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09 (22:51) from 129.206.196.81' of 129.206.196.81' Article Number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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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생명현상에 대한 신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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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지구적 생명현상에 대한 신학적 성찰

 - 생명의 개체성, 연대성, 그리고 영성에 대한 한국 신학적 모색-

김경재(한신대, 문화신학)



[1] 들어가는 말

1.1.  존경하는 일본 애농회 회원 여러분과 한국 정농회 회원여러분 앞에서, 한국의 한  서생(書生)이 생각의 일단을 말씀드리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의 맘은 신앙과 사회운동의 선배이신 오재식 선생의 강권에 의해 오늘 강연순서를 맡기로 수락하고, 준비하는 중에 큰 후회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본과 한국에서 유기농업에 종사하면서 인간 ․ 사회 ․ 역사현실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와 실천경험을 이미 해 오신  존경하는 선생님과 여러회원들 앞에 선 것이 외람된 일임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1.2.  한국 정농회를 이끌어 오신 오재길 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이 모임이 단순한 유기농법 발전과 보급을 위한 농민사회단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기독교신앙에 입각한 제3인류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매하고 선도하려는 실천적  ‘창조적 소수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농회의 출발이(1976) “하나님의 영의 강박에 의하여” 조직되었다는 자기정체성 의식,  한국정농회의 유통센터 문을 열면서(1987) “이제 정농회는 하나님을 메고 거리에 나선다는 고백”, 그리고 마침내 “정농운동은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자는 생명운동”(1993)이라는 자각 속에 여기모인 여러분들의 신앙과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1.3.  위에서 언급한 바 같은 높은 신앙과 문명비평론적 역사의식을 지닌 여러분들 앞에 강연자는 새로운 사상이나 신앙을 전해드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강연을 이미 맡은 자로서, 여러분의 기존신앙과 사상을  제가 전공하는 영역에서 어떻게 재표현 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재다짐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토막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i)  정농운동, 애농운동은 그 본질에서 ‘생명운동’ 이기 때문에,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  폴 틸리히(Paul Tillich),  켄 윌버(ken Wilber) 같은  현대사상가들의 견해를 도움받아 “생명은 어떤 방식으로 창발하고 있는가? 즉 생명운동의 세 가지 기본구조는 무엇인가?” 숙고하겠습니다.
   (ii)   근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 ‘생명운동’의 가장 치열한 사례로서 동학(東學) 최시형님의 시천주(侍天主) ․ 양천주(養天主) ․ 식천주 (食天主) 사상과, 함석헌님의 ‘씨알사상’에 대하여 언급하겠습니다.
   (iii)   애농회와 정농회가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생태자연환경보호운동을 펼쳐갈 때, 자연과 인간관계를 정립하는 관계성의 은유(메타포)로서 기존 교회윤리의 ‘청지기모델’을 넘어서서 한국의 물리학자 장회익님의 ‘중추신경계모델’에로의 전환 필요성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 생명은 어떻게 창발하고 있는가? : 생명운동의  세 가지 기본구조

  생명은 창발적이다. 창발(創發, Emergence)이라는 개념은 현대학문 세계에서 ‘복잡성이론’이나 ‘자기조직화이론’과 불가분리적으로 관련되어 주목을 받는 단어가 되었다. 자연과학세계에서  창발성이란 낮은 단계와 혼돈에 가까운 질서를 지닌 어떤 실재가 자기조직화 단계를 거쳐 점점 더 고차원의 조직구조와 복잡계로 발전해가는 것을 창발성(emergence)이라고 부른다. 예들면, 생명체가 극히 단순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육체구조로 발전해가는 형태발생(morphogenesis), 두뇌세포의 망상구조와 홀로그램적 동시다발기능, 태풍기류의 형성과 소용돌이, 점균류나 흰개미 집단행동의 예를 든다.
  자연과학자들이 밝혀내고 강조하는 ‘창발성’ 이론에 우리는 경청한다. 그것은 자연의 신비를 ‘보이지 않는 손’ 이나 ‘정향진화’(定向進化)이론과 같은 다분히 신학적 결정론과 섭리론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생명현상이나 자연현상 속에서 복잡계가 어떻게 유기체적 질서와 분자단위의 자기조직화 운동을 통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수정란은 어떻게 병아리로 성장하는가? 수정된 인간의 단세포 배아가 어떻게 근육, 혈액, 신경 등 약 2백가지의 서로 다른 세포유형으로 조성되어가며, 75조개의 세포가 어떻게 유기체적인 인간 몸을 형성하는가? 자연과학자들의  대답은 창발성이론의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생명현상을 너무나 단순하게 대답한다:  “세포는 이웃 세포를 통해 학습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복잡한 구조로 조직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의 복잡성이론, 창발성 이론에는 해명되지 않는 논리적 비약이 너무나 많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창발성(創發性)이라는 어휘는 ‘창조성’(creativity)과 ‘발생’(genesis) 이라는 두 개념의 통전(通全, integrity) 혹은 종합(綜合,synthesis)이기 때문에, 창발성이론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은 ‘창조성’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 또는 신학적 개념에 충분한 해명을 주지 못한다. 강연자는 ‘창발성’개념에 대한 자연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감사하고 수용하면서도, “창조성이란 현실재를 구성적으로 해명하는 존재론적 개념”이라고 보는 화잇트헤드의 입장을 받아드리고 있다.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언어로 말하면, ‘창조성’이란 하나님의 근본속성이기에, 항상  탄성과 감사와 찬양이 깃들어있는 개념인 것이다.
  여하튼 생명은 기계론적인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것이고,  결정론적인 것이 아니라 창발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창발적 운동 가운데 있는 생명은 어떤 역동적  운동가운데 있는 것인가?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중 한 사람인 폴 틸리히는 생명있는것들은 세 가지 기본적인 운동 속에 있다고 말한다: 생명의 자기통전운동(self-integration movement of life),  생명의 자기창조운동(self-creation movement of life), 생명의 자기초월운동(self-transcendence movement of life)이 그것이다.
  생명의 자기통전운동이란, 아메바나 모든 개체생명체가 ‘자기자신이려고 하는 운동’으로서 자기동일성과 자기정체성을 지속하려고하는 근본적인 생명운동이다. 개체가 개체로서 일정한 형태와 내적통일을 지속하지 않으면 그 생명체는 거대한 존재의 바다 속에 물방울처럼 해체 흡수당하고 만다. 저기압으로 흐르던 저기압 기류가 태풍이 되려면 나선형의 원운동을 하면서 중심을 지향하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어야 하듯이, 기하학적 모형으로 말하면  ‘생명의 자기통전운동’은 원운동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의 자기통전 운동이 인간이라는 생명단계에 이르러 주체적 자의식과 인격현상이 창발하고, 그 기능으로서 양심과 도덕의식이 발생한다. 남모르게 죄를 지은 사람이 양심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장차 신의형벌이나 사회법적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생명의 자기통전성이 깨어지고 손상당한 정신적 통증때문인 것이다.  
  생명의 둘째운동은 ‘생명의 자기창조 운동’ 이다. 이 운동은 모든 생명체가  변화하지 않고 동일한 생명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유인과 자극에 응하여 자기를 새롭게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운동이다. 모든 생명은 새로움을 지향한다. 이것이 생명의 둘째번 특징이자 신비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생명현상을 냉혹한 자연선택과 자연법칙에 대응하여 생명체가 존속과 번식을 지속하려는 자연적응 운동으로  설명하겠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법칙’이 엄연히 자연계에 존재하는데, 엔트로피 법칙을 역으로 거슬러서 보다 더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심화된 생명체가 계속해서 창발적 진화를 거듭해간다는 것은 경이로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기하학적 모형으로 말하면 앞으로 전진해가려는 선형운동이다. 수레바퀴가 돌면서도 전진하는 이치와 같다. 이 운동은 인간생명단계에서 ‘문화운동’으로 나타난다.
  생명의 셋째운동은 ‘생명의 자기초월 운동’이다. 이러한 생명의 몸짓은 생명체가 단순한 반복적 순환운동이거나, 동일 지평상의 전진운동만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려는 대각선적 비상(飛上)운동을 하려한다는 말이다.  생명은 단순히 번식하고 생존하려는 것만 아니라, 고난체험을  통하여 내면적 생명을 정화하면서 더 높고 더 숭고한 그 무엇을 지향하려는 운동을 한다.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은  생명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초극하여 질적으로 상승하려는 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인간생명단계에서 이 운동은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 현상이 종교로서 표현된다.  종교란 우주 속에서 고독한 인간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려는 자기초월운동인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것,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을 지향하려는 운동이다. 진화란   격렬하게 자기 초월하려는 대자연의 몸부림하는 과정이다. 자연은 창조적 진화과정을 통해 자기초월을 부단히 실현해 가면서 보다 새롭고, 영적이며, 아름다운 우주적 생명이라는 직물(織物)을 짷아가는 과정이라고 말 할수 있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활동 중에 있는 영이며, 창조주 하나님은 새로움을 경험하면서  기어이 피조물을 무의미와 허무의 신음으로부터 구원하려고  한다.
  ‘생명의 자기통전운동’은 서로 상관관계속에 있는 두 가지 근본운동 곧 자기중심을 지속하려는 ‘개체화’(individualization)와  창발적 과정에 참여하려는 ‘사회화’(socialization)의 역설적 긴장과 통합속에서 전개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려면, 온 우주와 역사가 거기에 관여하고 참여함으로서 가능하다. 한 개체인간이 인간으로서 사람구실하려면, 그는 지구 전체 역사의 현실과 관계 속에서 빚지고 도움받으면서 개체로서 존립한다. 개인없이 사회없고, 사회없이 개인없다. 개인구원과 창조적 자유없는 사회구원은 동물농장의 집단화에  불과하고, 사회의 인간화 없는 개인의 절대자유는 이기적 욕망의 동물왕국에 불과하다.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서로 상관관계 속에 있는 두 가지 근본운동 곧 자발적 역동성(dynamics)을 지탱하려는 충동과, 일정한 형태(form)를 형성하려는 경향성과의 긴장속에서 창발적으로 통합된다.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스스로 함’이라는 생명의 근본원리에 의하여 끊임없는 역동적 운동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무질서나 혼돈을 극복하여 일정한 법칙성과 질서와 형태를 지니려고 노력한다.  보다 고차원적인 생명체일수록, 스스로 자발적인 역동성을 지니고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기존의 생명형태와 조직체는 창발적 역동성을 억누르면서 동시에 혼돈으로 함몰되거나 해체되지 않도록 일정한 형태와 질서속에서 생명을 보존한다. 근대사 속에서 개체생명체의 창조적 역동성은 국가라는 정치경제적 형식속에서 보존되면서도 억압당해왔다. 국가라는 법적 행정적 형태(from)가 국가라는 권위를 가지고 개체생명의 창발적 역동성과 자유를 말살하고 억압할 때, 국가지상주의 극우파정치세력과 교조적 사회주의 정치가들에 의해  생명은 상처를 입고 비인간화된다. 그와 반대로, 개인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자유방임적 무정부주의나 개인주의는 인간사회를 평등과 정의없는 동물왕국으로 변질시킨다.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은  서로 상관관계속에 있는 두 가지 인간생명체험의 요소 곧 인격적 절대자유(freedom)와 인간의 자유체험을 한정시키는 제약적 운명(destiny)간의 상호긴장과 통전속에서 발현된다. 인간의 자유는 절대자유가 아니고 실존상황 속에서 언제나 유한한 자유이다. 인간의 절대자유 추구는  실존과 역사현실 속에서 언제나 난파당한다. 인간 삶 속에 깃들인 고난, 질병, 시련, 죄책, 분열, 죽음등은 인간 생명을 좌절케 하지만 동시에 한계상황을 돌파하여 초월을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된다. 성경 표현대로 하면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다”(롬5:20). 인생의 고난과 시련을 모르는 개인이나 민족은 동물적 행복을 향유할는지 모르나, 생명의 자기초월적인 경험 곧 역설적 감사, 은총, 숭고함, 거룩 등을 체험하지 못한다. 유기농과 환경친화적 자연재배 속에서 자연의 비바람과 따가운 햇볕을 이기고 영근 알곡과 과일만이 참 맛을 낸다.
  지금까지 살펴본 생명의 세 가지 기본운동과 그 각각의 상관관계적인 짝지은 관계항들을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것이 된다.

(i) 생명의 자기통전운동--중심지향 원운동--인격적 도덕의식 창발--개체화와 사회화 긴장
(ii)생명의 자기창조운동--전방지향 직선운동--창조적 문화의식 창발-역동성과 형태성 긴장
(iii)생명의 자기초월운동--수직적 대각선운동--숭고한 종교의식 창발--자유와 운명의 긴장

  위에서 분석한 생명현상을 일본 애농회와 한국 정농회의 그동안 겪고 경험해왔던 문제들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뚜렷하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유기농법, 자연농법, 환경친화적 농법에 기초한 생명운동단체로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기독교계 조직체는 원경선선생님이 세우신 풀무원 농민학교 운동, 오재길 선생이 이끄시는 한국 정농회 운동, 그리고 돌아가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깊이 관여하셨던 녹색 한 살림 운동 등이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유기농법과 생태친화적인 생명되찾기 운동에 참여하는  크고 작은 뜻깊은 생명운동단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더 오랜 역사와 경험을 쌓은 유기농 생명운동 단체와 협의회가 있는줄 안다.
  어떤 생명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할지라도, 뜻을 지닌 회원은 먼저 현대문명의 위기와 생산소비위주의 물질만능  경제제일주의에 저항하면서, 나 혼자만이라도 사람답게 바르게 살고, 바르게 생산소비활동을 하겠다는 인격적․도덕적 자각에서 시작한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더불어 삶이면서도 홀로섬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깨어서 세류에 흘러가지 않고 시류에 맞서서 진정한 한 인간생명체로서 자기통전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 생명운동은 홀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동지가 필요하고 그리하여 점차로 조직체로서 단결하게 되며, 활동을 전개하면서 농산물 소비자협의회, 지방자치단체, 국가의 정책등과 관련을 맺게 된다. 사회적 연대성과 조직의 확대가 강화될수록, 맨 처음 단독자로서 시작한 처음의 순수한 인격적 ․ 도덕적  초발심, 곧 현대사회와 문명의 병을 내 몸 안에 앓으면서 그 병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순수한 정열은 약화될 위험이 언제나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한 문제가 정농회와 애농회가 ‘생명의 자기통전’과 관련하여 ‘개체화 - 사회화’의 상관관계적(相關關係的) 긴장 속에서  겪어나가야 할 난제들이다.
  어떤 생명운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할 지라도, 뜻을 함께하기로 뭉친 단체는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의 명령에 순명하면서, 역동성(dynamics)과 형태성(form)이라는 상관관계적  긴장을 견디어 내야 한다. 한국정농회는 정관을 만들지 않고 “성경이 바로 정농회의 정관이다” 라는 유명한 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성경자체도 하나의 경전으로서 인생과 역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계시적 생명법전’ 이기 때문에 하나의 형태성인 것이다. 하물며, 다른 어떤 생명운동단체들이 갖는 조직체로서의  회칙, 정관, 이론철학, 경영합리화를 위한 조직망 등은 모두 ‘형태성’의 일종인 것이다. 앞에서 살핀대로  형태성은  생명운동의 역동성을 돕는 의복이나 그릇같은 것이지만, 그것들이 타성에 떨어지거나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탄력적 변화를 못함으로 인하여  생명운동 그 자체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역기능적 요소로 작동하기 쉽다. 유기농법에 의해 생산된, 농산물, 축산물, 가공물 등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연히 우리는 ‘유통기구’의 조직화와 전산화를 동반한 과학적 합리화를 형태성의 일환으로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애농회와 정농회가 단순한 농업기슬개발촉진연구회랄지, 단위면적 생산성을 높여 농축산가들의 경제수준을 높이자는 경제적 잘살기 운동을 넘어서는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이 그 근본 설립취지 일진데, 끊임없이 역동성과 형태성의 상관관계적 긴장을 창조적으로 극복해가는 슬기와 협동심이 요청될 것이다.  
  현대문명속에서, 어떤 생명운동단체 일지라도,  그 운동은 필연적으로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이라는 근본원리와 만나게 되어있고, 그 만남은 필연적으로 ‘자유’(freedom)와 ‘제약적 운명’(destinty)의 상관관계적  긴장 속에서 생명의 거룩함을 체험하고 증언하는 초월적 종교운동과 연계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농회나 애농회같은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농민단체운동에서 그렇다. 그 점이 일반 농어민축산가의 이익단체조직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생명자체가 단순한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며, 유기농 자연농 운동이 단순한 경제적 이윤동기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이 죽느냐 사느냐의 엄숙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가 펼치고 있는  자연농법을 통한 생명운동은  죽어가는 생명의 신음소리에 귀가 울려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염원하는 ”(롬8:21) 피조물의 깊은 탄식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생명운동은 유기농을 통한 생명 살리기부터 시작했지만, 그 궁극적 목표는 현대문명이 빠져있는 근본적인 문명자체의 질병, 곧 ‘생명은 유기체적 하나이다’라는 점을 망각한 개인과 집단과 국가의 이기주의와 무한생산과 무한소비의 ‘욕망충족 확대 재생산체계’를 바꾸어 내는 일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이란 생물학적 존재만이 아니고, 경제적 동물만이 아니고, ‘영성적 존재’임을 다시 각성시키고 사람의 진면목을  회복시켜내는 과제를 우리는 사명으로 받고 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한국의 19-20세기에 농업을 ‘생명운동의 바탈’이라고 확신하고 생명운동을 펼쳐간 동학(천도교)의 ‘시천주신앙’과  한국적 기독교의 ‘씨알신앙’ 운동을 고찰하면서 지혜를 얻고자 한다.

[3]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한국적 기독교 ‘씨알신앙’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

3.1. 동학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 체험’과 해월 최시형의 ‘양천주,식천주 신앙’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1824-1864)는 조선이 국제정치적으로는 근대화에 앞선 서양 여러 나라와  일본의 식민쟁탈이 조선민족에게 침투해 들어올 때, 문화 종교적으로는  유불선 삼교가 그 역동적 창조성을 상실하고 민중을 제도할 힘을 잃었을 때,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부패한 탐관오리들이 민중을 수탈하여 민중의 생명이 존립위기에 달했을 때, 한민족의 종교적 영성인 ‘하느님 신앙’을 회복하면서 ‘시천주, 보국안민’을 기치로 들고 일어난   한민족의 창발적 생명운동의 선각자였다. 동학(후에 천도교로 개칭)의 생명회복운동이 일본의 조선침략전략과 허물어져가는 조선왕조의 반민중적 정책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동아시아의 역사는 비극적 전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가 창조한 동학사상과 운동 속에 깃들인 높은  생명사상과 운동은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이 요즘 같은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최제우의 생명사상은 그의 특유한 종교체험이자 동학의 종지인 ‘시천주’(侍天主)에 있다.  모든 인간은 하눌님을 각각의 몸에 모시고 있는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순간, 일체의 사회적 인종적 성별적  신분차별은  철폐되어 평등한 존재로 각성되고, 공동체 생명을 질식시키는 일체의 사회적 비리와 불의를 척결하여, 건강하고 평화로운 대동세계를 만들려는 사회적 개혁운동에 몸으로 동참하게 된다.  그 운동이 1894년 동학농민 혁명운동이며, 한국 근대시민사회에로 전환하는 주체적 역사변혁운동의 효시가 된다. 최제우는 직접 그가 체험하고 동학운동의 핵심이 되는 ‘시천주’를 동경대전(東經大全)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 同事者也」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옮기지 못     할 것임을 아는 것이요, (천주에서) 주(主)라 함은 존칭해서 부모처럼 섬긴다는 것이다.”

 최제우는 당시 전래해오던 서양 천주교의 ‘초월적 유신론’이나 동양종교 일반의 ‘내재적 범신론’을 동시에 극복하여, 몸으로 모시는 하나님은 “초월적 지존자이면서 동시에 사람 생명과 뭇 생명체 안에서 생명되게 일하시는 창발적 하느님” 임을 갈파하였다. 그러므로 최제우에게서 하나님 섬기는 법도는 명제적 교리로서 머리를 가지고 수긍하는 인식적 작업도 아니고, 양심도덕의 지상명법으로서 그분의 계명을 듣고 묵종하는 칸트적 실천이성의 주인도 아니었다. 최제우가 말하는 하나님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몸으로 모시면서 살아가야 할 생명의 동반자였다. 모든 사람이 그 몸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존엄한 존재이며, 인간을 억압하고 생명있는 것들을  상하게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상하게 하고 모독하는 일이라는 자각이 순식간에 온 동학도인들에게 체득되었다. 하나님은 ‘지극한 기’(至氣)로서 생명체 몸 안에 내주하면서도, 동시에 몸 안에 유폐당하는 것이 아니라, 몸 밖의 모든 생명체와 우주만물과 기화(氣化)로서 상통하기 때문에 “생명은 개체이면서도 전체로서 하나이다” 라는 자각이 발생한다.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의 진리체험은 그의 제자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에 의해 보다 구체화되고 동학도들에게 내면화되고, 교단조직체가 더욱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종교적으로 수운의  ‘시천주’사상이 ‘양천주’(養天主)와 ‘식천주’(食天主)라는 신앙으로까지 더욱 철저하게 주체적으로 신앙고백하게 된다. 해월은 동학포덕 31년(서기1890년)동학의 여신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수도의 길로서 내칙(內則)과 내수도문(內修道文)을 직접지어서 반포하였는데 그 핵심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집안 모든 사람을 한울같이 공경하라. 며느리를 사랑하라. 노예를 자식같이 사랑하라.우마육축을 학대하지 말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한울님이 노하시느니라.
둘째, 조석반미(朝夕飯米)를 낼 때에 한울님께 심고(心告)하라. 청결한 물을 길어 음식을 청  결하게 하라.
셋째, 묵은 밥을 새 밥에 석지 말라. 흐린 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 코와 침을 함부로 뱉지  말라.
넷째, 금이 난 그릇에 먹지 말고, 이 빠진 그릇에 먹지 말고, 살생하지 말고, 세 번 식사를 부모님 제사와 같이 받들라.  
다섯째, 모든 사람을 한울로 인정하라. 손님이 오거든 한울님이 오셨다하고, 어린아이를 때  리지 말라. 이는 한울님을 치는 것이니라.
여섯째, 잉태 있거던  몸을 더욱 조심하되 아무것이나 함부로 먹지 말라. 만일 불결한 것   을 먹으면 병독이 미치어 출생 할지라도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느니라.
일곱째, 다른 사람을 시비하지 말라. 이는 한울을 시비하는 것이니라. 무엇이든지 탐하지    말고 근면하라.

  특히 양천주(養天主) 사상은  해월이 가르친  내수도문 중에서 아이를 잉태한 부녀자들이 자기가 잉태한 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모셔야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설파된 사상이다. 최시형은 태아란 부모의 기(氣)를  받아 모체를 빌려 생기는 시천주이며 소우주에 안겨진 양천주(養天主)라 하였다. 태아는 종자의 생명(싹)과 같고 모체의 자궁은 상제의 궁전과 같으니, 산모는 성경신(誠敬信)의 마음으로 양육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요즘 세태와 비교하건데, 어린아이를 자궁에 잉태한 산모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임신중절 수술을 아무런 양심가책없이 다반사로하는 생명경시풍조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우기 임시중절수술이 산모의 인명경시풍조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료수가 (醫療酬價) 이익 챙기기 때문이라는 현실은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해월의 식천주(食天主)신앙은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다”는  고도의 영성을 체득한 도인들의 생각표현이니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이다.  해월에 의하면 사람만이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 생명체가 한울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영물은 사람뿐이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기만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곡백과의 자양분을 섭취해야만 사람이 살수 있는 것이다. 오곡은 천지의 결실이기 때문에, 사람은 이러한 천지의 결실을 먹어야 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결국 하늘은 사람에게 의존하고 사람은 먹는 음식에 의존하니, 이것을 일컬어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以天食天)고 일컫는 것이고, 동학에서는 밥 한그릇의 의미를 알면 모든 진리를  터득한 것이라고 함도 그와 같은 이치이다.  동학의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다”는 가르침은 보통사람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성례전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다소 이해될 뿐 아니라, 동학적 생명관과 신관이 더욱 철저하게 언표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동학의 음식에 관한 사상은 오늘날 ‘먹거리’를 가지고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각종 농약과 장기보존 목적으로 유해 화학약품을 남용하는 세태에 비교할 때, 얼마나 생명사상에 투철한 것인가 놀랍도록 감명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국 정농회가 1987년 11월17일 ‘유통센터’의 문을 열면서 오재길 회장과 회원들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였던 것을 문헌기록에서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87년 11월 17일에 유통센터의 문을 열면서 이제 정농회는 하나님을 메고 거리에     나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생산한 쌀, 채소, 과일 그것들은 내 안에 계시     는 하나님의 변신이라는 것이고, 그리된 연후에 상대편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뜻입니        다.

정농회는 기독자들의 모임이고, 기독자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면면이 이어오는 한민족의 시천주, 양천주, 식천주의 생명론적 하느님  신앙전통이  맥박치며 흐르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었다. 이제 한국 기독자들의 생명운동의 스승이요 대부라 할 수 있는  함석헌님의 씨알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3.2. 자연농의 생명운동에서 본 함석헌의 씨알사상

한국의 자연농운동의 제1세대들이랄 수 있는 유달영, 원경선, 오재길, 장일순등은 함석헌과 동시대인들로서 함선생은 그들의 스승이거나 신앙동지였으며, 음으로 양으로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함석헌(1901-1989)은 한국 개신교 120년 역사에서  배출한 탁월한 종교사상가, 역사철학자, 시민운동가이지만, 그의 사상은 ‘씨알’이라는 단어를 통해  조형되어 갔다.
 본시 ‘씨알’이라는 단어는 함석헌의 스승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 1890-1981)가 1950년대 초, 고전강의 「대학」(大學) 경문(經文) 첫구절 중 ‘재친민’(在親民)을 순수한 한글어로 풀이하면서 한 말 “씨알 어뵘에 있으며”에서 유래한다. 다석은 대학 경문 첫 구절을 아래와같이 독자적으로 풀이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한 배움의 길은 속알 밝힘에 있으며, 씨어뵘에 있으며, 된데 머뭄에 있느니라)

‘씨알’로 읽지만 본디는 ‘씨’로 표기하기를 주장했다. ‘씨알’은 아시아적 농경문화의 정신풍토 속에서 발생한 생명신앙의  메타포(은유)이자 가장 실제를 닮은 생명체이다. 다석이 한번 영감을 얻어 ‘씨’이라는 어휘를 드러내자, 함석헌은 그 어휘 안에 철학적, 신앙적 혼을 풀어넣고 심화시켰다.
    첫째, 씨알은 모든 겉치례를 다 벗어 버리고  남는 생명의 알짬이다. 곡식의 낟알을 손바닥에, 밥상위에  올려놓고 보면 둥그스름한 모습이 우주를 닮았고, 싹이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든 식물의 전 과정이 마지막에 ‘씨알’ 하나 얻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식물 속에서 잎, 꽃, 과즙을 얻지만, 정작 식물 그 자체의 구경목적은 ‘씨알’을 제대로 영글게 하자는데 있다.  씨알은 모든 겉치례, 사회적 페르소나(persona,마스크)를 넘어서 있다. 순수한 사람, 맨 사람, 인간의 순수성과 본래성을 담지한 존재를 말한다. 하늘과 땅의 정기를 한데 모아 영물로서 영글었기 때문에 ‘스스로 함’ 이라는 생명의 자유를 본성으로 지닌다. 씨알은 맷돌의 무게에 짓눌려 가루로 부셔질지언정, 스스로 아귀를 트려고 자기 자신을 열기 전에 그의 속맘을 빼앗아 갈자가 없다.   
    둘째, 씨알은 매우 종교적인 메타포이다. 함석헌의 해석에 의하면, ‘씨’의 이라는 글자에서 위에 있는 큰 원(O)은 ‘초월적인 하늘 ’을 표시하고 그 아래 가운데점 모음( ․ )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를 표현하고 맨 아래 자음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라고 해설한다. 씨알사상에서 보면 ‘민’(民)은 국가주의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사회적 최소단위체가 아니라, 브라만과 아트만을 하나로 통전시켜 체험하는 영적 존재이며, 우주적 존재이며, 기독교적 입장에서 말하면 영이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통 속에 있는 ‘신령한 존재’이다. 그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집’이 된다.
    셋째, 씨알은  ‘무한한 가능성’을 그 안에 담지한 생명체이며, 전체가 그 안에 있고, 전체 과거 역사를 자신 안에 나이테로 간직하면서, 더 큰 생명의 주인의 뜻을 헤아려가면서 다른 씨알들과 연대하는 ‘더불어 삶의 존재’이다. 함석헌의 해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씨알은 선(善)을 혼자서 하려하지 않습니다. 씨알은 너나가 있으면서도 너나가 없습니다.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닌 것이 참 마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안에 있고, 전체는 우리 하나 하나 속에 다 있습니다.” 씨알은 하나의 세계를 믿고, 그 실현을 위해 세계의 모든 씨알들과 손을 잡기를 힘쓴다고 함석헌은 선언한다. 유기농, 자연농 운동을 통해 생명운동을 하려는 모든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넷째, 씨알은 하늘(하나님)과 감응하고 통하면서 역사라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고, 펼쳐나가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지닌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불교적 화엄사상이 말하는 존재의 유기적 일체성과 개체 안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사상을 공유한다. 그러하면서도, 씨알사상은 역사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땅위에, 민초들의 맘 속에 이루어질 때까지, 불의의 세력에 저항한다는 ‘비폭력적인 진리의 선한 싸움’을 강조한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국가나 역사의 진정한 주체와 주인이 씨알이라고 보기 때문에, 닫혀진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인류가 하나되고, 동아시아 씨알들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날을 비젼으로 내세웠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보면, 하나님 ․ 역사 ․  씨 그 세 실재는 구별되어야 하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존재전체를 ‘하나’로 볼 때, 하나님은 그 ‘하나’를 맨 꼭대기에서 이름하는 것이요,  역사는 운동과정 속에서 이름하는 것이며,  씨은 맨 밑바닥에서 이름하는 것이다. “씨은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 흙묻은 것이다”라는 은유적 표현에서도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있다.   함석헌의 생명사상을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좀더 과학적으로 표현해서 말한 사람이 한국의 물리학자 장회익이다.

[4] 장회익의 온생명론에서 인간의 위치: 중추신경계 비유론

 장회익은 경북 예천출신(1938년생)의 한국의 중진 자연과학자 중 한분이다.  미국 루이지아나 주립대학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취득(1969) 한 후 ,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교수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겸임교수로 다년간 모교에서 봉직한바 있다.  최근 그의  오랜 사색의 결실로서 ｢삶과 온생명｣(1998)을 세상에 내놓아 지구촌의 최대과제인 생태친화적 문명건설을 위한 자연과학적･인문사회과학적 학제간 연구서로서 세인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학자로서의 장회익이 오늘의 문명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의 단초를 제시할 때, 단순한 철학적 사유 또는 종교학적 직관만이 아니라 철저한 자연과학적 사고의 기초 위에서 “지구라고 부르는 온생명체 속에서 인간의 위치는 무엇인가?”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강연자는 특히 그의 독특한 비유론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種)은  지구라고 부르는 온생명체 안에서 중추신경계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라는 은유적 명제를 음미하려고 한다.

4.1. 온생명과 개체생명 관계, 그리고 인간 출현의 의미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생물학적, 철학적, 종교적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명에 대한 잠정적 정의가 가능할 것이다. 장회익은 이론 생물학자 로위(G.W.Rowe)의 생명에 대한 총괄적 정의를 우선 소개한다: 생명은 대사(代謝,metabolism), 생식(生殖,reproduction), 진화(進化,evolution)라는 세 가지 활동적 특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하나의 실재현상이다. 생명체는 주변으로부터 자유에너지를 흡인하여 이를 자체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대사작용을 해야 존속한다. 동시에 생명체는 개체의 유한성을 극복하기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복제능력을 지녀야하며, 진화능력 곧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세대를 거쳐가면서 변이와 자연선택에 대한 적응력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장회익은 이론생물학자 로위의 총괄적 생명정의를 받아드리면서도, 그러한 생명에 대한 정의는 ‘개체적 생명체’를 독립적으로 상정하고서 관찰되는 생명존립의 필요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점점 더 명료하게 밝혀내는 바처럼,   “생명의 참모습은 단순한 개체적 생명체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총체적 단일체로 이해되어야 할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닌다”고 장회익은 강조한다.
 장회익의 지론에 의하면, 개체생명을 가능케하고 출현시킨 조건이자 모태이며 개체생명과 상호관계성을 지닌 ‘총체적 단일체로서의 전체생명’을 ‘온생명’(global life)이라고 부른다. 현대과학이 밝혀준바에 의하면, 우주는 약 150억년 전에 탄생하여 계속 팽창중이며, 약 50억년 전에 태양계가 형성되어  태양과 지구사이에 일정한 온도차이가 유지되면서 지속적인 자유에너지의 흐름이 조성되어 그 어떤 부분적 질서형성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위에 지질권이 일정기간 조성된 후에, 지금부터  대략 35억년 전에 생명이라는 현상이 출현하게 되었고,  생명은 긴긴 진화단계를 거쳐 약 250만년전에 인간종을 탄생시키고, 지금부터 약 10만년 전에는 비록 아주 기초적인 초보 원시단계지만 현대인류와 본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도구사용, 언어생활, 예술과 종교활동을 하는 현생인류가 지상에 출현하였다.
 장회익이 ‘온생명론’을 통하여 기존의 생명개념과 자신의 생명이해를 구별하고 또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생명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현상을 개별적 생명체로 보려는 지금까지의 발상보다는 ‘하나의 전일적 생명실재’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 전체생명을 ‘온생명’이라 부르고 개별 생명체와의 관계를 설명하려한다.       온생명(global life)과 개체   생명(individual life)의 이해는 상관관계적(corelational)이고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 구조 속에서 파악되지만, 발생학적으로 보거나 존재론적으로 보면 개체생명은 온생명의 부분생명이고 온생명의 역동적 관계성에 의존적이며, 온생명계 내에서의 부분적 국소질서(局所秩序)에 불과한 것이다.
 장회익의 온생명론적 생명이해는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예수회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의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그 미래‘에 관한 명상적 소견과 흡사한 바가 많으며, 사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샤르뎅 견해와도 약간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도 장회익과 같은 과학자로서 지구진화과정은 몇 단계의 결정적 임계점을 통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먼저 지질권(geosphere)이 형성되었고, 그다음에 생물권(biosphere)이 형성되어 오대양 육대주와 공중과 땅 밑까지 생명체의 군집이 이루어져서 우리가 말하는 생태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이 생물권 속에서부터 정신이 발생하여  정신권(noosphere)이 지구를 덮어가고 있다. 정신권이란 다름아니라 인간이라 부르는 생명종이 출현하여 정신적 ･물질적 문명과 문화를 이루면서 글자그대로 지구표면을 완전히 덮어가고 정신적 층을 이루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에 의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근원적 실재는 정신성으로 드러날 실재의 내면기구(內面機構,Within)와 물질성으로 드러날 실재의 외면기구(外面機構, Without)를 동시에 자신 안에 지닌 ‘우주적 근원질료’를 상정한다. 그 질료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외면기구’는 복잡화(complexification)과정을 그리고 ‘내면기구’는 집중화(interiorization) 과정을 겪으면서 마침내 인간의 두뇌기구라는 복잡화과정과 병행하여 ‘반성적 사유능력’을 가능케 하는 ‘정신’이 출현한 것이다. 장회익은 샤르뎅의 진화론적 실재관과 자기의 온생명론의 유사성을 스스로 이렇게 증언한다.

   샤르뎅은 ‘생물권’(biosphere) 개념에 이어 다시 독자적인  ‘정신권’(noosphere)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을 통해 나타난 정신 또는 마음의 세계가 생물권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이러한 개념들과 온생명을 관련짓자면, 온생명이란 ‘신체’로서 그가 말하는 ‘생물권’을 지니며 ‘정신’으로서 그가 말하는 ‘정신권’을 지니는 하나의 성장해가는 전일적 생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장회익은 스스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지질권･생물권･정신권이라는 구조를 지닌 전일적 생명이 그가 말하려는 ‘온생명’개념이라고 동의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신은 그의 신체로서 ‘생물권’만 아니라 ‘지질권’을 내포한다. 그리고 ‘정신’은 아직 잠든 상태로, 또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로, 또는 아직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미미한 상태로 이미 ‘지질권’과 ‘생물권’ 속에도 현존해 있었다.

4.2. 온생명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사명

장회익의 ‘온 생명론’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온 생명’이라는 거대한 유기체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단순히 진화곡선상 최고수준에 도달한 진화사닥다리의 정점이라는 은유만이 아니다.   ‘온 생명’(global life)을 하나의 거대한 지구신체로 비유할 때, 인간은 그 신체기관 중 ‘중추신경계’에 해당한다는 과감한 과학적 은유를 제시한다는 점에 그의 생태학적 영성론에서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성이 있다.
    인간은 최고단계에까지 진화한 생물체임에 틀림없지만, 개체생명으로서나 인류종으로서나 자립자존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온생명이라 부르는 더 큰 유기체적 생명체 안에서 인간생명 이외의  차원이 낮은 실재들 곧  광물, 식물, 동물, 곤충, 미생물등  ‘보생명’(補生命)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보생명계’는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생태계안에서 엄연한 ‘생명계’인 것이다. 인간을 둘러싼 주위 생태계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보생명체’라는 자각은 아직 인류에게 충분하게 인식되어 있지 못하다. 과학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자연환경 관리’개념이 지배하고, 기독교적으로는  ‘창조세계를 책임적으로 위탁관리맡은 청지기론’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장회익의 생태론적 영성론에서 ‘중추신경계 비유론’을 이해하려면 개체 인간생명체 안에서 중추신경계가 어떤 기능을 감당하는가 먼저 생리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되어 있다. 중추신경계는 말초신경계인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으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종합판단하여 처리하고, 몸을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정보지시를 총괄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척수는 신경이 모인 굵은 신경다발로서, 뇌와 몸의 각부분에서 정보를 받고 대응명령을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중추신경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뇌는 두개골로 보호되고, 척수(脊髓)는 추골(椎骨)이 결합하여 활모양으로 된 척주(脊柱) 속의 골질통로(骨質通路)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은 따로  척수에서 시작하여 추골사이를  지나는데 나중에는 합체(合體)하여 31쌍의 척수신경을 형성한다.
  우리 몸의 유기체적 구조 중에서 수집된 정보의 종합판단과 신체를 보호하고 건강하게 지탱하기 위해 적절한 명령하달을 내리는 기관은 우리 몸의 각종 기관 중에서 오로지 ‘중추신경계’ 뿐이다. 오늘날 뇌와 마음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하면, 두개골에 담겨저있는 뇌세포덩어리나 척수가 곧바로 정신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자기의식과 종합판단 행위에 있어서  ‘중추신경계’가 결정적 역할기능을 감당한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진실로 판명되고 있다. 이제 장회익의 온생명론에서 인간이라는 생물종을 ‘중추신경계’라고 비유하는 탁견을 귀담아 들어보자.

   (그러나) 인간은 온생명 내의 한 개체로서 단순히 온생명에 의존하여 그 생존 이           나 유지해가는 존재가 아니다. 의식과 지능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은 최초로  자기자      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지니게 된 집합적 지식을 활용하      여  자신이 속한 생명의 전모, 즉 온생명을 파악해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온생명의 입      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결코 예사스런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신을 파악하       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은 곧 자기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생명의 의식주체로서 온생명 안에서, 마치 신체 내에       서 중추신경계가 지니는 것과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것은 생명의 역사 전체     를 통해 볼 때, 생명의 출현만큼이나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회익의  온생명론에서 인간위치를 ‘중추신경계 비유’로서 설명하는 생태학적 영성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 인간종(人間種)은 이제 비로소 지구라고 부르는 ‘온생명체’ 안에서 지구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몸으로서 이해하는 의식단계, 곧 중추신경계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자기의식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윤리적 권장사항이거나 은유법이 말하는  수사적 담론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실질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의 신체적 몸에 해당하는 ‘지구생명’(온생명)을  해치고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행위는 ‘자살 또는 자해행위’가 된다.
    둘째, 인간 개체생명체에서 ‘중추신경계’가 만약 자기 자신만의  존립번성을 목적으로 하여 무한증식을 할 때, 악성종양과 같은 질병을 가져올 것이다. 중추신경계는 온생명의 안전과 건강유지 지탱에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정보처리와 종합판단을 통해 몸 전체를 돌보는 ‘봉사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악성종양이란 신체전체의 균형발전을 무시하고, 신체질서와 균형을 교란시킬만큼  급속한 세포분열을 통해 몸을 망치는 생리적 부조화인 것처럼, 인류는 무한성장과 탐심과 자기중심적 이기심에 의하여 ‘온생명’을 치유불능의 악성종양 환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생태학적 영성이란 다름 아니라 장회익이 말하는 ‘지구생명’(global life)을 인간개체와 인류종을 탄생시킨 모태적 지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온생명’을 전체적 자기반성적 의식에서 ‘전일적 생명체’로서 자신을 파악하는 ‘중추신경계’ 역활을 감당하려는 깨달음을 말한다.  “무엇이 선이며,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의 가치판단문제가 윤리학의 기본이라 한다면, 선과 정의로움의 판단척도 또한 기존의 도덕률을 넘어서서 “생태학적 윤리의식‘을 지님으로서 ’지구생명‘을 살리고 지탱하며 건강하게 하는 것이 선이고 정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21세기 생태학적 영성문화를 이뤄가려 할 때, 근대이후의  ‘역사의식’을 무시하고서 소박한 낭만적 자연주의에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적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고 또한 불가능하다. 다른 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개체 안에 전체가 있고 모든 생명은 유기적 관계그믈망 관계라고 파악하는 ‘전일론적 동양적 세계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종의 책임을 ‘중추신경계 모델’로 전환시켜 가야 한다. 생명문화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계에서 이해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설정 모델은 지금까지는  ‘청지기모델’  이었지만, 21세기는 ‘중추신경계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추신경계의 존립과 건강유지가 온몸의 영양제공에 힘입어 지탱되면서도, 그는 단순한 신체의 부분이 아니고 몸 전체의 메카니즘을 파악하는 ‘초월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애농회-정농회 년례 정기모임, 제주, 2005.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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