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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수학으로서 수비학이 영성수련에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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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2003학년도 봄학기, 개학강연]
     

              상징수학으로서의 수비학이 영성수련에 갖는 의미


김경재교수 (문화-종교신학)



1. 들어가는 말

 우리의 시대는 범지구적 차원에서 종교의 근원적 개혁과 교회의 역동적 혁신을 요청하는 문명사적 전환기이다. 개혁과 혁신은  신학, 예배, 기독교 교육, 성례전, 종교건축이나 예술적 표현등에서 보다 깊고도 새로운 영감이나 직관을 체험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을 나타내는 증좌이다.
 특히 개신교신학 전통은 종교개혁이후 지난 20세기까지  일반적으로 텍스트중심의 말씀의 신학, 구원사 중심의 직선형의 역사신학, 주체적 자의식에 기초한 윤리적 해방신학, 그리고 최근엔 경쟁과 무한성장을 정당시하는 듯한 자본주의적 축복신학이 큰 흐름을 형성해왔기 때문에,   물질계와 생명계와 인간의 정신적 삶 속을 관통하고 그 세가지 범주영역의 연대성과 공명성, 존재의 근원적 원형과 패턴, 그리고 존재질서의 균형과 조화를 가능케 해주는 수학적이고도 기하학적 통찰력에 대하여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수비학(數秘學,Numerology)은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는데, 왜냐하면 수비학이 우주자연과 수학적원리와 인간의마음과 실재의신비상호간에는 상통하고 감응하는 구조적 패턴과 원리가 있다고 보는 신념을 넘어서서, 그 관계법칙을 이해하고 활용하면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사건이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운명론적 예언적 점성술이나 마법적 사기술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한 수비학이 아닐 지라도  '신성한 수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신학'을 인정하는 비정통적 신학자들이거나, 일부 소종파 신비주의 계열에서 발견되는 주관적이고 비학문적인 신비가들의 관심거리라고 치부하여 경계하거나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오지 않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영성수련 탐구주제의 일환으로서, 모든 숫자의 기본수인 1에서 10까지의 숫자의 상징성을 살펴보고, 그것이 영성수련 신학교육 과정에서 갖는 의미와 종교건축, 종교예술, 예배의식이나 성례전, 그리고 새로운 창발적 우주관 형성에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2. 실재를 탐구하는 기본학문으로서 수학과 기하학의 본래 의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0)은  말하기를 "우주에서 가장 이해 할 수 없는 일은 우주를 이해 할수 있다는 사실이다"고 매우 역설적으로 말한다. 이러한 짧은 말 속에는 현대 양자물리학자들 중에서도 자연이란 어떤 합법칙적 질서와 원리를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는 그의 '과학철학적 신념'이 나타나 있지만, 이미 플라톤이 말한바 "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이다. 수는 지식 그 자체이다. 기하학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이다"라고 간명하게 설파한 것과 상응한 말이다. 수학의 신비와 매력과 효능성은 다름 아니라 수학적 원리가 자연현상의 구조를 지배한다는 것과, 수학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서 우리는 자연계를 이해 할 수 잇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BC 387년에 '아카데미아'를 설립하고 그 학예의 전당에 들어오는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을 써놓았다고 전해온다.   '지혜에 대한 사랑'과 '영혼을 고양시키는 것'을 궁극목적으로 삼는 철학(philosophia)의 전당 아카데미아의 필수과목으로서 수학을 지정했을 때, 그 때 말하는 수학이란 근현대 제도적 학교교육에서 가르치는 계랑, 측량, 계산적 법칙공식을 깨닫게하고 반복훈련을 시켜 숙지케하는 '기술적 이성 기능'(function of the technical reason)을 의미하는 학문분과로서의 세속화된 수학과목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말하는 '수학하는 사람들'( mathematikoi)이란 '모든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자연의 구조와 우주의 과정과 그 일부인 인간본성의 구조를 탐구하는 전체적 깨달음과 통찰력을 추구하는 근원적 학문이었던 것이다. 음악, 천문학, 기하학등은 모두 수와 관련되고 수에 기초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수학의 영역은 세가지 차원으로 대별 할 수 있겠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의 수학과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일반수학의 영역이 있다. 계산, 측정, 측량, 정량분석, 수학적 추론, 뉴톤역학과 양자역학의 합리적 법칙들을 수학적 정식으로 표현해내는 일들이 여기에 속한다. 근대과학문명과 현대 전자정보문명의 정확성, 능률성, 실용성은 모두 이 일반 수학의 영역에서의 인류의 지성이 쌓은 결실물이다. 그러나 여기 일반수학의 세계에는 능률성, 실용성, 합리성이라는 축을 토대로 하여 발전하는 것이어서, 소위 틸리히가 말하는 존재의 '깊이의 차원'을 드러내지 못한다.
 둘째는 상징수학 혹은 철학적 수학이라고 부르는  범주가 있다. 상징수학은 눈으로 보이지않는 우주자연의  수학적 원리가 가시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징검다리가 되는 기하학과 연관된다. 자연은 기하학적 문자로 쓰여져있는 '신의 자연계시 텍스트'와 같은데  그 텍스트의 문법은 수학적 원리이다. '자연의 책'의 문법은 수학적 원리 이고, 그 문법에 따라 기하학적 그림문자로 나타날 때 자연은 일정한  반복적 패턴을 통해 나타난  주기적인 모형형태,  균형과 조화, 그리고 깊은 공명성을 동반하는 미학적 정서를 드러낸다. 자연자체는 무질서나 돌연변이적 형태창조 과정이 아니라 산술적이고 동시에  기하학적인 만물의  '원형적 원리'에 따라 생성되고 지속하다가 소멸되는 법칙적 과정으로서 파악된다.
  자연은 아원자의 입자세계로부터 은하계의 생성운동에 이르기 까지, 세포구조에서부터 식물의 잎과 꽃 그리고 동물의 신체 기관구조와   몸의 형성에 이르기 까지 일정한 원리와 법칙 그리고 패턴에 의해서 움직이고 형성된다. 1에서 10가지의 기본숫자가 점,선,면, 입체,원추체, 구형등 기하학적 모형이나 입체로서 나타날 때, 전체성 양극성, 균형이나 주기성, 리듬이나 조화성을 드러내므로 숫자나 기학적 도형은 '상징'기능을 지니게 된다.
 상징은 단순한 기호나 표식이 아니고, 자신을 넘어서 실재의 '깊이의 차원과 신성한 전체성'을 드러내는 기능이 있으므로, 수학과 기하학은 인간정신에게 기쁨과 영감을 줄뿐 아니라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이 논문에서 필자가 관심하는 수학은 바로 이러한 '상징수학 또는 철학적 수학'이 지닌 신학적 의미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신성한 수학'이란 '상징수학'이 종교적 차원과 관려되어 작동하는 신성한 기능을 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징은 외부 실재의 깊이의 차원이나 구조를 드러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인간마음의 심리적 구조와 영혼의 깊이와 구조를 드러내 보여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신비수학 또는 비의적(esoteric) 수학의 영역이 있다.  이것은 각종교단체중 신비주의 종교단체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신비수학인데 흔히 수비학이라는 전문학문분과가 신비주의적 경향으로만 흐를 때 발생한다.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서의  게마트리아(Gematria), 노타리콘( Notarikon), 그리고 테무라(Temura)가 그 대표적 예이다.
  게마트리아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이집트어, 라틴어들의 알파벹이 각각 일정한 수의 값어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각 단어나 어구나 문장의 알파벹이 담지하는 숫자 값어치의  총량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보는 신비수학을 말한다. 한가지만 예들면 요한계시록 13:17절의 저 유명한 666숫자는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의 수를 풀어보시오. 그 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육백육십 육 입니다"(계13;17)의 주석은 라틴어로 네로황제는 NERON인데, 다섯문자 라틴어 알파벹 수값은 각각 50*6*500*60*50 이므로  그 수의 총합은 666이되는데 박해자 네로를 의미한다.
 노타리콘은 단어나 단어들의 첫문자와 끝문자를 취하여 합생시켜서 하나의 단어를 만들던지 문장의 축약형을 통하여 종교적 비의 또는 비밀회원 지켜나가는 상징적 '암호'와 같은 것이다. 헬라어 물고기단어는 '익스투스'(ICHTHUS)인데 잘 알려진 대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신의 아들, 구세주"(Iesous CHristos THeou Uios Soter)의 노타리콘 형태이다.
 테무라는 야훼같은 신비한 이름이나  히브리나 헬라어 알파벹 문자를 보다 복잡한 법칙에 따른 상호 치환과 결합을 통해 상징적 의미를 읽어내는 신비수학을 말한다. 이러한 신비주의 전통에서 흔히 발겨되는 신비수학으로서이 수비학은  닫혀진 신앙결사단체의 종말론적 위기의식과 묵시문학적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 상징수학으로서 기능을 살려낼 수 없는바, 왜냐하면 이러한 신비수학은 마치 군대들이  전장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려는 '암호'와 같은 기능을 할 뿐, 모든 사람이 접근 할 수 있는 열려진 상징기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신비수학으로서의 수비학은 논외로 한다.     

3. 1에서 10가지 기본숫자의 상징성과 성서 신앙전통과의 의미 연관성

(1) 전체성,통일성, 완전성의 상징으로서 '하나'(Monad)의 신비

 그리스어로 원으로 표현되는 '하나'를  'monad'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안전하다'는 뜻의 'menein'과 '단일성'(oneness)이라는 뜻의 'monas'이다. 1은 하나의 '수'라기보다는 모든 수의 공통분모요, 모든 수의 기본이며, 모든 수 안에 들어있고, 모든 수를 수 되게하는 독특한 수였다. 그리하여 1은 언제나 존재의 근원, 통일성, 전체성, 온전성, 충만성의 상징이었으며, 원이나 점으로서 표현되었고 우주적 신성성을 지니게 되었다.

[도표 1. 수, 기학적 모형,종교적 상징형상 사례들]


 1이라는 숫자를 점과 원으로 상징하는 것을 음미하면 그 종교적 신성성을 깨달을 수 있다. 백지 위에 연필, 콤파스, 잣대라는 세가지 도구를 가지고 점이나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자. 점은 길이,폭,넓이, 높이가 없는 단지 위치만 나타내는 0차원 이므로 실제로 가시적인 점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적 '중심, 시원, 기점의 상징'으로서 백지위에 연필로 점을 찍는 것이다. 그 점 위에 콤파스의 축점을 일치시키고  한바퀴 돌리면 원이 그려진다.  점이 팽창, 확장, 발전하면 원으로 나타난다. 점은 보이지 않는 원이요, 원은 보이는 점이다.
 1이라는 숫자 개념 곧  'monad '는 상징수학적으로 세가지 원리를 나타내는데, 첫 번째 원리는 창조적 확산의 원리이다. 원은 종교예술과 건축물의 축조과정에서 언제나 빛,공간,시간, 힘이 모든 방향으로 펼쳐나가는 원리를 상징한다. 둘째원리는 원의 원주가 지니는 주기적 운동성,규칙성, 리드미칼한 진동성의 상징이다. 이 둘째원리는 우주와 생명이 정지된 고요가 아닌 움직이고 창발하는 역동성으로 체험하게 한다. 불교나 힌두문화의 수레바퀴 상징은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모나드의 세 번째 원리는 최대효율성의 원리인데, 원은 같은 길이의 곡선으로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공간면적을 만들어 낸다.
 성경에서 "하나님도 한분 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엡4:6) 라고 말 할 때,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신앙전통에서 말하는 '하나'가 단순한 둘이나 셋과 구별된 수량개념적인 '하나'가 아니라는 진리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단일성(oneness)은 존재의 시원(origin), 통일성(unity), 온전성(wholeness), 전일성(oneness), 충만성(fullness), 그리고 만유의 지탱자와 궁극적 완성자로서 만유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성정건축의 기하학적 모형에서 원이나 궁형이 많지않고 직4각모형이 지배적인 것은 건축비의 제한에서 오는 경제적 이유가 주된 원인 이지만, '하나'(monad)가 상징하는 바에 대한 몰지각성에도 큰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2) 긴장 갈등의 뿌리이면서 온갖 창조의 문(門)인   디아드(Dyad,2)의 역설

통일성, 단일성, 온전성, 단순성의 상징인 'monad'(1)에서 왜, 어떻게 분리, 차이, 거리, 구별의 실재인 둘(2, dyad)이라는 현실세계가 출현할까?  근래 신학전통에서는 소위 이원론적 사고, 이분법적 사고의 폐해가 주는 역기능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에 이중성(duality) 또는  양극성(polality)이 지니는 창조적 역설성을 간과하기 쉽다. 마이클 슈나이더는 디아드의 역설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디아드의 원리는 양극성(polarity)이다. 양극 사이의 긴장은  서로 반대되는  관계,대조,      차이의 형태로 모든 자연사와 인간사에서 일어난다. .... 디아드가 통일성으로부터 분리해     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서로반대되는 극들이  자신의  근본을 기억하고, 서로 결     합해 원래의 통일 상태로 돌아가려고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은 디아드의 역설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2' 또는 '다른 것'의 원리를 디아드(Dyad)라 불렀는데, '1' 곧 '모나드'가 지닌 통일성이나 전일성이 깨어지면서 거기로부터 갈라져나가는 대담성, 용기, 거기에 따르는 번민과 고뇌를 동반하고, 그렇기에 '디아드'의 한쪽은 언제나 무엇인가의 모자람과 갈망을 담지한다. 그렇기에 매우 역설스럽게도 디아드(2)는 모든 창조과정의 기초를 이룬다. 지식이나 인식행위는 일단 흔히 말하는 '주객구조'(subject-object structure)를 피할 수 없다.
 고대미술과 건축물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기하학적 모형에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 물고기 부레)가 있다. 기하학적 작도법에서 '베시카피시스'는 두 개의 원이 원의 반지름을 거리로 두고 포개질 때, 두 원이 겹치는 공간형태로 눈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베시카 피시스'는 모든 창조의 문의 '원형'을 나타낸다. 모든 나뭇잎의 공기구멍은 한 쌍의 공변세포로서 베시카피시스를 이룬다.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에로 들어가는 모든 생물 암컷들의 입문(요니, yoni)도 베시카 피시스를 이룬다. 해탈과 구원을  경험하는 불교사원에 들어가는 일주문(一柱門) 구조, 노틀담 성당 입구문의 구조, 이슬람 모스크의 출입문은 모두 원의 형태와 두 개의 원이 겹침으로 생기는 '베시카 피시스'의 기하학적 모형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러한 공간입구는 분열, 대립, 소외, 다자 상태로  떨어져버린 인간이 다시 전일성과 통일성을 회복하는 진리, 하나님, 절대자에로 들어가는 통로의 문이요, 그런의미에서 '영적으로 다시 낳는 창조적 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2'라는 수의 상징성은 '1'의 분리며 갈라짐이며 차이이면서도, 동시에 '다자'(多者) 곧 다양한 생명이 창조되는 창조의 계기요 창조의 문이자 매개라는 점이다. '1'이라는 수가 지닌 기하학적 상징이 점이요 원이라면, '2'의 그것은 선(線)이다. 그런데 기하학적 작도(作圖)행위를 회상해보면, 모든 형태의 기하학적 모형들은 점과 선의 움직임으로 형성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2'는 '모나드'(1)와 남어지 다른 무수한 수들사이의 중개자이다.
 성서에서 '디아드'의 신비를 잘 나타내는 것은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의 매우 인상깊은 작은 책  <창조>(Schoepfung)  속에서 그는 "갈라놓음에 의한 창조모티브"에 주목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고대창조신화인 신적 본성의 유출(流出)도 아니고, 페르샤 선악이원론처럼 선신과 악신의 투쟁 결과도 아니고, 빛과 어둠을, 땅과 하늘을,  육지와 바다를, 시간과 영원을 갈라놓는 계기를 통해 창조의 세계와 그 기틀을 마련한다. 이러한 '갈라놓음에 의한 창조모티브'는 빛과 하늘과 육지가 어둠이나 땅이나 바다에 비하여 실존적 체험상으로는 더 가치론적으로 우위일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는 더 우위일수 없고 '악' 그 자체로라고 규정 할 수도 없으며, 도리혀 전일적인 창조세계의 두 질서로서, 베시카 파시스의 쌍벽을 이루는 창조의 문으로서 기능한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이해에 있어서 '디아드'의 역설적 신비는 인간창조설화 속에도 나타난다. 소위 창세기 1:26절의 '하나님의 형상론'을 어떻게 주석학적으로, 교의학적으로 이해하던 간에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1:27)는 구절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이중성, 양극성, 대위성, 관계성은 곧 '디아드'가 창조의 문이며 창조의 계기이기 때문에, 그것은 신성한 것이기도 하고, 어느 한 켠이 다른 한 켠을 지배하거나  우위성을 주장 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한다. '베시키 피시스'가 두 개의 원이 반지름을 사이에 두고 겹칠 때 나타나는 기하학적 공간이라는 상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참사람'으로서 창조와 구원의 문이 되심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완전성의 상징이자 상호침투 회통하는 첫 탄생자 '트리아드'(Triad, 3)

 상징수학에서 가장 놀랍고 흥미로운 수는 '3'이라는 수가 지닌 다양한 상징성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전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서, 동시에 통일성과 완전성을 열망하는 무의식적  언어행위나 개념을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예들면, 탄생과 삶과 죽음, 길이 폭 높이, 과거 현재 미래, 파종기 추수기 휴농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 삼원색, 만세삼창, 몸과 마음과 영혼등이다. 종교적 상징의 최고형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신론,  불교의 삼신불 신앙, 힌두교의 브라만 비슈누 쉬바, 계(戒) 혜(慧) 정(定), 빛 에너지 질량,  정 반 합의 변증법 등이다. 종교적 아이콘이나 상업광고의 로고에서도 삼각형은  시각적으로 일체성, 강함, 안전성, 신뢰성, 과정성을 암시하는 심리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셋이라는 수가 지닌 이러한 상징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가? 그것은 문화적 관습에서 습득된 후천적 감정이라기 보다는 보다 존재론적인 뿌리와 연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3세기 신풀라톤 철학자 얌불리코스(Iamblichos)는 말하기를 "트리아드는   모든 수를 능가하는 특별한 아름다움과 공정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트리아드는 모나드의 잠재성이 최초로 현실화된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노자도덕경에도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덕경 42)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형성이 수학적 상징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초대 그리스도공동체가 경험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 다시말해서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응답으로서의 신앙고백이며, 계시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징수학에서 말하는바대로 "셋은 하나가 그것을 알 수 잇는 조건으로 펼쳐진 것"(칼 융)이라는 지혜의 말처럼, 하나와 셋의 관계가 지닌 상징수학적 혜안에 눈 뜰 때, 우리는 삼위일체의 비의를  좀더 깊게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를 계시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의 신성과  완정성과 통일성을 삼라만물이 존재하는 어느 곳, 어느 시간을 통해서도  그 흔적을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아드의 원리와 속성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리는 모든 피조물은 '트리아드'의 원리와 신비적 힘에 의하여 다양성 속에서 일치,  특수성 속에서 조화,  대립성 속에서  관계성, 지속성 속에서 창조적 변환,  페리코레시스적인 순환적 회통 속에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음"(행17:28)과 종말의 날에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실 것"(고전 15:28)이라는 점이다. 성경에서 '3'의 상징은 무수히 많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 3일만의 그리스도의 부활, 완전수 3의 배수로서 이스라엘 12지파, 구원받은 사람들의 총회를 상징하는 144,000( 12지파*1,000*12), 12사도의 수제자 요한과 야고보와 요한, 그리스도의 삼중직 왕 제사장 예언자, 등등이다.

(4) 공정함과 어머니 대지와 물질의 상징 수인 4, 테트라드(Tetrad)

 '4' 라는 수는 우리에게 어딘지 쉽고도 가깝고 미쁨과 신뢰감을 주는 수이다. 4는 우선 똑같은 수를 곱하거나 더했을 때 같은 값이 나오는 최초의 짝수이다. 2에 2를 곱하거나, 2에 2를 더하거나 값은 공평하게 동일하다. '4'라는 테트라드는 우선 기하학적 모형으로서는 반듯한 정사각형과 정사면체를 마음에 떠오르게 한다. 정사각형이나 정사면체는 평등, 신뢰, 공정, 단호함, 견고함을 연상케한다.
 문명의 다양성을  초월하여 '4'라는 수는 대지, 물질, 어머니, 지구를 상징했다. '어머니'를 뜻하는 라틴어  'mater'로부터 영어단어 '물질'(matter), '측정하다'(meter), '모체 또는 기반'( matrix)등이 유래되었다. 대지에 밀착하여 살아가는 인류는 최초의 집을 짓거나 궁굴이나 도성을 건축할 때 사각형의 대지 위에 사면의 벽을 세운다. 공정한 경기를 다짐하는 운동경기장  축구, 농구,배구, 테니스, 권투링은 모두 공정한 게임을 무의식적으로 상징하여 4각형형태의 선으로 둘러쳐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경쟁한다.
 '4'라는 수가 공정,평등, 신뢰, 단호함과 견고함을 상징하듯이, 성경에서 '강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창2:10)는 상징성, 하나님 보좌앞의 네 생물(계4:6)과 네 개의 복음서, 하나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네 뿔에서 울려나오는 음성(계9:13)등이 '테트라드'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종교적 상징에서 '4'의 중요성은 '4' 곧 테트라드는 자연, 대지, 물질, 어머니를 상징하는데서 한 거름 더 나아가서, 자연과 어머니 모태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변환'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곡식 낟알은 대지의 어두운 흙속에 떨어져 움트고 자라고 새로운 생명으로 결실 맺는다.  수정된 배아는 세포분열과 여러번의  형태변화를 거쳐 '새아기'로 탄생한다. 사람은 임신 40일만에 배아가 태아로 변환한다.  성경에서 40주야의 노아홍수(창7:17),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십계명 판을 받는 기사(출34:28),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생활, 예수님의 40일간 광야시험은 시련을 통한 창조적 변환의 상징들이다.

(5) 우월성과 권위와 생명의 재생을 상징하는 '펜타드'(Pentad, 5)의 상징

 지금까지 우리는 수가 상징하는 기하학적  모형을 살펴보고 왔었다. 모나드(1)가 점이라면, 디아드(2)는 분활하는 선이었고, 트리아드(3)가 최초 삼각형으로서 면이라면, 테트라드(4)는 정사면체로서 최초의 입체를 조성하였다. 그렇다면 '5'라는 수 곧 펜타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생명과 깊이 관련되면서  생명이 지닌 힘,우월성, 권위 그리고 재생을 상징한다.
 우선 우리 주위에   가장 낯익은 5각형의 모형은 중국 미국 북한 국기등에서 발견되는 별들, 군대 장성의 계급장의 별 모습과 군계급서열의 최고단계 오성장군, 미국 펜타콘(Pentagon) 건물 배치모형, 물질적 부와 번성의 상징인 석유회사 텍사코의 로고등이 있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과일의 꽃잎은 다섯장이며, 사과나 배를 절단해볼 때 생명의 배아 씨 모양은 별모양 5이며, 사람의 장기를 나타낼 때 오장육부라 하듯이 다섯가지 신체의 장기(간장, 심장,비장,폐장,신장), 동양철학에서 오행(금목수화토)이 모두 5라는 수와 관련되어 있다.
 '5'의 기하학적 상징인 정오각형 별모습은 생명을 정태적으로 정지시켜놓고 볼 때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실은 생명은 정지한 상태로서 있지 않고 운동중에 있고 변화중에 있다.  생명은 낳고, 자라고, 변화하면서 확대심화된다. 이러한 생명의 모습은 '펜타드'(5)의 상징인 별이 바람개비처럼 움직 일 때, 자연의 생명계 속에서는 나선형으로 나타난다. 나선형의 상징은 종교에서 특히 영적변환, 신비적 변환의 상징으로 중요하다. 은하계나 태풍의 소용돌이, 나팔꽃 줄기의 휘감고 올라가기, 인간 태아가 자궁 속에서 웅크린 나선형의 자세, 지문의 둥근 원의 소용돌이, 숫양 뿔이나 조개 껍질의 성장등등은 우리 주위에서 발견되는 나선형 구도이다.  
 '펜타드'(5)의 기하학적 상징인 오각형이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나선형으로 형태변화를 일으킨다면, 나선형의 생명운동이 상징하는 기본원리는 생명은 반복하면서 자란다는 것, 자기누적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  단순한 반복동작의 연속이 아니라 반복을 통한 재생과 더 높은 생명차원으로의  성숙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명은 창발적인 것이고, 창조적 변환의 과정이다.
  아마 '펜타드 5'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성경의 상징수는 오순절과 희년일 것이다. 오순절과 희년은 앞으로 고찰할 성수 '7'의 7배수 다음날과 다음해 이지만, 펜타드 5의 10배수로서 '창조적 변환'과 '재생'의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 오순절과 희년은 옛사람과 옛질서가 변화되어 새로운 재생과 변환의 경험을 해야하는 절기인 것이다.  

(6) 존재와 생명의 구조,작용,질서를 상징하는 수 '6'  헥사드(Hexad)

  상징수학에서 볼 때, 6이라는 수는 3의 배수이므로 3(트리아드)의 근본 속성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3이 지닌 완전성에 가까운 균형잡힌 구조와 질서와 작용의 원리를 나타낸다.
우주만물은 공간,시간, 힘의 상호연관적  함수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지속하다가 소멸하고 재발생한다. 그러한  존재의 운동과 생명의 창발적 형태가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고 일정한 공간적 구조와 시간적 질서와 힘의 작용속에서 발생하는데 그 총체적 상징이 '6'이라는 수의 상징성이다.  
 '6'이라는 수가 기하학적 형태를 띄고 나타날 때 정육각형이 되는데 우리주위에서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예들면, 물분자 결빙결과인 눈송이의 육각형  결정체, 가장 효율적 공간배치를 한 벌들의 육각모형 벌집,  계절의 순환질서를 태양과 별자리로서 나타내는 12황도가 대표적 상징사례들이다. 12라는 수는 6의 배수이므로 '6'의 상징인 가장 이상적인 구조와 질서와 힘의 작용을 나타낸다.      
 성경에서는 창조의 질서와 구조 힘의 작용이  6일 째 날에 완성된다(창1:31).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한다(눅1:26). 계시록 새 예루살렘 도성의 비젼으로서 사방이 12,000 스타디온이며 12종류 보석으로 치장되었고 12대문이 있고 생명수 강옆에는 12종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다(계21:15-22:2).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마26:53), 열두 지파와  열두제자는  창조세계의 구조와  질서와 힘의 상징 수 이기 때문이다.

(7) 매혹적인 처녀 수, 신성한 완전수 '헵타드'(Heptad, 7)의 상징

 1에서 10까지의 열 개 수 중에서 7이라는 수는  매우 특이하다. 우선 '7'은 연결,단절 ,균형의 역할을 한다.  1부터 7까지 수를 순서대로 곱하면 결과는 5040이 되는데, 7부터 10까지의 수를 곱해도 그 값이 같으므로 이 경우는 연결의 상징이다. 1부터 10까지의 수 중에서 7을 제외하고 1부터 6까지의 수를 곱하거나 8부터 10까지의 수를 곱하거나 값은 720 같은 값이 되는데 이 경우 7은 단절의 상징이다. 다시말해서 7이라는 수는 1부터 10까지의 자연수 중에서 7의 값이 존재 할 때나 존재하지 않을 때나 그 위치는 10의 균형을 이룬다.
 고대인들은 '7'의 수를 처녀수라 불렀는데, 이유는 1부터 10까지 자연수 중에서 7보다 작은 어떤 수에 의해서도 7을 나눌수 없으므로 손상당하지 않고 그 순결성을 유지하며, 또한 7은 10 안에 있는 다른 수를 낳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7이라는 수는 상징수학에서나 신비수학에서나 가장 신성하고 의미심장한 수로서 고대시대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우선 '7'이라는 수가  자연계 안에서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지니는 신성한 의미로서의 상징성을 생각해보자. 빛은 백색광선인데 물방울이나 프즘을 통해 분광할 땐 일곱가지 무지개 색상으로 나타난다. 백색광선은 신성한 '모나드'(1)의 빛이요 통일성(Unity) 의 빛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로서 묘사되고 신비가는 하나님체험을 할 때 눈부신 백색광휘로서 체험한다. 중세기 스콜라신학(철학)의 '교양필수과목'은 7가지과목 이었다(문법,수사학,논리학,산술,기하학,음악,천문학).고대 바벨로니아의 '지구라트' 탑은 7층탑으로서 7단계를 거쳐야 하늘의 신성에 도달한다는 상징이었다. 고다마 싣달다는 7년간의 고행명상수련후에 해탈을 경험한다. 시간의 흐름을 7일주기로 달력을 제작한다. 이슬람교도들은 라마단 순례기간 절정에서 메카의 카바신전 둘레를 7바퀴 돈다. 백설공주를 마법에서 풀어내는 도움이 난쟁이들의 수는 일곱명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7'(헵타드)의 상징은 너무도 많아서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창조는 6일간 지속되고 7일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창2:3).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7년단위 데릴사위 계약으로 라헬과 레아를 얻는다 (창 29:16-20). 여호수아는 일곱명의 나팔수로 하여금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게하여 함락시킨다(수6:6-17). 일곱가닥으로 땋은 삼손의 머리털을 자르니 삼손을 힘을 잃어버린다(삿 16:19).오순절과 희년은 7의 7배수 다음 날과 다음해로서 거룩한 날이요 거룩한 해방의 해이다(레25:8-10).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일곱마디 말씀을 남긴다.출애굽과정에서 이스라엘 장로는 70명(출24;1)이고 처음 예루살렘 사도교회가 최초로 일곱집사를 뽑아 안수한다(행6:5-6).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주님 보좌앞엔 일곱영들이 있고, 일곱금촛대가 있다(계1:4,12)
 유념해야 할 것은 '7'이라는 거룩한 완전수는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나 선하고 진리를 드러내는 상징수로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7'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단절, 연결, 균형을 나타내는 수이기 때문이다. 박두환은 그의 요한계시록 13장 연구에서 "7이라는 숫자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존재뿐만 아니라 용과 첫 번째 짐승같이 하나님의 적대적인 세력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고 정당하게 지적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일곱수가 부정적 용례로서 사용될 때도 많다. 가인을 해친벌이 7곱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벌은 77갑절이다(창4:24). 야곱의 상례를 위해 70일 애도하였다(창50:3).야위고 흉측한 암소 일곱과 마른 이삭 일곱은 불길한 7년 흉년의 예고다(창41:27).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 두 마리는 뿔 10개와 머리 7을 지녔다(계13:1).
 
(8) 주기적인 반복패턴의 상징수 '옥타드'(Octad, 8)

'8'이라는 수는 1과 2와 4의 배수이므로 모나드(1), 디아드(2),  테트라드(4)가 지닌 수의 상징적 성질을 고루 종합하여 갖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모나드가 통일성과 완전성의 상징이고, 디아드가 차별과 분별과 나눔과 겨룸의 상징이고, 테트라드가 대지와 모성적인 것과 물질의 상징이라면, 옥타드(8)는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연과 생명체 운동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을 보여주는 수이다.    
음악에서  음계 옥타브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반복하면서 공기진동은 팽창확산 한다. 특히 반복과  회귀패턴을 강조하는 동양적 사고틀 곧 노장사상이나 유교나 불교에서 8의 수가 지닌 상징성은 성서의 그것보다 강하다. 불교는 해탈의 구체적 방도로서 삼학팔정도(三學八正道)를 제시한다. 타일과 벽지의 문양은 반복패턴과 조화 및 통일을 나타내는 8각형이나 8면체문양이 서로 맞물려 연속된 형식이 많다. 하나의 세포가 유사분열 과정에서 8단계의 옥타브를 따라 변환하면서 마침네 두 개의 독립된 세포로서 분열된다. 화학의 원소주기율에서 전자배열의 법칙이나 생명공학에서 DNA가 64가지의 여섯부분으로 이루어진 코돈(codon) , 즉 유전단어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의 발견도 '8'이라는 수가 지닌 우주적 반복 및 재생의 상징수임을 나타낸다.
'옥타드'(8)의 상징수학을 가장 정교하게 발전시킨 민족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주역의 태극팔괘의 수리적 결합구조가 그것이다. 주역이란 우주만물의 변화논리를 음양의 두가지 원리가 서로 교차되고 상응상자하면서 변화양태의 범주적 패턴을 64가지 패턴으로 나타낸 것이다. 양과 음을 각각 끊어지지 않은 막대기와 가운데가 끈긴 막대기로 기표하여, 세 개의 막대배열로 표현할 때 기본형태가 8가지이다. 태극기는 그중 가장 중요한 네가지 패턴을 태극주위에 배열한 것이다.    8가지 기본패턴이 두겹으로 겹치면서 만날 때 64가지 변화패턴이 나타나며, 각각의 라인(효라 부른다)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64괘 각각 괘의  6효는 사물의 변화, 조화, 갈등, 균형, 예기, 전조, 성취, 위기등 운동과 사건의 원형적 패턴을 드러내는데, 자연변화와 인간심성과 역사변천은 상응하고 공명한다는 전일적 우주관이 표현되어 있다. 성경에서 8일만에 할례를 받는 것은 새로운 생명주기 시작이라는 상징도 된다.

(9) 최상의 완전과 한계로서 지평성의 상징 수 '엔네아드'(Ennead,9)

 1에서 10가지 자수 중에서 수값이 하나의 숫자표시로서 가장 큰 수는 9이다. 고대수학자들은 9라는 숫자 속에서 '종점', '지평선', '한계'를 읽었다. 9는 완전수 3의 3배수이므로, '최상, 완전, 균형'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매우 상서로운 거룩한 좋은 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9'는 노력과 운동변화의 마지막이므로 그 이상을 넘어가면 전혀다른 차원이 나타나던지 아무것도 없는 무가 나타나던지 새창조를 위한 파괴가 시작되는 임계점이기 때문에 상서로운 수이기도 하지만  조심하고 경건하게 몸가짐을 해야 할 수이기도 했다.
 종교적 상징으로보면 아멘기도나 찬송가사 만세함성을  3번 반복하는 것은 완전과 꼭 이뤄지기를 염원하는 무의식적 심성의 나타남이다. 베토벤 교향곡9번의 예처럼 교향곡에서 9번이상 번호를 붙이는 법은 없다. 예수님은 제9시(오후3시)에 운명하시며,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여러민족의 조상이 될것임을 소명받는다(창17;1) 사라는 임신이 불가능한 90세 때 수태의 약속을 받는다(창17:17). '9'는 속세와 거룩의 경계선이요, 시간과 영원의 임계점이며, 인간의 한계성이 끝나고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되는 카이로스이다.

(10) 수를 넘어선 수, 새로운 시작의 수 '데카드'(Decad, 10)

 우리는 마지막 수 10에 도달했다. 그런데 10이라는 수의 표기는 1과 0의 두가지 수자 표기의 합성물이다. 1과 0이 숫자이면서도 수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듯이, 10(데카드)은 단순한 수의 개념 이상이었다. 그것은 1부터 9까지의 모든수가 지닌 상징성이 융합되어 나타나는 '완전수'이며 새로운 더 높은 차원의 '1' (unity)이었다. 양손 손가락 합이 열 개인 것은 열 개손가락 안에 모든 것을  쥐듯이 10은 모든 것의 완성이다. 체조경기 점수는 10점 만점으로 계산한다. 수학시험이나 초등학교 시험지 채점에서 100점은 더 이상 점수가 없기에 만점이라는 말이다.
 종교적 상징수학으로 볼 때, 10이라는 수는 완전한 것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은 열가지계명으로 판에 기록되었다(출34:28). 아담부터  10번째 세대에 새로운 계약갱신자 노아가 등장한다(눅3:37). 자식이 없던 사라가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만에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동침 임신케한다(창16:3)

4. 나가는 말

1부터 10까지의 수와 그 수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 한 시각적 도형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상징수학'의 관점에서 간단하게나마 고찰하였다. 다음과 같은 몇가지 잠정적 종합결산에 이르게 된다.
첫째, 한국 교계에서 수와 관련된 신학적 고찰은  주로 요한계시록이나 에스겔서 같은 묵시문학적 경전속에 나타난 숫의 상징성을 풀어보려는 관심으로 일반신도들은 경도되어 있다. 666이 무엇인지 144,000 속엔 누가 포함되는지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서론에서 살핀대로 게마트리아, 토타리콘,테무라등 신비수학은 히브리어,헬라어,이집트어 아랍어,라틴어등 고대언어와 그 언어 알파벧을 잘 알고 그 알파벹이 지닌 수값에 정통한후, 그것들의 연관,치환, 조합등을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해석해 내는 것이므로, 박해받는 신앙공동체의 암호같은 것이다. 그 연구는 전문 학자들로서 중요하지만, 일반 신도들이나, 시대상황이 전혀다른 시기에 그러한 신비수학은 보편적 상징성을 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교에서는 수가 지닌 보편적 상징성에 더 주목함이 유익할 것이다.

둘째, 1에서 10가지의 수가 지닌 상징성이 기하학적 도형으로 나타날 때, 건축, 미술, 실내장식. 아이콘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영성함양에 매우 유익함을 알게된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 개신교 교회의 예배양식, 건축물 축조기술, 종교미술등에서 1에서 10까지 상징수가 함의하는 풍부한 영성개발의 매체가 초보단계이거나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점을 반성해야 하겠다. 창조세계와 인간의 마음구조와 하나님의 세계경륜사이엔 어떤 공명과 유사한 구조적 상응성이 있다는  깨달음이야 말로 '생태학적 영성시대'를 열어가는 21세기에 상징수학의 강조는 필요불가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셋째, 상징수학은 기본적으로 창조세계의 대자연 안에는 피조물의 존재방식과 생성발전 운동 속에 어떤 원형과 구조적 패턴이 존재함을 전재하고 그것을 밝혀내어 삶을 대자연과 사물의 변화 속에 조화롭게 적응시키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성서적 실재관이 세계를 보는 눈, 곧 이전에 없던 것, 전혀 새로운 것,  반복과 재생을 넘어선  새하늘과 새땅의 가능성을 망하는 희망의 존재론이 말하려는 신학적 관점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세계는 "태고의 원형을 반복하는 순환세계'만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와 패턴도 창발되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새 창조신학, 새 자연의신학이 한신에서 연구되어 학계에 공헌해야 할 신학적 과제를 자각한다. '창조성'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성찰이 요망된다.

넷째, 상징수학은 과학과 신학의 깊은 대화를 요청한다. 갈릴레오는 우주라고 부르는 거대한 책은 수학의 언어로 씌여졌다고 갈파한다.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론에서 수학과 기하학의 대상들이 눈에 안보이고 시간의 틀 밖에 있는 이데아의 영역에 있다고 보았다. 피다고라스 학파에서는 물리적 세계란 수와 기하 그리고 조화가 직접적으로 현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상의 대표적  견해들은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로서 다시한번 20세기에 표현되는데 그 말은  자연세계가 이미 일정한 법칙성과 초자연적인 지성에 의해 질서지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자연의 질서도 형성되는 것이며, 자연은 우연과 필연의 종합이며,  불확정과 창조성과 우연성의 복합물이라고 본다.
 상징수학이 밝혀내는  자연의 패턴들과 체계들은 빅뱅사건이후 기나긴 세월동안 '우주자연의 자기조직화의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된 것이며, 물리적 체계들은 더 복잡하고 더 조직회된 체계와 패턴을 형성하려는 경향성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단순화 시켜 말한다면, 수학의 실재성에 대한 인식론적 철학의 문제로서 합리주의전통의 '실재론'과 경험주의전통의 '구성론'의 대립이 그것이다. 그 두 입장의 종합은 불가능한가? 칸트가 인식론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화해 종합하듯이 수의 존재론적 본질성격에 대한 실재론과 구성론의 통전도 가늘 할 것이다. 상징수학은 새로운 '자연의 신학'(Theology of Nature) 혹은 새로운 시대의 과학과 종교간의 대화를 촉구하는데 그것은 21세기 신학의 한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도서]
1. 장 피에르 상제/ 콩느 지음(강주현 옮김), 물질, 정신 그리고 수학(경문사, 2002)
2. 마이클 슈나이더 지음( 이충호 옮김),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경문사, 2002)
3. 존 킹 지음( 김랑국 옮김), 수와 신비주의 (열린책들, 1996)
4.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이상원 옮김), 신의베틀(경문사, 2002)
5. 찰스 폰스지음 (조하선 옮김), 카발라 (물병자리, 1997)
6. 클라우스 베스터만 지음(황종렬 옮김), 창조 (분도출판사, 1991)
7. 테드 피터스 엮음( 김흡영외공역), 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 동연, 2002)
8. 슈투어드 카우프만 지음(국형태 옮김), 혼돈의 가장자리(사이언스 북, 2002)
9. Tillich, Paul, Theology of Culture(Oxford University Press, 1959)
10. Whitehead, Alfred North, Process and Reality (The Free Press, 1978)
11.. Barbour, Ian, When Science Meets Religion(HarperSanFrancisco,,2000)
12. Pannenberg, Wolfhart, Toward a Theology of nature: Essay on Science and              faith(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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