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16 (09:38) from 80.139.175.11' of 80.139.175.11' Article Number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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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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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의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

                                               김경재(한신대,신학)
1. 들어가는 말

  함석헌 연구에 있어서 그의 다양한 면모를 연구주제로 삼을 수 있다. 예들면 동양고전 해석학자로서, 역사철학자로서, 탁월한 문필가로서, 비폭력 시민 평화운동가로서, 자생적 생명사상가로서, 언론인으로서 등등이다. 그러나, 그가 바로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제대로 영글은 심원한 ‘기독교적 종교사상가’이며 ‘기독교적 시인’중 대표적 한사람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말하기 꺼려하지만, 그 점을 간과하여버리면 함석헌의 사상연구에 있어서 척추손상을 입히는 꼴이 되어서 바로 서서 활보하는 함석헌이 보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함석헌이 함석헌되는 가장 중요한  비밀은 퇴비로써 옥토가된  동아시아 정신적 토양 속에 헤브라이즘(Hebraism)의 핵심요소를 씨앗으로 받아 꽃피어난 한국사상사에서의 신품종 ‘씨알’이라는 알곡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동안 함석헌 연구에서 많이 다루어져 오지 못한 ‘기독교 시인’으로서 함석헌의 면모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함석헌 연구사에서 ‘종교인으로서의 함석헌’을 밝히려는 노력을 주저하는 이유는 두가지 이다. 첫째, 그가 좁은 의미에서와 경직된 도그마적 의미에서의 ‘종교’라는 울타리안에 그의 풍성하고도 생동적인 현실적 사상가를 갇우어버리는 위험을 경계하려는 무의식적 동기이다.
   둘째이유는, 종교중에서도 전통적 기독교라는 ‘종파적 종교’, ‘역사적 실체로서의 종교’라는 한계 안에 갇우어 버릴 때 발생할 손실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계의 눈초리는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석헌은 ‘축적된 전통’ 이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마음의 초월체험’을 하면서 살다간 올곧은 신앙인 이다.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를 선언하면서 교권제도 속에서 화석처럼 교리화된 기독교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운사람 이지만 그는  ‘갈릴리의 예수’와  ‘예수의 낙인(스티그마)’을 몸에 지닌 바울을 지극히 사랑하고 흠모한 분이다.  그러한 이유로서, 이 글은 “함석헌의 종교시에 나타난 하나님 이해”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 글의 숨겨진 동기는 두가지인데, 그 한가지는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주체적 체험과 사상이 ‘응축된 형태’로서 ‘미학적 언어형태’를 갖춰 나타난 것이 ‘시’라는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에 함석헌의 내면세계를 드려다보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가지는 한국 국문학계를 비롯한 문학전문가들이 문필가로서의 함석헌, 아름답게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사용한 시인으로서의 함석헌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주기를 요청하려는 것이다.
 문학과 시를 전혀 알지 못하는 필자는 ‘시문학 이론’ 관점에서 함석헌 종교시의 문학적 형태와 그의 시론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몇가지 함석헌의 종교시 작품 속에 나타난 그의 신앙체험을 독자로서 ‘뒤따라 체험’(追體驗)해 보려는 제한적 목적을 지닐 뿐이다.   

2. 시작품 문헌자료에 내포된 연구의 문제점

  함석헌의 시작활동 기간의 제한성과 작품이 실려있는 시집 또는 문헌자료 속에  작품 발표일의 정확한 연대확정 문제가  ‘시 연구를 통한 함석헌 인물탐구’에 난제를 안겨준다.  
  함석헌의 시작활동은 대체로 1945년  해방직후부터 시작해서 4.19가 발생한 1960년도에 정지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가 시형태로서 작품을  활자로 인쇄하여 시집으로 발표하기를 허락한 것은 그의 영혼의 울부짖음이 절정에 다다른 약15년간 기간이다(1945-1960). 그 자신의 표현대로하자면 ‘시 아닌 시’를 세상에 내놓는 변을 “나는 내 맘에다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임 앞에다 바칠 뿐이다”1)라고 말한다.
  문헌자료로서 함석헌의 시작품이 세상에 간행되는 계기로는 이래와 같은  몇단계가 있었다.
    제1단계(1945-1947) 『쉰날』:  
    해방정국에서 ‘신의주학생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50일간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쓰여진 300여편의 시집인데, 함석헌이 1947년 남하 와중에서 거의 유실되어 버렸다.2)

    제2단계(1947-1952) 프린물 시집 회람기:
    남하한후 작품과 남하전 작품 일부가 살아나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자, 독자들이 자       발적으로 작품중 부분부분을 모아 한국동란후 어려운 상황중에서도 각지방에서 프린        트물로 간행하여 읽혀지게된 단계이다. 개성에서 『영원의 젊은이』, 공주에서 『장작       불』, 대전에서 『기러기』등으로 간행되어 회람된던 단계이다.

    제3단계(1953-1960) 최초인쇄물 시집 ‘첫째판“ 간행기:
    한국동란의 상처가 온 누리에 고통을 가중시킬때,  항도 부산에서 최초로 인쇄활자로       격조높게 출판된 시집으로 간행되어 읽히던 시기이다. 1953년 3월18일자로 삼협문화사       에서 『수평선 넘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3) 이 시집을 함석헌 시작품 ‘첫번째        판’이라고 부른다.

    제4단계(1961-1982) 서울에서 ‘둘째판’ 간행시기:
   서울환도 이후, 4.19학생의거와  5.16군사구테타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 서울에서 최초      의 인쇄물 시집 『수평선 너머』속에서 몇편을 빼고 새로 중요한 몇편의 시를 추가하여      도서출판 ‘생각사’에 의해 ‘두 번째 판’을 발간한 시기이다(1961-1982).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1980년에 들어서서 재판발행 되었는데,  이 시집속에 대체로 함석헌 시작활동       의 후기작품중 중요한 ‘하나님’, ‘대선언’등이 실리게 되었다.

    제5단계(1983- 현재) 『함석헌 전집』의 제6권으로 ‘셋째판’ 간행 시기:
    도서출판 한길사가 함석헌 전집 출간을 기획하고, 전집의 제6권으로 『수평선            너머』‘세번째 판’을  출판한 시기이다(1983-현재). 이 ‘세번째 판’의 특징은  그동안 앞서     언급한 모든 작품들을 다 수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4부 “세 상 떠나는 이를 보내면서”     라는 큰 제목아래  ‘말씀살이’등 8편의 작품을 실어 놓은 점이다.

 함석헌의 시의 세계 연구 특히 종교시 연구에서 겪는 어려운 점 하나는, 그의 시 속에서 발전해가는 사상변화의 단계나, 그 각각의 시가 태어나오던  시대적 배경 및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추적하는데  필요한 시작품 창작년대 또는 발표연대가 명기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에밀레’라는 시의 첫 운에서  “ 에밀레 운다. 이해가 간다(1959)” 라고 연대표기를 해놓은 것 이외 발견하기 어렵다. 약15년동안의 시작활동 중, 격변하는 시대사 속에서 그의 생각과 영혼의 깊은 체험도 몇단계 결정적 변화가 없을 수 없겠지만, 작품년대의 미확정으로 우리는 그의 시들이 1945-1960년동안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되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며, 각 작품의 보다 정밀한 연대구분은 작품 분석을 통해 밝혀내고 추론하는 길 밖에 없다.

3. 함석헌의 시론에 관한 예비적 고찰

  함석헌의 종교시 감상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먼저 함석헌 자신이 시에 대하여 특히 그자신의 시작품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고찰해보는 것은 독자들이 그의 종교시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함석헌은 다행히도 그의 시집 초판(1953년판) 『수평선 넘어』맨 끝에 그의 시론 이랄 수 있는 별기(別記)를 붙여 수록했는데 그 별기의 제목은 ‘詩․信’이라고 붙여놓았다.4) 그 뒤 둘째판(1961) 『수평선 넘어』 맨 끝에 동일한 원고를 실었는데 초판과 다른점은 ‘詩․信’ 이라는 논제를 붙여 그의 시론을 논하기전 바로 책 한페이지를 여백으로 놔두고 ‘발’(跋)이라고 표기하여 ‘詩․信’  이라는 글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5) ‘발’은 ‘발문’(跋文)의 준말로서 책의 본문 끝에 그 내용의 대강이나 또는 그에 관련된 일을 간략하게 적은 글을 말한다. 요즘용어로서 권말기(卷末記)나 후기(後記)의 뜻이다.
  ‘발’(跋)의 글제목 다시말해서 그의 시집 후기(後記)의 제목을 ‘詩․信’이라고 표기한 것 자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함석헌은 적어도 자기의 시의 세계에서 시란 마음의 지성소에서 쏟아져 나온 신앙적 체험사건의 결정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발문’(跋文)의 맨끝을 다음과 같은 매우 종교적인 명언으로 끝맺는다: “시는 지성소에는 없다. 거기 들어가지 전의 말이요, 들어갔다 나와서의 말이다. 지성소 안에는 말이 없다. 생명을 불사르는 범향(梵香)이 있을 뿐이다”.6)
   첫째, 함석헌의 시론에서  그는 ‘시적 언어’의 이해불가능성의 문제 즉 ‘시적 언어’의  해석학적 문제를 들고 나온다. 시인의 마음 한복판에서 체험한 고유한 정신세계의 체험표현인 시작품을  독자가 작가 자신이 체험한 그대로 이해가능한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함석헌의 결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듣는자는 역시 남의 시를 통해 자기의 시를 짓는 것 뿐이다. 내 시야 말로 내 것인데,        내 속에서 나간 내 혼정(魂精)인데, 내 아들인데, 나 만이 낳고 나 만이 아는  것인데,
     내 생명의 지성소에서 나와 내 임 만이 만나서 지난 일인데, 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일인데, 그것을 누가안단 말이냐?”7)

  위의 인용문에서 만큼 인간 정신세계의 지고한 체험이 지닌 고유성, 독자성, 반복불가능성, 원체험 그대로의 재생불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글이 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남의 시를 이해하거나 감상하면, 시를 창작한 시인이 지녔던 본래 그대로의 정신체험이나 느낌을 자동차부품 조립결과로서 원설계도의 자동차가 만들어지듯이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함석헌이 말한바처럼 시의 이해란 “남의 시를 통해 자기의 시를 짓는 것” 이다. 시를 이해한다는 정신현상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위와 같은 함석헌의 견해는 현대 ‘정신과학의 꽃’이라고 부르는 ‘해석학’(Hermeneutics)의 핵심적 본질을 함석헌은 ‘해석학 담론’에  접촉함 없이도 당신 스스로 이미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대 해석학 담론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딜타이와 가다머는 중요한 큰 획을 긋는다. 딜타이에 의하면, 인간적 삶의 특징인 ‘역사성’ 때문에,  무릇 정신적 작품(택스트)의 이해란 원작품을 그대로  ‘재생’(再生) 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작가의 체험이 표현된 작품이해 과정을  통해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이다.8) 가다머의 표현을 따라 말한다면, 이해란 창작자의 정신지평과 감상자(해석자)의 정신지평의 진지한 만남 곧 ‘地坪의 融合’사건인 것이다.9)
   둘째, 함석헌의 시론에서는 시적 언어만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로서 두기능 곧 언어란
“알리면서 가리는 것”, “드러내면서 숨기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시를 짓는자 맘과 뜻 그대로는 이해 불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이해되는 것이라고 시의 역설을 말한다. 그것 곧 진리의 계시와 은폐가 동시적이라는 점은 “생명의 신비”이며 영원의 하나님이 일하는 쏨씨라고 말한다.10) 기독교 신학의 계시론에서 하나님 자기계시의 역설적 측면에 관해 이르기를 하나님은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이면서 ‘감추이신 하나님’(Deus Absconditus) 이라고 언표한다. 한번은 계시하고 또 다른 한번은 은폐한다거나, 이곳에서는 계시하고 저곳에서는 숨는다는  말이 아니다. 계시가 곧 은폐라는 역설을 말하려는 것이다.
  함석헌의 표현을 따르자면 “시는 公然한 비밀”이며, 하나님이나 생명 또한 “공개된 비밀”이라는 말이다. 모든 시적 언어는 지성소에서 경험한 일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사가랴의 반벙어리 몸짓말(누가복음 1: 5-25)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를 이해한다는 사건은 단순한 ‘감정이입’사건을 통한 정서적 합일만도 아니요, 지적인 동의도 아니다.  타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생명과 진리와 진실에 대하여 이해한만큼 보이는 세계요 이해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함석헌의 시를 함석헌 자신의 체험그대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그래서도 아니되는 일인 것이다.
   셋째, 시란 짓는 것이 아니요 ‘낳는 것’ 이라고 표현함으로서, 함석헌은 시창작의 신비한 종교적 차원을 강조한다.11) 난해하기도하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요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은 독생자 로고스를 낳았다”고 표현한다. 창조란 짓는 것(만드는 것)이요, 낳는 것이란 자기와 닮은 또 다른 자기를 출산하는 것이다.  ‘짓는 행위’와 ‘낳는 행위’는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시란 ‘내 속에서 나간 혼정(魂精)’, ‘신랑과 신부, 부부의 비밀’, ‘감방의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애기를 배는 처녀’등의 비유로서 진정한 시창작 행위란 마치 대사제가  지성소에 들어가 소리없는  말을 듣고, 지성소 밖으로 나와 그가 받은 신탁이나 지존자의 뜻을 어눌한 입술로 말하는 것과 같은 사건이라고 한다. 델피의 신전에서 신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여 전해준다는 ‘헤르메스’라는 신화적 존재이야기가 그점을 상징한다.
 시적 표현이 본래 그러하지만,  함석헌의 종교시는 특히 비유, 역설, 은유가 많고 신비주의의 특징마져 드러낸다. 왜냐하면 신비체험의 특징은 단순히 ‘그 진리를 알았다. 깨달았다’는 표현보다는 ‘그 진리와 합일했다. 그 진리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는 표현에서 절정에 도달하기 때문이다.12) 그러므로, 다분히 일반독자가 능히 오해할만큼 함석헌의 서정적 종교시에는 신비주의적 에로티시즘마져 상기 될 정도로 은유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함석헌의 종교시를 시의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근현대시의 통상적 삼분법  서정시, 서사시, 극시 중에 서정시에 가깝지만, 시란 정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심원한 사유작용으로서 깨달음이나 사상을 포함하기 때문에 함석헌의 종교시를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서정시 범주에 넣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자유시’라는 범주에 넣어 분류함이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시 형태론 관점에서 말한다면 자유시의 경우 시적 형태는 작가가 표현하려는 시상 또는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형식과 내용’의  역동적 상관관계 속에서 새롭게 시형태를 조형해가는 형국을 갖게된다.
   그러므로, 함석헌의 종교시는 어떤 경우는 형태적 완결성이나 시적 운율성이 최고형태로 조화된 경우도 있지만, 산문시 형태로 나타날 적엔 시로서의 형태적 완결성이나 예술성은 무시되어버리는 작품도 비일비재하다.13) 함석헌의 대표적 종교시 ‘하나님’은 전자의 경우요, ‘흰손’이나 ‘대선언’은 후자의 경우라 할 것이다.
  시가 “인간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의 한 양식”14)이며 시인의 심원한 체험과 세계관이 응축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함석헌의 종교시 몇편을 감상함으로써  그의 마음의 세계의 진수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4. 함석헌의 종교시 특징

   함석헌의 시집 『수평선 넘어』에 실린 모든 시들이, 저자 자신의 ‘발문’(跋文)에서 암시한대로  초월의 지평, 궁극적 성격, 무조건적 성격, 영원한 것등과 같은 종교적 요소를 상징적으로나 은유적으로 갖지만, 시의 주제나 소재들 자체가 명시적으로 종교시임을 숨기지 않는 시들만 헤아려도 십여편이 넘는다.15) 그 중에서 이 글에서는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미완성’, ‘하나님’ 이라는 세 작품을 순서에 따라 음미하기로 한다. 많은 시중에서 위의 세편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굳이 이유를 말한다면, 첫번째 시는 저자의 초기 종교사상을 잘 나타내면서 마음의 순수성, 종교적 체험의 조건으로서 마음의 지성소적 성격을 누차 강조하는 특징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두번째 시는 그의 『뜻으로 한국역사』의 사관(史觀) 밑바탕에 깔려있는 생성론적 실재관 및 과정적 신관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16) 세 번째 시는 저자의 후기 종교사상 곧 성서적 헤브라이즘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유불선 삼교가 그의 마음 안에서 완전히 융해되어 동아시아적 그리스도인의 신체험의 정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상할 첫 번째 시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는 9연으로 구성된 짧지않는 시이며, 시 제목은 시의 첫째연 첫구절 ‘그대는골방을 가졌는가?’ 첫 문장을 그대로 시 제목으로 삼았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 이 세상의 냄세가 들           어오지 않는 /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  네거리 에던가? / 님은 티끌을 싫어해 /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대는  님 어디다 모시려는가? / 화려한 응접실엔가? /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 남이 보는 줄 아시면 /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 애를 태우고 또 눈물
        흘려 /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 사람 안보는 그윽한 곳에서 / 귀에다 입           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
        껌껌한 지붕 밑엔가? /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  지붕밑도 지하실            도 아니요 / 오직 그대의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은밀히  닫고 /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 극진하신 님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위 시는  함석헌의 종교세계, 특히 지존자 체험의  조건적 장소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종교체험은 외면적, 외양적, 객관적, 대중적, 교리적, 종교의례적 매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체적, 내면적, 개인적, 실존적 , 직접적 체험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강조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현존처는 보편적 역사과정이나, 우주자연이나, 민중의 집단의지나, 성스러운 종교의례 가운데가 아니라, 철저하게 ‘맘의 지성소’ 한 곳 뿐임을 갈파한다. 왜냐하면 ‘맘’ 만이  수십억년 준비한 하나님 보좌의 ‘결정체’로서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온갖 형상의 어머니”17)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의 종교이해는 소위 동양종교 일반의 특징인  ‘맘 공부, 맘 수련’의 차원인가? 그렇지는 않다. 거기에 함석헌 종교이해의 기독교적 특징이 드러난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라는 시의 바로 앞에 실린 다른 시 “님이 오신다”의 마지막 두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마음의 체험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쓸자 딱자 하던 마음 / 그것조차 맘 뿐이고 / 님이 손수 쓸으시고  /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맑히자면서 못 맑힌 맘/ 나중엔 맑아졌으니 / 내라곤 없소이다, 님 곁에만 사오리.  

   그의 장편 산문시 “흰 손” 에서  수련, 실천, 행동, 노력, 정진, 희생 없는 개신교의 변질되어 버린 죄의 대속신앙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 신앙을 무섭게 질타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종교이해가 자기수련과 노력에 힘입어 자기완성과 자기구원에 도달한다는  소박한 ‘수양종교’는 아니라는 것을 인지함이 중요하다. 오늘날, 종교들이 업적주의, 물량주의, 과시주의, 교조적 경전중심주의에로 치달아 종교체험의 물화(物化)와 속화(俗化)가 가속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가장 치열하게 역사현실참여를 감행했던 함석헌 자신의 종교이해는 지극히 내면적․인격적 맘의 지성소에서의 체험이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감상할 두번째 시 “미완성”은 함석헌의 역동적 실재관과 그의 내면에서 절대 고요함과 쌍을 이루는 궁극적 실재의 창조적 의지에 대한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 철학사적으로 고찰 할 때,  실재를 결정된 형태와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열려진 실재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적 형성과정, 자기조직화의 운동과정 으로 볼 것인가의 두 견해가 맞서왔다. 이 시 속에서 우리는 함석헌의 역동적 실재관이  산문시 형태로 노래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미완성” 시는 6연으로 구성된 자유시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높은 봉우리에 애타는 동경의 얼굴 빛 있고 / 날뛰는 바다에  풀지못한 분노의 울부짖       음 있고 / 오고 가는 바람에  잊지 못하는 탄식의 속삭임 있고 / 흐르는 구름에 끝없       는 추궁의 헐떡임 있고 /  벌럭거리는 심장엔 영원히 이루지 못한 이상의 불탐 있고.

    모든 무덤 무엇이라 말하던가? / 모든 기념탑 무엇이라 일러주던가? / 모든 천인의 엄       숙한 사색은 무엇이라 가르치던가? /모든 시인의 이상 환상은 그 무엇을 노래하던가?
    자연과 맘의 섞어 짜는  역사의 음악은 그래 무엇이라 아뢰던가?

    영원의 이상 / 영원의 찾음 /
    영원의 씨름 / 영원의 벌어짐 /
    아아,  우주야 인생아 생명아 너는 영원의 미완성 이더냐?

    완성은 반갑다고 누가 그러나? / 끝 맺음은 아름답다고 누가 그러나? / 얻어 들음은
    즐겁다고 누가 그러나? / 자연은 언제나 완성할 줄 모르는 靈感의 巨匠 /  역사는
    영원히 끝날 줄 모르는 절대의 意志.

    영원의 미완성 / 영원히 자라는 혼의 타는 그가슴엔 / 지극히 적은 부분의 불꽃마다
    제대로 무한 즐거움 / 끝없이 닫는 영의 헐떡이는 염통엔 / 찰나 찰나의 고동의
    울림마다 그대로 영원의 이김.

     영원의 미완성품 만세! / 영원히 높아가고 확대해 가는  정신 만세! / 영원히 영광을        더해가며 벌어져 나가는 생명의 불바다 만세! / 아키레스 거북을 쫒아잡지 못하듯이/  
     그칠줄 모르고 닫는 인생아 네 걸음걸이에 무한한 기쁨 있을 지어다.

우리가 앞에서 감상한  첫 번째 시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에서 함석헌의 영성 한쪽 끝 극소세계의 고요하고도 거룩한 점을 본다면, 둘째번 시 “미완성”에선 그의 극대 무한세계 무극태극의 역동적 숨결을 듣는다. 아니 무극태극의 음양리듬, 동과정의 반복운동, 영원회귀순환운동마져 초탈 돌파하고, 그리스철학에 사로잡혀버린 기독교 완성된 종말론마져 넘어서서, 스스로 이단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니이체의 추종자가 되는듯한 착각마져 든다.  
  이러한 ‘열려진 존재론’은 기존의 모든 절대이데올로기를 상대화시키는 비판적 안목을 준다. 이것이 그가 1950년대 한국동란을 겪으면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넷째판 서문에서 밝힌 “내 믿음이 달라진 것이다”18)라는 말뜻 중 중요한 한가지 내용이다. 함석헌은 내촌감삼의 ‘무교회 신앙’도 넘어서고, 정통기독교 교리신학종교와 종말론도 넘어선다. 그의 태도를 새로운 관점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요소가  세계주의와 과학주의였는데, ‘세계주의’와 ‘과학주의’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다른 말로하면 진리, 생명, 존재,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열린자세를 견지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같이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 영원의 미완성곡 이다. 하나님도 죽은 하나       님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바퀴가 구르는                것이다. ”19)

  위와 같은 함석헌의 하나님 이해는 현대 종교철학 중에서도 화잇트헤드의 ‘과정사상’(Process Thought)과 가장 닮았다고 보여진다.20) 과정사상에서는 ‘새로움’(novelty), '창조성‘(creativity), '창조적 전진’(creative advance), 현실적 존재의 ‘능산성’(productivity)등이 강조된다. 새로움과 창조적 전진을 감행하기 위해 현실적 존재자들은   고난이나 악을 이기고 넘어서야 한다. 물론 함석헌과 화잇트헤드의 차이도 지적되어야 한다. 함석헌은 여전히 ‘통일적 하나’를 주목하는 일원주의자 이지만, 화잇트헤드는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하는 다원주의자 이다.
  "미완성“ 시구절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구절은 제4연 끝부분의 두 구절이다:

      “자연은 언제나 완성할줄 모르는 靈感의 巨匠,
       역사는 영원히 끝날 줄 모르는 절대의 意志”

위와 같은 표현속에서 자연과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기 쉬운 단순한 전통적인 동양의 자연철학과 단순한 기독교의 목적론적 역사신학을 함석헌은 넘어서면서 통전시킨다.

  세 번째 감상할 시는 제목이 너무나 거창하고 직접적이기도 한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앞에서 음미한 두편의 시보다 짧지만 구성면에서 보면  응축된 시적 형태성이나 미학적 운율성이나 시적 상징성에서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그의 대표적 종교시이다.

     몰랐네 / 뭐 모른지도 모른  /  내 가슴에 대드는 계심이었네.

     몰라서 겪었네 / 어림없이 겪어보니 / 찢어지게 벅찬 힘의 누름이었네.

     벅차서 떨었네 / 떨다 생각하니 / 야릇한 지혜의 뚫음 이었네.

     하두 야릇해 가만이 만졌네 / 만지다 꼭 쥐어보니 / 따뜻한 사랑의 뛰놂이었네.

     따뜻이 그 사랑에 안겼네 / 푹 안겼던 꿈 깨어 우러르니 /  영광 그윽한 빛의 타오름        이었네

     그득 찬 빛에 녹아버렸네 /  텅 비인 빈탕에  맘대로 노니니 / 거룩한 아버지와 하나        됨이었네.

     모르겠네 내 오히려 모를 일이네  / 벅참인지 그득 참인지  겉 빔인지 속 빔인지 /
     나 모르는 내 얼 빠져든 계심이네.

  일반적으로 시의 창작기법에서 시제목 붙이기는  제목이 시의응집과 확장에 기여하기 때문에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제목은 피하는게 관례일 터이다. 그런데 위의 “하나님”이라는 시는 가장풍부하고 다양한 은유,비유,상징, 수사어를 동원한 짙은 서정적 종교시인데도 불구하고, 제목은 독자들에게 너무 압도적인 무거움을 안겨준다.
  문학평론가의 견해처럼  “서정시는 개인의 체험을 토대로 한 내적 고백의 장르로 인식된다”.21) 위의 “하나님” 이라는 제목의 작품역시 서정적 종교시이므로, 직접적 설명이나 멧시지전달이 아니라 작자의 체험을 전달하는 여러 가지 정서적 은유와 상징적 어휘구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그 내적 체험의 경지를 공명하도록 유도하려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 시는 함석헌의 동서양 종교체험의 진수가 녹아든 시처럼 보이며, 그의 직접적 신비체험에 가까운 종교적 황홀체험의 결과물인 듯 싶다. 그만큼 위 시는 쉬운 듯 하면서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시이다. 왜냐하면 그가 구사하는 종교체험을 나타내는 형상화된 시적 표현어구들이 평이한 것이면서도 동서양 종교철학이나 신앙체험의 진수가 미학적 상징표현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대드는 계심’, ‘벅찬 힘의 누름’, ‘야릇한 지혜의 뚫음’, ‘따뜻한 사랑의 뛰놂’, ‘그득한 빛의 타오름’, ‘텅빈 빈탕’, ‘얼빠지는 계심’ 등등이 유교, 불교, 기독교, 노장철학, 신비주의 최고 수준의 정신체험의 경지가  글자그대로 어우러져 단순히 병열적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통전된 종교체험으로 승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독자의 독서, 사색, 정신적 순례, 영적 성숙도에 따라서 그만큼  영글음의 정도대로 이해되는 운명을 지닌다.

  오늘날 21세기에 들어서서, 헤브라이즘 전통을  물려받은 아가페적 기독교 영성과 동아시아 고등종교들로서 훈련받은 지혜와 무위의 초탈적 영성이 창조적으로 만나면 어떤 음색과 형태를 드러내는 영성체험이 될 것인가 궁금해 한다. 그 기대반 우려반 섞인 호기심어린 물음에 대하여 함석헌의 ‘하나님’이라는 시작품은 시로서 가장 적절한 한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후주)

1) 함석헌 수평선 넘어, 제1판 서문에서 인용. 『함석헌 전집』, 제6권, 4쪽. (한길사, 1988)
2) 『전집』, 제6권, 4쪽.
3) 최초 활자인쇄물로 간행된 『수평선 넘어』가 1953년 한국동란 휴전협정(1953년 7월27일 서명)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던 전쟁후유증의 와중에서 함석헌의 시집이 피난집결지 항도부산에서 최초 인쇄유인물로 출판(1953.3월18일) 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발행소는 삼협문화사, 인쇄소는 삼협인쇄소, 책값는 정가 250환 이었다. 이 최초의 시집에 담겨있던 대부분의 시들은 후일 간행된 다른 출판사의 시집속에 대부분 재수록 되었지만, 몇 개의 시들은 저자에 의해 (도서출판 생각사 간행,1961) 빠지게되었다: 빠진 시들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절망의 장미’, ‘일이 없더라’, ‘가을비’, ‘가을하늘’, ‘할미꽃’, ‘결혼에 비는 마음 ’등이다.
4) 『수평선 넘어』,초판(1953), 485쪽-491쪽.
5) 『수평선 넘어』, 둘째판(1961), 245쪽.
6)  위와 같은 책, 250쪽.
7) 발(跋) 중에서, 『수평선 넘어』, 둘째판(1961), 246쪽.
8) 리챠드 팔머(이한우 역), 『해석학이란 무엇인가?』,171쪽(문예출판사, 1989)
9) 위와 같은 책, 302쪽.
10) 함석헌 시집, 둘째판, 발문, 247쪽.
11) 위와 같은 책, 248쪽.
12)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오지섭 역), 『인도의 신비사상』, 서문. (영성생활사, 1997)
13)  시의 산문적 확산과 시적응축에 관해서. 최두석, 『시와 리얼리즘』,134-137쪽.(창작과 비평사, 1996)
14) 위와 같은 책, 32쪽.
15) 대표적 종교시로서 ‘맘’, ‘썩어지는 큰 나무’,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님이 오신다’, ‘수평선 넘어’, ‘님이 가신길’, ‘님이 그리워’, ‘미완성’, ‘내집은 좁아요’, ‘님찾아 가는길’, ‘하나님’, ‘님l이여 나는 작은 등불이외다’, ‘내 맘에 오시는 님’, ‘대선언’, ‘흰손’등의 눈에 띈다.
16)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전집 제1권, 57쪽.(한길사, 1983)
17) ‘맘’의 한구절 인용.
18)  『뜻으로 본 한국역사』, 넷째판 서문중에서., 17쪽.(한길사,1983)
19) 위와 같은 책. 57쪽.
20) A.N. 화잇트헤드(오영환역), 『과정과 실재』(민음사,1991), 『열린사고와 철학』(고려원,1992), 『관념의 모험』,(한길사, 1996). 참조.
21) 김완하, 「화자와 청자」, 『시창작이란 무엇인가?』, 61쪽.( 화남, 2003).



[씨알사상 연구회, 정례발표모임, 2004년 11월13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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