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9 (06:06) from 129.206.197.55' of 129.206.197.55' Article Number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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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순례자 탐구: 어거스틴, 엑하르트, 프란시스,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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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순례자 탐구(1): 어거스틴, 엑하르트, 프란시스, 이냐시오  


     
첫 번째 순례:

           네 마음의 빛이 어둡지 않은가 점검하라
                - 성 어거스틴의 영성순례 이야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의 탐험가

성 어거스틴(354-430)의 이름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타종교인이든 한번쯤 들어본적 있을 만큼 인류정신사의 한 거성 이었다. 그는 AD. 4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5세기 중반까지 74세를 살았던 기독교 교부였지만, 그의 사상적 영향은 그의 죽음이후에도 기독교역사 1500년동안 큰 영향을 미쳤고, 또한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는 놀라운 사상가이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철학자요,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성직자이며, 수도사적인 영성가였고, 현대 분석심리학자들도 놀라워하는 인간의 심층심리를 다룬 영혼의 치유자였다. 어거스틴은 중세 스콜라 신학의 최대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이스테르 엑하르트에 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의지하는 큰 스승이었으며, 현대 사상가들에게도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hagaste, 오늘날 알제리아의 작은도시 수크아라스)에서 경건한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Monika)와 출세지향적인 이교도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사이에 태어났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라고 말하면 가장 문명화가 덜된 흑인들이 사는 검은대륙 이라고 알고 있지만, 고대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를 영위하고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고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면서도 안으로는 도덕적 타락․권력투쟁․노예반란으로 무너져가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유럽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대 로마제국은 쇠퇴해가고 있던 시대였지만, 북아프리카 큰 도시 카르다고(Carthage) 항구를 통해 제국의수도 로마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도시 밀란(Milan)까지 로마제국의 중심부로 통하는 해양통로와 육로가 발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태생의 큰 불꽃 어거스틴은 천재성을 지닌 청년이면서, 정력도 또한 절륜하여 그의 성적 에너지는 단순히 육체적 에너지의 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그칠줄 모르는 정신적 진리추구의 에너지 원천이었으며, 마침네 그 성적 에너지가 승화되고  변화되자, 창조적 사상과 불휴의 명작들로 쏟아져 나오게되는  생명의 힘을 가졌다. 그는 31세 때(385년) 밀란의 수사학 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32세때(386년) 회심을 경험하고, 37세때(391년) 히포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의 장년기 절정이던 43세때(397년)  인류역사의 불휴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고백록』(Confession)을 저술하였다. 『고백록』은 단순히 개인의 종교적 참회록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회상하면서 인간, 역사, 진리, 어둠, 시간, 영원, 구원, 신등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깊은 통찰력을 보이면서 진술한 영성적 명상철학서라 할 수 있겠다.
  어거스틴이 우리에게 가깝게 와닿고, 과거의 사상가가 아니라 현대적 사상가로 느껴질만큼 생생한 이유는, 그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긴 구도자로서의 치열한 삶의 고뇌와 진솔한 자기 성찰이 우리 자신들의 내면적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번에 기독교 신앙을 수용한 회심가가 아니였다. “자녀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를 가진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그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덕만은 아니다. 어거스틴은 육체의 정욕에 탐익하면서 쾌락을 즐긴 경험도 있으며, 깊은 회의주의에  빠져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대주의에 전락한 경험도 있으며, 삶의 모순을 선악 이원론으로 구별하여 흑백논리로 합리화 시켜버리려는 이단종파 마니교에 빠진 적도 있으며, 신풀라톤주의  철학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마침네 그가 도달한 마음의 평안은 자기 밖에서만 찾던 진리가 사실은 자기 영혼 안에 이미 빛으로 있음을 깨닫게 된 때부터 였다.  밖에서 찾던 하나님이 자기보다 더 가까이 자기와 가깝게 계시면서 빛과 생명과 진리로 자기영혼을 감싸고 비추심을 깨닫게 된 때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 첫페이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 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고백록 1:1)

위의 짧은 한 문장은 『고백록』의 전체 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의 전체 사상을 대표하는 문장이라고 『고백록』을 한국어로 번역한 선한용교수는 바르게 지적한다.

  존재는 비존재 보다  선하고 아름답고 근원적이다

어거스틴의 영적 순례과정에서 항상 부딪혔던 근본 문제는, 인간본성 안에서와 역사 현실 속에서 무서운 파괴적 힘으로 경험되는 어두운 세력들 또는 악의 현실들이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개인의 힘으로  처리 할수 없는 ‘운명의 힘’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악령의 힘들이 개인과 집단을 조종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삶의 부조리와 역사의 어두운 세력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선남선녀들은 자기들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이 어두운 힘들의 실재를 어떻게 하던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들중 가장 오랜 해결방식은 ‘선악의 두원리’가 우주 속에는 있으며, 우주와 역사와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선악 두원리의 싸움터라고 보는 이해이다.
 그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일찍이 페르샤의 조로아스터 종교에도 있었고,   영지주의 신비 철학에도 있었고, 어거스틴 시대 풍미했던 마니교도 그런 생각이며, 현대 한국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사탄론로 그런 입장이다. 선악이원론을 가지고 보면 일단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 일들이 횡횡하는지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사이비 합리주의 사상이 치뤄야하는  댓가는 크다. 우선 개인과 사회의 악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분담하려는 책임의식이 없으며, 모든 책임을 내 밖에 있는 악의 세력들, 사탄의 세력들에게 돌려버린다. 그리고, 악한 힘들의 횡포 앞에서 인간의 선한 의지는 매우 약하고 무능력하다는 패배주의가 지배한다.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역사의 죄과를 개선해가려는 적극적 노력이 결여된다. 쉽사리 숙명론에 빠지고, 역사현실 도피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마침네 그럴듯한 선악이원론을 부정한다. 그런 생각은 인생과 역사현실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포기하고, 쉽게 모든 문제를 풀어버리려는 싸구려 합리주의적 사고이다. 여기서 합리주의라 함은 이성적 합리주의가 아니라, 세계관의 형이상학적 기본가설에 입각한 논리적 합리주의를 의미한다. 어거스틴은 인간존재는 유한하지만 인격적 책임을 지는 ‘의지적 존재’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인간성의 저 깊은 무의식 안에 자리잡은 어두운 의지를 간파해 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통하여 ‘악한 습관’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고 강력한지를 경험하였다. 인간의 잠재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마음의 깊이에서 일어나는 힘들을 인간의 의식이 모두 맘대로 통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거스틴은 알고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어두운 파괴적 힘이 악마의 작난이거나 악령들의 소행이 아니라, 인간이 책임져야 할 죄의 힘이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 내가 산자의 땅에서 햇빛을 받으며 오늘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선한 것이고 좋은 것이고 아름답고 찬양할 신비한 일이라고 본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  내가 얼마나 성공한 사회적 신분을 누리고 있는가의 평가등은 둘째문제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영성은 ‘여기․ 현재’에 내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자체를 놀라움과 감탄으로 다시 생각해보라고 우리를 권고한다. 현대인들은 내 손에 얼마나 많은 소유물이 들려있는가에 따라서, 내 존재의 확실성이 보장된다는 착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알고보면, 과거시간은 이미 흘러가 버려서 이미 없고, 미래시간은 아직 오지 않아서 내겐 없고, 무한 공간 속에서 지금 순간을 살고있는 것이 유한한 생명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입학시험에 떨어졌다고, 가난과 질병에 쪼들리고 시달린다고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한국 카톨릭시인 구상시인의 시한줄을 인용해서 말한다면 어거스틴의 사상이 도리혀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아 난다.

       나는 그 풀꽃과 더불어 / 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 / 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 / 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 / 이제 여기 존재한다.

                                  - 구상의 시 「풀꽃가 더불어」마지막 절에서-

 진리자체이신 하나님을 네 밖에서 차지말고 네 영혼 안에서 만나라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 후기에 신풀라톤주의 사상과 접맥하였다. 신풀라톤사상은 고대 헬라철학자 플라톤의 기본사상이 알렉산드리아의 프로티누스(Plotinus, 205-270)라는 철학자에 의해서 다시 조명된 사상이다. 플로티누스는 우주만물은 ‘근원적 일자’(一者)의 유출(流出)로 인해 만물이 생겨났고, 만물은 다시 자신의 본원인 일자에로 환원하려는 운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본래 자기의 본향을 찾아가려는 열망으로 넘쳐나며, 진리의 빛의 조명을 받아 육신적 감각의 제약을 극복하고 영혼의 본향을 찾아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신플라톤 철학사상은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이원론을 극복한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특히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이데아 세계로부터 오는 ‘빛의 조명설’과 ‘영혼의 상기설’은 어거스틴이 기독교신앙으로 전향하는데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어거스틴의 영성수련 경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진리 또는 종교의 궁극적 실재를(그 이름이 하나님, 불성, 알라, 존재자체등 그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 밖에서 찾지말고, 자신의 영혼 안에서 찾으라는 경고이다. 진리자체는 이미 내 영혼 안에서 진리의 빛으로 빛나고 있지만,  내 영혼이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 빛을 보지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현대 한국 종교적 상황은 궁극적 진리를 종교경전, 종교의례와 전통, 교리체계, 세계질서, 우주 에너지나 법칙등등 밖에서 찾으려고 모든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예수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펴보라”(눅11:36)고 경고했고, 부처님은 마지막 입적할 때 “각각 자기의 마음을 등불삼아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제자들에게 타일렀다. 어거스틴은 바로 그것을 다시 그가 살던 제4세기 사람들에게, 그리고 문명의 휘황찬란한 빛 때문에 도리혀 인간 내면적 빛이 가장 어두운 시대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네 영혼의 빛을 점검하라”고 다시한번 충고하고 있다.


두번째 순례:

앗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 영성의 향기


I. 성 프란체스코는 어떤 사람인가?

 이딸리야의 북부산악지방인  움브리아 고원의 산골마을 앗씨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 of Assisi, 1182-1226)의 영성을 일별하고자 한다.  조용히 기독교 역사 2,000년을 뒤돌아볼 때,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기독교 영성의 백미를 보여주며,  생동하는 영성적 향기를 변함없이 발하는 인물은 성 프란체스코이며 그의 수도정신을 뒤따르는 프란체스코  수도승단임에 틀림없다.  특히 그들은 ‘프란체스코 수도회’라고도 부르지만, 수도회에 속한 수도자들이 스스로를 ‘작은 형제’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여 ‘작은 형제단 수도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목할만한 일은 20세기 전체 지구촌의 자연환경위기와 생태계 파괴라는 대재앙에 직면하여 현대인들은 성 프란체스코의  영성적 삶을 다시 깊이 주목하여 높이 평가하며, 오늘에 그 영성을 보급하고 심화시켜야 한다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13세기 초, 중세  가톨릭교회 교권이 그 참신한 생명력을 탕진하고 교권주의와 종교적 권력욕에 사로잡혀 영적 힘을 잃어가던 위기 시대에, 이딸리아의 북부 지역  움브리아(Umbria) 고원이 눈앞에 널리 펼쳐진 앗씨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탄생했다. 아버지 베르나도는 유능한 포목상인이었는데, 고향에 큰 포목상점도 운영하는 야심있는 사람이었으며, 어머니 피카(Picca)는 명성있는 가문출신의 여성으로서 품위와 경건성을 몸에 지닌 여성이었다.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청소년기를 구김살 없이 지날 수 있었으며, 재능과 인물이 출충하여 마을 처녀들의 맘을 설레이게 하며, 많은 남자친구들과 사귀는 총망받는 인물이었다. 가업인 포목상점을 운영하는데도 일가견을 보이며 유능한 사업능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7세 되던 해와 20세 되던해, 두가지 중요한 삶의 체험을 한다. 하나는 중세 지역전쟁 페루기아(Perugia)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1년가까이 감옥포로 생활을 한 경험이고, 또 하나의 경험은 건강하던 그가 원인모를 열병에 걸려 사경을 해메다가 회복된 경험이었다.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외면세계에 관심을 집중하던 프란체스코가 이제 말 수가 작아지며, 침묵과 사색의 청년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석하게 잘놀던 그가 홀로있으면서 깊이 내면세계를 응시하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전기(傳記) 작가들에 의하면, 프란체스코의 삶이 결정적으로 변화된 계기는 그가 27세 전후가 되었을 때 경험한 특별한 영적 체험이 그의 삶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명상적 생활이 몇 년간 지속되다가, 1209년 2월 어느날 교회 미사 예배시간에 그는 초월적 영음(靈音)을 들었으며, 예배시간에 그날 미사를 집례한 신부가 선택해서 읽은 복음서의 예수말씀(마태10:7-13)이 자기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왔다.  들려온 영음은 “프란체스코야, 내 집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내집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라”는 영음이었고, 읽은 성경본문은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전하되, 전대(錢臺)에 금은동을 가지지 말고 두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지 말고 마을을 돌며 복음을 전파하라”(마태복음 10:7-10)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코는 영음(靈音)을 들었을 때, 첨엔  아씨시 교외에 서있는 실지로 허물어져 가는 성다미아노 교회당 건물수리로 알았으나, 뒤엔 타락해버린 영적교회를  바로 세우라는 명령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청빈을 제1덕목으로서 실천하여 명예욕과 권력욕으로 타락한 교회를 청빈과 순결의 덕을 가지고 쇄신하라는 소명으로서 받아드리게 된다.   
  프란체스코는 실천의 사람이었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요, 주님의 주신 영음인줄 확신하자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얼마전까지는 부유한 가정의 촉망받는 귀청년이었으나 이제는 호화롭던  고급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생활을 가장 검소하고 단순하게 하는 수도사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주위에는 그의 생각과 사상에 동의하는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을에 나아가서 “형제여, 주님은 그대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라는 말만 건내도 큰 감명을 마을사람에게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회개운동과 놀라운 질병의 치유기적도 나타났다. 프란체스코 주위에는 남자들만 모이지 않고 여성들도 수도정신에 따르려고 모여들었다. 귀족의 딸 클라라(Clara)는 프란체스코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애모하여 따랐으니, 후일 여성 프란세스코 수도회인 제2교단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란체스코의 수도회운동이 점점 그 가입자 수가 불어나고 조직이 커지자, 프란체스코는 로마에 가서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인노센트3세를 알현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과 회개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수도회로서 공식 인가를 받았다. 프란체스코수도회의 모든 회원이 꼭지켜야 할 중요한 서원과 수도회정신은 청빈, 정결, 사랑의 봉사, 순명 (順命), 그리고 노동이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딸리야 국경을 넘어 온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단순한 삶, 청빈한 삶, 실천적 사랑의 봉사, 말만 앞세운 설교가 아닌 노동의 신성한 정신, 남녀 재가수도자(在家修道者)들로 구성된 제3수도회 설립정신등은 교회의 속화(俗化)를 막고, 사회를 새롭게 하는데 큰 샘물이 되었다. 성자 프란체스코는 생의 말년에  그의 주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당한 고난의 상흔을 직접 몸에 체험하는 신비체험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형제자매인 안젤로, 레오, 그리고 클라라가 임종하는 가운데 영민하였고, 그의 주검은 그의 유언을 따라  시신에게 입히는 별도의 수의나  관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지에 직접 시신을 안장하였다.  프란체스코가 가르친대로 대지는 자신에게 살과 피를 나누어준 어머니의 가슴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신이 썩지않도록 미이라로 만들거나 금관과 석관 속에 안장하고 방부처리를 하여 영구보관하려는 영웅들이나 세상 권력자들의 헛된 욕망과 너무나 대조되는 프란체스코 영성의 마감모습 이었다.  

II.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영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 프란체스코 수도회 영성운동의 특징은 수도원을 짓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영성수련하는 전통을 깨고, 민중들 속에 직접들어가는 탁발수도회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는 점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운동은 철저한 청빈정신과 민중속에 살아 숨쉬는 수도회로 탈바꿈 했다. 세상을 떠난 탈역사적 혹은 몰역사적 수도회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고 민중과 평민들 속에 파고드는  수도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프란체스코수도회 운동을 통하여 수도원의 본질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영성적 생활 그 자체요, 위계적 단체조직체가 우선이 아니라 형제의식으로 뭉쳐진 정신적 공명(共鳴)의 공동체임을 밝혔다.
  둘째, 두말 할 것도 없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운동 영성의 특징은 청빈의 정신과 실천적 사랑에 있다. 청빈은 모든 수도회의 기본정신 이지만, 얼마나 철저한 청빈정신으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의 관건이다. 물질은 청빈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명예욕과 권력욕으로 물든 성직자나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볼 때, 프란체스코의  진정한 청빈의 정신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말로서 설교하지 않고 조건없는 자기헌신의 희생봉사를 통해 실천하는 영성이었다.   
  셋째,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영성은  노동을 기도의 한 형태로까지 승화한 수도회이다. 또한  수도원 안에 우울하거나 심각한 분위기가 지배하지 않고 쾌활하고 감사와 노래와 즐거움이 숨쉬는 수도회적 삶과 영성공동체 생활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생활식품이나 의복을 만드는 양털이나 면을 구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고 축산을 하였는데, 노동 그 자체가  종교적 기도가 되도록 승화시켰다.  현대인들에게는 노동과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었고, 이원론적으로 대립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을 통하여 자신의 영성이 깊어지고 순화된다는 프란체스코의  영성적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넷째, 현대사회와 문명속에서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주목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그의 영성이 자연의 삼라만물을 형제자매로까지 한몸처럼 느끼는 ‘자연신비주의’혹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가르쳤다는 사실에 있다.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삶에 대립되는 부정적 파괴적 체험으로 받아드려진 죽음마져도, 적대자가 아니라 창조질서의 한 과정으로서 형제자매로까지 받아드리는 놀라운 영성을 보이고 가르쳤다는 점이다. 프란체스코에겐 태양,바람, 대지, 공기, 물, 동물과 식물들이 모두 형제자매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평면적 자연주의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눈이 열려 깨닫고 보면 창조주의 영광과 사랑이 그 안에 숨쉬고 나타나는  성례전 같은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 삶에 있어서 경제적 조건과  적절한 사회적 신분의식과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현대인들은 너무나 과도한 물질적 낭비와 사치,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의 획득 욕망에 시달리면서 자신과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놓치고 있다. ‘청빈’이 불가능하더라도 청빈하게 살아간다는 자세로서 적적한 ‘절제’의 삶이 요청된다.  종교적 삶이란  ‘지금․여기’에서 자기의 내면적 삶과 외면적 삶에 균형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웃생명들의 희비애락에 동병상린하는 감수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시인 천상병이 ‘귀천’(歸天) 이라는 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한마당 이 땅의 인생의 삶을 아름답게 사는 내면적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영성적 힘인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프란체스코 영성의 비밀이다.


세 번째 순례: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초탈과 돌파의 영성



I. 엑카르트는 누구인가?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마져도 성 어거스틴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을지라도, 마이스터 엑카르트(1260-1372)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어거스틴 못지않게  어떤 점에서 보면 현대인들의 깊은 영적 갈증을 해소시키고 허무의 질병을 치료해줄 사상가는 마이스터 엑카르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중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요, 신비가요, 탁월한 수도원 행정가요, 신학과 철학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는 당대엔 언제나 몰이해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는 것이 상례이듯이,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신비적 영성사상은 당대 교권주의자들에게 비난과 이단사냥의 표적이 되었다. 그의 신비사상이 지닌 철저한 급진성 때문에 파리대학 신학부교수였고, 교구장으로서도 큰 인물이었던 도미닉 수도회의 거성 그 자신마져도 생존말기엔 교황청당국의 이단재판의 피고인이 되었다.  그는 중세 카톨릭 신학의 대표적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엑카르트는 스콜라철학의 신비가였다고 말 할 수 있다. 엑카르트의 영성신학에 대한 가장좋은 텍스트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였던 길희성박사가 쓴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사상』(분도출판사, 2003)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특히 개신교는 이성과 신앙, 지성과 영성,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 신성과 인간성을 너무 날카롭게 구별한 남어지 그 둘사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 처럼 분리시켜 버렸다. 한국 개신교를 둘러보더라도, 가슴과 머리가 모두 뜨거워져서 자기성찰적 신앙과 조용하게 사유하는  지성적 믿음을 포기해버린 열광주의적 기독교, 무당굿판 같은 기독교, 심지어 일부에서는 광신적 기독교라는 인상을 한국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복음정신을 이어받았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스스로 도취하여  공로신앙과 영적 탐심에 깊이 물들어있다. 기독교를 둘러싼 이 세상풍조가  자본주의적 사회이기 때문에, 성공신화와 무한경쟁과 교회성장이라는 비복음적 신화가 기독교를 깊이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계의 위기시대에 마이스테르 엑카르트의 영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II.초연초탈(超然超脫)의 영성: 페르소나를 벗고 순수한 자기를 되찾는 것

  현대인들의 심적 갈증은 참 자리를 잃어버린데서 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 탄생한 이후, 가정과 사회라는  관계성 속에서 자아의식을 양파처럼 한겹두겹 형성해간다. 일정한 사회공동체 안에서 대인관계에서 자기 역할과 책임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관리, 공무원, 군인, 의사, 예술인, 종교인등등 그 종류는 너무도 많다. 사회적 신분도 중요한 자기의식의 구성요인이 된다. 국회의원, 교수, 신부와 목사, 승려와 판사, 재벌 회장과 사장등등이 그 예들이다. 물론 건강한 사회활동과 자아심리학에서 말하는 건강한 정신적 자아활동을 하려면 위와 같은 다양한 일감과 사회적 권리와 책임의식을 분명히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영성신학적으로 보면 그러한 모든 자아인식은 참 자기의 영혼이 걸쳐입고 있는 의복과 같고, 공동체가 자기에게 맡겨준 역할을 내면화한 자기상(自己像) ‘페르소나’인 것이다. ‘페르소나’(persona)란 헬라어인데 본래는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자기가 맡은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얼굴에 쓰는 가면(假面) 곧 마스크(탈바가지)를 말한다. 연극무대에서 맡은 자기가 맡은 배역을 하는동안 마스크(페르소나, 탈)는 필요하고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런데 만약,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모두 모여서 얼굴에 썼던 탈을 벗고 휴식을 취하거나  각자 자기가정에 돌아갔을 때, 연극에서 ‘이순신 장군’ 역활을 했던 배우가 여전히 자기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행동하고 말한다며 어찌될 것인가? 그 증상이 심하다면 그 배우는 정신병동에 들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하고 배우로서의 직업은 포기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를 위에서 들었지만, 현대인들의 영적 위기와 정신적 허탈감은 거기에서 온다. 현대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사회가 사회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회적 공동체적 역할 속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과 직분이 참 자기인줄로 착각하다가 어느날 그 모든 것들은 마스크(탈)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을 때, 양파껍질을 한겹 두겹 벗기다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듯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자기영혼의 공허를 절감하는 것이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러한 영혼의 공허성을 피동적으로 당하기 전에 자율적으로, 자기성찰을 통하여 참 자기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혼이 온갖 삶의 과정 속에서 둘러 뒤집어 쓰게된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순수자아, 순수영혼, 순수자기에로 돌아가는 마음의 결단을 초탈(超脫, Abgescheidenheit) 혹은 초연(超然, Gelassenheit)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인간, 참 자기, 씨알로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순수한 인간의 본래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영성의 제일 첫번째 필요한 조건이다. 불교계 선사(禪師)들이 말하는 무의도인(無衣道人) 혹은 무위진인(無位眞人)이 그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삶 속에서 그러한 영혼의 초탈상태, 정신과 영혼의 초연상태를 자발적으로 들어가기가 쉽지않다. 예를 들어보자. 땅위의 인간관계에서 부모의 자식사랑만큼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도 없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일생동안 자식을 위해서 부모로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식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뒷바라지 한 부모가 말년에, 자식들이 결혼하여 부모곁을 떠날 뿐 아니라 부모의 은혜를 잘 기억하지도 않을 때, 그 부모들의 공허감과 맘 속의 분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 요즘 조기은퇴 붐을 맞아, 50-60대이후 노인들의 경우 특히 지난날 재벌 기업체 간부, 금융업계 장들, 고급공무원, 영관급 및 장성출신, 인기직종의 배우들, 정치계 국회의원들과 종교계 거물급들은 심각한 자기공허감과 박탈감에 시달린다. 갑자기 벗겨진 페르소나 곧 자기가 둘러쓰고 있던 마스크가 벗겨지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등등 자기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밖을 향해 줄달음질 하던 삶의 자세를 안으로 영글어가도록 자기성찰의 자세로 바꿔가야 한다. 대체로 나이 40대가 넘어서면 이러한 삶의 전환이 와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은 40대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다. 40대가되면 명예욕이나 물질욕이나 이성에 끌리는 그런일이 아예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사회인으로서, 노년의 경제생활까지를 염려하면서   더 정신없이 밖의 세상을 향한 활동을 강화 할 것이다. 그러나, 식물의 성장과 열매맺는 과정을 진지하게 관찰해보면, 한 여름 태양의 열기 속에서 과일크기를 늘리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성장을 극대화하던 과수나무는 처서가 지나고 입추가되면  성장을 멈추고 안으로 영글어가는데 온힘을 기울인다. 필요하면 나무의 잎을 스스로 떨구어 버리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40-50대가 지난 이후에도, 자기의 내면적 성찰 곧 영혼의 영글음에 관심을 갖지않고 밖으로만 치닫는 사회활동적 인간은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저명한 정신과 의사 칼 융(Carl Jung)박사는 지적하고 있다.

III. 청빈의 영성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탄생한다.

   자기를 비우되 가정과 직장과 사회적 관계속에서 뒤집어 쓰지 않으면 않되었던  가면들을  벗어버리기 위해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중세기 영성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청빈’을 강조했다. 청빈에는 세가지 단계가 있다고 엑카르트는 가르쳤다. 소유의 청빈, 의지의 청빈, 존재의 청빈이 그것이다.
   ‘소유의 청빈’(poverty of possession)이란 글자그대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이  내 생명을 보장하고 풍요롭게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의지의 청빈’(poverty of will)이란 지나친 자기의지를 발현하여 그 무슨 일을 기어이 해내려는 지나친 일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한다고 자신과 신도들을 지나친 선교사역일이나 큰 교회당 건축일에로 몰아가는데 그것은 ‘거룩한 탐심’일 경우가 많다. 셋째는 ‘존재의 청빈’(poverty of being)인데,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주인이라는 자각 속에서  마지막까지 자기의 존재를 관리하고 주장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내가 산자의 땅에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선물로 받아드리고,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감사 할줄 아는 것이 ‘존재의 청빈’이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 청빈을 성실하게 이루면, 인간의 영혼은  무한히 밝아지고 맑아지고 자유로워 진다. 인간의 영혼은 자기가 거기에서 본래 태어난 ‘아버지의 집’ 혹은 ‘어머니의 모태’에로 다시 환원한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신학에서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신비주의 운동에서 보이는 반지성주이나 지나친 열광주의적 몰입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접하고, 인간의 영혼이 청빈해져서 본래의 고향집에 이르면, 영혼은 거기에서 본래의 순수한 ‘일자’(一者), ‘신성’(神性), 존재자체, 하나님, 혹은 순수정신을 만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롭게 생명의 충일과 자유와 거룩을 체험한다.
  엑카르트의 하나님은 전통적 기독교의  유신론적 초월신관에서 말하는  ‘하늘에 계신 절대군주’같은 분이 아니다. 성경이 증언하는대로 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 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사도행전 17: 28) 그런 존재지반으로서의 실재이며, “만물이 그로부터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그에게로 돌아가는”(롬11:36,엡4:6) 궁극적 실재이다.

IV. 마이스테르 엑카르트의 영성신학이 오늘에 주는 의미

  마이스테를 엑카르트가 체험한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서 생각하고 교리와 신학체계 속에 가둬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엑카르트는 ‘신을 넘어서 있는 신’(God beyond gods)을 말했다. 인간의 종교란  해당 문화의 언어와 역사 속에서 체험하고 묘사한 ‘일자’(一者)에 대한 부분적 묘사인즉,  ‘붓대롱으로 본 하늘이다’는 사실을 알라고 경고를 보냈다.  
  어느 종교던지 절대적 배타주의와 자기종교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종교는 매우 위험하다.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들의 이념과 특정가치와 특정세계관을 절대화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이름들을 초월해 있는  참 하나님은 이름할 수 없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모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를 빛과 생명과 진리로서 떠받히고 이끌어주고 있는 신비자(The Mystery)이다.
  종교와 신의 권능을  빌려서 인간이  획득 하고자하는 것들과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을  얻으려는 시도는 모두 타락한 시대의 거짓종교 모습이다. ‘종교의 타락시대’ 속에서 초탈, 초연, 청빈, 영혼의 돌파와 환원을 강조한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은 새롭게 음미되고 주목 할만하다. 하나님은 저 밖에 있는 ‘절대타자’라기 보다는  우리들의 영혼의 밑바탕에서 혹은 영혼 안에서  선함, 아름다움,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라고 부르는 미세한  ‘소리’이다.
  오늘의 종교는 인간에게 참다운 쉼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니면 거룩의 이름으로 도리혀  인간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순수한 인간이 아닌 종교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성찰해야 한다. 특히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 3대종교는 아브라함과 구약 예언자들의 말씀을 중요시하는 셈족계 종교들이다.  셈족계 종교가 지닌 위대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셈족계 종교들이 일으키는 배타적 신앙과 근본주의적 진리관은 땅위에 평화보다는 파열음과 갈등을 일으키는 측면이 많다. 물론 종교가 언제나 거짓 평화를  노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진리란게 특정종교의 이념이나 특정 정치이념과 결탁된 극우파적 절대주의가 될 땐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극우파적 보수주의 기독교는 미국 극우파 매파들과 같은 배를 타고서 세계도처에서 “하나님의 뜻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아래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셈족계종교가 동일하게  강조하는 바는 ‘우상’을 만들지말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 옛날엔 금이나 동이나 쇠나 나무로 사람의 모습이나  반신반인간(半神半人間)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며 춤추고 날뛰는 모습으로 상징되었다. 그러나, 현대판 우상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가장 현대인들의 맘을 사로잡고, 강렬한 매력과 이념적 흡인력을 가지고 나타날 수 있다. 공산주의이념, 민족주의 이념, 자유민주의 이념, 과학주의 이념, 번영과 풍요의 이념, 군사력 절대주의 이념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히틀러의 제3제국, 소련연방시절 스탈린주의, 일본 극우파들의 천황제 군국주의 이념, 미국의 세계제국주의적 패권주의 이념, 무한생산 무한소비의 경제절대주의 이념, 오류가 없는 문자적 경전절대주의 이념등등은 모두 현대판 우상이다. 그러한 이념들은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비판적 지성을 무디게 하며, 적대감을 부추기며,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 행동을 부추긴다. 부추길 땐 언제나 안보, 민족자존, 정의파수, 진리파수등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추종자를 바보로 만들면서 열광주의로 빠지게 한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청빈의 영성은 위와 같은 현대판 우상들을 비판적으로 분별하게하는 지성의 눈을 열어준다. 우상숭배자들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지적을 절대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자기들은 진리를 지키고 선양하는 십자군적 정예병사들 이라고 자신들을 맹신하는데 문제가 있다. 해방6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사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를 조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마이스테르 엑카르트 영성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조언은 남북한 한국인들에게 “당신들은 현대판 우상들에게 조종당하면서 지난 60년을 살지않았는가 조용히 성찰하시오”라는 것이다.
   참된 자유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사회실현을 요청했던 이땅의 청년들과 지성인들을 고문하고 살상했던 반공지상주의적 극우파 사람들, 군부독재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기회주의적 수구적 언론인들과 지식도매업자들 ,  노동자와 농민들과 도시빈민들이 삶에 힘겨워할 때 불노소득의 재물로 흥청망청 놀아나던 현대판 천민귀족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정직하게 우리자신을 성찰할 때, 우리는 배금사상의 물신주의와 권력지상주의와 특정 정치이념의 노예가 되어 왔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자기성찰에 있어서 한국 어느 다른 종교들보다도, 한국 어느 다른 사회단체보다도  훨씬 철저한 자기비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기독교가 과연 ‘갈릴리 순수 복음’의 모습인가? 지금의 기독교를 예수는 인정하실가? 한국기독교 지도잘들에게 특히 엑카르트의 초탈, 초연, 청빈, 의지의 가난을 예수는 요청 할 것이다. 겉으로 교세가 불어나고 교회의 재산과 권력구조가 비대해질수록 종교의 순수성은 병이들고 부패와 도덕적 영적 무감각증상에 빠진다. 우리시대 인간이 정작 염려해야할 것은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함”이 아니라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엑카르트가 우리에게 충고하는 진정한 영적 지도의 조언은 “하나님과 영적거래를 하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래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드는 것은 좋지만, 장래 혹시 있을런지도 모르는 래세와 현세축복을 위해서 신의 환심을 사고, 달래며, 경외하는척 아첨을 떨며, 신을 더 열심히 지성껒 받들어 모시겠다는  무의식적 ‘신과의 거래’를 당장 중지하라는 것이다. 욕심과 하찮은 허영심으로 어두어진 눈을 비비고 바르게 보면, 인간이란 대우주 자연속에서  한갖 들의 풀이요 잠간 언덕위에 피어있는 할미꽃들이다. 모두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영광을 영원히 남기려는 피라밑과 청동거울과 묘비와 기념건축물도 몇만년이 지나면 모래바람 속에 다 씻겨 없어져 버린다. 참자기를 찾아 자유인으로서 삶속에 있는 진선미를 사랑하면서 겸허하게 사는 것 그것이 최선의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고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매번 내 순수해진 영혼 안에서 다시 태어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신학이 가르치려 했던 참된 경건이었다.



넷째번 순례:

          예수회의 영성; 이냐시오의 삶과 신앙


[1] 이냐시오 로욜라는 누구인가?

한국의 명문대학으로서 서울 신촌에 서강대학이 있고, 20세기 위대한 기독교사상가로서 고생물학자인 떼이야르 샤르뎅과 칼 라너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 모두가 예수회(Society of Jesus; S.J.)에 속한 교육기관이요 세계적 인물임을 알고 놀라게 된다.
 ‘예수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한 한 수도회 이름이지만, 베네딕트수도회나 프란체스코 수도회나 도미닉 수도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젊은 수도회 이름이다. 젊다고 하지만 16세기 스페인에서 일어난 놀라운 수도회이다.  예수회 수도단체가 젊은 인상을 주는 것은, 그 창설연대가 근대사회가 시작되는 종교개혁당시 16세기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수도회가 지향하는 정신과 행동양식이 매우 역동적이고 진보적이고 현실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수도단체 예수회는 스페인 로욜라 출신의 귀족출신 기사(騎士)였던  이냐시오 로욜라(Ignace De Loyola,1491-1556)를 중심으로 창설된 수도회이다. 이냐시오는 라틴어 발음으로서는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냐시오는  중세 스페인의 한 귀족의 영지(領地) 로욜라 성(城) 상류층 가문에서 탄생했다. 그는 귀족가문의 혈통을 타고난 덕으로 장래가  촉망 된 젊은 장교 기사가 되었다. 15세기말부터 16세기 초는 스페인의 국위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였는데, 아라곤의 왕 페르디난도(1452-1516)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1451-1504)이 합력하여, 현대 스페인의 땅 대부분을 이슬람 정치지배로부터  회복하여 튼튼한 가톨릭왕국으로 복원시키고, 콜럼부스(1446-1506)를 신대륙 발견토록 파견하는등   국력이 한껒 신장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독일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다른 귀족 출신의 젊은 기사들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으면서도, 패기와 야망과 명예욕에 불타던 이냐시오는  만30세가 되던 1521년 전투에서 오른쪽 다리 무릅아래 포탄의 파편을 받아 큰 부상을 입고 고향땅 로욜라로 후송되어 치료요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다리에 입은 큰 수술을 받고 수개월동안 요양하던 중, 이냐시오의 맘에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성수련과정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영성식별’(靈性識別)의 의식이 그에게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영성식별이란 잠자던 사람의 영성이 깨어나면서, 참으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감각 쾌락적인 것과 정신적 기쁨, 그리고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는 속 맘의 눈이   뜨이는 것을 말한다. 이냐시오는 지난날 까지 자기가 귀족가문을 배경으로하여 추구하던 이 세상적인 권력, 명예, 부귀, 출세욕망, 무사로서의 영웅심등을 생각할수록 부끄럼과 황량함과 메스꺼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 대신, 그가 요양중 병상에서 읽었던 성인열전(聖人列傳)의 인물들이 추구하던 새로운 가치  세계가 한없는 청량감과 기쁨과 위로를 주며 다가왔다.
  이냐시오는 건강이 회복되자 성지순례를 결심하고, 몬세라트 수도원을 방문하여 성모마리아 상 앞에 끓고 그가 지금까지 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귀중하다고 여기던  귀족복장과 기사도의 장검과 그에 딸린 모든 것을 제단위에 바쳤다. 그리고, 이제는 복음의 영적 전사로서 헌신하며 가난한자들을 도우며 살기로 서약했다. 그 수도원에서 멀지 않는 카르도네르 강변의 한 작은 동굴 곧 만세라동굴에서 기도하던중 이냐시오는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영적체험은 이냐시오 일생에 큰 전환점을 이루었으며, 실질적으로 먼 훗날 창설하는 예수회 수도회의 기틀이 되었다.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빛으로 밝게 되는 ‘심령의 조명(照明)’을 경험했다. 지성이 밝아지고, 사물의 본질이 환히 드러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님의 영적 현존과 진리에서 오는 밝음과 생명적 충만감을 체험하였다. 지금까지 그의 맘을 지배하던 회의와 염려와 불안은 살아지고 삶의 목표가 뚜렷하게 각성되었다.
  교통수단이 어려웠던 시절, 그는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마치고, 신학수업에 전념하였다. 파리에서의 유학생활(1528-1535)은 귀족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이나 특별대우를 포기한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으나,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절반 이상이 극도의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도리혀 빈민구제에 진력하고, 가급적  가난한자들이 살아가는 수준에서 살려고 노력했다. 여기에서 이미, 예수회 수도단의 두가지 특징 곧 영적 깊은 체험을 추구하면서도 학문적 지성을 존중하는 것과 병원과 고아원등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을 집중하는 수도회의 특징이 자리잡게 된다. 파리유학시절 이냐시오 주위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젊은 진리구도의 수도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임의 이름을 ‘예수회’라고 부르기로 합의하였다. 오직 청빈과 겸비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신 예수만이 그들의 주님이시고, 이세상의 어떤 권력․이념․국가․교권도 그들의 우상이 아님을 다짐했다.
  1540년 로마교황 바오르3세는 예수회 수도회 창설을 공식으로 승인하였다. 1556년 예수회 수도회 수사들의 회원숫자는 이미  1,000명을 넘었다. 그들은 예수회 수도회 회칙을 정하고, 이냐시오를 종신 수도회 총장으로 추대하여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예수회는 고아들, 빈민자들, 창녀들, 교육받지 못한 하층계층 사람들, 걸인들을 위한 수용시설을 마련하고 그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영적 양식을 제공했다. 가는 곳마다 교육기관을 설립했는데, 그 교육기관들이 훗날 유명한 대학들이 되었다.  이냐시오는 65세로(1556) 별세하였고, 1622년 교황 그레고리15세에 의하여 성인으로 추대되어 성인으로 불리워진다. 이냐시오는 숨거두기 전  ‘이냐시오 기도’라고 뒷날 불리우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 그리스도의 육신은 나를 구하소서. / 그리스도의성혈(聖血)은 나를 취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늑방(肋肪)에서 흘리신 물은 나를 씻으시며/  고난의 그리스도는 나를 굳세게 하소서. / 오 , 선하신 예수여, 나를 들어 허락하소서. / 당신 상처가운데 나를 숨겨주소서./ 내가 당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소서./ 악랄한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소서./ 내가 죽는 시간에 나를 부르시어 당신께로 나아가게 나를 바로잡아 주소서./ 이로써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아멘.

[2]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과 현대 예수회 수도회의 정신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적 체험으로부터 불븥기 시작한 예수회 운동은 450년 이상을 지내오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창조적 활동을 하게 된다. 아래에서 우리는 예수회영성의 어떤 특징이 그 수도회를 창조적이고도 역동적 수도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아래의 예수회정신에 대한  본질 해명은 20세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신학적으로 큰 공헌을 한 예수회소속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 신부의 논문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현대의 예수회 회원에게 주는 훈화”라는 논문 내용을  요약소개 함으로서 이뤄지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칼 라너 신부는 우리들과 동시대의 사람이요,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에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라고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로욜라의 이냐시오 영성은 사람이 비록 유한하고 그의 모든 경험은 제한적일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체험은 무한한 신비이신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이 자유와 은총 안으로 사람의 마음을 인도하시고 마음을 밝게 조명해주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접적 하나님 체험의 가능성을 이냐시오 영성에서 먼저 강조해야 하겠다.
  흔히 우리들은 우리자신이 너무나 철저하게 생물학적 동물이고,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철저하게 역사적 상대성과 문화적 제한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인간이 거룩지존․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망상이거나, 자기심리적 착각일 뿐이라고 첨부터 포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나려는 인간의 영성적 갈증은  연어가 자기가 부화하던 옛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가려는 모천회귀 본능처럼 인간의 가장 신비스런 특징이다.  그것은 사실 너무나 엄청난 일이요, 인간의 조건이나 됨됨이만을 보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포기해야 할 일이다. 그러데, 하나님이 불가해한 신비 안에서,  침묵하시면서도 가까이 계시는 그 분 안에서,  인간의 심령은 한껒 고양되고, 조명되고, 밝아진다는 경험을 이냐시오는 강조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적(知的)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냐시오 로욜라가 젊은 구도자로서 마음이 오직 진리에만 갈급하던 그 시절, 만레사 동굴에서 경험한 ‘심령의 조명체험’을 가진후, 이 하나님체험의 생생한 감동은 예수회 수도회를 역동적이도록 만드는 내적인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냐시오 영성’이라고 부르는 그의 영성신학의 핵심이 된다. 기독교가 ‘은총’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은 무슨 초자연적 은사 곧 초능력을 발휘하는 힘들 예들면 축귀능력, 병고치는 능력, 예언과 독심술 등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직접적 현존을 체험하는 사건을 말한다.  
  둘째,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신학에서 둘째특징은 위에서 말한 이러한 하나님체험은 인간의 창조의 본래목적인 바,  각자가  자신의 생명의 씨앗을 발아시켜 자라나게 하여 마침네 영글게하는  가능성은 하나님이 조건없이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내어주시고 알려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체험은  성직자나 특별히 선택받은 종교적 신비가에게만 열려있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가능도록 열려진 ‘개방된 비밀’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기 전에, 마치 태중에 잇던 영아가 세상에 나와 눈을 뜨고 태양을 바라보기전에 항상 복중의 글르 비취고 있었듯이, 하나님은 자신을 피조물중 영물인 인간에게 항상 내어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일상인으로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직접적 현존을 또렷하게 못느끼는 것은, 밝은 태양을 먹구름이 가리워 지상을  어둡게 하듯이, 우리들의 심령안에 온갖 비본질적인 안개와 검은 구름들이 걷히지 않고 우리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영혼)을 덮고있는 안개나 먹구름들은 혈기, 어리석음, 명예욕과 권력욕, 게으른 습관, 진리자체와 하나님이 계시기라도 할가라는 의심, 종교적 철학적 신념이나 교리, 심지어  하나님을 내가 조종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영적 탐심등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위에서 예로서 열거한 모든 비본질적인 구름들을 거두어 내고,  한없는 신비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모셔드리기만 하면 날마다 달마다 점점 조금씩 조금씩 더 분명하게 하나님은 체험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관건은 우리가 ‘거룩한 수동성’으로서 하나님의 현존과 내주(內住)를  겸허하게  받아 모시는가 거부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의 이웃사랑의 계명을 진솔하게 순명하는가 이다.
  셋째,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신학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님은 거룩한 ‘떨기나무 불꽃 속’ 에서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면서도 목동 모세와 사막의 떨기나무 관목들을 불살라 태워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거룩한 광휘로 감싸시면서 피조물 속에 ‘육화’하시는 하나님이기에, 세계는 ‘긍정’되어야 할 값있는 실재라는 신념을 지닌다는 점이다. 흔히 중세기 수도회들은 초자연적 하늘나라를 앙모하며 지상의 현세적  삶을 무가치하거나 짧은 기간 잠시 통과하는 기차철로변 간이역 정도로 생각하면서, 금욕주의와 탈역사주의 태도를 가지곤 했다.
  그러나, 이냐시오 로욜라가 체험하고, 예수회 수도자들이 만남 하나님은, 이 악과 부정이 판치는 세계를 거룩한 하나님의 불로 태워서 바르고, 아름답고, 진실된 생명세계로 일궈내라고하는 현실변혁적인 사명을 수도자들에게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회 수도자들은 과학, 교육, 발견과 발명,  세계개선과 사회복지등진등에 열심히 참여한다. 세상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심판이 불로 인하여 소멸되어 버려야 할 대상도 아니고, 악한자들이 맘대로 주무르도록 방치하거나 포기되어야 할 동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회는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를 따르고 본받으려는 수도회 경건추구와 함께, 제32차 세계 예수회 총회에서 그들의 수도회 목적 속에 ‘신앙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예수회의 임무로서 추가선포 하였다. ‘명상과 관상’(Meditation & Contemplation)을 영성 수련의 주목적으로 삼는 수도회의 근본설립목적 안에 ‘신앙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넣는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물론 그 투쟁은 폭력적 투쟁을 용납하는 것은 절대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랑의 투쟁, 희생을 통한 진리의 투쟁을 말한다. 세상에 편만한 절대빈곤과 인가의 비참을 방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넷째,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수련’은 결국 구체적으로는 예수에 대한 지극한 순명을  강조하고, 그분을 묵상하고 본받고 따르려는 신심으로 귀결된다. 예수 안에서 진리와 겸비와 사랑의 화신을 본다. 그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 사랑의 아픔을 육화로서 나타낸 아들의 성육하심을 본다.  예수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을 보며, ‘청빈과 겸손’의 절정을 본다.
  그러므로, 이냐시오 영성수련이란 예수닮기 훈련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의 삶의 발자취를 깊이 묵상하고 따르면서, 홀연히 예수 생명과 수도자 자신의 생명이 일치되는 ‘사랑의 일치’를 경험하도록 수련하는 것이다. 교회란 그 일을 효과적으로 돕는  거룩한 기관이라고 본다. 예수회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본래적인 모습을 견지할 때, 교회에게 위탁된 거룩한 권위와  그 권위의 대표적 상징인 교화의 권위에 절대순명하기로 서약한 수도공동체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며 그리스도도 아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징이며 상징물이다.
 예수회 수도자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황의 교도권에 복종하지만, “교회와 교황을 지키는 근위병”으로서 살기를 서약한 사람들은 아니다. 가난과 겸손으로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를 따르고 그에게만 순명하는 제자공동체들이 되어 이세상의 온갖 우상들의 가면을 폭로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자유하고 사랑하면서 살도록’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예수회 라는 수도단체의 영성은 사랑이며 자비이신 불가해한 하나님을 향해 과감하게 영적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는한, 항상 그들 곁에서 그들을 돕고 격려하는 진리구자의 도반(道伴)으로서 걸어갈 것이다.  순례자 이냐시오와 예수회 수도자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거두어 받아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나의 지성과 나의 모든 의지를. 내게 있는 것과 소유한 모든 것을. 당신 그것을 내게 주셨으니, 주여, 당신께 그것을 되돌려 드리나이다. 모든 것은 당신의 것,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영성순례자 탐구:어거스틴,프란시스,엑하르트, 이냐시오

(월간 삶과 명상, 2005년 8월-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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