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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Access : 4908 , Lines : 235

우리가 내세우는 것(씨알의 소리 46주년기념, 2016.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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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의 소리』창간 46주년 기념강연회, 2016년 4월20일, 오후 6시, 한국기독교회관]

                         “우리가 내세우는 것”
                                    김경재(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 한신대 명예교수)

[1] 들어가는 말

하나의 잡지가 지령 46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그 잡지를 발행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든든한 재정 뒷받침이 있다든지, 경영면에서 독자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불러 일으켜 출판비 선순환이 가능할만한 광고수입이 있어야 반세기 가까운 지속적 간행이 가능하다. 종종 “『씨알의 소리』잡지가 지금도 나옵니까?”라고 묻는 시민들의 물음을 듣는다. 그만큼 이 잡지는, <씨알의 소리> 정기독자들에겐 서운한 말로 들리지만, 이 잡지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래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묻는다. 왜 이 잡지는 46년간을 지속해 올 수 있었고, 또 계속 출판되어야할 저력과 잡지로서 독특한 존재의미가 있는가? 옛날 이사야 선지자가 “야훼의 종의 노래”라고 학자들이 이름붙이는 예언서에서 노래하듯이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2:2,4)처럼, 이 잡지의 성격과 운명과 사명이 어쩐지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오늘 강연에서 강연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참석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의 오늘 관심은 이 잡지의 지난날 험난했던 역경의 역사를 뒤돌아 본다거나, ‘씨알사상’이라고 요즘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씨알사상’의 어느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하는 학술강연도 아니다. 강연목적과 초점은 분명하다. 1970년 4월 19일, 『씨알의 소리』첫호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땐,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간행인이고 주간이었던 함석헌의 맘 속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이목구비를 다 갖춘 영아처럼 잉태되어 있던 것이지만, 잡지의 뒷장 전면에 분명히 문자로 표현한 것은 1976년 1월호 부터였다.

  그 사이 기간(1970.4-1975,12) 충격적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잡지 2호를 내자마자 군사독재에 의해폐간(1970.5),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1970.11), 법정 투쟁을 통해 복간(1971.8), 유신체제 돌입(1972.10), 유신체제반대 진보계 기독교선언(1973), 민주회의 국민회의 조직(1974), 인혁당 피고인 긴급 사형집행(1975.4) 장준하의 의문사(1975.8) 등등 역사의 광풍 속에서 『씨알의 소리』는 그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내세운 깃발에 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뒤 40년간 줄곧 계속되어온 <우리가 내세우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깊게 되새김 하면서 읽자는 것이다. 거기엔 이 잡지를 창간한 함석헌선생의 사상이 압축적으로 녹아있으며, 이 잡지의 자기정체성이 또렷이 언표되어 있으며, 이 잡지를 만들어가고 지속해가는 모든 씨알 독자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그 꿈이 무엇인지 , 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의 내용은 다음같이 5가지 테제로 정리 할 수 있다.

[2] 제1테제: 『씨알의 소리』는 씨알 스스로가 자기를 닦고 길러내는 자기교육 기구

이 잡지의 초창기 편집위원들(계훈제, 김동길, 김성식, 김용준, 법정, 송건호, 안병무, 이병린, 이태영, 장준하), 그리고 불의한 권력에 의해 폐간처분을 받았을 때 법정투쟁 변호를 맡아주신 고 이병린 변호사, 권력에 밉보이면서도 인쇄를 맡아준 초기 인쇄소(선일,삼명인쇄소), 초창기 수고하신 큰 머슴들(문대골, 박선균, 박영자 님 등), 특히 함선생 타계하신 이후 발행인과 주간으로서 재정난을 메꾸며 이 잡지의 명맥을 이어가신 김용준 교수와 고 이문영교수의 노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강연의 취지에 따라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1테제는 잡지 뒷면에 실려있는 내용중 제1 선언적 문장에 명시되어 있다:

     씨알의 소리는 순수하게 씨알 자신의 힘으로 하는 자기 교육의 기구입니다.

위 문장에는 『씨알의 소리』, 이 잡지의 간행주체, 간행목적, 간행방법 및 태도가 명료하게 선언되고 있다. 테제1의 선언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명분을 살리기 위한 수사적 문장으로 읽을 것인가 거짓없는 참의 선언적 의지표명으로 읽을 것인가에 따라 오늘과 내일의 이 잡지 운명이 달려있다.

이 잡지의 주인과 주체는 씨알이라는 것이며, 함석헌은 그들 중 한사람으로서 이 선언을 한다. 잡지를 달마다 간행하는 경제적 책임주체로서 말하면 구체적인 씨알독자들이 이 잡지의 최종 책임자요 주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1테제의 진정한 의미는 구체적인 ‘씨알독자들’을 명시하는 것을 넘어서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씨알들이 잠재적 주체요, 간행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씨알이 누구이며 그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 논할 자리는 아니다. 잡지 표지 후면 <우리가 내세우는 것> 하단에 간략하게 소개한 ‘씨알’ 설명이면 족하다. 그 설명내용에 따르면 “씨알이란 말은 민(民), people의 뜻인데, 우리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러 만든 말”이라는 것이다. 사람생명의 씨요 알인데, 특히‘알’이라는 글자를 반드시‘알’로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씨알은 단순한 경제적 무산자, 통치대상으로서 국민, 프랑스 혁명 이후 출현한 근대적 시민과 차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씨알의 소리』라는 평균 150페이지 미만의 이 잡지는 알고보면 매우 쉽고도 어려운 철학적 인간학 잡지요, 동서종교의 알짬을 감히 육화(肉化)시키려는 세속안의 수도사들의 종교수행 매뉴얼을 담은 잡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잡지는 대중적 인기가 있는 잡지는 아니다.

  <알>글자를 파자해서 선언하기를 씨알이란 ‘극대 초월적 하늘’과 ‘극소 내재적 하늘인 자아’를 평행관계로 보거나 분리관계로 보지않고 상호 내주순환(內住循環)하고 공명공역(共鳴共役)하는 역동적 생명관계로 자기를 이해하는 민초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현실적으로 그런 성숙한 경지에 도달한 민(民)이 과연 얼마나 있느냐고 묻는다면, 잡지의 발행자 함석헌의 확신에 의하면 완성태로서 씨알은 극소수 일런지 모르지만, 이 잡지는 ‘자기완결적인 씨알’들이 주체로서 만들어가는 잡지는 아니고, 씨알이 되려고 익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미성숙한 씨알들, 잠재적 씨알들, 가능태로서 씨알들이면 족하고, 사실은 그렇게 ‘미완성적, 불완전한, 덜 성숙한 씨알들’이기 때문에 이 잡지가 필요하고 존재할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자기는 온전한 씨알이 되었다고 합격점을 받기엔 아직도 “역사적 죄악에서” 자기를 해방시키지 못했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아는 사람들이 그런 자격을 닦아내기 위해 “깨어있는, 노력하는, 되어가는 씨알”이면 이 잡지에 동참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선언이다.

『씨알의 소리』 창간 목적은 “순수하게 씨알자신의 힘으로 하는 자기교육의 기구”라는 말처럼 귀한 말씀이 어디 있을가? ‘씨알자신의 힘으로’라는 말 뜻에는 여러 가지가 중층적으로 포개져 있다. 우선 간단하게 말하면, 씨알들의 작은 돈들을 모아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자기분수에 맞게 만든 잡지라는 말이다. 잡지발행하는 경비만이 아니라, 잡지 내용을 채워가는 내용도 유명한 학자들이나 명망가의 글을 받아 ‘수준높은 교양잡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그 글 내용 자체도 ‘씨알자신의 힘으로’ 진솔하고 생명살리는 체험이야기로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제1테제에서 그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단어는 ‘자기교육의 기구’라는 선언이다. 『씨알의 소리 』는 제1차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씨알들이 자기 자신을 교육하고, 자기성찰하고, 가능태로 잠들어있는 사람됨의 본성을 실현해내기 위한 인간성 함양의 교육적 방편물이라는 것이다. 건방지게 세상을 호통하거나, 도덕적 바리세이즘을 바닥에 깔고 남을 비판하거나,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창간한 잡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씨알의 본래생명체 모습을 되살려내고 키워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비평의 글을 도무지 싣지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글을 써야한다. 그러나, 그 동기와 제1차 목적은 ‘모든 역사적 죄악의 힘’에 맞서서 씨알의 권리를 정당하게 되찾기 위한 진리싸움에서 저절로 가장 날카로운 ‘정치적 저항과 비판적 글’이 실리는 것이지 이 잡지가 태어나기를 정치비평잡지, 사회비평잡지, 문예비평잡지로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씨알의 소리』 잡지가 계속 존재해야 하고, 더욱 분발해야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이 잡지는 진짜 씨알들이 가을들판 추수때 알곡처럼 영글게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알곡은 드물고 쭉정이와 가라지가 양산되는 우리현실 속에서 ‘영근 씨알의 농사짓기’보다 더 시급하고 본질적인 일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잡지는 테제1을 굳게 스스로 다짐한다. 우리들 생명이 알찬 씨알로 영글어지기 위해, 영글어졌으면 두려움 없이 땅에 묻히기 위해, 묻혔으면 새싹으로 움트기 위해, 움텄으면 나무로 자라 큰 숲을 더불어 이루기 위해 『씨알의 소리』는 이 땅에 한결같이 존재할 것이다.

[3] 제2테제: 『씨알의 소리』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대동세계 운동

이 잡지가 지향하는 둘째목적은 너무나 원대하고 높아서 낮꿈을 꾸는 자의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고 피부에 와닿지 않는 유토피아 운동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날마다 달마다 “무엇을 먹을가 무엇을 입을가?”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한테는 고상할런지 모르나 직접 자기들과는 관계없는 주장이요 운동이라고 느끼기 쉽다. 제2테제는 이렇다:

씨알은 하나의 세계를 믿고 그 실현을 위해 세계의 모든 씨알과 손을 잡기를 힘씁니다.

위의 제2테제는 <우리가 내세우는 것> 선언문이 실려있는 표지 제4면 하단에 다음같이 부연 설명이 덧붙여진 테제이다. 너무 높은 이상이기 때문에 왜 그런지 좀 더 설명을 할 필요를 함석헌은 느꼈을 거리고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연설명은 아래와 같다:

씨알은 선(善)을 혼자서 하려 하지 않습니다.
씨알은 너 나가 있으면서도 너 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안에 있고 전체는 우리 하나하나 속에 다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씨알의 소리』제2테제는, 이 잡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해가는 최종목표를 지시한다. 이른바 ‘궁극적 텔로스(telos)' 이다. 모든 인류의 성인 현자들이 말하고,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평화로운 생명의 회복상태 이다. 불교는 이를 ‘불국토 실현’이라 부르고, 유교는 이를 ‘대동세계 실현’이라 부르고,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잡지의 정기 구독자가 되거나, 이 잡지를 아끼고 관심하거나, 심지어 이 잡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경우일지라도 생각을 느긋하게 하고 목표설정을 멀리 잡아야 한다. 섣부르게 당장 효과를 보려는 조급증이랄지, 함께 걷는 동료 씨알들의 걸음걸이가 답답하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져서 나 혼자만이라도 빨리 빨리 걸어나가겠다는 돌출행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씨알은 “하나의 세계를 믿고”라는 전반부 신념은 오늘날 갈기갈기 찢기고, 약육강식의 양보없는 현실세계에 비추어 볼 때 관념적 신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함석헌과 참 씨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은 하나, 그러므로 세계도 하나”라는 것이 참 모습이고 엄연한 진실이고 현실재라는 것이다.

  갈기갈기 찢겨져 있고, 약육강식 적이며, 분열되어 있고, 각자도생하는 현실이 진실된 참 현실인 듯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고 사실인즉 뒤집혀진 현실, 병든 현실, 망상의 현실, 헛개비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왜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신념을 갖고서 함석헌과 씨알들은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가? 이 문제는 인류 철학사에서 ‘일(一. one)과 다(多. many)’의 관계성 문제요, 구체성과 보편성 문제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문제이며,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이다. 불교는 이 문제를 불교의 기본적 실재관 인연생기론(因緣生起論)에 근거하여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내포되어 있다”(一微塵中含十方世界)는 화엄사상으로 언표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만 밤새 우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관여하여 원인이 되고 역동적 관계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예수는 “ 하나님의 나라는 네 속에 있다”고 갈파하신다.

『씨알의 소리』가 내세우는 것의 제2테제가 세계는 하나라는 것을 믿고 그 실현을 위해 힘쓰기로 한 것은 동서고금의 성인들과 철학에 기초한 인문과학의 가르침이 그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학이 밝혀내는 지구 온생명 현실이 그러하고, 사회과학이 밝혀내 보이는 지구촌 현실이 그렇다는 확신을 주장한다.

  새로운 실재관의 패러다임은 전일적이고, 생태론적이고, 시스템적이다. 부분의 특성은 전체의 역동성을 이해해야 밝혀진다. 완전 독립되고 자존적인 부분, 개별, 개체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개별과 개체가 무시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함석헌의 표현을 빌리면 “씨를 매기자는 것이 숲이요, 숲을 이루자는 것이 씨다”.

  생명이 본래 하나요, 세계가 하나인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할 때 한 몸의 지체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타도와 멸절의 대상으로 여기는 “미친 자살적 경련” 현상들 곧 전쟁의 광기, 적자생존 무한투쟁이 벌어진다.

  『씨알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씨알들은 생명이 본래 하나요, 세계가 하나요, 지구가 하나의 온생명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믿는대로 ‘실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 일은 혼자서나 당파적으로나 정파적으로나 종파적으로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씨알과 손잡고” 협동하기를 힘써야 한다.

선(善)을 혼자서라도 행하려는 맘은 숭고하지만, 함께 더불어 행하는 것이 새로운 문명시대에 더 바른 행동이요 맘 가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혼자서, 혹은 엘리트 집단이 대중보다 앞질러 나가는 것보다 반보씩이라도 함께 전진해 나가야 함을 함석헌은 강조한다.

  종교단체 안에서 교파의 분렬, 진보정당 안에서 정파의 분렬, 선한일 하자고 모인 기념사업회 안에서 파벌과 분쟁은 결국 “생명은 하나다”라는 기본 명제를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이라는 깨달음에 이를 때, 진정한 사회적 공생과 평화가 가능하게 된다.

[4] 제3테제: 『씨알의 소리』는 정치, 종교, 경제, 문화 등 어떤 형태의 권력숭배에 반대함

이 잡지의 제3테제는 가장 오해하기 쉽고, 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신념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 의 제3테제는 모든 형태의 교묘한 우상숭배에 대한 전면적 투쟁을 선언하는 것인데 아래의 3개의 문장으로 언표되어 있다:

씨알의 소리는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습니다.
씨알의 소리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씨알은 어떤 형태의 권력숭배도 반대합니다.

인간 개인이나 집단은 ‘의식주 문제’에만 집착하는 1차원적 존재같지만, ‘의식주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방식은 다른 동물이 취하는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테제3을 구성하는 3개의 문장 중에서 유달리 종교, 종파, 그리고 정치권력을 언급하는 이유는 가장 매력적인 ‘에덴동산의 유혹의 선악과’, 가장 집요한 인간의 ‘힘에로의 의지’의 집약된 형태, 가장 피할 수 없는 사이비 ‘궁극적 관심’의 표현형태가 종교영역과 정치영역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하늘과 정신’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고 ‘정치’는 ‘땅과 물질’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는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종교와 정치는 항상 야합하면서 지배세력으로서 군림하려는 공생관게에 있어왔기 때문이다.

함석헌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종교인’이라는 것이지만, 함석헌 만큼 지독하게 종교와 싸운 사람이 현대 한국사회엔 없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독설적인 반종교가이며 종교 비판가이며 종교계의 기피인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전통종교가, 특히 보수적 기득권 종교들이 ‘거룩’을 빙자하고, ‘가장 높은 가르침’(宗敎)을 빙자하고, 절대불가침의 ‘성직질서와 전통의 신성성’을 빙자하여 씨알을 종노릇 시켜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에 의하면 종교란 인간이 우주 대자연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성찰적 의식’으로 눈 뜬 이후,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다 알 수 없는 ‘진리, 뜻, 우주질서, 법’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맺으려는 자세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독점하고 분배하고 매개한다는 종교권력집단이 등장해서 씨알과 하눌님과의 직접적 대화와 대면을 가로막는 복덕방 중개소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참 종교는 창공에 가지를 뻗어 있는 푸르른 ‘거목’같은 것인데, 현실 종교는 온간 보물을 창고에 쌓아놓은 ‘궁궐’ 같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법인 중개소가 인정하지 않는 부동산 계약관계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듯이, 제도적 종교집단의 중개와 권위의 도장이 찍혀있지 않는 하느님 혹은 ‘다르마’와의 직접소통은 무효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생명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발급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으면 개별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법률지상주의자 주장과 같다.

  더욱더 위태로운 것은, 마르크스가 갈파한대로 역사적 제도종교들은 지배권력집단과 상부상조하면서 병든 현실제도와 법체계를 ‘정당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충견처럼 아부하고 떡덩이를 얻어먹는 공생적 ‘통치이념 지지자’로서 전락하기 때문이다. 소위 ‘인민의 아편’으로서 부정적 역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만다.

  결국 제도적 종교는 잘못하면 ‘우상숭배’타파가 그 일차적 존재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나 종파 자체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함으로서 스스로를 ‘우상화’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씨알의 소리』 사명은 어떤 종교, 종파, 정치이념집단,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 독립하여, 그들의 우상숭배 강요에 저항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1956년 새해 벽두, 『사상계』1월호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1950년대 자유당 정권시절의 기독교의 일탈, 변질, 책임망각, 권력야합, 권력도취, 때의 분별 맹인, 터무니없는 우월의식에 도취되어 있었던 당시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논설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함석헌의 씨알정신은 묻는다. 한기총, 한교연, KNCC, 조계종,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 KCRP 에게 묻는다.

“당신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우리종파의 세과시가 이웃종파에게 비하여 뒤질소냐 종교세력 과시 경쟁이 아니고서야 왜 갑자기 ‘광화문 광장’에서 종교집회를 한 대낮에 푸닥거리 마냥 하는거요? 기도회나 선수행이나 무릇 종교집회란 골방에서, 산사에서, 수도원에서 남보지 않은데서 하는 것 아닌가요? 남북 동족이 서로 멸종하기로 작정이나 한듯 피차 증오와 불장난이고, 사회안 약자와 지구촌 극빈자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생태위기 기후붕괴로 지구가족이 생명종 멸종위기로 애타고 있는데, 종교사찰 성당 교회당 건축에 열을 올리는 당신네들 지금 무얼하고 있는거요?

『씨알의 소리』잡지 뒷면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3테제가 우상숭배와의 투쟁을 선언하면서 특히 종교와 정치적 우상을 언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상이란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 될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준궁극적 관심들’이 자기를 절대화하고 사람들을 매혹시켜 충성하게 하고, 마침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사람을 비인간화시키는 실재가 ‘우상’이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우상은 늙어빠진 노인 같은 ‘종교’가 아니고 재벌의 대기업, 금융자본, 과학기술, 소비문화인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우상은   ‘국가주의’라고 하는 ‘사이비 신성한 권력체계’이다. 이것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며, 민족을 분단시키며, 군산복합체를 형성하여 애국이란 이름으로 수십조원 무기를 사고팔며, 지성인과 언론인을 무력화시키고, 시민들의 비판정신을 마비시키는 실질적 우상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우상중에서도 ‘종교와 정치’라는 두가지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1956년 『사상계』1월호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논설문이 종교의 우상타파를 선언하는 메니페스토였다면, 1958년 같은 잡지 8월호에 실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논설문은 정치적 우상타파를 선언한 진리의 소리이다. 함석헌이 만약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별세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위 두 논설문을 남김으로서 그분은 이 땅의 예언자로서 사명을 다하고 간 최고 지성인으로서 평가받을만 하다.

  다른 말 할 것 없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은 엄숙하고 무서운 진실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직 못되는 원인, 남북분단의 비극이 지속하는 원인,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심화로 폭발전의 화약고가 되어가는 한국사회와 지구촌의 위기 등등, 그 모든 원인의 원인은 “생각하는 백성들이 되지 못한 것”에 있다. 혹자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책임을 들고, 김정은 박근혜 독재정권 책임을 묻고, 혹자는 지구촌의 신자유주의 경제체계에 원인을 돌리지만, 함석헌의 진단은 달랐다. 마지막 책임은 최종주권자인 국민, 백성, 시민, 씨알 책임으로 귀결된다는 진실을 말한다.

함석헌의 신념, 씨알들의 깨침에 의하면 ‘나라’와 ‘국가’란 다르다. 혹자는 ‘나라’의 한자어 표현이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나라’는 사회적 공동체를 이뤄가면서 인격적 개체들이 자아를 실현해가는 공동체이다. 그 본질은 자발성, 협동성, 공화성,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뤄가는 ‘화이부동’(和而不同)에 있다.

  ‘국가’는 특히 근대사회이후 강화된 정치적 개념이다. 국민의 피동성, 충성, 복종, 단결, 언론통제와 조종, 법의 편파적 집행, 공권력 사유화에 국가의 특징이 있다. 본래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보안관’ 기능을 수행하도록 탄생된 ‘국가’가 군사력, 경찰력, 사법적 권력체계를 강화해가면서 현실 ‘국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가 되었다. 히틀러 제3제국 국가, 소련의 사회주의 국가, 일본의 군국주의 국가, 북한의 3대세습 혈통국가, 남한의 군사혁명 팟쇼국가 등등을 인류는 이미 경험했다. ‘국가’는 ‘나라’가 아니다.

  함석헌은 문명사가로서 ‘국가주의 시대’가 이미 지났다고 본다. 한 때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보안관’으로서 효과적 기능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지구촌, 지구가족’ 시대에 들어와서 ‘국가제도, 체제, 국가주권’ 등의 지나친 강조는 도리어 인간을 옥죄이고 분렬시키고 비인간화시키는 괴물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씨알의 소리』는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외로운 선각자들의 싸움을 지속해 갈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반도의 핵위협과 분단비극을 종식시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 길은 중국 외무부 장관 왕의(王毅) 가 제안한 ‘핵무기포기와 평화협정의 동시병행론’인데, 그것을 가로막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 국가들의 국가주의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국가주의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세우는 것> 테제3이 선언하는 것 곧 어떤 종교, 종파, 정치세력과 관계가 없다는 말을 “정치와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초월하는 잡지” 곧 순수한 인문학적 인성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잡지가 되려고 선언한다고 오해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진실을 말하면 종교와 정치에서 벗어나는 순수 무풍지대의 삶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정치, 종교현실’에 무관심이나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도 이미 그런 태도 자체가 하나의 종교적, 정치적 입장인 것이며 그 입장에 따른 나름대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과 이 땅의 씨알들은 참 종교, 참 정치의 출현과 실현을 앙망하면서 ‘권력화된 거짓종교’ 및 ‘종교화된 거짓정치’와 대결 및 투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 일은 종교나 정치에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닌 진리싸움이며 우상타파 싸움 곧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5] 제4테제: 역사 주제로서 씨알,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악에 대한 저항적 싸움

<우리가 내세우는 것> 다섯 가지가 모두 상호 유기적 관련 속에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4테제가 사실은 핵심을 이룬다. 반지 중에도 가운데 박힌 보석에 해당하고, 달걀 노른자 중에서 씨눈에 해당한다. 그 제4테제는 다음 같이 언표되고 있다:

씨알은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압니다.

위에서 선언된 제4테제는 사실 알고보면 『씨알의 소리』 잡지가 존재하는 제1사명이요, ‘씨알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중심주제인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진정한 주체는 누구인가? 역사의 전진과 성숙을 저해하는 실질적 악한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러 악한 세력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근본적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제4테제는 역사의 주체가 씨알이라고 믿는다는 선언이며 주장이다. 근현대 양심적 역사학자들은 세계사나 민족사를 막론하고, 역사진행방향은 지배세력의 보편적 외연확장과 민의 정치참여 기회의 확충과정이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보편화 과정으로 보지만, 단순히 대의정치제도의 확충을 넘어서 소위 말하는 ‘민을 위한’, ‘민에 의한’, ‘민의 정치’의 완전한 실현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정치 안에서 과연 민(民)이 정치의 주체요, 역사의 주체인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씨알은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라는 표현을 깊이 되새김해야 한다. 이 선언문에서 ‘믿는다’는 말은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한다’는 의미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그러하다’는 보증은 아니다.
  여기에 우선 중요한 ‘시험’이 온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거대한 권력구조의 틀은 “민, 씨알이 역사의 주체이다”라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고 내실이 없는 선언적 혹은 관념적 선언일 뿐이라고 스스로 자인하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이다. 거대한 현실 권력의 틀은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이라고 3가지 범주로 대별한다.

지난 4.13 총선과정과 그 결과에서 우리가 충분하게 보고 경험한 것처럼, 현실을 지배하는 거대한 3대 권력구조 앞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1,2항이 얼마나 실질적 헌법조문인가 수사적 헌법조문인가 문제의 근본적 싸움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여당 대통령이 엄연한 삼권분립의 국가권력 기본적 분담체체를 부인하고 국회를 자기 하수인 부리듯 하고, 헌법 제1조 신념을 가진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온갖 추악한 방법을 통해 퇴출시키는 현실을 볼 때, 민(씨알) 자신조차도 “과연 우리가 역사의 주체인가? 우리가 동키호테적 희화의 주인공이 아닌가? 거대한 현실권력의 구조적 틀을 극복하거나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스스로 회의심에 들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씨알의 소리』잡지의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4테제는 ‘역사의 주체가 씨알’ 이라고 믿지 못하도록 의심갖게 하고, 스스로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지도록 세뇌시키는 그 정체불명의 힘들과 구조들을 <악>이라고 규정한다. 무력감과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굳세게 뭉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씨알의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악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것들은 간사한 정보정치, 나치당 괴벨스를 뺨치는 언론독점과 통제, 감히 넘볼 수 없도록 하는 금수저 흙수저 양극화 강화, 저질 색깔론과 지방색 강화, 시민들로 하여금 소시민의식에 사로잡혀 자기보신과 가족주의에 집착하도록 생존본능을 자극하고 극대화하는 사이비 대중 드라마 프로그램 등이다. 학교라는 신성한 장소와 기회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철학을 주입시키고, 대학이라는 인류 최고 지성의 도장을 한갓 대기업체 부품인력 공급처로 변질시키면서 ‘창조교육, 창조기업, 창조경제’라고 미화하는 사이비 정치가 악의 마스크 들이다.

<우리가 내 세우는 것>은 이러한 막강한 현실적 악의 힘들 앞에서 패배주의적으로 좌절, 체념, 무기력 증후군, 냉소주의, 자해적 내부분열 등에 빠지지 말고 저항하고 싸워 이기라고 명령한다. 송기득이 누차 여러 글에서 강조하듯이 함석헌 씨알사상에서 지적하는 가장 특이한 역설은 저항정신, 대드는 용기, 프로테스트 하는 결기다. 그 저항정신을 갖지 못하면 함석헌의 씨알사상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들풀처럼 여리고 유순한 함석헌이 어떤 때는 사자처럼 포효하고 칼날처럼 예리한 말과 행동을 살고 간 이유는 그 ‘저항정신’에 있다. 제4테제는 완결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며 영원히 지속하고 강화되어야 하는 씨알정신의 화산용암 분출이다.

그러므로, 제4테제 곧 씨알이 역사의 주체라는 믿음은 역사학자들이나 사회구성원들이 인정해주고 아니 해주고에 관계가 없다. “스스로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다. 그 만큼 주체적이고 실존적 확신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삼지만, 그 방법과 형태는 다양하다.

  동학혁명, 기미년 3.1혁명, 4.19혁명, 5.18민주혁명 등 집단적 형태를 지닐 수도 있고, 안중근의사나 전태일 열사처럼 개인 일 수도 있고, 민노총이나 전교조처럼 결사체 운동일 수도 있고, 서로돕기 시민운동처럼 부드러운 녹색혁명 일 수도 있다. 공통 목적지향성은 씨알(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과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권력과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저항하고 맞서면서 정의로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6] 제5테제: 씨알의 소리는 같이살기 민주공화국 실현의 비폭력 운동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5선언에 이른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행동방법을 정하고, 막연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같이살기’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한 살림’운동, ‘한 생명’운동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제5테제 선언은 다음 같다:

씨알의 소리는 같이 살기 운동을 펴나가려고 힘씁니다.
씨알은 비폭력을 그 사상과 행동의 원리로 삼습니다.

위 두 문장으로 표현된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5테제는 함석헌이라는 인물에서 생명파동처럼 퍼져나가는 진리운동, 생명살리기 운동, 정의와 평화실현 운동이 여타의 다른 사회운동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드러낸다.

동시에 그만큼, 씨알사상으로 압축되고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려는 ‘생명, 정의, 평화’운동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고난을 각오해야 하며,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갈 일인가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그동안 <우리가 내세우는 것>을 그냥 선언문 정도로 인식할 뿐, 삶 속에서 실천해가는 ‘생활신앙’으로 삼지않은데 있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 기초 초안자 함석헌에 의하면 ‘같이 살기운동’은 해도 좋고 아니해도 좋은 운동이 아니다. 싫던 좋던 그렇게 살지 않으면 다 죽게 되는 절대절명의 지구문명 ‘카이로스’ 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필수 불가결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촌이 이미 지구마을이 되었고, 인류공동체가 이미 지구가족이 되었고, 같이 살든지 같이 죽든지 할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가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촌의 어느 지역 생태파괴는 전지구에 영향을 끼친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는 아무리 확산을 억제해도 악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중동 이슬람 문명권에서 일어난 IS폭력집단의 자살공격과 무차별 인명살상을 무력진압으로 그 뿌리를 없앨 수 없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더욱 강화된 폭력과 증오심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전염병은 국경이 없고, 빈부차이의 극대화는 중세기 게르만 민족이동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이민 쓰나미’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구촌엔 당분간은 소위 제1세계 시민, 제2세계 시민, 제3세계 시민 등 등급과 차별이 지속하겠지만, 지구촌 인류가 ‘집단적 초인류 한 몸’을 이뤄간다는 떼이야르 샤르뎅의 예견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확신한다. ‘같이 살기’를 택하든지 ‘같이 죽기’를 택할 밖에 없다.

  현실적 정치행위를 통하여 ‘같이살기’를 폭력적 강요가 아닌 합리적 방법을 통해 실현해보자는 인류의 집단적 지성이 발명해낸 정치제도가 ‘민주공화국’ 이라는 정치이념인 것이다. 대한민국도 헌법제1조 선언대로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기본정체성 앞에 나라마다 구성원들의 선택과 합의에 따라‘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이라든지 ‘사회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형용사가 앞에 붙을 뿐이다. 전자는 보다 많은 자유, 경쟁, 창의성을 중요시하여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보다 많은 평등, 협동, 분배정신을 중요시하여 복지상생경제 원리를 더 중요시하겠다는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쪽 하나는 선이고 다른 쪽은 악이 아니라, 두켠 모두 ‘민주공화국’이라는 기본 메뉴는 같은데, 한 쪽은 설탕이나 후추가루를 많이 쓰고 다른 쪽은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좀 더 많이 시용하는 요리법 차이에 비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민주공화국 안에는 두 가지 기본원리가 있는데, 그 하나는 정치권력의 최종근거와 출처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 원리요, 또 다른 하나의 기본원리는 ‘더불어 평화롭게 산다’는 ‘공화’(共和) 원리이다. 밥은 등 돌리고 혼자서 배터지게 먹는 법이 아니고 얼굴맞대고 서로 둘러앉아 함께 먹기로 한다는 나라 구성체들의 약속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주권재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위 민주화 운동에 심혈을 쏟았다. 그렇게 하는 동안,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는 헌법의 제1조 1항 단어 뒷부분 ‘공화국’이라는 말뜻을 놓쳐버렸거나 잊어버렸다.

  심지어 ‘공화국’이라는 어휘자체가 북조선 사람들이 쓰는 말, 소위 좌익 공산당 세력의 국가전복 정치사상 이라고 매도해 왔다. ‘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을 되찾을려고 뜻있는 지성인들이 노력하면 곧잘 그런 생각은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입을 막았다.

‘민주 공화국 이다’ 라는 국체선언에서 ‘공화국’이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려는가?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산다”는 뜻이다. 그 말은 시장경제적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성과 개인재산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성 자체를 황폐화시키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나 무한경쟁 독점지배 경제사회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모두 쉬쉬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물질의 분배구조 문제를 넘어서, 자살률 세계제1위 라는 ‘헬조선’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공화국’을 실현하겠다고 시작한 미국만 보아도,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특히 집단적 이기심의 무제약적 탐욕은 사회를 갈등사회로 몰아가고, 인간을 비인간화 시킨다. 어느 특정사회의 경제적 부와 권력의 독점화가 ‘동맥경화증’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말초혈관이 터져 쓰러지는 현상을 ‘정치사회학적’으로 ‘사회혁명’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과 제정러시아 ‘볼쉐비키 혁명과’과 중국 모택동의 ‘사회주의 공산당 혁명’이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마음엔 ‘혁명’이란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여 사회질서와 구조를 재편하는 ‘급진적 사회공학’이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인명살상, 인권억압, 자유와 양심의 압류, 무엇보다도 무기를 사용하는 폭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제일 따르기가 어려운 갈림길은 여기에 있다. 그는 앞서 말한 ‘정치혁명’은 일시적 껍데기 혁명이고, 단순히 자리바꿈 혁명이고, 가짜이거나 사이비 혁명이라고 본다. ‘혁명’(革命)이라는 한문글자의 본래 의미가 동물을 잡으면 가죽 피(皮)에 붙어있는 온갖 오물과 기름덩이, 피묻은 심줄과 털을 깨끗이 제거하고, 인공섬유제품 아닌 진짜 가죽만이 갖는 통풍성, 내구성, 유연성을 갖춘 제품 곧 가죽 혁(革)으로 털바꿈 해내는 과정이다.

  그처럼, 개인과 집단의 목숨(命)이 본래적 상태를 잃고 경직화 되고 더러운 오물들로 숨막혀 있을 때, 목숨의 혈관 노폐물과 경화증, 그리고 온갖 질병원인이 되는 비대체중을 치유하여 본래 목숨의 모습으로 바꾸어내는 일이 ‘혁명’(革命)이다. 함석헌은 간디로부터 비폭력혁명을 ‘진리파지’(眞理把持, 사차그라하)로서 체득했을 때, 진정한 혁명은 혼의 혁명, 정신의 혁명, 종교적 영혼의 혁명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씨알은 “같이 살기 운동”을 할 때 부딪히는 반대세력을 극복하고 이기는 방법으로서 “비폭력을 그 사상과 행동의 원리로 삼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이 최대의 과제요, 난제요, 걸림돌이다. 참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평화운동, 같이 살기운동, 생명운동, 새로운 문명운동을 하려는 씨알들은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함석헌은 말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야 하겠다. 과연 『씨알의 소리』를 상징으로 삼고 새로운 문명시대, 개벽을 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간디와 함석헌이 말하는 ‘비폭력 투쟁 원리’를 굳게 확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씨알들의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악한 제도와 악한 사람들에게 저항하고 투쟁을 할 때, 그들 겉에 나타난 거짓과 불의를 미워하고 투쟁할지언정, 그들 영혼은 악한 것이 아니라 다만 어리석게도 ‘무명(無明)의 백내장’에 가리워 있다고 판단하고 그런 사람의 인간성을 끝까지 믿을 용기가 있는가?

  그들의 잠든 영혼이 깨어날 때까지 “악은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말 것”을 실천할 수 있는가? 그런데, 간디와 함석헌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런 싸움만이 참다운 싸움이요, 진리와 평화의 싸움이요, 생명살리는 싸움이요, 지더라도 이기는 싸움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불가능한 가능성’의 싸움, ‘비폭력 투쟁’의 싸움은 과연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신념일까? 우리사회의 정치적 대적자들이, 경제기업체의 경영자와 노조집행부 당사자들이, 남북관계에서 박근혜와 김정은 최고위 정치인이 열 번이라도 속는 셈 치고, 먼저 상대방 인격 속의 양심과 착한 마음씨와 인격의 존엄성을 믿고 만나서 서로 대화해 보자고 시도라도 할 수 없는가? 온갖 조건과 안정장치와 명분과 손익계산을 갖지말고 정치와 기업활동과 국가경영을 ‘진리파지’하는 자세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디처럼 죽음을 각오하면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7] 변화된 세계와 한국사회 속에서 『씨알의 소리』가 ‘자기소리’를 낼 때

2016년 4ㆍ13 총선결과를 보고서 정치평론 전문가들의 “총선결과가 의미하는 것과 우리나라 정치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유익한 분석과 제안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듣고 보아 왔다. 강연자는 그 분야에 비전문가로서 특별히 덧불일 말은 없다. 다만 『씨알의 소리』자리에서, 역사의 마지막 맨 밑바닥 담지자인 ‘씨알’의 입장에서 씨알의 ‘자기소리’를 몇마디 덧붙임으로서 강연을 마치려 한다.

신약성경 첫째복음서 제4장을 보면 예수의 ‘광야의 시험’이야기가 실려있다(마태4:1-11) 예수가 33세무렵 가정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라고 하는 높은 뜻을 품고 나설무렵 그에게 닥친 시험이라고 그 복음서 기자는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광야의 시험’은 악마라고 부르는 ‘사탄’의 일방적 공격이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이다.

성령과 마귀,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이 두 범주의 이분법이 명확하게 구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항상 ‘시련의 유혹과 시험’은 오는 것이며, 뜻있는 참 사람은 그 모호성을 극복하고 결단하면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험은, 예수에게만 아니라 참으로 뜻있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고 맘먹는 모든 개인, 정당, 민족, 문명에 해당하는 핵심본질이라고 본다. 시험은 3가지였다.

  첫째, 먹고 사는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물질제일주의, 경제 제일주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느냐?
  둘째, 종교나 진리를 실증, 실용, 현실주의 가치척도로서 판단하려는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느냐?
  셋째, 가장 남성적이고 매혹적인 정치권력의 마성적 유혹에 영혼을 팔아먹는 비양심적 타협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냐?의 문제라고 요약 할 수 있다.

미국 록키산맥의 거대한 화강암바위산 브랙힐스(Black Hills)라고 부르는 연봉바위에 조각된 4명의 대통령(와싱톤, 제퍼슨, 링컨, 루스벨트) ‘큰 바위얼굴’은 좀 더 실물로 보려고 그 바위산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전체 조각상이나 인물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 원거리에 떨어져볼 때 ‘큰 바위 얼굴’은 그 윤곽을 드러낸다.

한국의 4.13 총선의 ‘민심’을 바로 파악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근거리 접근과 분석은 도움되지만 진정한 ‘전체상’은 멀리 떨어져 보아야 보인다. 다시말하면, 여야의 정치적 어느 쪽의 성향을 지니면서도, 거기에 얽메이지는 않는 ‘씨알의 자리’에서만 보인다는 말이다.

현실정치 시각에서 보면, 지난 4.13 선거는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의 독선 독단적 정치와 국민을 바보로 우롱하는 집권여당의 백주의 정치테러를 닮은 ‘공천 희극드라마’에 대한 ‘성난민심의 정권심판’이었다. 또한 제1야당의 파벌과 계파 패권정치에 대한 ‘호남민심의 여당을 포함한 제1야당 심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특히 청와대의 총선직후 ‘촌평’은 청와대는 총선결과에 아무 책임도 없다는 투의 책임회피는 향후 남은 임기기간동안 한국정치의 장래를 심히 어둡게 한다.

여당의 ‘공천파동’기간 소위 친박과 비박간의 눈뜨고 볼 수 없는 계파싸움의 수장들부터 지역구에서 주민심판을 받아야 하건만, 건재하여 제20대 국회에서 다시 얼굴을 자주 보게되었다. 이것은 지역구 주민들의 선택의 자유라고 말하지만, 주민들이 ‘광야의 3가지 유혹’에 넘어갔다는 말이다. 아직도,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경제적 횡재, 지연과 혈연, 권력협잡과 야합이 살아있고, 정치현장에서는 성령과 악마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 바위 얼굴’을 멀리에서 보면 보이듯이, 멀리서 보면 4ㆍ13 국민의 뜻은 분명하게 보인다. 지역구에서 누가 당선되고 누가 낙선되었는가를 떠나서 큰 밑그림은 분명하게 그려졌다. 시민들 속에, 국민들 속에 잠들어있는 씨알의 속씨 도인(桃仁)이 아구를 튼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숫자비교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연시하던 특정 정당의 독점적 지역구 안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야권분열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받은 유효투표자의 정당지지 득표율은 새누리당은 33.5%에 불과했고, 3개 야당의 합은 59.1%로 나타났다. 그동안 여당밭이라던 부산 정당 지지율마져도 새누리당은 41.22%인데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통합 정당득표율을 합하면 46.96% 로 나타났다.

  위 정당지지 득표율의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권교체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시그널이다. 이명박, 박근혜정부로 대변되는 보수정당의 국방, 외교, 통일, 경제, 사회복지, 교육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바꾸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시그널이다. 국민들은 전쟁도 불사하는 국방안보정책이 아니라 ‘핵폐기론과 평화협정 동시 병행’을 통한 상생평화 안보정치를 요구한다. 보다 과감한 ‘경제민주화’ 경제정책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극단적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바란다. 어린 자식들과 젊은이들이 학원공부와 취직시험에 매여 인성이 말라가는 꼴을 더 보지 못하겠다는 요청인 것이다.

  정치공학적이고 정권이해관계에 따른 경박한 정당의 분렬이나 통합이 아닌 ‘화이부동’의 성숙한 정치정당의 활동과 협력을 기다린다.
  새로 개관한 쌍문동 소재 함석헌기념관의 보존된 ‘함석헌 서재’ 벽면엔 ‘무욕청정’(無慾淸淨)이라는 함선생 친필 붓글씨가 액자에 담겨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함선생 자신의 아호는 신천(信天)이라 명기하여 낙관하셨고, 아마 자신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으신 듯하다. 오늘 『씨알의 소리』 창간 46주년 기념강연에 참석한 모든 씨알들에게 함석헌 선생이 당부하는 오직 한마디가 ‘무욕청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욕청정’은 동아시아 성인들의 맘 공부에 중요한 화두이긴 하지만, 예수의 산상수훈 팔복 중에서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뵈올 것임이라”(마 5:3,8)의 사자성어로 봐도 좋다.

  뜻있는 일을 도모하려는 모든 사람들, 정권교체를 꿈꾸는 정치인들도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은 ‘무욕청정’이라고 당부하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2016.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