도, 개화기 시기에 개신교가 한국의 교육, 의료, 종교사상에 눈부시게 공헌한 업적들과, 기독교 종교예술의 걸작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시킴으로서 타종교에 대한 이해의 문을 더 넓힐 수 있다. 문제의 욧점은 직접적인 종교교리, 종교의식, 신학의 비교연구 보다는 종교문화 또는 종교예술 이해라고 하는 간접적방법을 통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Paul Tillich, Theology of Culture(New York: Oxford Press, 1959), p.42.
라고 말한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문화신학 명제는 여전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만약 각 종단의 교육부에서 보다 적극적 교육방법을 시도한다면, 각종파의 교리교육이나 각종파의 발전사를 가르키는 교과목 과정에, 이웃종교들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간단한 종교입문 커리큘럼을 실시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러한 인문학적인 교양교육 과정은 일반학교의 공교육과정에서 마땅이 이뤄져야 할 일이지만  입시위주의 파행적 교육과정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국가 교육정책상으로는 사회과 교육과정이나 국민윤리 교육과정 속에 ‘한국의 종교들’이라는 항목을 넣고 한국종교들이 한국 문화창달과 예술발달에 미친 영향이나 고귀한 업적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특히 각종단의  성직자 양성과정의 교과과정 속에, 종교학과 세계종교사에 대한 기초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일이 된다. 지식으로서의 앎과 지혜로서의 이해는 차원이 다르지만 “아는 것만큼 이해된다”는 해석학적 원리는  한국 종교간의 갈등해소 방안으로서 기초적인 종교학 및 종교문화사 교육을 통한 종교인들의 이해지평의 확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한다.

 5-2. 종교적 진리이해에서 인간의 역사성과 해석학적 패러다임 의존성을 깨닫도록
      돕는 일

  좀더 심화된 단계에서의 종교간 갈등해소를 위해서는,  모든 종단의 지도자들과 종교인들로 하여금,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과 충성 및 헌신위탁을 철저히 하면 할수록 동시에, 인간의 종교경험과 진리표현 자체도 역사적 문화적 제약 속에 있음을 깨우치는 인식론적인, 또는 해석학적인 눈뜨임이 필요하다.
  종교란 ‘궁극적 관심’이자 최고 진리파지의 확신과 희열이 동반되는  초월적인 실재, 거룩한 실재에 대한 경험의 표현이거나 그 상징체계이기 때문에, 흔히 종교인들은 그러한 경험된 것 또는 종교적 상징체계 자체를 ‘진리 그 자체’ 또는 ‘실재 그 자체’와  직접적으로 동일시 하려는 유혹에 흔히 빠지게 된다. 죤 힉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실재 그 자체’(Reality itself)와 ‘인간적으로 이해되고 사유된 실재’( Reality as humanly experienced and thought)는 공통요소를 지니면서도 구별되어야 한다. John Hick, "Seeing-as and Religious Experience", Prolems of Religious Pluralism(New York: St. Martin's Press,1985), pp.16-27.
 구체적으로 예든다면 각종단의 경전이나 교리는 계시체험과 신비체험을 통해  절대자로부터 전수받고 전승되었다 할지라도, 경전이나 교리 그 자체를 절대자와  곧바로 동일시하면 우상숭배가 되어버리고 만다.
   종교인으로 하여금 종교체험과 그 상징체계의 역사성과 해석학적 패러다임 의존성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진리에 대한 회의론자나 불가지론자로서 만들지 않으며 도리혀 진리에 대해 겸허한  종교인이 되게하고, 이웃종교의 진리체험과 표현에 귀기울이게 한다. 하나님 또는 진리자체는 어떤 특정종교의 접근방법과 상징체계만 가지고서는  충분하게 포착 할 수 없는 것이고,  삶 그 자체도 심원한 복잡성을 내포한  것이기에 특정문화나 종교가 복잡한 생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할 수 없는 것이다. Eeuwout Klootwjik, Commitment and Openness: The Interreligious Dialogue and Theology of Religions in the Work of Stanley J Samarta(Zoetermeer: Boekencentrum,1992), p.89.
 
   인간존재가 해석학적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학자는 가다머이다. 그는 <진리와 방법>에서 인간실존은 해석학적 존재요, 역사적 존재로서 ‘영향사적 의식’에 의해 늘 인도되고 있음을 설파했다.

     이해란  항상 -자연과학에 있어서나, 정신과학에 있어서나, 부엌살림에 있어서나 -         하나의  역사적, 변증법적, 언어적 사건이다. 해석이란 이해의 존재론이요 이해의 현        상학이다. 이해란 전통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인간 주체성의 행위로서 파악해서는        않되고 세계 안에 있는 현존재의 기본적 존재방식으로서 파지되어야 한다. Richard Palmer, Hermeneutics: Interpretation Theory in Schleiermacher, Dilthey, Heidegger, and Gadamer,(1969),p.215.


  위 말을  쉽게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한다면,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자이면서 사실 알고보면 훨씬 더 많이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져가고 있는 존재이며, 역사가 인간의 주체적 의식에 속한 것 이라기보다, 인간이 역사에 속한 것이라는 말이다. 한 인간이 기독교 문명권, 회교문명권, 또는 타이랜드같은 불교문화권에서 자기가 선택하기 전에 운명적으로 부모에 의한 인연으로 해서 태어나게 되어, 그들이 태어난 문명사회의 언어, 가치관, 상징체계, 세계관, 우주관을 습득하면서 세상을 읽고 진리를 이해하고 신체험(거룩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의 체험을 규정하는 방식의 총체적 체계를 역사 또는 세계관의 패러다임이라 부른다.
  그런데, 과학사가 토마스 쿤의 연구에 의하면, 과학자에게 있어서 자연을 연구하는 한가지 패러다임은 그 자연과학자로 하여금 “자연을 어떻게 볼것인 가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도 규정하다”. 종교적 패러다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21세기 건전한 종교문화 창달과 종교간의 갈등해소를 위해서는, 종교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신도 모두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성실한 위탁(commitment)을 함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역사성과 해석학적 상대성에 대한 성숙한 눈뜨임이 요청되는 것이다.

 5-3. 종교인의 상호 체험교류와 실천적 정행(正行)에 동참함으로서 이해와 협동

 종교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위에서 언급한 대책은 체계적 교육과정, 연구 세미나 실시, 독서 강의, 학술적 토론대화 등을 통해서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무명(無明)과 집착’을 깨쳐 나가자는 방법이요,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교만과 이기심’을 벗어나도록 ‘인식론적 중생체험’을 하게 하자는 말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종교학계와 종교신학계에서 깨닫게 된 경험적 사실은, 실질적으로 종교간의 이해와 협동을 증진시키는데는 이론적, 지식적 대화보다는 인격적 교류와 실천적 정행(正行)에 동참함으로서 더 큰 진전을 경험한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사실 종교의 진면목은 이론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설명이 아니라 체험이며, 교리체계의 우월성 논쟁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실천적 힘의 문제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각종단의 종교인들은 여러 가지 기회를 통해 인간적 깊은 만남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와 지역사회가 당면한 각종 시급한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는데 협동하는 경험을 했다. 한국에도  ‘한국종교인 평화회의’(KCRP), ‘크리스챤 아카데미 대화프로그램’, 가톨릭 종교연구소, ‘한국종교연합선도회’(KURI), 한국신학연구소,  각대학의 종교학 연구소들이 주관하는 각종 학술 협의회가 꾸준히 지속되어, 한국 종교문화의 창달에 공헌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70-80년대 군부독재시절의 인권 노동운동, 1980-90년대 통일평화운동, 북한 돕기 운동, 생태계 보전운동, 언론정화운동, 민주주의 창달과 정치문화 정화운동등에 실질적 연대를 통해서 각 종단 지도자들의 인격적 만남의 기회가 많아졌다. ‘삼소회’등 여성 성직자들이 음악을 통한 사귀임과 봉사, 불교 사찰 선(禪)수련 도량을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서 타종단의 지도자들도 참여하는 경험등은 종교간의 이해증진에 보다 큰 공헌을 해왔다. 이러한 실천과 경험을 통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의 증진방법은 종단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신도들 사이에 더욱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각 종단사이에는 교리, 종교의식, 상징체계, 구원론에서 차이와 다l양성이 존재하지만, 고통당하는 생명과 인간을 제도하여 다함께 평화로운 생명공동체, 대동세계를 이루어 나가려는 궁극적 목표는 서로 통하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5-4. 대중정보매체를 통한 정보교류와 종단간 상호교환방문 프로그램

  현대사회가 전파매체를 통한 정보화시대라면, 종교간 갈등해소를 넘어 종단간 대화 상호이해 상호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 전파매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큰 효과를 기대 할 수 있겠다. 현재 래디오 전파 방송국으로서는 가톨릭의 평화방송,  불교방송, CBS 기독교 방송, 원불교 방송 채널이 각종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일부 종단에서는 TV 방송채널이 유효하다.
  현재 각 종단의  대중 전파매체는 각 종단의 선교나 포교 및 교육방송의 기능을 담당하고있는 제한적 기능만을 담당한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으로 불교방송이나 TV 채널에 가톨릭 신부 수녀나 기독교 목회자 신학자 평신도들이 초청받아 ‘이웃종교의 이해’(가칭)라는 주제로 유익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 할 수 있으며, 그 반대 역순으로 프로그램을 서로 교환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재상황으로서는 개신교의 CBS 기독교 방송이나 TV채널에서 그러한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은 개신교 보수교단의 반발에 부딪혀 어려움이 많을 것이지만, 언젠가는 실현되어야 할 일이다.   
  종단간 상호방문 교환프로그램도 큰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선은 각 종단의 성직자 양성 프로그램의 일환 속에, ‘이웃종교의 이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각 종단의  대표적 사찰, 성당, 성지, 교회, 및 박물관을 하루일정으로 약 5-6곳을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물론 방문할 이웃종단의 기관 책임자와 긴밀한 협조가 미리 있어야 하겠다. '1일 종교문화 체험 Bus Tour‘ 형식으로 약 40명 단위의 종교문화 탐방단을  조직하여, 방문지역의 성직자나 전문가의 안내와 설명을 듣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도록 한다. 예비성직자를 먼저 실천에 옮겨보고 결과가 좋으면 일반 신도들에게 참여기회를 확장 시킨다. 본 연구자의 신학교육기관(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의 작은 실험결과는 매우 긍적적 반응으로  나타났다.

6. 나가는 말: 열린종교와 생명공동체를 지향하여

 이 연구는 한국사회의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논의의 구체성과 집중도를 고려하여  한국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종교갈등 사례가 가장 빈번한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문제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연구범위를 한정했다.
 먼저 이 연구논문의 2장과 3장에서, 한국사회의 종교현황과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사례를 통계청의 통계자료와 사건위주로 살펴보고 문제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파악하였다. 갈등해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국민 총수 중 각각 23.16%와 19.66%를 신도수로 거느리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두 종단 불교와 개신교 사이에 바람직하지 않은  갈등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가 그 원인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했다. 특히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성향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역사적 관점에서 개화과정의 역기능을, 신학적 관점으로서는 보수적 개신교단의 성경무오설을, 현실목회 현장상황에서는 종교의 ‘시장상황’의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의 3장과 4장에서,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문제를 신학적으로, 종교학적으로 심도깊게 연구하기 위하여, 오늘날 세계 종교문화계와  학계에서 논의되는 종교간의 만남의 유형 세가지 배타주의태도, 포용주의태도, 그리고 다원주의 태도의 기본입장과 그 의미평가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의 구체적 결론으로서 종교간 갈등해소 방안을  4가지 범주로 대별하여 제시하였다.
  종교는 크게 닫힌종교와 열린종교로 대별 할 수 있다. 닫힌 종교는 과거에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인류문화사 속에 남겼을지라도 이제는  유연성과 탄력성을 잃고 경직화되어 창조적 변화와 성장을 중지해버린 교리적 종교, 율법적 종교, 종교의례중심의 종교, 교권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종교, 이웃과 대화협력을 중지하고 배타적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종교, 지극히 독선적이고 광신적 종교행태를 노정시키는 종교를 말한다.
 다른 한편 열린종교란, 종교가 지닌 초월의식과 ‘궁극적 관심’에 동반하는 열정과 헌신을 동반하면서도 고도의 윤리성과 사회정화능력을 보유한 생동하는 종교를 말한다. 종교가 지닌 ‘절대적 신념’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인식론적으로, 해석학적으로 역사 내 종교들은 상대적임을 충분히 이해하는 성숙한 자세를 지닌 종교가 열린종교이다.  열린종교는 대화와 협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웃종교들의 거룩체험과 영성의 풍요로움을 배우며 자신의 종교 속에 창조적 변화의 촉매로서 받아드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열린종교는,
진리자체이신 절대를 향해 열려있고, 사회와 미래 역사를 향해 열려이고,  인간성의 미래를 향해 열려 있으며, 종교의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 그리고, 열린종교는 종교의 구경의 목적이
생명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며, 억압과 불의의 세력으로부터 인간과 생명들을 해방시키려는 정행(正行)을 향한 열정을 지닌다.
  한국 개신교와 한국불교는 각각 닫힌 종교가 되기엔 그 두 종교가 지닌 영적 에너지와 전통의 유산이 너무나 위대하고 풍요롭다. 두 종파의 크기와 넓이와 높이는 세계적이고 우주적이기 때문에, 한국사회 속에서 어느 한 종파가 다른 종파를 무시, 정복, 개종, 폄훼한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며, 만약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그런 행위를 하는 종파의 자멸을 초래 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개신교의 일부 보수적 교회지도자들과 신도들의 배타주의적 태도는 오래지속 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교육과 실천을 통해  계몽시키고 성숙시켜, 우주적 보편 종교답게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아놀드 토인비가 예견하듯이, 진정한 인류미래의 찬란한 영적문명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정의 자비(사랑) 평화가 숨쉬는 대동적 생명공체의 실현을 위해서, 한국 개신교와 불교는 서로 협력하고 상호배움을 통한 ‘창조적 변화’(Creative Transformation)를 이뤄가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1. 한국통계연감 2000, 47호( 대전: 통계청, 2000)
2.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서울:대한 기독교출판사, 1992)
3. 유홍렬, 한국천주교회사(서울:가톨릭 출판사, 1994)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92)
5. 이만열, 한국기독교문화운동사(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7)
6. The History and Culture of Buddhism in Korea, Edited by The Korean Buddhist         Research Institute(Seoul: Dongguk University Press, 1993)
7. 性徹, 百日法文 상.하 (서울:장경각, 불기2536(1992))
8. 大乘起信論, 이홍우 역편 주해(서울:경서원, 1991)
9.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서울:연세대출판부, 1997)
10. 변선환,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7)
11. 신옥희, 일심과 실존:원효와 야스퍼스의 철학적 대화(서울: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0)
12.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신학(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4)
13. 이원규,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서울:성서연구사, 1994)
14. 한국문화신학회편, 한국 종교문화와 문화신학, 제2집(서울: 한들, 1998)
15. 구스타프 맨슁, 변선환역, 불타와 그리스도(서울:종로서적,1987)
16. 박양운, 그리스도교와 힌두교.불교(서울:가톨릭출판사, 1997)
17. R.파니카, 김승철역, 종교간의 대화(서울:서광사,1992)
18. 리챠드 팔머, 이한우역, 해석학이란 무엇인가(서울:문예출판사, 1988)
19. 박아론, 보수신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서울:총신대출판부,1985)
20. 크리스챤 아카데미 편, 열린종교와 대화공동체(서울:대화출판사, 2000)
21. 한인철, 종교다원주의의 유형(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22.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제8권, 현대신학비평 상권(서울:한국기독교교육원, 1977)
23. 김성수, 함석헌 평전(서울:도서출판 삼인, 2001)
24. 김경재, 김재준 평전(서울:도서출판 삼인, 2001)
25. Kung, Hans. Christianity and the World Religions(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86)
26. Hick, John. Problems of Religious Pluralism(New York: St. Martin's Press, 1985)
27. Coward, Harold. Pluralism:Challenge to World Religions(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5)
28. Cobb, John B.,Jr. Beyond Dialogue:Toward a Mutual Transformation of Christianity       and Buddhism(Philadelphia: Fortress,1982)
29. Hick, John and Paul Knitter, eds.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Toward a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Maryknoll,New York: Orbis Books, 1988)
30. Knitter, Paul F. No Other Name?: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5)
31. Lindbeck, George A.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4)
32. Race, Alan. Christians and Religious Pluralism: Patterns in the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82)
33. Smith, Wilfred C. Toward a World Theology; Faith and the Comparative History of  
   Religion(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1)
34. Tillich, Paul. 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the World Religions(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6)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